아름답고 위험한 이름, 비너스
옮긴이의 말 |
Keigo Higashino,ひがしの けいご,東野 圭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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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진정시키려는 듯한 잠깐의 틈을 두고 그녀는 말을 이었다. “행방불명이에요, 아키토 씨가. 벌써 며칠째 돌아오지 않고 있어요.”
--- p.11 나는요, 라고 가에데가 말했다. “야가미가가 아키토 씨의 실종과 뭔가 깊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야가미가 사람이 아키토의 행방을 알고 있다는 겁니까?” “네, 그뿐만이 아니에요.” 가에데의 약간 갈색이 서린 홍채가 번쩍 빛났다. “야가미가의 누군가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실종 상태가 된 게 아닌지 의심스러워요.” --- p.105 “그건 명백히 알리바이 확인이었어요. 7일의 이모부와 이모의 행동을 확인해 보려는 것. 그렇죠? 혹시 이모와 이모부가 아키토의 실종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가에데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입가를 풀고 웃었다. “관계가 없다는 근거라도 있나요? 단순히 착한 사람들이라서?” --- p.145 아키토 씨의 의향은 다음과 같습니다. 돌아가신 조부의 유지를 기꺼이 받들고자 한다. 즉 야가미 저택 및 그에 부속한 모든 것을 상속한다. --- p.236 “욕실 말이야. 데이코 씨가 욕실에서 사망했잖아. 그러니 아들이 그 욕실을 바라보며 여태 저렇게 원통해하는구나, 하고 나 혼자 짐작만 했지.” --- p.310 “사요 씨는 왜 고노스케 씨의 양자로 호적에 올라갔습니까? 역시 재산을 노린 건가요?” --- p.356 “아키토는 어머니가 살해됐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했어요. 그렇다면 당연히 범인을 원망했겠죠.” --- p.381 “형님은 가설을 세웠어. 뇌종양에 의한 뇌의 일부 손상과 전기 자극에 의한 뉴런의 정보 개변이 선천적으로 뇌에 장애가 있는 서번트 증후군과 유사한 증상을 초래한 게 아닌가 하고. 이 가설이 참이라면, 이론상으로는 의도적으로 서번트 증후군을 일으킬 수 있다는 얘기가 돼.(…)” --- pp.436~437 |
천재 IT 사업가 동생이 실종되고 낯선 여자가 나를 찾아왔다
“동생이…… 행방불명이에요.” 모든 사건은 어느 날 낯선 여자에게서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부터 시작된다. 여자는 주인공이 10년 넘게 얼굴 한번 보지 않고 지내 온 이부동생과 갓 결혼한 사이라며 자신을 소개한다. 그러고는 한술 더 떠 그 동생이 실종되었다면서 동생의 행방을 함께 찾아 줄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 도입부부터 흥미로운 이 작품은 전체 3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500페이지가 넘는 장편소설임에도 예측할 수 없는 반전이 거듭되어 독자로 하여금 그야말로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한다. 처음에는 사라진 IT 사업가(아키토)를 찾기 위해 그의 아내(라고 소개한 여자) 가에데와 형(하쿠로)이 합심해서 진상을 파헤치는 것처럼 보이나, 그 내막에는 일본 의학계 명문가의 유산 상속 갈등이라는 복잡한 속사정이 얽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 과정에서 하쿠로가 과거에 묻어 둔 인물들-치매로 투병 중인 재력가 새아버지, 뇌종양을 앓다 세상을 떠난 무명 화가 출신의 친아버지, 16년 전 의외의 장소에서 갑작스러운 사고사를 당한 친어머니-이 현재로 되살아난다. 그리고 철저한 주변인이자 조력자로서 ‘동생 실종 사건’에 뛰어들었던 하쿠로는 어느새 사건의 당사자 위치에 서게 된다. 무명 화가였던 아버지가 남긴 프랙털 도형 그림에 숨겨진 진실 “그건 금단의 그림이고, 인간이 그려서는 안 될 그림이었어.” 사건은 작품 중반부터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아키토가 상속 받을 유산 가운데에 하쿠로가 아주 어렸을 때 여의었던 하쿠로 친아버지의 그림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서번트 증후군, 프랙털 도형, 울람의 나선, 리만 가설’ 같은 뇌 의학 및 수학 용어가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소설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힘든 이러한 단어들은 독자로 하여금 신선한 충격과 더불어 독특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무엇보다 과학 미스터리의 장인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작가는 이 소재들로 말미암아 스토리가 어렵게 느껴질 즈음 적당히 오락성과 허구성을 첨가함으로써 쓸데없이 진지해지지 않고 노련하게 선을 지키는 여유를 보여 준다. 특히 이 ‘난제들’이 신의 영역이자 자연의 섭리로 남을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반전의 대단원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독보적인 상상력과 작가적 역량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왜 아름답고 위험한 비너스인가? 마지막 대반전으로 가에데의 정체가 밝혀진 순간, 어쩐지 불편한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독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지도 모른다. 인류가 면면히 쌓아 온 윤리 도덕의 흔들림은 얼핏 아름다운 유혹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아름답고 위험한 비너스’라는 것이리라. - ‘옮긴이의 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