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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고전 + 철학자가 사랑한 그림
전2권
알렙 2012.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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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품의 구성 소개

책소개

목차

서문 고전은 새롭다. 그러므로 이단이 된다.

제1부 청춘의 문에서, 고전을 읽다

1 … 고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김시천
2 … 촛불의 정치와 진정한 자유! 김성우

제2부 정체성의 문, 인정의 문

3 … 나의 정체성을 찾는 문, 인정인가! 이정은
4 … 성 정체성과 음양남녀 김세서리아

제3부 현실의 문, 진짜일까?

5 … 문화가 산업이 되어 야만적 대중을 생산하다! 현남숙
6 … 생각을 훔치는 사회! 박영욱
7 … 현실이 진짜일까? 박영미

제4부 집단지성은 세상을 바꾸는가?

8 … 냉철한 시선으로 보는 정치권력 박종성
9 …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세상을 바꾸는가? 박영균
10 … 현대 언론은 헤게모니 전쟁 중 이순웅

저자 소개 2

朴鍾成

건국대학교에서 「슈티르너의 유일자 개념에 대한 비판적 고찰」(2014)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으로는 「슈티르너의 ‘변신’ 비판의 의미」(2020, 제8회 소송(小松) 학술상 수상,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유일한 사람의 사랑」(2021), 「식민지 조선에서 슈티르너 철학의 변용과 그 의미 및 한계―염상섭의 「지상선을 위하여」를 중심으로」(2022), 「철학자를 조롱하는 철학자」(2023) 등이 있다. 지은 책으로는 『코뮨의 미래』(2022, 공저), 『대화로 철학하기』(2023, 공저), 국내 첫 독일어 원전 번역 『유일자와 그의 소유』(2023년 대한민국학술원 선정 우수학술도
건국대학교에서 「슈티르너의 유일자 개념에 대한 비판적 고찰」(2014)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으로는 「슈티르너의 ‘변신’ 비판의 의미」(2020, 제8회 소송(小松) 학술상 수상,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유일한 사람의 사랑」(2021), 「식민지 조선에서 슈티르너 철학의 변용과 그 의미 및 한계―염상섭의 「지상선을 위하여」를 중심으로」(2022), 「철학자를 조롱하는 철학자」(2023) 등이 있다. 지은 책으로는 『코뮨의 미래』(2022, 공저), 『대화로 철학하기』(2023, 공저), 국내 첫 독일어 원전 번역 『유일자와 그의 소유』(2023년 대한민국학술원 선정 우수학술도서), 국내 첫 독일어 원전 번역 『슈티르너 비평가들』(2024) 등이 있다. 현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강사이고, 건국대학교 강의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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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칸트 철학에서의 선험적 연역의 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회철학에 대한 관심에서 철학에 입문한 이후 문화와 예술의 영역으로 관심의 지평을 확대하여 대중음악과 예술사, 특히 매체예술 분야에서 폭넓게 공부를 하였으며, 지금은 건축 디자인의 방면에서 그 사회철학적 의미를 연구하고 있다.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매체, 매체예술 그리고 철학』(문광부 우수학술도서), 『철학으로 대중문화 읽기』, 『고정관념을 깨는 8가지 질문』 등이 있으며, 「이미지의 정치학―리오타르의 ‘형상’과 ‘담론’의 이분법」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칸트 철학에서의 선험적 연역의 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회철학에 대한 관심에서 철학에 입문한 이후 문화와 예술의 영역으로 관심의 지평을 확대하여 대중음악과 예술사, 특히 매체예술 분야에서 폭넓게 공부를 하였으며, 지금은 건축 디자인의 방면에서 그 사회철학적 의미를 연구하고 있다.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매체, 매체예술 그리고 철학』(문광부 우수학술도서), 『철학으로 대중문화 읽기』, 『고정관념을 깨는 8가지 질문』 등이 있으며, 「이미지의 정치학―리오타르의 ‘형상’과 ‘담론’의 이분법」, 「시각 중심적 건축의 한계와 공간의 불투명성」 등 매체 및 매체예술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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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성우
로크와 롤스 등 자유주의 철학과 윤리를 공부하였다. (사)한국철학사상연구회에서 연구협력위원을 맡고 있으며, 변증법과 해체론의 접목을 통한 새로운 실천적 존재론과 변혁의 실천 논리를 탐구하고 있다.
저자 : 김세서리아
성균관대학교에서 「유가 철학의 실체화가 여성관에 미친 영향 및 그 비판」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이다.
저자 : 김시천
전통 동아시아 고전을, 현대 한국 사회라는 공간의 삶과 어떻게 화해시킬 수 있는가 하는 관점에서 연구와 저술, 강의 등을 하며 살고 있다.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양교육연구소 연구교수이다.
저자 : 박영균
대학에서 마르크스를 만나 사회철학을 전공했다. (사)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연구협력위원, 《진보평론》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건국대학교 HK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자 : 박영미
동아시아 철학에서 17세기부터 근대까지가 어떤 의미인지, 어떤 사유의 변화가 있었는지에 관심을 갖고 있다. 한양대에서 강의하고 (사)한국철학사상연구회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자 : 박종성
현실과 철학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 작은 실천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려고 한다. 맑스 코뮤날레 집행위원, (사)한국철학사상연구회 대외협력부장을 맡고 있으며, 현재 방송통신대학교 외래교수이다.
저자 : 이순웅
그람시의 실천철학과 이데올로기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숭실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사)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연구협력위원장, 《진보평론》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저자 : 이정은
일상에서 겪는 소소한 고통은 사회 상황과 연관된다는 이유에서 정치철학을 공부하다가, 철학의 기반은 형이상학이라는 생각 때문에 연세대학교에서 「헤겔 대논리학의 자기의식 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학교 인문학 연구원이다.
저자 : 현남숙
우리 사회의 주변부, 새로운 문화에 관한 철학적 분석에 관심을 갖고 연구 중이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ELP학부대학 초빙교수이다.
저자소개
김범수 : 들뢰즈의 초기 존재론을 공부하면서 숭실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숭실대학교, 상지대학교 등에서 강사 활동을 하고 있다.
김성우 : (사)한국철학사상연구회에서 연구협력위원을 맡고 있으며, 연구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변증법과 해체론의 접목을 통한 새로운 실천적 존재론과 변혁의 실천 논리를 탐구하고 있다.
류종렬 : 953년 안동 예안면 주진동에서 태어났다. 여러 대학의 강사를 지냈다. 베르그송 사상에서 생명, 즉 ‘불’의 내재성을, 들뢰즈의 “차히” 즉 다양체를 탐구하며 양자를 연결하고자 한다. [마실에서 천이틀밤 이야기(club.cyworld.com/e_memoire)]를 운영하고 있다.
서영화 :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차이와 무의 관계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신대와 가천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이지영 : 서울대학교에서 들뢰즈의 영화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홍익대학교, 국민대학교 등에 출강하고 있다.
이현재 : 2004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인정 이론과 여성주의를 접목시킨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귀국해서는 여성문화이론연구소와 한국철학사상연구소에서 매춘, 성 그리고 여성의 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전호근 : 성균관대학교 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16세기 조선성리학의 특징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조광제 : 총신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했으며, 서울대학교 철학과 대학원에서 「현상학적 신체론─E. 후설에서 M. 메를로 퐁티에로의 길」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상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해서 몸,매체, 고도과학기술, 미술, 영화, 시 등의 영역을 철학적으로 분석하여 존재론적인 기반을 제공하고자 노력해 왔다.
조은평 : 건국대학교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이데올로기 이론’에 관한 논문을 준비 중이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건국대학교,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현남숙 :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가톨릭대학교 ELP학부대학 초빙교수로 있다. 우리 사회의 새로운 문화 현상에 관심이 많고 그와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다.
황희경 : 성균관대학교 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동양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영산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6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960쪽 | 1000g | 153*224*40mm

