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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임말
일러두기 역사 제1강 진보인가 퇴보인가? 핵심용어들: 강의와 『부정변증법』의 관계, 칸트와 헤겔에게서 자유 개념, 사라지는 사유의식, 아우슈비츠에 의해 반박된 역사의 의미, 역사철학은 의미를 상정한다. 문화형태학(슈펭글러)과 관념론 제2강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 경향과 개별사실 | 세부내용에 대한 거리와 가까움: 특수한 진보 | 보편적인 것으로서 합리성; 자연지배적 합리성 | 보편사의 개념; 적대적 합리성, ‘파우스트적 기술’과 생산양식 | 헤겔의 정신개념; 정신과 기술적 이성; 정신은 최초의 것이 아니라 생산된 것 | 보편적인 것에 대한 직접적 경험과 형이상학으로서의 보편적인 것에 대한 비난, 보편적인 것으로서 부정성 제3강 구성의 문제 사실의 진리 | 직접성과 매개, 개별성과 ‘비진리적’ 보편적인 것 | 짐멜의 역사철학; 구성의 문제틀에 관하여 (I) | 구성의 문제틀에 관하여 (II) | 드메스트르, 인식의 근거와 현실의 근거 | 헤겔의 ‘세계정신’과 시대의 정신 | 사물과 타율성의 논리 제4강 매개의 개념 외피로서 사실 | 사변적인 것의 경험, 위원회에서의 경험 | 형식적 사회학, 집단여론과 사회적 총체성 | 프랑스 혁명 (I) | 프랑스 혁명 (II), 원인과 계기: 역사적 과정과 개별적 요소 | 프랑스 혁명 (III); 과정의 우위; ‘수입경제’가 아닌 ‘지출경제’; 역사철학적 범주론에 관해 제5강 스스로 실현되는 총체성 역사철학과 역사서술 | 보편적인 것에 대한 편견 | 헤겔의 계급 입장 | 헤겔을 옹호하며 | 비이성으로서 이성; 개별 이해와 전체, 인류: ‘자연 착취 주식회사’ | 이성 개념 안에서의 적대 | 사악한 전체 제6강 적대와 생존 양가적 총체성; 마르크스의 역사적 낙관주의 | 적대와 전체 | 적대의 신정론 | 적대와 삶의 재생산 | 적대와 근원사; 경제인가 지배관계인가 | 사변적 역사 개념과 혁명적 역사 개념; 아나키즘의 문제틀에 관하여 | 비타협주의의 옹호 제7강 세계운행과 정신 타협주의의 개념 | 개념의 실체화에 반대하며, 합리성 개념; 합리성의 비합리성 | 헤겔에게서 법칙과 ‘다정함’, 특수한 것 내의 보편적인 것 | 세계운행과 개인의 양심; 정신의 메테시스 | 분열의 신정론과 구체적 가능성 제8강 심리적인 것 인격적 가면 개념 | 개인화와 사회화 | 동일성과 화해의 가상 | ‘뿔을 부딪혀 봐야’ | 자기보존과 체념의 반성형태들; 공격자와의 동일시 | 자기파괴에 대한 동의; 구체주의; 접착제로서 심리학 제9강 보편사 비판 사유의 진행에 관하여 | 보편사의 개념 (I) | 보편사의 개념 (II) | 허위적 주권과 귀납의 구원, 헤겔의 역사구성 | 헤겔에게 자유와 개인 | 고대와 근대의 개별성 | 승리자의 입장에서의 역사 제10강 ‘부정적’ 보편사 벤야민의 XVII번 테제 | 시대의 핵과 비동일성 | 연속성과 불연속성 | 거대한 교환관계로서 역사 | 총체적 국가와 경쟁하는 파벌들의 지배 | 특수한 것의 변증법 | 우연의 개념; 인식의 유토피아 | 총체적인 것에 대한 헤겔의 비판; 사유의 과정에 관하여 제11강 민족정신과 헤겔의 민족 핵심용어들: 민족정신과 세계정신; 세계 법정으로서 세계사; 사이비 구체화; 억압적 태고성; 비코, 몽테스키외 그리고 헤겔에게서 반데카르트주의적 요소; 민족의 우상화 제12강 민족성의 원칙 민족: 부르주아 조직형태, 자연적 유대로부터의 소외 | 인종적 광기 | 민족의 진보적 양상들 | 민족성의 원칙과 자연사 | 오늘날 삶의 조직화에서의 같음 | 낡아 버린 헤겔의 민족정신 개념, 기술을 통한 탈집중화 | 독일: ‘뒤늦은 민족’ | 개인에 대한 보편적인 것의 지배, 객관적 이성이 주관적 이성으로부터 분리됨 | ‘지옥의 기계’; 헤겔의 자연사 제13강 자연사 (I) 핵심용어들: 자연과 역사; 정신으로서 역사; 비판적 개념으로서 자연사; 마르크스: 아이러니한 사회적 다윈주의자; 역사의 신화적 성격; 제1의 자연과 제2의 자연 제14강 자연사 (II) 제2의 자연 | 자연과 역사의 매개 | ‘역사성’ 비판, 의미와 우연 | 해석으로서의 철학 (I); 무상함과 알레고리, 철학의 구체화로의 