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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숲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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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 1

1939년 대구 출생 1959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수료 1981년 『허생의 살구나무』를 냄 1983년 대구문학상 수상 1998년 《현대문학》 등단 『떠리미』 『날은 저물고』 『헛간』 『보리곡식을 걷을 때의 슬픔』 『복개천』 『초가삼간 오막살이』 등 18권의 시집과 시 선집 『그리운 집이여』, 시·산문집 『석남사 도토리』, 동시 선집 『눈물 많은 동화』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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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9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275쪽 | 125*200*20mm
ISBN13
9791189847890

책 속으로

마루 끝에 어린애를 데리고 앉아
밥을 퍼먹고 있는 누이를 보고
문득 끝없이 너른 들을 가는
화차가 생각키우는 것은 웬일인가
---「근친」 중에서

모르겠다
사람을 보면
왜 눈물이 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모르겠다
사람을 보면
왜 눈물이 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사람을 보면 왜 눈물이 나는지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꾀 안 부리고 일 잘한다고
벙어리 혼자 산골 묵정밭을 종일 매게 했더니
해거름 논둑길에 날 만나 반갑다고
아바바 아바바

황토 묻은 이마에 지는 붉은 해그늘
여윈 등허리 빈 지게에 진달래 한 묶음
묶여 있다

이 벙어리에게 하루 동안 지나간
골짝 바람 소리나 귀먹은 바위나
바위 밑 산두꺼비 우는 소리나
아니면 산이 벗해주지 않아서 돌아온다는 얘긴지
산을 돌아보고 나를 돌아보고
아바바 아바바

그가 논둑길을 따라
마을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나는 문득 내 소원을 그에게 말 못 하고 만 것을
평생 후회하며 살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산」 중에서

아버님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해거름에 찾아와 보는
아버님 산소

두 번 절하고 성냥을 켜니
건너 큰 산골짝이 화안했다
어두워진다
---「산」 중에서

대문을 열자
아내는 이미 다 내린 어둠 속에
서 있었다

어디 갔다 왔어예

뭣 하러 묻나
종일 타향 강가에 앉아
해지는 것 보고 왔다

혼자 갔다 왔어예

그래 혼자서
백로 앉은 나락밭에
흰 구름 가는 것 보고 왔다

경운기 소리 끝난 들 끝
먼 솔숲 속에 불 켜이는 것 보고 왔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자꾸 말했다
흰 모래 언덕에 밤 드는 것 보고 왔다
아무도 없는 흰 모래 언덕에
밤 드는 것 보고 왔다
---「밤 드는 것」 중에서

하느님, 저 참새 보세요
대문 위 전신주에 혼자 앉아
비를 맞고 있습니다

집 아이가 창문을 열어도 날아가지 않고
닫아도 날아가지 않습니다
테레비를 틀어도 날아가지 않고
사람들이 그 아래를 떠들며 지나가도
고개만 갸우뚱이고 있습니다

까만 빗방울이
하늘 멀리서 내려오는 것이 보입니다
한없니 내려와 땅 하늘 다 젖고
앞 개울물 모여 흘러가는 소리 들립니다

하느님 저 참새 어디 아픈 참새인가 봅니다
아니면 이미 다 늙어 날 힘마저 없어진
참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깃이 다 젖었습니다
참새 발아래로 물방울이 자꾸
맺혀 떨어집니다

하느님 저 참새 보세요
하느님 저 참새 보세요
---「저 참새」 중에서

아가야
짚불이 어떤 불인지 너는 아직 본 적 없지

무서리 하얗게 내린 날 아침
토담 위에 참새 짹짹일 때
소죽 끓이는 부엌에서
하얀 풀 연기 오르며 타던 짚풀

차가워 가던 구들방 차츰 따뜻해지면
소 울고 닭 울고
햇빛 밝은 창호지 문에 허연 김 그늘
구름처럼 오르면
콩깍지 냄새 짚 냄새

아가야 너는 아직 본 적 없지
다 타고난 까만 짚불
부지깽이로 헤치면 다시 뜨거운 속불
발갛게 피어나다 차츰 하얗게 재가 되어
사그라지는 물

뒤뜰 감나무에 앉은 까치가
깍깍 울면
너 온다고 기다리던 외할아버지댁
작은 초가집

하루해가 슬며시 다 가고
산골 저녁이 조용해지면
다시 집마다 연기 나고
토담 넘어 골목길로
하얗게 내리던 연기

아가야
소죽 끓이는 부엌 앞에 맨발로
앉아계시던 외할아버지
짚불 사그라지듯
언제 세상 떠나셨는지 너는 모르지

아가야
짚불이 어떤 불인지 너는 모르지

---「짚불」 중에서

출판사 리뷰

“시 쓰는 내가 시인인 줄 몰랐”다는 이문길 시인의 자선 시선집. 지금껏 열일곱 권의 시집을 낸 바 있는 시인의 진솔한 자선이다. 이어 시인은 “내가 시를 쓰지 않았다면 나는 살 수 없었다는 것을” 시를 골라내면서 “이번에 알았다”고 고백한다.

편집자에게 전화기 너머 반농담 반진담으로 전한 말 “내 시 독자가 한 스무 명쯤 되는 것 같아. 그 사람들 가운데 두어 명이 내 시를 읽고 울었다는데 내가 시를 안 쓸 수 있어야지”

시인의 시집에는 어떤 장식도 하지 못하게 하는 시인의 엄결함이 있다. 그냥 그대로일 것. 그냥 두어서 눈물에 잠길 것. 아주 깊지는 않게, 하지만 얕게는 아니게 가라앉아 머물되 허우적거리지는 않을 것. 그대로 시인 듯 시 아닌 듯 스밀 것. 나아가 사람도 아닌 듯. 그저 슬픔인 듯. 이게 아마 시인이 품고자 하는 마음일 듯하다. 보통의 시선집이라면 시인의 연보쯤은 들어갈 터인데 시인은 이마저 거부하고 있다.

시린 새벽 옹달샘의 샘물을 떠내면서 미동의 물결도 내보이기를 꺼려하는 마음이 단단하게 풀어져 있다. 골라낸 시의 제목들도 어쩜 모두 하나같이 “돌, 강, 사람, 폭포, 개구리, 엄마, 하늘, 산, 겨울, 뻐꾸기, 바람, 장마, 별, 바다, 달밤, 도깨비” 같은 것들이다. 이토록 도저한 미니멀리즘이 있을까.

시인의 시 「시의 본질」에 지극하게 새겨놓은 적막함. 이문길 시인은 삶도 시도 적막하다. 그의 시를 읽는 우리는 스스로 몸과 마음을 자꾸 낮추어 바닥에 닿고만 싶어지고 자주 부끄러워진다. 울고 울다 울다 보면 적막에 가닿을까. 시집을 갈무리하는 마음 또한 적막하기 이를 데 없다.

시인의 말

그리운 집이여,
기쁨에 넘쳐
가슴 설레며 돌아가누나

때가 되어 70년 전부터 쓰기 시작한 시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베르디의 교향곡 ‘그리운 집의 노래’가
나도 모르게 가슴 속에서 흘러나왔다.

사실 나는 그동안 시집을 내면서도
한 번도 다 읽어본 적이 없다.
시쓰는 내가 시인인 줄 몰랐다.
그러나 이번에 알았다.
내가 시를 쓰지 않았다면 나는 살 수 없었다는 것을.

무슨 말을 자꾸 하랴.
나를 사랑한 분들에게 좋은 시 못 쓴 것이 미안할 뿐이다.

2024년 5월
이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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