책 속으로

고전을 읽으면 그 내용을 삶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논어』 속에서 공자라는 인물의 생각, 사상 그리고 그가 하는 말들의 개념을 이해하고자 노력했지, 군자가 되려는 마음으로 『논어』를 대해본 적은 없었거든요. 즉 옛날과 지금의 관심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논어』를 읽으면서 군자가 되고 싶은 결심을 해본 적이 있나요? 아마 별로 없으시죠? ---『고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중에서

자유라는 단어는 1980년대 민주화 이후에 우리의 간절한 열망에서 사라졌습니다. 어떤 낱말도 인생과 마찬가지로 생로병사가 있는 것 같아요. 이제 자유라는 단어는 많이 화석화됐고 더 나아가서는 ‘시장의 자유’라는 말로써 자본에 의해 독점화되었기 때문에, 살아 있는 의미보다는 왠지 낡아빠지고 의미 없게 느껴집니다. 도리어 정의나 평등 아니면 복지라는 단어가 훨씬 의미 있게 다가오죠. 그렇지만 정의라는 철학적인 개념도, 평등이라는 개념도, 복지라는 개념도, 자유 개념이 빠지면 굉장히 중요한 부분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촛불의 정치와 진정한 자유!』 중에서

나의 정체성은 공동체에서 형성되며, 상호 인정을 통해 완결됩니다. 이때 우리들은 서로서로 의존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정체성은 상호 의존적 정체성이지요. 상호 의존이 어디로까지 나아가야 할까요? 서로에게 인질이 되어주는 데까지입니다. 상호 인질이 되기를 기약하고, 서로에게 감사를 전하며 헤어집시다. ---『나의 정체성을 찾는 문, 인정인가!』 중에서

왜 익숙한 정서를 낯선 방식으로 해야 할까요? 익숙한 것을 익숙한 방식으로 하게 되면, 결국 이전의 가부장적인 것을 재현하는 것에서 그치고 말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각에서 저는 제가 하고 있는 작업의 성격을 ‘패륜아적’이라고 규정합니다. 가부장제라는 아버지에서 탄생한 이론이지만 그저 가부장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가부장제를 죽이는 이론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제가 하고 있는 작업을 ‘재활용’이라는 용어로도 규정하는데요, 그냥 갖다 버리면 쓰레기일 것을 의미 있게 사용한다는 차원에서 그렇게 부릅니다. ---『성 정체성과 음양남녀』 중에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문화산업은 문화산업의 중심 즉, 동질화되고 이데올로기적이며 이윤창출을 지상 목적으로 하는 대중문화에는 여전히 힘을 갖습니다. 하지만 그 비판의 칼날에 문화산업의 주변부 즉, 차이를 갖고 새로운 가치를 보여주려 하며 문화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대중문화까지 베어지면 안 되겠지요. 더구나 오늘날은 『계몽의 변증법』이 쓰인 당시보다 더 많은 대중문화의 ‘여정’들을 볼 수 있으니까요. ---『문화가 산업이 되어 야만적 대중을 생산하다! 』 중에서

꿈을 인위적으로 조작한다는 것은 프로이트의 생각이랑은 전혀 맞지 않습니다. 꿈은 의도적으로 꿀 수 있거나 조작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의도성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 프로이트의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았듯이 잘 살펴보면 프로이트의 꿈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거나 프로이트의 꿈 이론을 명확하게 설명하는 요소들이 영화 곳곳에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번 강의를 통해서 「인셉션」과 『꿈의 해석』이라는 텍스트가 서로 잘 맞는다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생각을 훔치는 사회!』 중에서

토요일 저녁, 놀기 좋다는 홍대 앞 이곳에,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철학 강의를 듣기 위해 이렇게 많은 분들이 와 계시는데요, 여러분은 철학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시나요? 이리저리 부대끼며 사는 우리네 삶에서 철학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철학은 내가 살아가는 현실, 그 속의 나를 대면할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나와 우리가 무엇을 지향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멈추어 서서 돌아보게 하고 그로부터 내일을 모색하도록 합니다. 꿈을 꾸게 하죠. 철학자들이 제아무리 어려운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 출발과 본연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현실이 진짜일까?』 중에서

