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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쟁이
회초리 자정 미사 유명인 정신과 의사 역자 후기 |
Joaquim Maria Machado de As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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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밀루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또 생각하지 않으려고 마차 좌석에 몸을 비스듬히 파묻었다. 그러나 마음의 동요는 너무도 크고 또 야릇했으며, 게다가 자신의 깊숙한 도덕적 심연에서는 과거의 어떤 환영과 오래된 믿음 그리고 낡은 미신 같은 것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마부는 첫 번째 골목으로 돌아가서 다른 길로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왔다. 하지만 카밀루는 잠시만 더 기다려 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비스듬한 자세로 점쟁이의 집을 바라보다가…… 곧 그 자신도 믿을 수 없는 몸짓을 하며, 불현듯 점쟁이의 말을 들어보는 것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 p.17 주앙 카르네이루의 동공은 마치 환각에 빠진 듯했으며, 눈꺼풀은 떨리고 가슴은 헐떡이는 지경이었다. 그가 지금 히타에게 보내는 시선은, 미세한 비난의 빛이 뒤섞인 애원과도 같았다. 왜 그녀는 그에게 다른 것을 요구하지 않는 것일까? 왜 그녀는 그에게 비를 맞으며 어딘가로든, 이를테면 티주카나 자카레파구아까지 가라고 요구하지 않는 것일까? 왜 하필이면 자식의 진로를 바꾸도록 친구를 설득하라고 하는지……. 그는 친구를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 꽃병을 내던져 깨뜨릴 수도 있는 인물이었다. 아! 저 젊은이가 쓰러져 갑자기 졸도를 하고 죽기라도 한다면! 잔인하긴 하지만 가장 확실한 해결책일지도 모른다. --- p.32 어쨌든 그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도를 지켰고 수동적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예쁘지도 못생기지도 않은 그저 그런 정도였는데, 그런 사람을 우리는 평범하지만 매력 있다고 말하곤 했다. 그녀는 또한 그 누구의 뒤에서도 험담하지 않았고 모든 것에 관용을 베푸는 사람이었으며, 그래서 미워하는 법을 모르거나 아니면 사랑하는 법까지도 모르는 것이 아닌지 의심될 정도였다. --- p.41 왜 그는 불멸할 작품을 단 한 페이지도 만들지 못하는 것일까? 때때로 마치 무의식 깊숙한 곳에서 오로라와 같은 생각이 떠오르는 것처럼, 그는 피아노로 달려가 그 생각을 펼쳐놓고 소리로 옮겨 놓으려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아무런 결실 없이 영감은 사라지고 말았다. 또 어떤 때는 피아노 앞에 앉아 마치 모차르트의 손가락에서 환상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처럼 자신의 손가락에서도 그러한 환상이 흘러나오도록 건반 위에서 무작정 손가락을 움직여보곤 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정말 어떠한 영감도 떠오르지 않았고 상상은 잠자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아름답고 결정적인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르기라도 하면, 그것은 자신의 기억 속에서 반복되고 있으며 또한 그가 작곡했다고 상상한 다른 누군가의 작품의 메아리일 뿐이었다. 그러면 그는 분노가 차올라 몸을 일으켜, 예술을 포기하고 커피콩을 재배하거나 마차를 끌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나 곧 10분도 지나지 않아 그는 다시 모차르트의 초상에 눈을 고정한 채 피아노 앞에 앉아 그를 흉내 내고 있었다. --- p.58 에바리스타 부인의 솔직하고 하염없는 눈물은 남편의 마음을 흔들지 못했다. 오로지 과학만을 신봉하는 그에게는 과학 이외의 그 어떤 것도 감동적인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안절부절못하고 예리한 시선으로 군중을 둘러보며 그의 마음을 우려하게 만든 것은, 혹시라도 어떤 미치광이가 다른 정상적인 사람들과 함께 섞여 있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 p.86 공포는 날로 더해갔다. 이제는 누가 멀쩡하고 누가 정신병자인지 알 수 없었다. 여자들은 남편들이 외출할 때면 성모님을 위해 등잔불을 켜놓았다. 모든 남편이 용감하지는 않았기에 어떤 이들은 한두 명의 경호원 없이는 밖에 돌아다니지 않았다. 말 그대로 공포 그 자체였다. --- p.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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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 있는 농담, 허를 찌르는 전개, 심오한 통찰.
브라질 문학의 거장, 마샤두 지 아시스의 중·단편 소설집 국내 초역으로 만나는 아이러니의 정수 마샤두 지 아시스라는 이름은 국내에 아직 생소하다. 주로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널리 알려진 그는 가히 브라질 역사상 최고의 단편 작가라 불리며 『악마의 시』를 쓴 작가 살만 루슈디와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감독 우디 앨런이 좋아한다고 고백한 바 있는 인물이다. 『타인의 고통』의 저자 수전 손택은 “남미가 배출한 최고의 작가”라고 극찬하였다. 인간의 폭발적이고 처절한 심리를 통찰해 정곡을 찌르는 것으로 유명한 마샤두 지 아시스, 이번에는 중·단편 선집 초역을 통해 국내 독자들에게 다시 인사를 건넨다. 선집은 총 5편의 중·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제작이자 중편인 「정신과 의사」를 비롯해 단편 「점쟁이」, 「회초리」, 「자정 미사」, 「유명인」이 순서대로 실렸다. 빛소굴은 마샤두 지 아시스의 수많은 중·단편을 검토하여 그의 소설가적 면모가 잘 드러난 것은 물론 동서양을 막론하여 독자의 시선을 잡아끌 만한 작품들을 엄선했고, 그중에서도 “아이러니”라는 주제에 알맞은 작품들만 모아 이번 선집에 싣게 되었다. 아이러니의 사전적 뜻은 이렇다. “예상 밖의 결과가 빚은 모순이나 부조화.” 『정신과 의사』에서 펼쳐지는 각 이야기의 배경과 인물의 면면은 지극히 평범하다. 이를 서술하는 작가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독자는 그간의 건조함이 폭풍전야였음을 깨닫게 된다. 이야기의 결론에 이르면―그걸 결론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우리는 뜻밖의 결말에 당혹스러워하며 순간 말을 잃게 된다. 마샤두 지 아시스가 선사하는 이러한 놀라운 소설적 체험을, 국내 브라질 문학 전문가인 이광윤 교수가 한국어로 옮겼다. 비교적 낯선 문화권의 관습이나 단어 쓰임새, 작가가 여러 원전에서 가져온 폭넓은 인용에 최대한 각주를 달아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인간은 입체적이다. 다시 말해 한 가지 면만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다. 점괘는 모두 허황된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던 사람도 위급한 상황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점쟁이에게 의존하게 되고, 한순간 불타올랐던 욕정으로 안절부절못하던 사람이 하룻밤 만에 차갑게 식어버리기도 한다. 학문에의 선구자적 정신과 숭고한 대의명분을 지닌 정신과 의사는 평화롭던 한 마을에 정신병원을 세우면서 어떤 독재자보다 무시무시한 공포감을 조성하며 마을 위에 군림한다. 마샤두 지 아시스는 인간의 태생적 본능과 욕망의 시작점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그것이 임계점을 넘었을 때 어떻게 변화하는지 서술하는 데 탁월한 작가다.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이국적인 신비의 세계로 빠져보기를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