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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폭발해버릴 것 같은 머리를 흔들며 호텔방의 창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로터리에서 방사형으로 뻗은 도로는 아름다운 가로수들로 즐비하지만, 그 곁으로는 매일 여기저기에서 높은 빌딩들이 세워지고 있다. 아시아의 유구한 전통과 서양의 새로운 물결이 혼재하는, 엄청난 경제성장률과 자유분방한 기업 정신을 지닌 이 도시는, 민족영웅 호치민의 묘가 있는 북부의 하노이와 곧잘 대비되곤 한다. 최근 한 공산주의 지도자는 호치민 시를, 당의 통치를 전복하려는 적국들의 소굴이라고까지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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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2세인 이 소설의 주인공 이효신은 별다른 직업 없이 부친의 재산으로 하루하루를 방탕하게 살아간다. 그는 구조조정의 바람으로 아버지 기업의 불법상속 문제가 대두되자 베트남으로 도피하여 체류중이다. 그의 주변에는 재벌들간의 이해관계로 결혼이 약속된 한국의 약혼녀 G와 그로 하여금 마약과 변태적인 섹스에 빠져들게 만든 베트남 여자 T, 그리고 마약중개업자인 스티브가 있다. T와 스티브는 효신이 뉴욕에 있을 때 알게 된 인물들이다. 베트남에서 다시 T와 재회를 하게 된 효신은 그녀와 함께 온갖 변태적인 섹스에 탐닉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효신은 뉴욕에 머물던 시절 바퀴벌레와 불개미들로 우글거리던 T의 아파트에서 보았던 푸른색의 향로가 바로 T가 섬기는 카(Ka)라는 이름의 악령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효신에게 마약을 주사하게 하고 둘의 팔뚝을 예리한 면도칼로 긋고는 그 피를 주석잔에 받아 마시게 하는 등 카를 섬기는 예배의식을 치르도록 강요한다. 이미 악령의 사과를 깊게 베어물고 만 효신은 점점 더 깊이 그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T와의 난잡한 생활이 절정에 이를 무렵, 효신이 뉴욕에 있는 동안 마약과 창녀들을 제공해주곤 했던 스티브는 T가 위험한 인물임을 경고하면서 효신에게 한국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한다. 효신은 그가 내민 서울행 비행기표를 받아 쥐고 고민한 끝에 결국 한국에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귀국 당일 그 사실을 알린 적이 없는데도 T가 공항에 나와 있었고, 그녀는 그에게 잠시만 돌아갈 시간을 늦춰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따라간 T의 연구실에서 그는 T에게 무참히 살해되어 토막난 채 검은색 비닐 봉지에 담긴 스티브의 시신을 보게 된다. T는 칼을 휘둘러 효신을 죽이려 했지만 그는 용케 피하고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권총으로 T를 살해한다. 몇 분 후 그녀의 차를 타고 그곳을 빠져나온 효신은 T의 권총을 집어들고 충혈된 눈으로 구름 낀 하늘을 올려다본다. 비가 올 듯하면서 오지 않는 구름 낀 베트남의 하늘 아래에서 그는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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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갈자리에서 생긴 일』은 얼마 전 창작집 『달의 뒤편으로 가는 자전거 여행』과 장편 『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을 한꺼번에 펴내며 문단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던 젊은 작가 이응준의 신작소설이다. 시적인 감수성과 서정적인 문체로 김승옥, 윤후명, 윤대녕과 같은 선배작가의 계보를 잇고 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는 그가 이번에는 좀더 어두운 필치로 자신의 종전 작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소설을 써내었다. 하지만 이 소설 역시 낭만적 상상력에 근거하여 환멸의 낭만주의로 나아갔던 그의 기존 작품과 마찬가지로 외로움, 부재, 죽음으로부터 촉발된 쓸쓸한 상황을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동경으로써 돌파해 나가려는 작가 특유의 주제의식을 엿볼 수 있다.
평론가 김미현이 이 작품을 일컬어 “이상한 제의(祭儀)를 치르는 소설”이라고 했듯이, 이 작품에는 주인공을 파멸로 치닫게 만드는 ‘카(Ka)’라는 이름의 우상이 등장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그저 평범한 푸른 향로일 뿐이다. 여기에서 기껏해야 쇠붙이에 지나지 않는 그것에 ‘카’라는 이름을 붙이고 우상으로 만든 것은 목숨없는 ‘카’ 자신이 아니라 그것을 숭배하고자 하는 ‘T’라는 인간이다. 김미현은 이것을 인간이 그 나약함으로 인해 도망가는 곳, 즉 인간의 고독한 실존이 만들어낸 어둠이며 욕망의 그늘, 내부의 적 같은 것들이라고 말한다. 베트남을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간군상들은 모두 이 시대가 낳은 소외된 이방인을 대표한다. 퇴락한 재벌 2세로 마약과 섹스에 찌들대로 찌들어버린 주인공 효신, 정신병자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광기로 인해 악령을 섬기는 T, 결혼을 앞둔 친구의 애인과 동침하는 그의 약혼녀 G, 마약과 매춘의 중개업자 노릇을 하며 사람들의 방탕한 생활을 도와주고 있는 스티브. 이들은 모두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조차 모르는 채로 일탈적이고 파괴적인 삶의 충동에 스스로를 내맡기면서 불가항력적인 어둠의 세계로 질주해간다. 그나마 효신이 태어나서 처음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었던 행위라고는 오직 베트남의 우중충한 하늘을 충혈된 눈으로 바라보다 자신의 목구멍에 총구를 집어넣어 더러운 삶을 마감한 것뿐이다. “그는 사는 게 너무 무료했고, 여태 무엇에 고통받아왔던가를 알지 못했다. 그는 과연 이것을 인생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주저하고 있었다.” “그는 핸들 앞으로 손을 뻗어, 황금빛 탄환이 단 한 발 장전되어 있는 T의 권총을 집어들었다. 그의 삶은 정확히 20초가 남아 있었다.”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태어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지만 적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의도한 대로 살아가려고 애쓴다. 그러나 작가는 그것마저도 위선이라 조롱한다. 그래서 무엇이 바뀌었는가? 인간은 나약하지만 그 나약한 것을 참지 못하기에 위선적이다. 또한 이 작품에서 T가 섬겼고 그들 모두를 죽음으로 몰고 가게 만들었던 우상 카(Ka)는 그저 물질이었지만 자신의 나약함을 견디지 못한 인간에 의해서 가공할 악마로 창조된다. 작가는 김미현과의 대담에서 “어떤 존재들이 균형을 잃고 어두운 곳으로 완전히 기울어졌을 때, 그것은 곧 ‘카’가 된다. 애초부터 푸른 향로는 푸른 향로였고, 큰 칼은 큰 칼이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결국 카(Ka)는 이 세계의 일체의 부조리와 욕망, 그리고 폭력성의 상징인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모든 사건과 각각의 인물들의 행위 등을 그저 있는 그대로 보아주길 바란다. 부조리를 조리로써 설명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것은 그 자체로 모순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