이행, 세속화된 형이상학으로서 역사 | 해석으로서의 철학 (II); 해석학 | 봉쇄된 실천; 시간의 형이상학 비판 진보 제15강 해석에 관하여, 진보의 개념 (I) 자연사; 알레고리; 비판 | 세속화된 멜랑콜리; 해석의 이론; 횔덜린의 「하르트의 은신처」 | 직접성의 생성됨; 헤겔과 마르크스; 예술에 관하여 | 해석의 행복에 관하여 | 역사철학과 자유론의 결합으로서 진보 개념 | 유명론 비판을 위하여 | ‘진보인가 아닌가’ 제16강 진보의 개념 (II) 종합 개념에 관하여 | 파국의 저지로서 진보; 사회적 전체주체 | 칸트의 인간성 이념 | 벤야민의 진보 이념 비판 |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진보와 구원 | 탈주하는 것 | 사회에 의해 매개된 진보 | 칸트에게서 화해와 적대; 그 자체 신화적이며 반신화적인 진보 제17강 진보의 개념 (III) 유겐트스틸: 입센 | 데카당스와 유토피아; 부르주아적 차가움과 특권화된 행복; 개별화의 변증법 | 데카당스와 성에 대한 비난; 유겐트스틸과 표현주의 | 자연지배와 이성의 전개, 칸트와 헤겔의 이성 개념; 신화와 탈신화화는 하나 | 18세기와 19세기의 진보 이념 | 두 개의 진보 개념들 | 내면성의 변증법에 관하여, 실존주의적 자발성의 결정론에 반대하며 | 진보의 대변인으로서 정신 제18강 진보의 개념 (IV) 정신의 정적인 요소들 | 진보와 물질적 지배 | 철학의 진보 | 철학적 자기반성의 강령 | 교환 개념에 관하여; 교환과 신화 | 진보의 수정에 관하여 | 사적인 보론 자유 속박과 자유의 개념들에 관하여; 의지의 자유에 집중하기; 속박에 대한 저항의 총괄개념으로서 자유 제19강 도덕철학으로의 이행 역사에서 자유의 부재 | 개인적 자유, 사회적 부자유 | 역사적 범주로서 자유 | 부자유 내에서 자유의 가능성 | 생산력의 수준 | 이성과 자유 | 모델과 짜임관계; 의지의 자유와 내면화 제20강 의지의 자유란 무엇인가? 핵심용어들: 서로 매개된 안과 밖; 의지와 자유는 실체화될 수 없다; 가상이라는 문제에 관하여; 의지와 자유는 개별 충동들을 종합한다 제21강 자유와 부르주아 사회 의지를 정의하기: 자유의 기체 | 자발적 충동과 이성에 의해 규정된 충동의 합법칙적 통일로서 의지, 의지와 강한 자아, 자아의 모델로서 비자아 | 자유와 부르주아 계급의 해방; 자유와 심리학 | 과학화 대 탈주술화; 부르주아적 양가성 | 잡담으로서 자유론 | 억압에 봉사하는 자유; 초자아의 심리학에 관하여 제22강 부자유 속에서의 자유 문제이자 구호로서 자유 | 자유의 절대적 부정으로서 아우슈비츠 | 죄의 연관 | 자유와 과도한 요구 | 부자유로서 ‘악’ | 도덕적 범주들의 낡아 버림; 사회와 개인 제23강 자유의 이율배반들 자유에 대한 나르시시즘적 관심 | 자유의 그림자로서 순응 | 충동, 미메시스, 비합리성 | 칸트의 자발성 개념 | 선험적인 것으로서 자발적인 것 | 자발성의 변증법; 마르크스·로자 룩셈부르크 | 강박신경증, 자아에 낮선 자아 제24강 합리성과 부가적인 것 프로이트의 억압 이론, 자아의 현혹 | 내면성의 이데올로기 | ‘절대적 근원의 존재영역’ 그리고 주체의 영역 | 결정적 실험 비판 | 칸트의 ‘집 앞의 교수대’ | 칸트의 도박 사기꾼 | 결정요인으로서 선험주의인가 경험인가; 예지적 성격의 구성에 관하여 제25강 의식과 충동 의식 대 인과성 | 의식 없이는 의지도 없다 | 햄릿 (I) | 중세 질서, 낭만주의 비판, 햄릿 (II) | 햄릿 (III), 부가적인 것 혹은 비합리적인 것 | 의지에서 태곳적 요소 | 태곳적인 것이 변하다 | 이성의 계기와 충동의 계기 제26강 칸트의 의지의 자유 이론에 관하여 충동의 계기에 대한 증거 | 칸트에게서 이론-실천 문제, 강의 형식에 관해 | 칸트에게서 도덕법칙 성찰의 역사화 | 부자유의 규정적 부정으로서 자유, 칸트에게서 허구로서 자유론 | 칸트에게서 자유라는 역설, 능산적 자연과 소산적 자연 | 칸트의 ‘빌려 온’ 선; 칸트에게서 매개는 억압적 | 법칙성의 자기의식으로서 자유 제27강 의지와 이성 칸트 이성개념의 이중성 | 칸트에게서 의지의 존재론화 | 칸트의 허위적 의지 규정 | 형식주의의 옹호, 구체화의 남용; 셸러 | 성격 개념 | 성격과 제정신이 아닌 것 | 의지와 이성 제28강 불안정한 도덕성 존재론적 타당성과 존재적 발생은 매개됨 | 의지주의적인 계기와 지성적 계기 | 도덕적인 것의 자명성에 관하여; 선과 악 | 의지와 폭력, 도덕적 안정성은 없다 | 타율성과 양심의 연대적 형상들 | 도덕철학에서 보편적인 것과 개인 | 자유와 부자유 | ‘형이상학’ 강의에 관하여 편집자 후기 테오도르 W. 아도르노 연보 연도별로 본 아도르노의 저작 인명 색인 |
