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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보 교감완역 난중일기
양장
도서출판여해 2014.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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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역자서문
해제
일러두기
교감완역 난중일기
임진년(1592)
계사년(1593)
갑오년(1594)
을미년(1595)
병신년(1596)
정유년(1597)Ⅰ
정유년(1597)Ⅱ
무술년(1598)
부록
이순신의 명량대첩
1. 정유재란의 시련
2. 백의종군의 여정
3. 명량해전의 승리
참고문헌
충무공 이순신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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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2

李舜臣, 본관 : 덕수(德水), 자 : 여해(汝諧), 시호 : 충무(忠武)

이순신(1545-1598)은 1643년(인조21년) 3월 '충무(忠武)'란 시호가 내려진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그의 본관이 덕수德水이며 서울 건천동(을지로 4가와 충무로 4가 사이), 넉넉하지 못한 양반가에서 태어나 22세 때 처음으로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1576년 32세에 무과 시험에 합격하여,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 훈련원 봉사, 충청병사 군관, 발포 수군만호, 함경도 건원보 권관 등 주로 함경도 등지에서 관직 생활을 했다. 1589년 한때 정읍 현감이 되어 지방관 생활을 했으며 임진왜란 직전에 당시 재상 유성룡의 천거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임명되어 48세때
이순신(1545-1598)은 1643년(인조21년) 3월 '충무(忠武)'란 시호가 내려진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그의 본관이 덕수德水이며 서울 건천동(을지로 4가와 충무로 4가 사이), 넉넉하지 못한 양반가에서 태어나 22세 때 처음으로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1576년 32세에 무과 시험에 합격하여,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 훈련원 봉사, 충청병사 군관, 발포 수군만호, 함경도 건원보 권관 등 주로 함경도 등지에서 관직 생활을 했다. 1589년 한때 정읍 현감이 되어 지방관 생활을 했으며 임진왜란 직전에 당시 재상 유성룡의 천거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임명되어 48세때 임진왜란에서의 활약으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중요한 해전을 치루며 왜선 320척을 격파했다. 49세 때 그는 한산도로 진을 옮겨 삼도 수군통제사가 되었으나 53세 때 원균 일파의 모함과 상소로 서울로 압송되어 투옥되던 중 우의정 정탁의 변호로 출옥하게 되었다.

정유재란이 발발하여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대패하자 삼도 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되어 남은 12척의 배와 120명의 군사로 130여척의 왜선과 맞서 싸웠고(명량대첩), 54세 때 명의 수군과 연합해 왜선 500여척과 싸우다 노량해전에서 11월 19일 새벽에 전사하였다. 6년 후 선무공신 1등에 녹훈되었고, 덕풍부원군에 추봉됨에 이어 좌의정에 추증되었으며, 15년 뒤에는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충무(忠武)'란 시호가 내려져 역사에 충무공 이순신이라는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영원히 기억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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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우고 초서와 『주역』을 연구했다.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난중일기의 교감학적 검토』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균관 한림원 교수와 순천향대 교양학부 및 이순신연구소 교수를 역임하였다. 2013년 유네시코 세계기록유산에 난중일기 등재 시 자문위원을 맡았다. 현재는 동국대 여해연구소 학술위원장과 문화재청 현충사 전문위원으로서 이순신을 연구하며 강의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난중일기를 완역하여 『교감완역 난중일기』를 출간했고, 난중일기와 서간첩, 임진장초를 해독한 원문(DB)이 국가기록유산 사이트(문화재청)에 올라있다. 20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우고 초서와 『주역』을 연구했다.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난중일기의 교감학적 검토』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균관 한림원 교수와 순천향대 교양학부 및 이순신연구소 교수를 역임하였다. 2013년 유네시코 세계기록유산에 난중일기 등재 시 자문위원을 맡았다. 현재는 동국대 여해연구소 학술위원장과 문화재청 현충사 전문위원으로서 이순신을 연구하며 강의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난중일기를 완역하여 『교감완역 난중일기』를 출간했고, 난중일기와 서간첩, 임진장초를 해독한 원문(DB)이 국가기록유산 사이트(문화재청)에 올라있다. 2015년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으로 난중일기가 베트남어로 간행되었다.

주요 역서로는 『쉽게 보는 난중일기』, 『교감완역 난중일기』, 『단양한시선』,『이충무공종가 유물도록』초역, 『충무공사료집성』, 『충무공유사』, 『한국의 차문화 천년』(공역), 『사호집』, 『교서』(현충사) 등이 있다. 저서로는 『이순신의 리더십』(여해), 〈충무공, 최후까지 충성을 다하다〉(교보문고/길위의 인문학)가 있다.

