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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부 조화석습 낙관시변(朝花夕拾 樂觀時變) ‘사’자 들어가는 직업 15 조선의 7대 상(常)놈 19 광화문(光化門) 24 중용(中庸) 30 신문(訊問)과 심문(審問) 34 안전불감증(安全不感症) 39 할급휴서(割給休書) 42 기별과 소식 그리고 다짐 47 신분과 호칭 51 아리랑 목동의 몽매 사랑 56 고명사의(顧名思義) 60 저와 같은 ‘쪼다’ 64 무구지보(無口之輔) 68 치재(恥齋) 72 수치(脩恥) 76 나를 각성케 한 철인(哲人)의 금언 1 79 나를 각성케 한 철인(哲人)의 금언 2 83 삼불행(三不幸) 87 불만(不滿) 90 학·치·술·덕(學·恥·述·德) 95 화소조제(花笑鳥啼) 98 갑진년(甲辰年) 101 까치설날의 비밀 104 2부 풍성종룡 운영종호(風聲從龍 雲影從虎)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 111 만절필동(萬折必東) 115 영부인(令夫人) & 영부인(領夫人) 119 장경오훼(長頸烏喙) 123 폐형폐성(吠形吠聲) 126 중구난방(衆口難防) 131 조철수문(弔撤收文) 135 노무현 트라우마 138 퇴임 대통령의 죄를 묻다 142 낙불사촉(樂不思蜀) 147 낙정하석(落穽下石) 150 사제사초(事齊事楚) 153 천공의 주술 정치(呪術 政治) 157 일반지은(一飯之恩)과 애자필보(??必報) 161 무등산(無等山) 165 경기도 유감(遺憾) 169 화천대유(火天大有) 172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175 조광조의 개혁 179 영정치원(寧靜致遠) 182 3부 원시반종 낙천지명(原始反終 樂天知命) 무명변(無命辯) 189 하나님과 하느님 193 소천(召天)과 명복(冥福) 198 헌금(獻金)과 연보(捐補) 203 불가능의 멍에 -사랑 207 무식한 도깨비는 부적을 모른다 216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219 수리수리 마하수리 222 경허(鏡虛)의 무비공(無鼻孔) 226 파괴와 창조의 변증법 231 부활(復活) 234 오병이어(五餠二魚) 238 이신칭의(以信稱義) 242 가룟 유다와 베드로 246 부활의 역설 250 역사적 예수와 신화적 예수 255 신의 소유권 논쟁 258 천도무친(天道無親) 260 카인(Cain)과 아벨(Abel) 264 혼비백산(魂飛魄散) 269 현조(玄祖)와 현손(玄孫) 274 유생(幼生)과 학생(學生) 277 순자(荀子)의 기우제 280 4부 행운유수 초무정질(行雲流水 初無定質) 구름은 고향이 없다 286. 근심지목(根深之木) 288 남종화의 산실 운림산방(雲林山房) 292 대도무문(大道無門) 295 하동사후(河東獅吼) 298 전전긍긍(戰戰兢兢) 301 한국 고문서의 이해 305 가타하리나 개부치 씨 308 바보새 - 미오기 313 간송의 후예들 317 급시행락(及時行樂) 321 독립군의 의병 정신 324 막걸리와 사랑의 속성 326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329 빈·천·노·사(貧·賤·老·死) 333 실담어(悉曇語) 336 외우(畏友)를 생각하며 338 이광사석(李廣射石) 342 종오소호(從吾所好) 346 화이불치 검이불루(華而不侈 儉而不陋) 351 나비야 청산(靑山) 가자 355 |
박황희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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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이천오백 년 전에 공자는 ‘노장(老莊)’을 이단으로 규정하며, ‘조수불가여동군(鳥獸不可與同群)’이라 하였다. 사람은 새와 짐승과 더불어 사는 존재가 아니라 사람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회적 존재라는 말이다. 사회의 유기적 기능은 ‘무위(無爲)’를 통해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유위(有爲)’의 인위적 노력의 결과물로서 성장해 가는 것이다. 나는 동서양의 어떤 종교적 사상이나 철학적 사변이든지 간에 ‘빵의 문제’와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관념 철학이나 메타포적 상상력으로 빚어낸 레토릭을 단호히 거부한다.
