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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서문
해제 일러두기 교감완역 난중일기 임진년(1592) 계사년(1593) 갑오년(1594) 을미년(1595) 병신년(1596) 정유년(1597)Ⅰ 정유년(1597)Ⅱ 무술년(1598) 부록 이순신의 명량대첩 1. 정유재란의 시련 2. 백의종군의 여정 3. 명량해전의 승리 참고문헌 충무공 이순신 연보 찾아보기 |
李舜臣, 본관 : 덕수(德水), 자 : 여해(汝諧), 시호 : 충무(忠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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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社稷)의 위엄과 영험에 힘입어 겨우 조그마한 공로를 세웠는데, 임금의 총애와 영광이 뛰어넘어서 분에 넘쳤다. 몸이 장수의 자리에 있으면서 공로는 티끌만큼도 보탬이 되지 못했으며, 입으로는 교서를 외고 있으나, 얼굴에는 군사들에 대한 부끄러움만이 있을 뿐이다. -을미년 5월 29일 -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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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전편을 완벽하게 해독한 국내 최초의 완역본.
새로 발굴한 32일치 일기를 수록하고, 홍기문의 최초 한글번역본 반영 이순신의 명량대첩 요인설명 이순신이 전쟁 중에 난중일기를 쓴 것처럼, 전쟁 중에 지휘관이 직접 전쟁에 참전하여 체험한 사실을 기록한 예는 세계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 볼 수가 없다. 그 사료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난중일기』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난중일기』전편은 초서로 작성되어 있어 미상부분이 많았다. 조선 정조(正祖) 19년(1795)에 이 초고본을 정자로 해독하여 『이충무공전서』의 『난중일기』(전서본)가 나오게 되었지만, 그 원문에 상당한 누락과 오독이 있게 되었다. 그후 1935년 조선사편수회에서 이를 다시 해독하여 『난중일기초』가 나왔는데, 이는 전서본보다 진전된 작업이었으나 해독상의 문제점이 완전히 해결되지는 못했다. 2004년 초서를 전공한 노승석 소장이 『난중일기』 9책 전편에 대한 탈초작업을 하였고, 2005년 초고본과 전서본, 『난중일기초』의 원문 교감(校勘)을 통해 백여 곳을 바로잡아 완역을 시도하였다. 2007년 『충무공유사』를 해독하여 난중일기 초록내용이 들어있는 일기초(日記抄)에서 새로운 일기 32일치를 찾아내었다. 이는 지금까지 알려져 왔던 것과는 달리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를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또한 이 일기초의 내용으로 초고본의 문제점을 상당수 해결할 수 있었다. 마침내 2008년 초고본과 이본(異本)의 오류를 종합 검토하고 교감하여 교감완역본을 만들었다. 2013년에는 이순신이 『삼국지연의』를 탐독하고 교훈이 되는 내용을 난중일기에 옮겨 적은 것을 최초로 발굴하였다. 국가는 어려운 때일수록 항상 인재가 필요하고 전쟁에는 국방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 내용이다. 이순신 자신도 이 내용에 공감하여 일기속에 따라 적어 둔 것이다. 또한 벽초(碧初) 홍명희(洪明熹)의 아들 홍기문(洪起文)이 1955년 최초로 한글로 번역한 『난중일기』를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했다. 이는 초고본을 확인하지 않고 활자본을 토대로 번역한 것이므로, 완전한 번역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최초의 번역본으로서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1968년 이은상이 최초로 난중일기를 번역한 것으로 잘못 알려져 왔다. 이제 이러한 새로운 내용들을 반영하여 『증보(增補) 교감완역 난중일기』를 출간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역사적인 내용과 용어 등에 대해서도 새롭게 보완하였다. 후대의 이본들을 모두 망라하여 정리한 점에서 지금까지 나온 난중일기 중 가장 완벽한 번역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부록에는 이순신이 정유재란 이후 수군을 재건하기까지의 과정과 명량대첩의 승리요인을 설명하였다. 일본장수 요시라의 간계로 이순신은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백의종군하는 기간에 모친상을 당하고 장례도 못치르고 출정하게 된다. 권율의 막하에서 칠천량 해전에서 패망한 조선수군을 재건하기 위해 직접 순찰하며 상황을 파악한다. 마침내 명량에서 13척으로 133척의 왜선을 상대하여 격퇴시켰다. 중과부적한 상황에서 지형적 이점을 이용한 신속한 대처로 신화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