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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1. 몽마르트르의 패거리들 2. 리틀릴로 3. 청색시대 4. 파리에 온 두 미국인 5. 시프리앙 6. 기욤, 정말 사랑 받은 남자 7. 아름다운 페르낭드 8. 바토 라부아 9. 야수의 우리 10. 광대들 11. 결투의 시대 12. 고솔 13. 플뢰뤼스 가의 어느 날 오후 14. 아비뇽의 사창가 15. 마음씨 좋은 세관원 (이하생략) |
박철화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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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하게 장난을 치다 보면 곧 싸움이 된다. 클로즈리 데 릴라에서 칼을 뽑은 알프레드 자리를 기리기 위해 몽마르트르의 무리는 라비냥 거리 곳곳에서 칼을 뽑아 들고 난동을 부렸다.
피카소는 자신의 브라우닝 권총을 늘 지니고 다녔다. 성가신 사람이 있으면, 쫓아 보내려고 (공중에다) 총을 갈겨댔고, 바토 라부아로 돌아올 대면 술 냄새 풀풀 풍기는 흥겨운 무리의 대장 자격으로 총을 쏘았다. 그리고 이웃들을 깨우기 위해 창문에도 총을 갈기기도 했다. 어느 날 저녁 피카소는 세 명의 독일인을 초대해 자신의 작품을 보여준 다음 라팽 아질로 데려갔다. 가는 도중에 방문객들이 미술과 미학 이론 따위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피카소는 그걸 견디다 못해 총을 뽑아 들고는 하늘에다 대고 갈겼다. 세 독일인이 혼비백산해 줄행랑을 놓은 것을 말할 것도 없다. 사람들이 그 앞에서 세잔에 대한 불쾌한 말을 꺼냈을 때도 그는 총을 꺼내 그들을 위협했다. "닥치시오" 피카소가 베르트 베유에게 기대한 돈 문제에 관해 그녀가 좀 꺼려하는 자세를 보이자, 그는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총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또 한번은 카페에서 권태감을 느낀 나머지 천장을 향해 총을 몇 방 갈기기도 했다. 그러나 총알이 사람을 맞힌 적은 한번도 없었다. --- pp.154-1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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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없는 세상은 맹목적이리라. 그때 세계는 아주 피상적인 몇몇의 극단적인 규범 속에 갇힐 것이다. 그리하여 그런 피상적인 규범이 한 사회에 뿌리내리게 되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검열하고 금지하며 불태우는 전체주의가 생겨나는 법이다. 이러한 전체주의는 사유와 꿈과 기억, 그리고 분별력 있는 표현을 가능케 하는 모든 인간적인 시선을 파괴한다. 예술가들이 태어나는 토양이란 바로 그러한 파괴를 딛고 생성을 지향하는 곳이다.일종의 정의라기보다는 자격을 나타내는 이 '예술가'라는 말은 수많은 항변과 논평을 불러일으킨다. 예술이 고귀하고 거창하며 꾸밈없고 아름다운 반면, 예술가들은 별 볼일 없는, 흔히 경멸과 거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곧, 껍데기만 남고 본질은 지워지는 것이다. 성공이나 대중들이 쏟는 관심은 일시적인 것이므로, 매번 다시 원점에서 출발야 한다. '0'인 원점은 하나의 심연이다. 예술가는 오직 자신만의 호흡으로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만일 이런 고유한 호흡이 사라지면 모든 것이 끝장난다. 이렇게 태동 중인 작품과 대면하고 있는 인간들이 있다. 바로 예술가들이다.
'클로즈리 데 릴라'에 자주 모인 시인들이나 '라팽 아질'을 근거지로 한 화가들은 때때로 별난 옷차림을 하고서 시끌벅적한 파티를 열고는, 총을 뽑아들기도 하며, 갖가지 방법으로 부르주아 계층을 자극했다. 이러한 데에는 당시 부르주아 계층이 예술가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다는 데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마치 나중에 공산주의와 트로츠키주의로 무장하고 그러했듯이 예술가들이 무정부주의적 사고를 갖고 펜과 붓을 통해 새로운 길을 열어갈 때, 부르주아는 기껏해야 낡은 질서의 테두리 안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술가와 부르주아는 서로 화해할 수 없는 두 세계였다.앙드레 브르통과 루이 아라공은 자신들이 경멸하는 자들을 두들겨 팰 수도 있었다. 이 같은 기행은 그들이 그려 나간 궤적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일일뿐이다. 우리가 아는 현대 예술은 바로 이런 고상한 말썽꾼들의 손에서 태어났다. 1900년에서 1930년까지 이 말썽꾼들은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데 그치지 않고(그 예술가의 삶으로 인해 어떤 사람들은 예술가들을 혐오스러운 존재로 생각하는가 하면, 다른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부러워했다) 무엇보다도 금세기의 새로운 사상을 창안해 낸 것이다. 전위 예술가들은 늘 세상을 뒤흔든다. 하지만 사회는 곧 그들을 체재 안으로 통합시키고야 만다. 