Theodor Wiesengrund Adorno,테오도어 W. 아도르노, Th.W.아도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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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 강의에서 저는 역사라는 매우 특수한 문제, 다시 말해 보편적인 것, 즉 보편적 경향과 특수한 것, 즉 개별자 사이의 관계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요. 이 강의에서 세밀하게 역사 구조의 구성을 들여다보는 것은 저의 과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일종의 역사철학의 근본적 질문들을 다루고자 한다면, 이것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 역사적인 것의 인식이라는 물음은 우선적으로 거리에 관한 물음입니다. 달리 말해, 세밀한 것 쪽으로 지나치게 가깝게 다가갈 뿐, 그것에 대해 다시 비판적으로 고찰하지 못하게 되면, 문자 그대로 숲을 볼 뿐 나무를 보지 못한다는 온전히 현명한 격언이 적용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너무 먼 거리에서는 역사를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그에 따라 너무 커져 버린, 비대한 범주들 -예컨대 자유의 진보를 생각해 볼 수 있겠죠. 이 범주에 대한 비판에 관해서는 지난 시간에 약간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은 마찬가지로 문제가 있으며 실질적 내용 면에서 참된 것으로 입증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한편으로는 역사의 총체적 구성으로부터 표현되며, 다른 한편으로는 방금 말씀드린 대로 자신의 개념적 측면에서 문제가 있는 사실들에 대한 숭배에 과몰입하지 않는, 일정한 거리를 획득하려고 시도해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 p.35 제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세계운행의 우위에 맞서는 것을 이성에 허락하고 이성에게 이를 강요하고 또한 의무로 제기하는 비판의 척도는 항상 모든 상황에서 다르게 될 수 있다는 구체적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며, 그러한 구체적 가능성은 사회 내에서 발전되고 현재화되는 것이지,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거나 저렇게는 되지 않을 것이라는 식의 자동적으로 채워지는 설계도를 현재에 투영하는 방식으로 추상적 유토피아라는 의미에서 과장되어서는 결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기서 관념론적 역사 구성의 가장 치명적인 귀결들 중 하나를 볼 수 있습니다. 즉 모든 현실적인 것이 정신과 같아짐에 따라서, 가능성과 현실성은 서로 동일시됩니다. 현실적인 것이 정신과 같아질 뿐만 아니라, 정신 역시 현실과 같아지는 것이죠. 결국 정신은 현실에 대한 긴장을 상실해 버리고, 이러한 방식으로 비판적 심급으로서 폐기됩니다. 동일화하는 관념론적 사유의 경향, 곧 현실과 가능성을 등치시키고, 주체적 측면에서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비동일적 존재자인 것에 상응한다는 의미에서 주체적으로 긴장을 만들어 내는 가능성을 차단하는 이러한 경향은 사유로 하여금 그러한 가능성을 비난하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헤겔 철학이 오랫동안 잊힌 오늘날 바로 이러한 경향이 세속화되었습니다. 