--- p.33 누군가 “심심한 사과를 표한다”라고 하니 무슨 사과를 그따위로 하느냐며, 요즘 학생들은 조소의 의미로 이해하고 있었다. 한자를 배우지 않은 학생 입장에서는 ‘심심하다’라고 하는 말이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는 의미로 느꼈을 것이니, 진정성 있는 사죄의 표현으로 받아들일 리가 만무하다. 그러나 한자어의 심심(甚深)이란 앞의 ‘심(甚)’은 ‘매우’, ‘몹시’라는 부사이고 뒤의 ‘심(深)’은 ‘깊다’라는 형용사이다.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는 의미이다. 한자도 역사도 배우지 않는 시대에 누구를 탓하겠는가? --- pp.37~38 “새는 갇혀 있어도 날 것을 잊지 않고, 말은 매여 있어도 항상 달릴 것을 생각한다”라는 이 두 구절은 내 인생의 결정적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간혹 귀인을 만나 내가 쓴 책을 선물할 때면 종종 이 구절을 초서로 써드리곤 하는데, 이는 나의 초발심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과 상대에게도 그날의 감동을 전하고 싶은 간절함 때문이다. 鳥囚不忘飛 - 조수불망비 馬繫常念馳 - 마계상념치 --- p.82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꽃이 없듯 마지못해 살아있는 꽃은 없다” 아무렇게나 태어난 인생이 없듯 마지못해 살아가는 인생도 없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이 땅 지구에 딱 한 번 초대된 신성 불멸의 존재이다. 하늘의 반짝이는 별과 같이 빛나는 인생으로 살아가야 할 이유가 저마다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신은 공평하다. --- p.86 자고로 때를 놓친 봉황은 닭보다 못한 법이다.[去時鳳凰不如鷄] 고스톱 칠 때 제일 불쌍한 사람이 돈 다 잃고 나서 집에 가지 않고 선수들 뒷전에 앉아 “비 먹어”, “똥 쌍피 먹어” 하고 훈수 두는 인간이다. 행여 개평이나 좀 얻어볼까 하는 철없는 짓거리다. 모자란 철수 씨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지, ‘도리도리’의 인상을 보시오. 개평 주게 생겼나? ‘안철수’의 파란만장한 정치 인생은 ‘새(新) 정치’가 아닌 ‘새(鳥) 정치’를 실현하다 마침내 ‘안[非] 철수’가 아닌 ‘또[又] 철수’로 끝맺고 마는구나. --- p.137 손바닥에 ‘왕’ 자를 새겨 국민을 잠시 속일 수는 있을지 모르나 그 손바닥으로 하늘을 영원히 가릴 수는 없다. 진솔한 사과와 반성만이 목숨을 부지하는 길이다. 아울러 유약한 민주당 ‘생계형 전치인’들에게 권한다. 국정감사장에서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에게 감히”라며 눈을 부라리고 호통을 그 기개는 어디 가고 나라 밖에 있는 대통령에게 ‘이 새끼’ 소리를 듣고도 그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대구(對句) 한마디 못하는가? --- p.134 아직도 문재인 대통령은 잘못이 없고 ‘낙엽 일파’와 민주당만의 잘못이라고 하는 ‘대깨문’들은 여전히 그를 비호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들에게서 박정희를 숭배하는 태극기 부대의 환영이 어른거린다. 참모진은 참모로서의 실무에 대한 책임(responsibility)을 지면 되지만, 대통령은 리더로서 관리책임(accountability)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대한 무한책임을 지는 자리이다. 그들에게 트루먼 대통령의 책상에 놓여있었다는 그 유명한 문구를 상기시켜 주고 싶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 The Buck stops here.” 이제 와 새삼스럽게 책임의 소재를 규명하자는 것이 아니라, 뼈를 깎는 자기반성과 성찰의 모습을 원했던 것이다. --- pp.148~149 우리는 지금 개혁의 완성을 이루어 낼 태평성대의 세종과 같은 리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친일 청산의 원죄가 해결되지 않은 미완의 시대에 한 가닥 개혁의 불씨를 살려낼 희생의 리더십을 원하는 것이다. 