바로 앞 세대의 대담함을 잊게 만드는 것이 예술의 가장 현대적인 경향인 것이다. 자신의 시대에 인상주의는 대중과 비평가들의 분노를 야기시켰다. 하지만 그를 뒤이은 신인상주의는 인상파를 아주 맥빠진 것으로 만들었으며, 신인상주의 또한 무서우리만큼 격렬한 야수파의 색채와 견주어보면 얼마 가지 못해 김이 새버렸다. 또 그런 야수파도 결국엔 괴물 같은 입체파에게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시에서는 낭만주의자들이 파르나스 시인들에 의해, 파르나스는 상징주의에 의해 각각 영예의 정점에서 물러나야 했다. 피카소와 브라크, 이 둘은 어느 하나에서 멈추지 않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찾아 헤맸다. 이처럼 자신 스스로와 대면한 정직한 예술가의 영원한 언어를 구성하는 힘은 바로 회의(懷疑)다. 새로운 작품은 결코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기존의 어떤 것에도 근거를 둘 수 없고, 심지어는 앞서 존재했던 예술 작품에도 바탕을 둘 수가 없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프랑스가 단순히 전위 예술가들의 집결지였던 것만은 아니다. 몽마르트르에는 두 개의 그룹이 공존했다. 하나는 단절 없이 로트레크의 전통 속에 편입된 그룹이었다. 이들의 그룹이 기존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그림을 그렸다면, 피카소와 브라크가 중심인 다른 한 그룹은 새로운 예술을 추구하기 위해 주어진 형태를 과감히 부수었다. 언어와 문화를 섞어가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토양에서 양분을 얻었던, 스페인의 후안 그리스와 피카소, 네덜란드의 반 동겐, 이탈리아와 폴란드 혼혈 아폴리네르, 스위스의 상드라르, 프랑스의 브라크·블라맹크·드랭 그리고 막스 자코브 등은 과도하게 무거운 억압으로부터 시와 회화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기존의 규범을 과감하게 벗어 던졌다. 센 강의 한 편인 몽파르나스에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이탈리아의 모딜리아니, 멕시코의 디에고 리베라, 스칸디나비아의 크로흐, 러시아의 수틴과 샤갈 그리고 자드킨, 프랑스의 페르낭 레제, 마티스와 로베르 들로네(그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등 또한 예술의 전통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1920년대에는 미국 작가들과 루마니아의 트리스탄 차라, 스웨덴 사람들과 또 다른 러시아인들, 그 밖에 갖가지 국적의 예술가들이 몰려들었다. 그리하여 파리는 세계의 수도가 된 것이다.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에 피카소는 이미 부자였지만, 그의 동료들 대부분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끔찍한 가난 속에서 살았다. 하지만, 1918년 이후 사정은 변했다. 신출내기 그림쟁이가 갑자기 눈부시게 두각을 드러낼 수 있는 시대는 끝난 것이다. 휴전을 이틀 앞두고 아폴리네르가 세상을 떠나면서 개척자들의 시대도 끝났다. 1920년에 모딜리아니가 죽음으로써 중세의 프랑시스 비용(프랑스의 서정 시인. 중세 파리에서 추방당하거나 감옥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범죄자로 유명하다)이나 그 뒤에 뮈르제르(자유 분방한 예술가의 생활을 처음으로 묘사했다)가 살았던 보헤미안의 삶도 종말을 고했다. 불가리아 화가 쥘 파스킨은 세기 초의 30년이라는 시간에 종지부를 찍었는데, 바로 그 시기가 보헤미안의 시대였다. 그들은 박애와 관용의 도시, 파리에 살기를 선택했고, 파리는 이방인들에게 자유를 제공해주었다. 물론 오늘날이라면 피카소나 아폴리네르, 모딜리아니나 상드라르 그리고 수틴 같은 예술가들은 더 이상 파리에 살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파리에서 아주 멀리 쫓겨났을 것이다. 후안 그리스는 마약 복용 혐의로, 아폴리네르는 장물 은닉죄로, 모딜리아니는 공공 장소에서의 풍기 문란으로, 상드라르는 진열품을 훔친 죄로, 수틴은 가난에 찌들어 구걸한 죄로 말이다. 《보엠》은 파리 북부, 몽마르트르의 라비냥 가에 위치한 당장 쓰러질 듯한 건물인 바토 라부아의 작업실에서 시작되어, 뤼슈 거리와 예술인들의 거리 몽파르나스에서 점차 제 모습을 갖춰갔다. 이 책은 또 다른 소설 《누워 있는 나체》(쇠이유, 1988)와 내용이 겹친다. 하나가 다른 하나의 빈 공간과 틈 그리고 밝혀지지 않은 신비를 메우고 있다. 예술가는 홀로 노동하며, 그 어떤 사람도 고용하지 않고 또 세속적인 직업도 갖지 않는다. 그리기 또는 쓰기는 기능적인 직업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자유롭게 숨쉴 수 있느냐의 여부이다. 사유나 상상력이 죽으면, 곧 머리가 고장나면 그 어떤 것도, 그 누구도 허무로 인해 질식할 듯한 인간을 구원하지 못한다. 과거의 예술가들에 대해 말하는 것은 곧 오늘날의 예술가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기억이란 반영, 곧 과거의 그림자이자 미래를 향해 투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몇 십 년 동안의 세월을 뛰어넘어 예술가들은 앞 세대 예술가들과 형제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