모든 사람들, 예를 들면 여기 계신 여러분들은 다 철학자죠. 왜냐하면, 자기의 문제 상황, 즉 인간은 살아가면서 언제나 어떤 문제 상황에 맞부딪칩니다. 그것 때문에 갈등하고 선택하고 결정하는 거죠. 여기 오신 분들도 그런 거잖아요? 다 끝나면 소주 한잔 먹을까 하고 갈등하죠. 그런 유혹을 뿌리치고 오신 분들이에요.
모든 사람은 다 철학자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철학자 100분이 계시는 겁니다. ---『냉철한 시선으로 보는 정치권력』 중에서

바로 이 점에서 중요한 것은, 그런 기술의 변화에 따른 사회적 구성의 변화를 결정론적으로 추론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향한 힘으로 바꾸어 놓는, 우리의 모색입니다. 「소셜 네트워크」라는 영화가 보여주듯이 그것은 확장된 관계, 유연하고 수평적인 결합의 네트워크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우리가 머무르는 관계, 진정 누구와 나누는 참조점,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무게를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또다시 표류할지도 모르죠. 사랑이란 오랫동안 지속되는, 어떤 머무름이 필요합니다. 끊임없이 유동적으로 흘러가며 스쳐 지나가면 나눌 수가 없어요. 집에서 키우는 꽃을 우리가 남다르게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꽃을 끊임없이 지켜보고 관계를 맺기 때문이거든요? 스쳐가듯이 꽃집의 꽃을 보면 그런 것을 느낄 수는 없어요.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세상을 바꾸는가? 』 중에서

철학하는 사람이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출세, 건강, 부보다는 좋음, 옳음, 정의로움 등에 더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르디외는 『나는 철학자다』에서 순수한 존재론은 없다고 했습니다. 모든 존재론은 정치적 존재론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정치적 선택, 결단 아닐까요? 우리 강의는 고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요, 고전의 선택에도 정치가 있겠지요. 순수한 고전은 없습니다. 누가 무슨 자격으로 무슨 근거로, 무엇을 기준으로 고전을 선택했을까요? 고전은 좋은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는 어떤 것이 고전이었지만, 다른 어떤 것이 그 고전보다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고전의 기준도 바뀔 수 있는 것이죠.

---『현대 언론은 헤게모니 전쟁 중』 중에서

「세한도」의 풍경은 이상하기도 하고 볼품이 없다. 그러나 바로 이 볼품없음이야말로 ‘세한의 풍경’이다. 「세한도」는 어떤 면에서든 풍요의 산물이 아니다. 평생 벼루 열 개에 구멍을 내고 붓 천 자루를 닳게 했던 김정희의 필력으로 한 글자를 쓰기도 어려운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 황폐의 끝에서 탄생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추사는 발문을 통해서 ‘세한의 풍경’을 넘어서는 그림을 보여준다. 「세한도」가 명작인 이유는 바로 이 그림 한 장에 그가 추구한 불멸의 정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추사는 늘 ‘문자의 향기’를 강조했다. 따라서 추사의 그림을 감상할 때는 단지 눈에 보이는 ‘그림’에서만이 아니라 문자의 향(?이라 할 수 있는 ‘정신’을 보아야 한다. --- p.17

세잔은 목욕하는 남자들이나 여자들을 많이 그렸고, 수도 없이 데생을 했다. 그 결과 이른바 「대수욕도」라는 제목의 그림들을 많이 남겼다. 이 그림들은 세잔이 말년에 최고의 경지에 올랐을 때 그린 그림들이기에 그 의미가 한층 더하다. 내가 보기에 이 그림은 여러 「대수욕도」 중에서도 색감이 가장 좋은 그림이다. 1900년부터 1905년까지 거의 6년에 걸쳐 완성한, 세로 1미터 32센티미터에 가로 2미터 9센티미터인 제법 큰 그림이다. 세잔이 1906년에 사망했으니, 그의 일생에서 최고의 걸작이라 해야 할 것이다. --- p.41

「묘석도」는 세로 34cm, 가로 218cm인 수묵화로 팔대산인이 71세에 그린 작품을 말한다. 베이징 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외에도 「묘석도」는 더 있지만 이것이 가장 유명하다. 한 마리의 약간 살찐 흰 고양이가 바위 위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고 있다. 사방에 연꽃과 난초 등과 같은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을 관상할 마음은 전혀 없어 보인다. 팔대산인은 물과 같이 고요한 마음의 고양이로써 청 왕조의 통치나 세속에 대해 초탈한 작가 자신의 심정을 암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 그는 이런 객관적 이미지를 통해 상징적 은유의 수법으로 자신의 주관의식을 교묘하고도 함축적으로 결합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그림을 가만히 감상하고 있으면 그림 속의 고양이처럼 마음이 평온해지며 유유자적한 심정으로 빠져들어간다. --- p.73

“나는 공포보다 오히려 외침을 그리고 싶었다.” 이 얘기는 베이컨이 내부에서 발생하는 감각을 그리고 싶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외부에서 오는 자극이 아니라 내부에서 발생하는 감각을 그리겠다는 포부는 들뢰즈 철학과 매우 유사하다. 베이컨의 자화상에서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 --- p.95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 1830년 7월 28일(Le 28 juillet 1830: la Libert? guidant le peu-ple)」 1830, 캔버스에 유채, 260×325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이 그림은 1830년 7월 혁명이 끝난 이듬해 1831년 5월에 살롱에서 전시되었고 같은 해 프랑스 정부에 팔렸다. 당시 7월 혁명으로 왕이 된 시민왕 ‘루이 필리프’의 궁전 알현실에 걸릴 예정이었지만, 이후에 궁전 미술관에 걸리게 되고 나중에는 주제가 너무 선동적이라는 이유로 들라크루아에게 되돌려 보내졌다고 한다. 결국 들라크루아가 죽은 뒤, 루브르가 1874년에 이 그림을 구입하기 이전까지는 본인이 소장하고 있었던 셈이다. 어쩌면 ‘혁명’이라는 주제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워낙 들라크루아의 그림이 역동적인 까닭도 있겠지만, 역설적으로 혁명을 통해 새로 정권을 잡은 세력들은 한편으로는 그 ‘혁명’이 계속되고 극단화될까 봐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니 말이다. 어쨌든 이 그림은 ‘혁명’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하면서 열정과 두려움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것 같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대중적인 작품으로 인식되고 새로운 이미지로 상품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과연 이 그림이 여전히 이런 면모를 보여줄지는 미지수다. 171.