청와대를 죽을 자리로 여기겠다는 결기와 함께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한 알의 밀알로 삼아 개혁의 불을 지펴줄 그런 ‘불씨’가 필요하다. 개혁의 완성이 이루어지는 새로운 세상은 자신이 산화한 뒤에 이루어질 다음의 세상이다. 저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권력의 의지는 넘쳐나되 밀알이 되어 죽고자 하는 이가 없으니, 나의 표는 여전히 미완이 되고 말 것이라는 슬픈 예감을 어쩔 수가 없다. 역사는 언제나 이상주의자들의 실패에 의해 발전해 간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p.181 그나저나 죽을 권리가 정말 나에게 있는 것인지 그것이 알고 싶다. 오늘 명동에서 존엄사를 다룬 영화 ‘다 잘된 거야’를 도반들과 함께 관람했다. 존엄사를 두고 “인간의 마지막 권리”라는 주장과 함께 “천명을 거부하는 인간의 욕망이다”라는 의견이 분분하였다. 국가가 허용하는 적정선의 연령을 두고서도 각양의 이론이 교차하였지만, 안락사 문제를 다루었던 인도 영화 ‘청원’의 명대사를 말하던 한 도반의 이야기만이 내 가슴에 오래도록 남았다. “용서는 빠르게, 키스는 천천히, 사랑은 진실하게, 웃음은 크게, 그리고 당신을 웃게 한 어떤 것도 후회하지 마시길.” --- pp.202~203 극락왕생이 불교의 궁극적 목표가 아니듯 기독교 신앙의 본령도 ‘사후세계의 구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의 삶의 변화와 거듭남”, 즉, ‘중생(重生)’이 궁극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 아무리 믿고 싶어도 바울의 기독론에 심각한 회의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바울이 이단인지 삼단인지는 전혀 관심이 없다. 분명한 것은 자신의 말처럼 한때 예수를 핍박했던 사람이었으며 그 역시 ‘오욕칠정’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불완전한 인간이었다는 사실뿐이다. --- p.237 ‘예수가 스스로 부활’한 것인지, ‘하느님이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것’인지 나는 그 심오한 내막을 알 수 없다. 그러나 하느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기 위해 살리신 것이 진정으로 맞는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억울한 자들의 부활’이 우선되어야 한다. 기아와 질병으로 죽은 아프리카의 어린아이들,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로 죽은 영혼들 그리고 공동체의 대의를 위해 죽은 열사들, 이 모든 억울한 이들의 죽음에 대한 구원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는 부자와 권력자의 편에 서지 아니하고 언제나 억울하고 소외된 자들의 위로와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죽음 앞에 ‘역사적 예수’를 믿었네, 안 믿었네 하는 것은 신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 p.257 사랑은 자기애의 다른 표현이다. 어떤 사랑도 자신을 비워내고 온전히 상대를 위하여 희생할 수 있는 사랑이란 없다. 사랑은 내 욕망의 공허를 채우는 완벽한 수단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사랑은 완전할 수 없다. 세상에 영원한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영원토록 사랑을 하고 싶을 뿐이다. 사랑을 많이 할수록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랑을 하지 않는 것보다 사랑을 하는 쪽이 훨씬 더 삶을 성숙하게 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언제나 사랑에 진심이어야 한다. --- pp.327~3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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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속 지혜와 현대인의 삶을 잇는 새로운 시각!
