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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마흔이면 뭐라도 될 줄 알았다는 착각 1부 그동안 춤춘 시간은 다 무엇이었을까? 01 무용, 이제 못해먹겠다 02 삶의 낙오자들이 춤추는 곳, 타슈켄트 03 투명한 가림막 04 타인의 무대와 나의 무대 2부 다채로운 2인무 01 나는 왜 뿌리치지 못했을까? 02 레기스탄, 눈앞에 생생하게 피어오른 신기루 03 Hello stranger, 낯선 그와 봄날의 춤 04 그렁그렁 차오르는 눈물 3부 72%의 자유 01 봄내음을 싣고 온 사막 바람 02 숨막힐 듯 차오른 고독의 감탄 03 두려움을 뚫고 나온 작은 믿음 4부 이어진 찰나의 순간 01 두터운 그의 시간을 대면하다 02 존재의 중심을 곧추세우고 03 뒤엉킨 시공간을 흔들며 04 자유를 찾는 나와 자유로운 나 05 몸의 감각이 알려주는 대로 5부 깊은 눈매를 가진 사람 01 예외적 시간을 닫으며 02 무용은 왜 나를 선택했을까 03 내가 살 길, 내가 사랑하는 길 04 움직여야 나는 산다 나가는 글 내 몸의 진동과 울림을 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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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마흔 살. 눈을 떠보니 나는 무용만 하고 마흔이 되어 있었다. 무용에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죽어라 배우고 춤추던 무용수 시절을 지나 무용 선생의 일을 착실하게 해왔다. 입신양명을 위해 무용을 했던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진실하게 내 길을 묵묵히 가고, 충실하게 내 길을 파면 마흔 즈음에는 어느 정도 저명한 무용가가 되어있을 줄 알았다. 결과와 보상이란 것이 자연스럽게 뒤따라올 줄 알았다. 이름도 생기고,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고,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마흔이 되어있으리라 믿었다. 뭐라도 남을 줄 알았고, 뭐라도 이룰 줄 알았다.
--- p.12 흙탕물 같은 소요와 꽉 막힌 답답함을 견딜 수가 없었다. 내 살길, 숨구멍을 찾아 나서야 했다. 훨훨 자유롭게 나는 새처럼, 둥둥 물 위를 부유하는 잎새처럼 나는 내맡기듯 자유롭게 가볍게 표류하고 싶었다. --- p.15 지하철 안에서는 프랑스 도시 툴루즈의 냄새가 났다. 그 냄새의 기억은 순식간에 나를 자유분방함으로, 태양이 쏟아지는 무한한 세계로 소환하여 주었다. 프랑스 툴루즈에 살던 그는 북아프리카 튀니지 출신의 동료 무용수였다. 우리는 작업을 함께 하며 꽤 많이 친해졌는데, 그의 방안에서 늘 흘러나오던 음악은 움켜쥘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그의 본연처럼, 그만의 다채롭고도 고유한 감성과 예술적 영감을 드러내주는 어떤 손짓이었다, 갓 구운 신선한 빵오쇼콜라를 팔던 그의 집 앞 빵집, 하루 종일 음악을 듣고 춤을 추고 삶을 이야기했던 그 친구와의 시간들… 그의 정련되지 않은 자유로움, 거칠고 야성적인 춤 스타일. 은둔자 혹은 반항아같이 자유분방하고 신비스러운 그의 분위기를 좋아했다.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가 졌다. 현재로 다시 돌아온 내 눈앞에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거나 무심히 바깥을 바라보는 이곳 사람들이 있었다. --- p.42 설레는 이른 아침, 타슈켄트 북역에서 사마르칸트 행 열차를 기다리는 중이다. 기차역 특유의 분주하고 들뜬 에너지가 공중에서 진동하고, 기분 좋은 백색소음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아직은 쌀쌀한 아침, 입김이 살짝 나온다. 출발과 도착을 알리는 글자들이 전광판 화면에서 깜빡댄다. --- p.58 낮고 자그마한 집과 건물들이 가지런히 늘어선 황토색 사막도시 사마르칸트. 차창을 스쳐지나가는 이국적 배경을 바탕으로, 너무도 진한 얼굴을 한 우즈벡 기사님이 본인의 한국 경험담을 침까지 튀기시며, 한국적 정서와 문화가 흠씬 배어나오는 한국말로 늘어놓는 이 장면이 매우 모순적이면서 오묘했다. 대체 여기가 어디란 말인가. 한국보다는 약간 더 뜨거운 태양, 손바닥이 퍼석거리는 쌀쌀하고 건조한 날씨. 낯선 곳을 찾아오느라 긴장했던 몸은 아저씨의 한국말 앞에 뭉근하게 풀어지고 있었다. 알싸한 취기 같은 노곤함이 밀려들었다. --- p.62 바닥에서부터 꼭대기까지 첨탑의 살결을 따라 올려다보았다. 첨탑에서 흘러나온 진한 황금빛이 주변을 온통 물들이고 있었다. 내 몸과 정신의 바탕이 완전히 비워지는 동시에 꽉 채워지는 것 같았다. 깊은 물속에 들어와 있었다. 사방은 온통 정적과 고요였다. 나는 헤아릴 수 없이 고독했다. 헤아릴 수 없이, 충만했다. --- p.122 에미르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랫가락을 흥얼대더니 급기야 튀르키예의 전통 춤사위를 선보인다. 마치 한 마리의 거대한 독수리가 양 날개를 쫙 펼치고는 느긋하고 여유롭게 노니는 것 같다. 모든 전쟁을 치르고 난 승자의 당당하고 기품 있는 기세가 느껴지는 춤이랄까. 정수리부터 꼬리뼈까지 반듯이 펴진 척추와 판판하게 벌어진 견갑골. --- p.1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