터키의 외교관이자 미술품 수집가였던 칼릴 베이의 요청에 따라 그려진 ?세상의 근원?(1866)은 헝가리로 갔다가 나치에 몰수당해 독일로 갔다가 또다시 소련에 몰수당했다. 최종 소장자는 바로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 1995년 이 그림은 130년 만에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서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이 그림에서 쿠르베가 발견한 사실은 가려져 왔던 여성의 몸이다. 그는 드리웠던 린넨 시트를 벗기고 오므린 다리를 벌리게 하여 보이지 않았던, 애써 보지 않으려 했던 여성의 몸, 여성의 성기, 여성의 아랫도리를 과감히 드러내 보여준다. 드러난 여성의 몸은 이상적 비율에 맞지도 환상적인 자태를 뽐내지도 않는다. 널브러져 있는 그것은 얼굴도 없으며 우아하지도 않다. 그것은 오히려 망하고 추하며 낯설다. 그러나 쿠르베는 말한다. 보라, 이 사실을! 이 몸을! 세상의 근원을! 세상의 근원은 저기에 있는 여성의 몸이다! --- p.207


고흐는 삶의 생동성을 망각하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인, 아라비아 사람이나 루이 15세를 그리는 주류 아카데미즘에서 벗어나, 늙고 가난한 농촌의 사람들에게 그들의 노동과 삶, 그리고 그러한 삶의 터전인 농촌을 되돌려주는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그리고 고흐의 그러한 생각과 고민의 흔적은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들에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무엇보다 앞으로 함께 보게 될 「구두 한 켤레」(1886)라는 작품에 남아 있다. --- p.267

매체가 숨기는 것을 바로 그 매체를 통해 드러내는 작업은 어떻게 가능한가? 하트필드는 그 대답을 포토몽타주에서 찾았다. 포토몽타주는 일반적 합의를 갖지 못하지만 “몇 장의 사진으로 만드는 구성적 그림, 예술 또는 그것을 만드는 과정”을 이른다. 「초인 아돌프: 돈을 삼키고 쓰레기를 내뿜다」(1932)는 신체 엑스레이 사진과 히틀러의 사진을 겹쳐서 합성한 이미지인데, 합성 이미지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완성도 측면에서 뛰어나다. 히틀러의 웅변술이 바로 자본가들의 돈을 통해 주조된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 p.295

「기억의 지속」은 흐늘거리는 시계를 통해 어느덧 흘러가는 시간을 묘사하고 있다. 그림에는 녹아내리는 듯 흐늘거리는 시계와 꿈꾸듯 나른한 사람의 얼굴과 회중시계에서 탈출하려고 몸부림치는 개미떼가 삭막한 풍경을 배경으로 무질서하게 늘어서 있다. 이러한 풍경은 달리 그 자신이 지니고 있는 무의식적인 꿈의 세계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이 그림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이미지로 시계를 그리게 된 이유는 그때 달리가 카망베르치즈를 먹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달리 자신이 이 그림을 착상하게 된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그는 부드러운 카망베르로 식사한 후 치즈의 ‘극도의 부드러움’에 대해 숙고했다. 그 다음으로 기존에 작업 중이던 포르트리가트의 풍경(황혼 무렵의 절벽과 잘리고 앙상한 올리브 나무)이 새로이 착상한 그림의 배경이 될 것이라고 직감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전등을 켜자 그에게 세 개의 흐늘거리는 시계가 나타났다. 이때 그는 “흐늘거리는 시계는 다름 아닌 시간과 공간에 의해 버려진 카망베르, 즉 편집증적으로 비판적이고 부드러우며 사치스러운 카망베르”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 p.323

출판사 리뷰

홍대 앞에서 철학하기 프로젝트!
영화와 철학으로 열어보는 한국사회 정체성의 문


인문 고전 독법, 왕도가 있을까?
삐딱한 철학자들, 우리 시대 고전 읽는 법을 새로 쓰다


열정과 욕망이 들끓는 젊음의 메카, ‘홍대’ 앞에서 철학하기 프로젝트가 책으로 나왔다. 10명의 삐딱한 철학자들이 10편의 위험한 영화를 골라 함께 보면서, 인문 고전 ‘새롭고’‘낯설게’ 보기를 시도하였다. 『청춘의 고전』은 2011년 3월부터 2012년 2월까지 1년 동안 진행되고, 연인원 1000명이 넘는 수강생들이 참여한 철학 강연을 모은 책이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와 프레시안, 그리고 KT&G 상상마당이 공동 기획하고, ‘이념’과 ‘세대’를 아우르는 진보적 철학의 문제를 고민하는 소장 철학자들이 강연을 맡은 프로젝트이다. 현재에도 [2시즌: 철학, 미술에 말하다]가 진행되고 있다. 이 책은 강연 당시의 현장감을 살리고자 강연자의 입말을 살렸으며, 저자로서 다시 글을 고쳐 쓰면서 원고를 완성하였다. 기획과 진행에만 1년여, 원고 개고와 편집에 6개월이 걸린 프로젝트이다.

시대마다 고전은 새롭게 읽혀야 한다고 말한다. 인문 고전 독법의 왕도를 제시한 책들이 입시 서적처럼 권장되고 있는 요즈음이지만, 『청춘의 고전』에는 그런 왕도나 고전 혁명의 방법을 담지 않았다. 대신, 지금 삶의 가치와 기준에서 고전을 읽어야 하며, 비판의 힘으로 성찰하여야 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고전을 그대로 읽지 말고, ‘낯선’ 방식으로 읽을 것을 권한다.