노승석의 다른 상품

저자 : 이순신(李舜臣)
자가 여해(汝諧), 시호가 충무(忠武)이다. 22세에 무예를 배우기 시작하여 10년 만에 식년 무과시험에 합격하였다. 관직생활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빠른 진급을 하였으나 성격이 매우 강직한 나머지 시기와 모함으로 파직과 복직을 거듭했다. 유성룡의 천거로 전라좌수사에 발탁되면서 해상의 임무를 맡고, 전쟁대비를 위해 진영을 점검하고 거북선을 만들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뛰어난 전략으로 옥포해전을 비롯하여 한산대첩을 이루고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왜적의 간계와 원균의 모함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나와 백의종군의 여정에 올랐다. 원균부대가 칠천량해전에서 패하자, 수군재건을 위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복직되고 13척의 배로 왜선 133척을 상대하는 명량대첩을 이뤘다. 1598년 후퇴하는 왜적을 추격하여 격전을 벌인 노량해전에서 끝내 총탄을 맞고 전사하였다. 이순신의 문집 『충무공전서』가 정조 19년(1795)에 간행되었다.
역자 : 노승석(盧承奭)
충남 보령에서 출생하여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우고 초서를 연구했다.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난중일기의 교감학적 검토」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균관 한림원 교수와 순천향대 교양학부 및 이순신연구소 교수를 역임하였다. 2013년 유네시코 세계기록유산에 난중일기 등재 시 자문을 맡았다. 현재는 여해(汝諧) 고전연구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국내 최초로 난중일기를 완역하였고, 난중일기와 서간첩, 임진장초를 해독한 원문(DB)이 국가기록유산 사이트(문화재청)에 올라있다. 2011, 2013년 한국문학번역원에서 교감완역 난중일기가 우수 번역으로 외국어 지원사업에 선정되었다. 주요 역서로는 『식우집』, 『단양한시선』, 『이충무공종가 유물도록』 초역, 『충무공사료집성』, 『충무공유사』, 『청간집』, 『한국의 차문화 천년』(공역), 『사호집』 등이 있다. 저서로는, 「충무공, 최후까지 충성을 다하다」(교보문고/길위의 인문학, 2013), 『이순신의 리더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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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7월 24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575쪽 | 965g | 153*224*34mm
ISBN13
9791195315208

책 속으로

사직(社稷)의 위엄과 영험에 힘입어 겨우 조그마한 공로를 세웠는데, 임금의 총애와 영광이 뛰어넘어서 분에 넘쳤다. 몸이 장수의 자리에 있으면서 공로는 티끌만큼도 보탬이 되지 못했으며, 입으로는 교서를 외고 있으나, 얼굴에는 군사들에 대한 부끄러움만이 있을 뿐이다. -을미년 5월 29일 -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난중일기 전편을 완벽하게 해독한 국내 최초의 완역본.
새로 발굴한 32일치 일기를 수록하고, 홍기문의 최초 한글번역본 반영
이순신의 명량대첩 요인설명

이순신이 전쟁 중에 난중일기를 쓴 것처럼, 전쟁 중에 지휘관이 직접 전쟁에 참전하여 체험한 사실을 기록한 예는 세계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 볼 수가 없다. 그 사료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난중일기』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난중일기』전편은 초서로 작성되어 있어 미상부분이 많았다. 조선 정조(正祖) 19년(1795)에 이 초고본을 정자로 해독하여 『이충무공전서』의 『난중일기』(전서본)가 나오게 되었지만, 그 원문에 상당한 누락과 오독이 있게 되었다. 그후 1935년 조선사편수회에서 이를 다시 해독하여 『난중일기초』가 나왔는데, 이는 전서본보다 진전된 작업이었으나 해독상의 문제점이 완전히 해결되지는 못했다.
2004년 초서를 전공한 노승석 소장이 『난중일기』 9책 전편에 대한 탈초작업을 하였고, 2005년 초고본과 전서본, 『난중일기초』의 원문 교감(校勘)을 통해 백여 곳을 바로잡아 완역을 시도하였다. 2007년 『충무공유사』를 해독하여 난중일기 초록내용이 들어있는 일기초(日記抄)에서 새로운 일기 32일치를 찾아내었다. 이는 지금까지 알려져 왔던 것과는 달리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를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또한 이 일기초의 내용으로 초고본의 문제점을 상당수 해결할 수 있었다. 마침내 2008년 초고본과 이본(異本)의 오류를 종합 검토하고 교감하여 교감완역본을 만들었다.
2013년에는 이순신이 『삼국지연의』를 탐독하고 교훈이 되는 내용을 난중일기에 옮겨 적은 것을 최초로 발굴하였다. 국가는 어려운 때일수록 항상 인재가 필요하고 전쟁에는 국방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 내용이다. 이순신 자신도 이 내용에 공감하여 일기속에 따라 적어 둔 것이다. 또한 벽초(碧初) 홍명희(洪明熹)의 아들 홍기문(洪起文)이 1955년 최초로 한글로 번역한 『난중일기』를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했다. 이는 초고본을 확인하지 않고 활자본을 토대로 번역한 것이므로, 완전한 번역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최초의 번역본으로서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1968년 이은상이 최초로 난중일기를 번역한 것으로 잘못 알려져 왔다.
이제 이러한 새로운 내용들을 반영하여 『증보(增補) 교감완역 난중일기』를 출간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역사적인 내용과 용어 등에 대해서도 새롭게 보완하였다. 후대의 이본들을 모두 망라하여 정리한 점에서 지금까지 나온 난중일기 중 가장 완벽한 번역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부록에는 이순신이 정유재란 이후 수군을 재건하기까지의 과정과 명량대첩의 승리요인을 설명하였다. 일본장수 요시라의 간계로 이순신은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백의종군하는 기간에 모친상을 당하고 장례도 못치르고 출정하게 된다. 권율의 막하에서 칠천량 해전에서 패망한 조선수군을 재건하기 위해 직접 순찰하며 상황을 파악한다. 마침내 명량에서 13척으로 133척의 왜선을 상대하여 격퇴시켰다. 중과부적한 상황에서 지형적 이점을 이용한 신속한 대처로 신화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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