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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위기의 시대, 오늘의 코뮨 7 이미라─능동적 힘과 정치 11 박영균─맑스주의와 어버니즘, 그리고 노동자 계급 해방운동 45 신재성─스피노자의 정치이론: 시민사회와 국가의 관계를 중심으로 71 서영표─오늘날 우리에게 사회주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113 윤수종─의식과 언어에서 무의식과 기호로─펠릭스 가타리의 사유 실험 145 박종성─자기중심적 사람, 그리고 노동력과 능력 175 정병기─포퓰리즘의 정치 경제 사회적 발흥 배경과 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대응 191 오창룡─‘표류’에서 코뮨으로: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의 대안 사회 구상 213 한상원─해방된 사회는 ‘생산력의 진보’를 수반하는가? : 아도르노와 탈성장 담론 245 이성백─중세 코뮨: 코뮤니즘의 역사적 기원 : 중세 도시의 사회철학적 해석의 시론 275 필자 소개 3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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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가치법칙의 관철만을 실재로 왜곡하는 경제학적 논리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그것을 지탱하는 외적 한계들, 프런티어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인간인 우리들 자신의 내적 한계를 자각하게 된다. 이러한 마주침과 자각을 경제학적 논리에 의해 평면화된 세계 인식을 비판할 수 있게 한다. 이제 사람들은 여기로부터 경제학적 논리/자본주의 논리에 의해 짓눌려 있는 몸과 무의식의 신호를 들을 수 있게 된다. 그럼으로써 자연적 존재인 스스로를 알게 되고, 자연적 존재이기 위해서는 사회적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동시에 이런 자각은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체험되기에 하나로 수렴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마주침과 자각이 준 자본주의 거부의 몸짓은 숙의 과정에 의해 사회주의 정치로 도약해야 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찾아야 할 사회주의의 출발점이다.
---「서영표─오늘날 우리에게 사회주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중에서 다시금 현실에서의 노동을 살펴보자. “그는 다른 어떤 사람의 손아귀에서만 노동하게 되고, 그러한 사람이 그를 이용한다(착취한다).” “노동이 낮게 지불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력을 소유한 사람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판매함으로써 노동력의 사용권, 이용권은 노동자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가의 것이 된다. 바로 자본가의 노동력의 사용, 이용은 착취이다. 맑스의 언어로 말하면, 잉여가치는 착취와 같은 말이다. 잉여가치의 비밀은 노동력이다. 이러한 상황을 전복시키고자 슈티르너는 노동자의 엄청난 힘을 믿고 있다. 그가 보기에 노동자가 자신을 가치 있게 만들 수 있는 것은 파업이다. ---「박종성─자기 중심적 사람, 그리고 노동력과 능력」중에서 포퓰리즘이 반민주적 현상으로서 민주주의를 위협하거나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하더라도 반사적 효과나 의도하지 않은 효과에 그친다는 판단은 구포퓰리즘과 극우 신포퓰리즘에 해당할 뿐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적어도 신포퓰리즘 등장 이후의 포퓰리즘은 대의 민주주의 범주 안에 존재하는 다른 하나의 민주주의 유형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를 수용한 신포퓰리즘이 자유 민주주의의 한 유형이라면, 개인주의 인민관까지 수용한 포스트포퓰리즘은 다원적 민주주의의 한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정병기─포퓰리즘의 정치 경제 사회적 발흥 배경과 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대응」중에서 그러나 이들은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라는 단순한 경구로 환원될 수 없는 ‘진지한 유희의 투쟁’을 깊게 분석하고 실천했다. 촛불시위가 한국 사회의 본질적 모순을 지양하고자 했던 새로운 혁명의 흐름이었는지, 혹은 단순히 정권 교체를 시도한 제한된 형태의 사회 운동이었는지 여전히 평가가 엇갈린다. 