가령, 어떤 책들은 세상을 지배하는 0.1%의 위인들의 방법을 소개한다. 그리고 고전이면 일단 좋은 것, 객관적인 것이라고 전제한다. 그런데 고전을 그렇게 쉽게 읽을 수 있는가? 고전은 일단 좋은 것인가? 『청춘의 고전』에 등장하는 10명의 철학자들은 다르게 말한다. “순수한 고전은 없다. 누가 무슨 자격으로 무슨 근거로 고전을 선택했을까? 고전은 좋은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고전의 기준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대마다 고전을 다시 읽는 것이다.

너는 홍대 앞 클럽 가지? 나는 철학한다!

공자, 장자, 마키아벨리, 루소, 헤겔, 프로이트, 그람시, 네그리……. 이름만 들어도 하품이 나오는 철학자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사유는 길게는 수천 년, 짧게는 수십 년간 세상을 이해하는 여러 가지 시각을 제공해 왔다. 정보가 넘쳐나는 디지털 세상에서 새삼 이들 철학자들이 각광을 받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이들 철학자의 사유를 단숨에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큰마음 먹고 이들의 책을 집어도 알쏭달쏭한 개념의 홍수에 금방 지치기 십상이다. “단 한 권으로” 이들의 사상을 정리해 주겠다는 온갖 책들도 큰 소용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시행착오를 몇 번 거치다 보면 벽만 높아진다.

이 책에서는 『장자』와 [쿵푸 팬더]가 만나고, 21세기의 액션 영웅 제이슨 본을 통해서 헤겔의 『법철학』을 읽는다. 촛불 집회 때 널리 알려진 [브이 포 벤데타]를 보면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이해하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인셉션]에서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새롭게 해석한다. 인문 고전 독법에는 따로 왕도가 없다. 늘 새로운 해석을 찾아 읽는 게 최선이다. 그리고 『청춘의 고전』의 시도처럼, 고전만을 따로 떼어놓지 말고, 영화나 소설, 미술 등과 어울려 읽도록 하자. 익숙한 방식이 익숙하지 않은 것을 만났을 때에, 새로움을 찾을 수 있다.

삐딱한 철학자들, 영화를 통해 고전에 딴죽 걸다

‘위험한 영화’와 ‘삐딱한 철학’은 닮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금서가 있었다. 현재 한국사회에도 국방부 불온도서 지정이라는 사상 검열이 있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지금에도 영화에 대한 검열이 있다. 그러나 검열의 존재는 거꾸로 영화와 책의 위험성을 알려준다. 위험하다는 것은 기존의 삶의 방식과 제도와는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시각을 도그마처럼 따르면 오히려 쉽겠지만, 고전은 늘 기존의 시각에 대해 ‘이단’이 되어왔다. “개만도 못한 취급”(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써서 헌정했지만, 당시 군주는 개에 관심을 가져, 책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한다)을 받았는가 하면, 금서였거나 이단(장자, 노자, 그람시)이었다. 고전은 기존 문명과 그 세력에게 위험(루소, 네그리, 헤겔)하다.

고전은 늘 새롭게 읽힌다. 왜냐하면 그것을 읽는 시선이 항상 그 시대의 정신과 그 시대의 상황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창의적인 시각은 기존의 도그마에 치명상을 입힌다. 그래서 새로운 해석은 언제나 처음에는 이단이 된다. 우리 시대의 신화인 영화와 함께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10권의 고전에 관한 신선하고 더 위험한 시각이 여기에 실려 있다. 그럼에도 일단 고전이 되면, 좋은 것, 객관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고전은 객관적이고, 정확하고 좋은 것일까?

첫째, 고전을 객관적으로 읽는 것이 가능한가?

김시천 교수(22쪽)는 그것이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현대가 아닌 전통 시대에도 『노자』에 대한 주석서가 300개 정도가 있었지만, 그 가운데에 동일하게 해석해 놓은 텍스트는 단 하나도 없다고 한다. 하물며 현대에 이르러 수많은 논문들과 문헌들은 기존 시각과 달리 읽으려고 하는 노력의 산물이지 않을까. 또 동양 사상의 경우, 객관적 해석의 전통은 없었다고 한다.

『노자』 혹은 『도덕경』은 오늘날 가장 널리 읽히는 동양 고전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1973년에 마왕뚜이에서 두 가지 판본이 발견됨으로써 최근 새로운 시각에서 연구가 이루어졌다. 『도덕경』은 ‘도’와 ‘덕’에 관한 격언들을 모아놓은 문헌으로서, ‘도경’ 부분은 사색적이고 추상적인 철학시로 이루어져 있고, ‘덕경’ 부분은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처세훈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마왕뚜이의 두 판본은 ‘덕도경’으로 그 순서가 뒤바뀌어 있다. ‘도경’보다 실천적이고 정치적 성격이 강한 ‘덕경’이 앞에 있는 『덕도경』은, 이 문헌이 상당히 정치 지향적인 성격의 처세훈으로 읽혔음을 보여준다. 자,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도덕경』과는 다르지 않은가?

둘째, 고전은 좋은 책인가?