혹은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그것은 속류화되었고, 어떠한 유토피아도 허용되지 않으며 따라서 가능하지 않다는 식의 평범한 선입견이 되었습니다. 달리 말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속박은 아마도 이른바 무시무시한 유물론이라는 속박이며, 그러나 매우 확실히 그것은 자기 자신의 전체들을 더 이상 의식하지 못하는 속류적인 유물론의 속박이기도 합니다. 관념론은 오늘날 이러한 사유 방식 속에 고정되어 버린 것입니다. --- p.128-129 누군가 이것을 어떤 제목이나 타이틀로 만들면 딱 좋겠군요. 오직 완전히 상이한 일련의 정의들만을 -이를테면 헤겔의 자유에 관한 정의라든가 마르크스의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의 투쟁에 관한 정의- 도출할 수 있다는 사실이 보여 주는 것은 다름 아니라, 역사란 본래 어떠한 개별 개념들이나 개념쌍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서술된 철학 이론에 의해서 달성될 수 있는 짜임관계(Konstellation)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보편사로서 역사의 구성에 대한 다른 종류의 반대 역시 존재하지요. 신학적인 종류의 반론뿐만 아니라 사회비판적인 종류의 반론도 있는데, 여러분은 그 가장 극단적인 그리고 가장 진정한 표현을 벤야민이 그의 최후의 순간에 「역사의 개념에 관하여(Uber den Begriff der Geschichte)」라는 제목으로 저술하였고 어떤 의미에서 그의 유언으로 간주될 수 있는 ‘역사철학 테제들(Geschichtsphilosophische Thesen)’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완성한 마지막 텍스트일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우리의 발터 벤야민 저작집에서 이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 이 역사철학 테제들을 다룰 수 있도록 여러분들 중 원하는 분들은 가능한 한에서 이 텍스트를 읽고 와 주시면 고맙겠군요. --- p.162 여러분, 이것이 제가 원래 여러분께 역사철학과 해석의 관계에 관해 말씀드리려 했던 것입니다. 이제 저는 강의의 이번 부분 전체를 끝마치기 위해, 한편으로 역사철학의 전체 문제틀을 자체 내에 요약하며,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또한 자유의 이론과의 결합을 본질적으로 창출해 내는 하나의 범주를 다루고자 합니다. 그것은 진보의 범주입니다. 저는 헤겔에게서 역사가 자유의식에서의 진보로 고찰되었으며, 칸트에게서는 역사철학에서 인간들 사이의 자연발생적인 대립, 곧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homo homini lupus)라는 사실이 인간 자신으로 하여금 자연의 강압으로부터, 그러한 강압의 메커니즘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유의 왕국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을 달성하도록 강제했다는 의미에서 진보가 필연의 영역과 자유의 영역 사이의 매개를 이룬다는 사실을 여러분께 다시 한번 일깨워 드리고자 합니다. 그러나 제가 여러분께 적어도 역사철학에 관해 말씀드리려고 시도했던 이러한 고찰들을 온전히 전개하거나 이제 이것을 자유의 이론과 결합하기보다는, 우선 저는 -결론적으로 그리고 여러분께 다소 적절하고 간결한 역사에 대한 관점을 제시해 드리기 위해서- 진보에 관해 몇 가지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 p.250-251 저는 이 강의에서 -시작할 당시에는 거의 완전히 인식하지 못했지만- 역사의 구성을 위한, 또 진보의 구성을 위한 특정한 범주로 떠오른 것이 속박 개념이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모든 살아 있는 것은 속박하에 놓여 있거나 속박하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그리고 속박하에 놓여 있는 것과 속박하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이 둘은 거의 동등하게 올바른 진단입니다만- 『계몽의 변증법』의 마지막 문장을 보면, 그 안에 이미 선취되고 있습니다. 