『을야의 고전 여행』은 고전의 지혜를 통해 현대인의 삶에 새로운 영감을 제공한다. 고전적 사상과 현대적 통찰을 결합하여 독자들에게 깊은 성찰과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는 “인생의 때는 한 번뿐이다. 인생은 연습이 용납될 수 없는 단회적 시간이다”라는 사상으로 인생의 소중함을 강조하며, 인생의 목적과 가치는 각자가 선택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인생이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닌 “경험해야 할 신비”의 세계라는 점이다. 저자는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단지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주체가 되어 삶을 경험하고자 함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기에, 현대에도 고전은 여전히 중요한 지침이 된다고 한다. 그는 세상을 ‘시지푸스의 바위’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은 억압적인 상징으로 보지 않으며, 오히려 개인의 노력과 실천으로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고전은 타인을 비판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내비게이션이라고 설명한다. 1.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인위적 노력의 가치 저자는 공자의 가르침을 인용하며 인간이 사회적 존재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한다. 공자는 ‘노장(老莊)’을 이단으로 규정하며 ‘조수불가여동군(鳥獸不可與同群)’이라 하여, 인간이 사회적 존재로서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사회의 유기적 기능이 ‘무위(無爲)’가 아닌, 부단한 ‘유위(有爲)’의 인위적 노력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며, 동서양의 종교적 사상이나 철학적 관념이 ‘빵의 문제’와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담지 않은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보인다. 2. 언어와 교육의 중요성 저자는 현대 사회에서 한자 교육의 부재로 생긴 언어적 오해와 문해력 저하 문제를 지적한다. ‘심심한 사과’를 단순히 지루한 사과로 이해하는 학생들의 사례를 들어, 한자를 배우지 않은 이들의 언어적 혼란을 설명한다. 한자어 ‘심심(甚深)’의 의미가 “매우 깊고 간절한” 것임을 강조하며, 한자와 역사를 배우지 않는 시대의 문제를 언급한다. 이러한 언어적 오해는 현대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의 문해력 저하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3. 삶의 방향성과 개인의 사명 저자는 “새는 갇혀 있어도 날 것을 잊지 않고, 말은 매여 있어도 항상 달릴 것을 생각한다.”라는 구절을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삼았다고 고백한다. 이 구절은 저자에게 초심을 되새기게 하는 중요한 문장으로, 종종 귀인들에게 책을 선물할 때 초서로 적어 전달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감동과 깨달음을 전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표현한다. 4.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삶 저자는 더 이상 과거에 연연하지 않기로 결심하며, 인생을 여행에 비유한다. 바다에 고향이 없고, 둥지를 떠난 새가 뒤돌아보지 않듯이, 인생은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낙타가 우물을 떠나 사막을 횡단하듯, 나그네가 가야 할 길이 남아있을 때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5. 인생의 고귀함과 신성한 존재로서의 인간 또한 저자는 인생의 고귀함을 강조하며,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꽃이 없듯 마지못해 살아있는 꽃은 없다”며 삶의 의미를 되새긴다. 그는 우리가 이 땅에 단 한 번 초대된 신성 불멸의 존재라는 점을 강조하며,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인생을 살아가야 할 이유가 저마다 있다고 주장한다. 이 세상에서 모든 존재는 공평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6. 정치와 리더십에 대한 비판적 성찰 저자는 대한민국의 정치적 현실을 비판적으로 조명하며, 리더십의 책임을 강조한다. 그는 여전히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호하는 ‘대깨문’들을 태극기 부대에 비유하며, 대통령이란 자리는 참모진의 실무적 책임을 넘어선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라고 지적한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라는 트루먼 대통령의 유명한 문구를 인용하며, 정치 지도자들이 뼈를 깎는 자기반성과 성찰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이러니칼하게도 윤석열 대통령 집무실에도 미국 바이든으로부터 선물 받은 이 명패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또한, 저자는 한국의 국제적 위치와 자주국방 문제를 언급하며, 강대국들 사이에서의 자주적 생존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강조한다. 특히 전시작전권이 없는 현실을 비판하며, 외세에 의존하는 현재의 안보 정책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다. 저자는 정치 지도자들이 국가와 국민을 도박판의 판돈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며, 진정한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다. 7. 신앙과 종교에 대한 비판 저자는 종교적 신앙의 편협함과 교조주의적 태도를 강하게 비판한다. 배타적 신앙이 타인의 신앙과 해석을 이단으로 규정하는 것이 얼마나 비성서적이고 비신학적인지를 지적하며, 신앙은 사랑과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신의 이름조차 창씨개명하는 이들이 자신과 다른 신앙을 이단으로 치부하는 태도를 비판하며, 오랜 시간 보수 교단에서 교육받아온 세뇌 후유증의 문제점을 강조한다. 8. 인생과 사랑에 대한 성찰 저자는 인생과 사랑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인간의 삶과 사랑이 얼마나 불완전한지 논의한다. 그는 사랑이란 욕망의 공허를 채우는 수단에 불과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진심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랑은 인간을 성숙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며, 비록 완전한 사랑은 없더라도, 사랑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9. 책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 『을야의 고전 여행』은 현대 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문제들을 고전의 지혜와 현대적 통찰을 통해 분석하며, 독자들에게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자신의 삶과 신앙을 다시금 되돌아보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변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을야의 고전 여행』을 통해 고전과 현대의 경계를 넘나들며, 깊이 있는 삶의 통찰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고전에 대한 이해를 돕는 동시에, 현대인의 삶에 실질적인 지침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