고전은 기존 문명의 틀과 삶의 방식을 조망하는 힘이 있다. 조망하면 무엇이 무엇인지가 드러난다. 그래서 고전은 새로운 문명의 도전을 시작하는 출발점이다. 일례로, 푸코가 말한 대로 철학이란 현재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며 동시에 현재와 같은 삶을 거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로크의 『정부론』도 자유와 평등, 독립이라는 언어로 영국의 명예혁명과 미국의 독립선언서의 언어가 된다. 반면에 현대 사회에서 로크의 책은 이미 만들어진 것을 이해하게 해주는 것으로 동시에 기존의 것을 정당화하는 책으로 그 역할이 바뀐다. 거꾸로 루소의 『사회계약론』이나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현대를 다른 식으로 바꿔볼 수 있지 않을까를 이야기해 줄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순수하게 ‘좋은’ 고전이란 없다는 이야기이다. 이순웅 교수(380쪽)는 피에르 부르디외를 인용하면서, “부르디외는 『나는 철학자다『에서 순수한 존재론은 없다고 했습니다. 모든 존재론은 정치적 존재론입니다. 고전의 선택에도 정치가 있겠지요. 순수한 고전은 없습니다. 누가 무슨 자격으로 무슨 근거로, 무엇을 기준으로 고전을 선택했을까요? 고전은 좋은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고전의 기준도 바뀔 수 있는 것이죠.”라고 말한다. 이 교수는, 철학사에서는 안토니오 그람시를 전혀 다루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는데, 우리가 정작 알아야 할 것은 역사책이나 교과서에서 배제돼 있는 것 아니냐고 되묻는다. 예를 들어, 갈릴레이는 기록하지만 브루노를 기록하지는 않는다.

셋째, 우리 삶에서 철학과 고전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박영미 교수는, 철학은 내가 살아가는 현실, 그 속의 나를 대면할 수 있게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와 우리가 무엇을 지향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로 하여금 멈추어 서서 돌아보게 하고 그로부터 내일을 모색하도록 한다. 박종성 교수는, 철학과 철학함을 구분한다. 사상을 단순히 받아들이는 것은 철학이며 그 사상의 힘을 현실의 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사고하는 것은 철학함이라 할 수 있다. 즉 철학하는 자는 ‘비판’하는 자이다.

김성우 교수에 따르면, 철학은 단순하게 개념을 정리하거나 설명하는 역할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안고 있는 생각의 질병에서 벗어나도록 치유해 주는 역할을 한다. 철학의 목표는 치유다. 치유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사상적인 질병에 걸려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루소는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는 그저 평범했다. 그런데 깨달음을 얻은 후에, 칼을 버리고 가발을 벗더니 그는 위대해졌다. 갑자기 변신했다. 주자는 그것을 활연관통이라고 불렀다. 선사들은 돈오라고 부른다. 비트겐슈타인은 파리통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이렇듯 철학의 목표는 현실의 나를 대면하여 비판하고 나아가 미래에 무엇을 지향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철학과 미술의 낯선 만남!
세기의 철학자들은 그림에서 무엇을 읽었는가'


하이데거는 고흐의 '구두 한 켤레'를 보고 사물이란 무엇인가를 물었다. 푸코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통해 인간의 위치에 대해 자각했고, 들뢰즈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자화상'으로 자신의 존재론을 구축했다.
베르그송의 변화의 지각에 관한 이론은 터너와 코로의 그림들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고, 메를로퐁티의 철학은 세잔의 색채에 관한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발터 벤야민은 대중 예술을 통해, 아도르노는 아방가르드 예술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예술의 의미와 관계를 묻게 되었다.

세상의 질문에 답하는 철학자들은 세상을 그리는 명화에서 무엇을 읽었는가' 이 책은 “철학자들을 매료시켰던 미술 작품”들에 대한 철학적 정체를 탐색해 보고 있다. 그리고 그 미술 작품들이 철학자들에게 어떤 영감을 주었는지를, “인공의 눈을 벗어던지고 진짜 ‘눈’으로 들여다보자”고 한다.

“그림을 읽는다”는 말은, “소리 없는 음악을 듣는다”는 말과 같다. 그림은 활자로 돼 있지 않고, 음악은 소리가 없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철학은 그림이 스스로 말하게 한다.

이 책 ''철학자가 사랑한 그림''은 철학을 낳은 미술 작품들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책이다. 하지만, 미술 작품의 신비스러운 비밀을 드러내기보다는 그림의 감각적 충격과 느낌에 언어를 부여해서 그림이 스스로 말하게 한다. 그럼으로써 이제 철학자의 말을 거친 미술 작품은 화랑의 고고한 자리에서 나와 일상의 우리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한다.

철학의 언어로 읽었을 때 비로소 보이는 그림

기묘한 그림들과 철학의 획기적 발상이 만났다. 조광제, 전호근, 이현재, 김성우 등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소속 철학자 열한 명이 모여, “철학과 미술의 오래된 만남”의 의미를 재배치해 보았다. 하이데거는 고흐의 '구두 한 켤레'를 만나 예술작품의 근원을 물었지만, 정작 그는 사물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었다. 푸코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통해 원근법의 등장을 인간의 위치에 대한 자각의 문제로 다뤘다. 들뢰즈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자화상'으로 자신의 존재론을 구축했다. 베르그송의 변화의 지각에 관한 이론은 터너와 코로의 그림들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고, 메를로퐁티의 살 존재론은 세잔의 색채에 관한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발터 벤야민은 대중 예술을 통해, 아도르노는 아방가르드 예술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예술의 의미와 관계를 묻게 되었다. 이처럼, 예술은 철학의 미로를 탈출하게 해주는 아리아드네이다.

필자들은 “철학하는 행위”를 통해, 그림을 보는 것(감상)이 아니라 “읽는다”는 관점으로 접근해 본다. 그림을 그저 눈으로만 봐서는 작품이 품은 뜻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삶을 통한 체험의 무게와 더불어 시공간을 뛰어넘는 이야기를 곁들이지 않고서는 제 모습을 다 드러내지 않는다. 우리가 감각기관인 눈에만 의지할 때 그 정신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사물을 꿰뚫어보는 또 하나의 눈이 필요한 것이다. 전혀 다른 매체였던 그림(미술)과 글(정신, 철학)이 만난다. 그림은 글이 되고 글은 그림이 된다. 그래서 이 책에 실린 기기묘묘한 그림들은, “보아서는 보이지 않고 잘 읽어야 비로소 보인다.”