즉 제가 여러분께 강의를 하는, 그리고 현재 저 자신의 철학적 작업에 본질적인 노력들은, 호르크하이머와 제가 그 당시 속박으로 고찰했던 것을, 즉 이 속박 개념 자체를 그 모든 측면에 따라서 표현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통찰을 발견했다면 -그리고 그 통찰이 무언가에 유용하다고 일단 가정해 보세요- 오히려 그것이 직접적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가능성, 즉 그로부터 점진적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그 안에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 p.309 저는 먼저 우리가 자유를 속박에서 벗어나기 또는 탈주하기로, 말하자면 따라서 어떤 종류이건 주어진 것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경향으로 정의했다는 점을 상기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여기에 더해, 긍정적 규정 일반으로서의 자유란 존재할 수 없다고, 간명한 의미에서의 자유란 존재하지 않으며, 자유란 비로소 창출되어야 하는 것 또는 스스로 창출되는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전환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알고 있는 칸트 자유론의 난제들은 하나의 이율배반에 연결되어 있고 이 이율배반적 성격은 결코 완전히 없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난점들은 정확히, 칸트가 한편으로 자유가 유일하게 가능한 인간성의 개념이지만, 다른 한편 자유는 이미 발견된 것이 아니고, 하나의 사실로 다뤄질 수 없다는 것을 보았거나 감지했다는 사실에서 비롯합니다. 그러나 자유가 그 실현 가능성이 보이지 않거나 규정될 수 없는 상태에서 한갓 이념의 왕국에 머물러 있다면, 이러한 자유 개념은 완전히 구속력 없고 헛된 것입니다. 그리고 칸트가 자유 개념으로 수행한 수많은 노력들은 결국은 거칠게 말해 이러한 자유 개념 없이는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비롯합니다. 달리 말해, 이러한 자유 개념 없이는 공동의 삶, 평화로운 인류의 공동의 삶과 같은 것은 결코 사유될 수 없으며, 그러나 다른 한편 바로 이러한 자유 자체가 사실성의 왕국에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입니다. 윤리학의 토대로서 자유를 모든 경험적인 것으로부터 정화시키려는 칸트의 극도로 견고한 노력들을 역설적인 방식으로 경험적인 것, 사실적인 것으로 소급해 본다면, 이러한 사실적인 것은 현실적으로는 비존재, 결핍일 것입니다. 말하자면 바로 우리에게 지금까지 주어진 역사적이고 자연적인 경험의 전체 영역에서 자유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는 경험인 셈이죠. --- p.317-318 제 생각에 자유 개념을 현재화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행하는 가장 허위적인 것이 바로 자유에 대한 호소, 즉 슬로건으로서의 자유의 확장 또는 자율성에 대한 참조라고 말해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지금 제기하는 고민들, 즉 자유가 무엇이 되었으며 무엇이 되려 위협받고 있는가에 관한 물음이야말로 바로 이 개념 자체를 진지하게 숙고하기 위한 조건이며, 이에 반해 자유 개념을 단순히 주어진 것으로 고찰하는 것은 이로 인해 그것을 판에 박힌 구호로 격하시키는 일일 따름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결국 제가 지금까지 이번 강의에서 행하였듯이, 다름 아닌 자유를 위해 자유의 제약 그리고 자유의 문제틀이라는 계기들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인 이유들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이 이러한 의도를 올바르게 이해하길 희망합니다. 