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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숲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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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시인의 말



구름 1 길 낙엽
하늘나라 구름 2 바다
싫은날 아닌가 거짓말
해 청산 겨울
홍게 타향 모자
하늘 1 불쌍한 것



흐릿해야 장마 1 구름 3
헛것 장마 2 도토리
아기 아내의 옷 산새 1
물까치 개 밥그릇 철탑
잠 아침 오래 산다는 것은
봄 예술이란 헤르만 헤세
누고 산에 모여



가을 밤중 떡 후회
웃풍 눈 노래 봄
길 까마귀 불쌍한 사람들
우시장 산 산돌
노잣돈도 없이 세한도 어제 저녁답
초파리 죽을 때는 눈을 뜨고 한숨



밤 슬픈 구석 나무 거기
금강산 그림자 서너 번
산새 2 탯줄 하늘 2
알 수가 성묘 이야기 팔공산
낙산사 눈 여인
인왕산 사람 없는 길

저자 소개 1

1939년 대구 출생 1959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수료 1981년 『허생의 살구나무』를 냄 1983년 대구문학상 수상 1998년 《현대문학》 등단 『떠리미』 『날은 저물고』 『헛간』 『보리곡식을 걷을 때의 슬픔』 『복개천』 『초가삼간 오막살이』 등 18권의 시집과 시 선집 『그리운 집이여』, 시·산문집 『석남사 도토리』, 동시 선집 『눈물 많은 동화』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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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6월 06일
쪽수, 무게, 크기
120쪽 | 125*200*20mm
ISBN13
9791194632047

책 속으로

오늘도 하늘을 보고 묻는다
이제 어디 가면 됩니까

하늘이 보지도 않고
말한다

하늘에는 갈 데가 없다
--- 「하늘 1」 중에서

바람 불고 비 오는 저녁답
낯선 산새 한 마리
창문 밖 실외기에 앉아 있다

세상 가는 길
잃은 것 같은 새
문 열어 화분 나무에 쉬게 하고 싶지만

혹시 길 없는 곳으로 날아갈까 싶어
그냥 두고 본다

언젠가 하루 밝을 것이 다 밝으면
없어지는 세상
나는 산이 다 어두워질 때까지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산새도 산이 다 어두워질 때까지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 「장마 2」 중에서

소아과 병동에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보니
조그마한 예쁜 여자 아기 하나가
아버지 가슴에 안겨 있었다

내가 아이고 예뻐라 하고 들여다보니
부끄럽다고 아버지 품속에 파고들어 나를 바라본다

내가 다시 아이고 예뻐라 하곤 들여다보니
아버지 등 뒤 겨드랑이에 파고들어 나를 바라본다

내가 심술궂게 아버지 등 뒤로 돌아가
아이고 예뻐라 하니 엘리베이터에 탄 사람
모두가 웃었다

그날 나는 종일 감사했다
세상에 사는 것이 즐거웠다
--- 「아기」 중에서

헌 농짝 구석에
아내의 윗옷 하나가 있다

색 바랜
고동색 잠바다

한겨울 털모자 씌우고
휠체어에 태워
아파트를 돌며 입던 아내의 옷

아내가 잊어버리고 가서 그런가
농짝 구석에서
세월이 갈수록 작아지는
아내의 옷
--- 「아내의 옷」 중에서

이문길 시를
읽으면

헌 고무신 주고
엿 바꿔 먹는 것
같다

우리 집 암소
영천장에 팔려
가는 것 같다

나도 그런 시를
쓰고 싶은데
이문길 시인이 다
써 버렸다

〈해울음〉하며
〈개 밥그릇〉
그것은 꼭 내가 써야 하는데

-장마철
개밥 빈 그릇에
낙숫물 소리

*화가 성기열 선생님 작시
--- 「개 밥그릇」 중에서

내 잘못하여 잠 안 오는 일
무엇 있는가
밤중에 집밖에 나와
하늘 앞에 서 있다

땅이 어두워질수록 하늘이 밝아지는
가을 밤중에

울고도 다 못 울어 깜박이는 별
안 떨어지고 남아있는
낙엽 있는가 귀를 기울인다

땅이 어두워질수록
하늘이 밝아지는 가을 밤중에

--- 「가을 밤중」 중에서

출판사 리뷰

“시의 최후, 존재의 바닥을 비추는 언어 - 이문길 『구름』론”

이문길의 시는 문학이 품을 수 있는 가장 낮고 오래된 진실에 닿아 있다. 『구름』은 삶의 겉모습이나 현상보다, 그 밑바닥에 오래 침잠해 있던 감정, 생의 실감, 그리고 ‘존재의 무게’를 응시한다. 그는 감정을 쏟기보다는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사물을 시화한다. 그 들여다보는 시선은 다정하지 않으나 결코 차갑지 않으며, 잊힌 것들에 대한 깊은 연민을 품고 있다.

『구름』의 시편들은 대부분 서사와 묘사의 경계를 걸으며 독백처럼 흐른다. 화자는 흔히 늙은 몸, 홀로 남은 자, 이승에 남겨진 생명체, 또는 사라진 누군가로 등장한다. 그는 구체적인 장소(팔공산, 봉선사, 주문진), 사물(개밥그릇, 초파리, 고동색 잠바), 순간(저녁답, 첫눈, 밤중) 속에서 무엇이든 ‘존재한다는 것’의 조건과 고통을 질문한다.

흥미롭게도 이 시집은 세련되거나 새로운 형식에 매이지 않는다. 이문길은 시를 기술이나 장르로 보지 않는다. 그에게 시란 살아낸 자의 고백이며, 애도와 고독의 도구다. 『구름』은 죽음과 결핍을 말하지만 동시에 그 결핍을 견뎌낸 존재들에 대한 고요한 찬가다.

이 시집에서 죽음은 결코 무거운 주제가 아니다. 오히려 시인은 죽음을 이미 일상 안으로 불러들인다. 죽음은 “눈 뜨고 바라보아야 할 것”, “노잣돈 없이 떠나가는 일”, “풀숲에 던져주는 산새”, “머리 없는 까치”로 등장한다. 그것들은 모두 과장되지 않고, 거룩하지 않으며, 인간의 눈높이에서 -구름처럼- 흘러가고 있다.

『구름』은 노시인이 쓴 회고록 같은 시집이 아니다. 오히려 말년의 시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진실성의 정점에 있다. 이것은 시가 어떻게 삶을 끝까지 담보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조용한 증거이며, 시의 존재론적 깊이에 대한 한 작가의 마지막 응답이다.

시인의 말

이제 시를 그만 쓰려고 한다.
왜냐하면 써야 할 것을
다 써버렸기 때문이다.

내 마지막 명시는
아내를 산에 두고 돌아오며 쓴 시다.



내 없이도 혼자 있겠나
돌아서 다시 묻는다
내 없이도 혼자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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