화가는 감각적인 충격을 던져준다. 철학자는 그 이미지의 본질을 지각한다. 진정한 미술 작품을 통해서, 감각과 진리, 즉 자연과 정신의 불편한 동거는 아름다운 동거로 바뀐다. 이 책이 담고자 하는 주제는, 첫째, 그러한 화가의 외침을 철학이 어떻게 감각하고 있는가이다. 또한 둘째, 철학은 예술의 기억을 어떻게 재배치하고 있는가에 대한 탐색과, 셋째, 철학과 예술의 오래된 관계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시도한다.

고흐와 하이데거, 벨라스케스와 푸코, 달리와 아도르노……
미술과 철학의 불편한' 혹은 아름다운 만남!


미술과 고전의 만남은 꽤 오래되었다. 플라톤은 미술을 철학보다 낮은 위치에 배치했고, 미술을 사유의 전당에서 쫓아냈다. 헤겔은 다시 정신의 세계로 미술을 초대했지만, 여전히 철학과 종교보다는 낮은 단계에 자리매김했다. 니체와 하이데거는 미술을 다시 진리로 나아가는 매체로 삼았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아도르노처럼 현대 사회에서 예술이 가능한지를 묻거나 벤야민처럼 기술복제 시대에서 예술의 가능성을 긍정한다.
책 한 권보다 그림 한 장의 충격과 경탄이 더 강렬한 경우가 많다. 이 책에서는 철학과 미술의 만남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첫째, 철학은 그림의 강렬한 느낌에 다시 언어를 부여해서 그림이 스스로 말하게 한다. 미학 또는 예술 철학은 이론으로써 미술의 역사적인 운동을 고찰하고 다시 이 성찰을 바탕으로 해서 미학 이론의 변혁을 시도한다. 이 책에 실린 열한 명의 철학자들 또한 자신이 처한 시대적 상황과 연관해서 미술 작품을 삶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시도하였다. 궁극적으로 철학자는 자신의 삶과 사회적인 삶을 미술 작품처럼 만들려고 한다.
둘째, 철학자의 정신은 다시 미술가에게로 귀환하기도 한다. 공자의 꼿꼿한 정신과 선승의 해탈의 경지는 추사의 그림(1장, 전호근)과 팔대산인의 그림(4장, 황희경)에서 다시 출현하게 된다.

셋째, 미술가가 그린 사물이 철학자를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건네기도 한다. 세잔의 그림(2장, 조광제)과 고흐의 그림(9장, 서영화)이 메를로퐁티와 하이데거의 철학으로 인해 인간 중심을 버린 우리에게 존재의 진리를 드러내는 것처럼. 코로의 자연주의적인 풍경화(5장, 류종렬)는 베르그송이 자연에 내재하는 생명의 약동하는 힘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기쁨을 누리게 한다.
넷째, 미술가의 사실과 왜곡을 철학자는 다시 비판적인 언어로 바꾼다. 버틀러는 쿠르베의 사실주의적인 시선을 통해 남성 중심의 시선을 읽어낸다.(7장, 이현재) 마르크스는 파리 코뮌에 대한 사실적인 분석을 통해 들라크루아 그림의 혁명적인 낭만성이 진정한 혁명을 은폐하는 기억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6장, 조은평) 들뢰즈는 베이컨의 이미지 왜곡이 실은 자본주의적이고 파시즘적인 시각으로부터 탈주하려는 삶의 표현으로 읽는다.(3장, 김범수) 푸코는 벨라스케스의 그림에 통일적이고 선험적인 인간이라는 근대적인 인간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제시함으로써 인간상도 시대에 따라 바뀌는 역사적인 것임을 보여준다.(8장, 이지영)

다섯째, 미술가의 작업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철학자는 밝혀준다. 아도르노는 달리의 초현실주의를 평가하면서 현대 사회에서 예술이 가능한지를 묻는다.(11장, 김성우) 이에 반해,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의 가능성을 긍정함으로써 하트필드의 포토몽타주가 지닌 예술의 정치화를 예견한다.(10장, 현남숙)

'세한도'에 담긴 조선시대의 불멸의 정신
“우리의 삶 속으로 추위가 온다는 것은 시련인데, 시련이란 우리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해 준다. 날씨가 추워졌을 때 삶의 가치가 비로소 드러난다.”
전호근 교수(1장)가 '세한도'에서 읽은 것은 조선시대의 ‘불멸의 정신’이었다. 그에 따르면, “조선시대의 불멸의 정신은 다름 아니라 성리학의 ‘리()’이며 이것이 사대부의 정신이었는데, 그 마지막 정신이 '세한도'에 있다”는 것이다. 창 밖의 세찬 바람도 저 멀리 달아나게 할 정신. 그 정신이 이 세한도에 있다는 것이다. 추사는 단지 ‘그림’만을 잘 그리는 제자보다는 먹이 스며들듯 정신이 깃든 ‘문자향’을 잘 드러낸 제자를 사랑하였다는데, 그 이유를 전 교수는 추사가 그 어느 것보다 더 높게 추구한 불멸의 정신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전 교수는 ‘추사의 '세한도'가 왜 명작인가'’라는 물음에 대해서 그 답을 찾으려고 할 때, 우리는 단지 ‘그림’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문자의 ‘향’이라 할 수 있는 정신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세잔의 '대수욕도', 그 감각적 리듬의 철학적 정체
조광제 선생(2장)은, 인공의 눈을 벗어버린 진짜 ‘눈’으로 사물을 보라고 한다. “내가 화가 세잔을 ‘만난’ 것은 철학자 메를로퐁티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들을 ‘만난’ 것은 정말 행운이다. 미술과 철학, 철학과 미술을 같은 눈으로 평소와는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로 글을 시작하는 조광제 선생은, 사물들의 존재에 몰두하면서 메를로퐁티의 살 존재론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세잔이 만년에 그린 그림들은 세잔이 어느 정도로 감각적인 리듬에 크게 심취하게 되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세잔의 감각적인 색채의 표현에 감동하여 자신의 철학을 전개한 메를로퐁티가 있다. 메를로퐁티에 의하면 세잔이 어느 날 생 빅토와르 산의 풍경을 보고 있다가 빠져들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풍경이 내 속에서 자신을 생각한다. 나는 풍경의 의식이다(Le paysage se pense en moi, et je suis sa conscience.)” 동양식으로 말하자면 물아일여의 경지이다. 주체와 대상이 전혀 구분이 안 되는 상태이다. 이 경지는 ‘나’라는 존재가 풍경의 색을 보는 것이 아니라 ‘풍경’이 나를 통해서 자기의 색을 보는 것이다. 지독한 감각의 세계에서 사유는 불필요하다. 메를로퐁티는 자신의 철학을 전개하면서 사유와 대결을 벌인다. 사유 중심의 철학에서 감각 중심의 철학을 구축한 학자가 바로 메를로퐁티이다.