자유로워지려는 자는, 자유에 호소하거나 자유를 전제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자유의 문제에 관한 설명을 제시해야 합니다. 반면 자유 자체에 대한 호소는 이미 그 자체로, 감정적인 건반 위에 연주되는 호소로서, 정확히 자유 개념의 의미와 본질적으로 모순되는 타율성과 종속의 계기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 p.356-357 이러한 충동적인 것과 더불어 자유는 경험에 도달합니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행동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맹목적인 자연도, 다른 한편 억압된 자연도 아니며, 우리는 우리 자신이라고 느낍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단순한 의식의 정신적 구금에서 풀려나, 이 충동으로 인해 원래 우리 자신의 합리성에 의해 차단된 객체의 영역 속으로 도달하고 도약하고 진입할 수 있게 됩니다. 이를 어떻게 표현하든 상관없지요. 이를 즉각적으로 사물화하지 않으려 한다면, 이러한 매우 심오한 사태에 대해 어느 정도 올바른 용어들을 찾기란 극히 어렵습니다. 저는 저 자신에게서도 매우 강하게 관찰할 수 있는바, 그리고 여러분은 스스로 이를 관찰하고, 확인하는 데 익숙하시겠지만, 충동의 거역 불가능성은 누구나 그 자체로 관찰 가능합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충동에 굴복함으로써, 때로는 개별적으로, 때로는 잠시 동안, 내면과 외면의 분리라는 햄릿의 상황에 대해서 사람들은 그것이 번개 속에서 타 버린다고 느끼거나, 그것을 뛰어넘었다고 느끼게 되고, 바로 이로 인해, 어느 경우든 충동을 따르는 한에서, 그러나 다시금 객체의 영역 속에 있다고 믿게 됩니다. 사람들은 절대적 필연성을 가지고 이 객체적 영역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믿지만 물론 그것은 가상일 뿐이지요. 그러므로 자유의 환상은 -이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참으로 이성으로서의 정신과 자연의 화해와 같은 것이며, 자유는 이 충동 속에서도 살아남다는 것입니다. --- p.416-417 따라서 자유는 내가 법칙에 따라 행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법칙에 종속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 법칙이 나 자신의 이성의 법칙과 동일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존재하는 모든 법칙은 칸트에게서 나 자신의 이성의 법칙이므로, 그 귀결에 따라 근본적으로, 제가 여러분께 읽어 드린 이러한 자유의 규정으로 인해서 칸트 자신에 의해 자유론은 가장 심층적인 의미에서 제약되고 철회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칸트에게서 의식의 합법칙성이 놀라운 방식으로 자유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를 소환해 내기 때문이지요. ‘자유로부터의 인과성’이라는 모순어법은 의지를 법칙으로서의 이성과 동일시하는 데에서 기인합니다. 이것은 합리주의의, 즉 칸트 철학이 함께 행진하고 있는 소위 프리드리히 대왕 군대에서의 합리주의적 측면의 최상의 표현입니다. --- p.434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죄에 연루된 총체성 내에서도 자유의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솟아나고 있습니다. 