분명한 것은 광장의 대중 축제가 현재 멈추었다는 사실이며, 이 시점에서 대한민국 사회에서 ‘축제로서의 투쟁’이 어떠한 가치를 갖는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 상황주의자들의 주장을 따른다면,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착취 구조에 대한 분석만큼이나, 소외의 집단적 극복을 매개하는 놀이와 축제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작업이 동등하게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창룡─‘표류’에서 코뮨으로: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의 대안 사회 구상」중에서 칼 맑스는 코뮤니즘의 사회정치적인 근본 원리를 “자유로운 개인들의 자유로운 연합”으로 정식화하였다.그가 이 원리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글은 파리 코뮨을 분석한 ??프랑스에서의 내전??이다. 그런데 이미 ??독일 이데올로기??에서부터 코뮤니즘이 자개자연으로 정식화되고 있다. “진정한 공동체에서 개인들은 서로의 연합 속에서 그리고 연합을 통해 그들의 자유를 획득한다. (…) 개인들의 자유로운 발전과 운동의 조건들을(물론 이는 오늘날 발전한 생산력을 전제로 한다) 통제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바로 개인들의 연합체이다.” 칼 맑스는 이미 그가 코뮤니스트가 되었던 청년 시절부터 코뮤니즘을 자개자연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이성백─중세 코뮨: 코뮤니즘의 역사적 기원」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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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위기 상황을 극복할 방안은 다양한 사람들의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중첩적으로 짜임 관계를 이루는 집단지성의 실천 속에서 제시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여러 논자들의 동참을 기획하여 그 목소리를 담았다. 무한 성장, 계급과 젠더 불평등, 혐오와 증오, 자연의 역습 등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여러 위협 요소를 마주한 만큼 여러 목소리의 진단이 나온다.
이를테면, 서영표는 현재 우리의 사회적 연대가 붕괴되는 상태인 아노미적 증상을 노동의 가치 불인정, 불로소득 추구와 투기, 경쟁주의적 생존 투쟁, 포퓰리즘 등 네 개로 요약한다. 불안정한 고용과 부족한 소득 때문에 부채 경제가 확대되고 청년들마저 학자금 대출로 미래를 담보 잡힌다. 노동의 기회조차 불규칙한 조건에서 미래에 대한 준비는 투기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고, 가망 없는 불로소득 추구에서 패배한 다수가 강렬한 고통과 좌절을 맛본다. 타자의 고통을 공감할 여유도 여지도 없다. 이러한 강렬한 고통 체험에 인종, 종교, 성별, 성 정체성이 덧씌워졌을 때 혐오의 감정이 싹튼다. 한상원은 인류는 더 이상 풍요로운 미래와 지구의 붕괴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고 전제하고, 피할 수 없는 환경 대재앙과 파국적인 미래로부터 조금이나마 벗어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으로 탈성장을 들었다. 탈성장은 마이너스 성장이나 경기 침체로 바뀌어 실업, 경기 파산 등을 일으킬 것으로 여겨 거부감을 갖지만, 탈성장의 진정한 핵심은 ‘성장을 위한 성장’, ‘이윤을 위한 이윤’의 논리와 작동 방식을 중단시켜 지속 가능한 사회체제로 전환하는 데에 있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필자들은 현재 우리가 재앙적 상황에 처해 있는 데도 이런 인류 공동의 문제를 진단하고 토의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공감 능력이 약화하고 있다는 공통 인식의 지반에 서 있다. 상황에 대한 공감의 마당이 필요하고 여기서 공감의 능력을 강화하여 상황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실천하는데 맑스주의자들의 ‘코뮨’, ‘코뮤니즘’을 주목한다. 21세기에 사는 인간 사회가 전통적인 맑스주의가 그려왔던 청사진대로 변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은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도 간파한다. 그렇다면 필자들은 어떤 언어로, 어떤 이론적 전망을 통해 오늘날 필요한 ‘코뮨’을 사유하는가, 코뮨의 미래는 무엇인가가 〈코뮨의 미래〉에 들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