들뢰즈, 베이컨의 외침을 감각하다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은 초상화를 그리며 얼굴을 ‘해체’시켰듯이 항상 자신의 그림에서 ‘형상을 해체’시킨다. 이 해체를 두고 김범수 교수(3장)는 “이것은 가장 감각적인 상태를 구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베이컨의 그림에서 “왜 얼굴이 일그러지는가'”라고 다시 묻는다. 여기에 답하려면 들뢰즈의 철학에서 힌트를 얻어야 한다. 김범수 교수는 들뢰즈가 “감각은 심층에서 방출된다”고 말한 점을 강조하면서 베이컨은 “새로운 감각을 구현하는 것”으로서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자화상의 경우 그 밑바탕에서 올라오는 자신의 모습을 그렇게 찌그러진 모습으로 형상화했다고 설명한다. 이 부분이 베이컨의 그림과 들뢰즈의 철학이 만나는 지점이다.
베이컨이 많은 작품들에서 보여준 시도들은 들뢰즈의 철학에 그대로 적용된다. 특히 들뢰즈의 존재론과 관계하는데 김범수 교수는 “들뢰즈의 존재론은 전통적인 ‘be’ 동사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can’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들뢰즈의 존재론적 ‘can’의 의미는 단순히 무엇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역량으로, 생성으로, 창조로 자신의 존재론을 구축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존재론은 베이컨에 와서 새로운 감각을 구현하는 것으로서 회화의 방식이 되었다. 그리고 밑바탕에서 올라오는 자신의 모습을 그렇게 일그러진 모습으로 형상화했다. 들뢰즈는 베이컨의 그림 자체가 자신의 존재론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생각했다.

'세상의 근원'에 대한 여성주의 철학자의 시선
얼마 전 우리 사회에서 구스타브 쿠르베의 작품 '세상의 근원'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법적 담론이 이루어졌다. 유명 영화감독이 이 작품을 소재로 영화를 제작한 바 있으며, 방송통신심의위원인 법학자(박경신 교수)가 표현의 자유와 음란물 판단 기준에 관한 법적 토론을 목적으로 이 작품을 블로그에 게재한 것이었다. 이 작품을 여성주의 철학자의 시선으로 보면 어떤 이야기가 가능할까'
'세상의 근원'은 곧 ‘세상의 근원이 여성의 성기임’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여성의 성기는 무엇인가'’ ‘여성의 성기는 세상의 근원이다’라고 답하는 것은 결국 동어반복에 불과한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해 철학적으로 답하는 것은 그 ‘무엇’의 본질을 말하는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한 이현재 교수(7장)의 답은 이것이었다. “여성의 성기는 ‘없음’이다.” 이 답은 단순한 추론을 넘어선 차원의 해석이다. 이 해석은 쿠르베의 작품에서부터 “여성의 성기는 ‘없음’이다”라는 명제가 직접적으로 도출될 수 없다는 점에서 추론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림 앞에선 감상자의 단순한 느낌도 아니다. 이 해석은 그러한 차원을 넘어선 철학적 해석이다.

이 교수는 쿠르베를 양가적으로 해석하였다. 하나는 혁명성이었고 다른 하나는 한계였다. 우선, 쿠르베는 남성적인 것의 시선이 감추고 있던 진실을 들추어냈다는 점에서 혁명적이었다. 이교수는 “쿠르베가 여성의 성기를 세상의 근원으로 발견했지만, 그 여성의 성기는 결핍, 없음으로 규정된다”고 말하였다. 여기에는 남성의 우월성을 표현하는 철학적 논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데, 그 논리는 바로 ‘있음’으로부터 ‘없음’을 규정하는 이분법적 규정이다. 이 교수는 “여성을 비본질적이고 종속적이기만 한 육체로 보았다는 통념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면서, 여성주의 철학자들이 여성에 대한 이러한 종속적 규정을 벗어날 수 있는 다른 개념을 철학사에서 찾고자 노력해왔고 그 성과를 세 가지로 설명하였다. 그 세 가지 가능성을 찾는 핵심은 여성의 몸이 위계적으로 구분되어 오직 남성만 자기규정성을 가지고 있는 ‘있음’에 의해 수동적으로 규정되는 ‘없음’이 아니라, 여성의 몸이 자체적인 힘을 가지며 스스로 자기 규정성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개념을 찾는 것이다. 그러면서 위의 노력을 통해서 여성의 몸에 대한 기존의 철학적, 남성적 담론을 넘어선 새로운 담론의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는 성과가 마련되었다고 설명하였다.

이 교수는 “위계적인 이분법을 넘어서서 ‘여성의 몸’이라는 개념의 능동적인 자기 규정성을 찾는 것이 여성주의 철학자의 과제”였다고 언급하면서, 이 개념을 찾기 위해 전 세계의 여성주의 철학자들이 끊임없이 노력해 왔음을 이 교수는 강조하였다. 그리고 그 노력의 결과를 플라톤의 ‘코라(chora)’, 이리가레의 ‘두 입술’, 그로츠의 ‘뫼비우스’에서 찾을 수 있다고 제시하였다. 즉, 위의 세 개념을 통해서 남성/여성의 위계적인 이분법을 넘어설 수 있는 여성의 몸에 대한 새로운 규정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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