언제나 계속해서 번번이 주체는 그 가능성의 면에서 자유롭지만 현실에서는 부자유하다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수행한 고찰들의 의미에서 볼 때, 자유롭다는 것은 -여러분이 보셨듯이 저는 저의 약속을 지키고자 했고 정의들로부터 시작하지는 못했지만 그것으로 끝내려고 합니다- 전체의 자유와 투명하게 관계 맺는 모든 행위를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마지막 시간을 아낄 겸 여러분께 미리 작성된 문장들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칸트의 모델에 따르면, 주체는 자기 자신을 의식하고 있으며, 자신과 동일할 때 자유롭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동일성 속에서 주체는 또한 다시금 그 자신이 이 동일성의 억압에 종속되는 한 부자유스러워집니다. 이에 반해 주체는 비동일자로서, 분산된 자연으로서 부자유스러우며, 그럼에도 그 자체로 자유로운데,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보다 강한 -그리고 주체의 자기 자신과의 비동일성에 다름 아닌- 자극들 속에서 동일성의 강압적 성격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인격성은 자유의 캐리커처입니다. 이 아포리아에는 원인이 있는데, 그것은 동일성 강압을 넘어서는 진리는 그러한 동일성 강압과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니라, 언제나 동일성 강압 자체를 통해 매개된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입니다. --- p.464 텍스트의 발행 과정에서 편집자는 마치 아도르노 자신이 자유롭게 수행한 강의의 편집을 맡은 것처럼, 혹은 그가 자신의 강의를 출간하기 위해 수행한 것처럼 작업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시도된 것은 강의의 성격을 보존하는 것이었다. 편집자는 전해진 텍스트에 가능한 한 적게 그리고 필요한 만큼 개입하였다. 파격구문이나 생략된 문장들은 다른 문법 오류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수정되었다. 방해가 될 정도로 반복되는 문장들을 조심히 제거하면서 때때로 불명료한 구문론적 구성에 개입하기도 했다. 비교적 빨리 말하곤 하는 아도르노는 드물지 않게 개별 단어들을 소소하게 잘못 사용한다. 의미상 어떤 단어들이 들리고 그에 따라 구절이 분명하게 만들어지는 곳에서, 전체 구문은 수정되어야 했다. 허사(虛辭), 특히 ‘이제, 그러니까, 물론’ 같은 불변화사들은 단순히 당혹스러울 때 쓰는 미사여구에 불과할 때는 삭제되었다. 내용상 어쩔 수 없이 편집자에 의해 추가된 구두점을 취급할 때는 편집자는 자유롭게 이를 의식했으며, 말해진 것을 가능한 한 명료하고 오인 없이 배치하고자 노력했던, 아도르노가 서술된 텍스트에 대해 고려하는 규칙들은 고려하지 않았다. 어느 곳에서도 당연히 아도르노의 텍스트를 ‘개선시키려는’ 노력, 그의 텍스트만을 산출해 내려는 노력은 이뤄지지 않았으며, 편집자는 이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 p.481-4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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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이후 자유는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가?
역사, 진보, 자유….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의 변증법적 고찰 이 책의 원전은 1964-1965년 겨울학기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아도르노가 진행한 스물여덟 차례의 강의를 롤프 티데만이 편집해 출간한 것이다. 훗날 주저가 되는 『부정변증법』의 예비 작업으로, 아도르노는 여기에서 자유와 역사철학을 중심으로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 민족성, 보편사, 자연사, 진보, 도덕성, 의지의 자유 등을 고찰한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 앞에서 동시대의 많은 철학자들이 존재와 존재자, 언어적 분석에 머물러 있을 때, 아도르노는 현실과 역사적 사건, 그 파문에 지속적으로 주목하며 비판적 사유를 전개했다. 이 책에서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 헤겔의 진보 개념이 현실과 동떨어졌음을 지적하고, 관리되는 세계, 즉 보편적인 것의 지배에 놓인 세계가 개인을 기능으로 격하하고 자아의 약화, 순응이 자유를 제약한다고 분석한다. 역사적 사건들은 단순히 주어진 계기만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의 변증법적 관계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아도르노는 민족정신과 민족을 보편사 또는 세계정신의 구성이라는 맥락에서 고찰하고, 그 관계를 밝히면서 민족 개념에 내재해 있는 낭만적이나 퇴보적인 요소가 결국 인종적 광기로까지 전개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자연사 개념을 다루면서는 역사적 산물이 굳어져 반복과 재생산을 통해 자연처럼 작동하는 ‘제2의 자연’을 적시하며, 이를 통해 역사적 진보에 대한 낙관주의와 이성 중심주의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아도르노에게서 진보는 단순한 기술적 진전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연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 나아가는 순간에 비로소 시작되고, 동일성과 지배질서에서 벗어나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그에게서 자유는 속박에 대한 저항의 총괄개념이며, 부자유 속에서 비로소 창출되어야 하는 것이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칸트의 형식적인 자유론이 배제한 충동적·신체적 요소와 아울러 사회적 맥락을 포함할 때에야 자유가 발현될 수 있다. 아도르노의 목소리를 복원하다 티데만의 세심한 편집으로 살아난 위대한 철학 강의 이 책을 편집한 롤프 티데만은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에게서 박사학위를 받고, 1959년부터 프랑크푸르트 사회조사연구소에서 아도르노의 연구 조교, 개인 비서로 일하며 아도르노 전집의 편집을 맡았으며, 아도르노 아카이브의 관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이 책의 편자로서 “마치 아도르노 자신이 자유롭게 수행한 강의의 편집을 맡은 것처럼, 혹은 그가 자신의 강의를 출간하기 위해 수행한 것처럼 작업하기 위해 노력했다.”(481쪽) 텍스트에 최소한으로 개입하되 필요한 곳에는 반드시 개입하여 사소한 문법 오류와 지나친 반복을 수정·삭제했고, 아도르노가 잘못 사용한 단어는 의미가 분명해지는 선에서 손보았으며, 단순한 군더더기 표현은 제하면서 전반적으로 원래 발화를 명료하게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 그리고 “주석들에서는 강의에서 사용된 인용들의 전거를 제시했으며 또한 아도르노가 끌어오거나 끌어올 수 있었을 구절들을 인용하기도 했다.”(482쪽) 아도르노 강의의 생생함과 철학적 정밀함을 동시에 고려한 티데만의 세심한 편집은, 난해하고 복잡한 아도르노 사유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현장의 강의를 텍스트로 옮기는 방식의 전집 편집에도 참고할 만한 기준을 제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