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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리웡, 그대 이제 어디로 가려는가?
한 나그네가 찾아와 문을 두드린다 우두 골짜기 세상 끝의 정원 |
Gabrielle R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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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의 경우 프리터분한 색조가 고작인 평원보다 돌연 동방의 풍경에 더 가까워진, 엉뚱하다 싶을 만큼 아름다운 이 골짜기는 이처럼 하루가 저물어가는 시각의 해가 쏟아붓는 구릿빛 광선의 물결에 실려 그들의 눈앞에서 불타고 있었다. 엉겅퀴와 닿으면 손이 베일 듯 날카롭게 웃자란 풀들 사이에서 무수한 꽃들이 거의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광채를 거기서 받아내고 있었다. 말을 들어보면 그 중 어떤 꽃에도 독이 되는 침이나 분비물이란 없고 상처를 입히는 일도 없이 그 모양이 암홍색 벨벳 양산같이, 짙은 금색의 두상화같이, 핑크빛이나 우유 빛 화관같이 기이하게 화려하고 큼직했으며 잎사귀들은 빛나는 와니스를 바른 듯 추악하게 번들거렸다.
--- '우두 골짜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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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타가 이 고장의 아름다움을 가장 실감나게 발견하는 것은 바로 이 시간이었다. 그녀는 마치 들판을 거슬러오는 한줄기 향기로운 바람처럼 기이하고 돌연하게 밀려들곤 했던 행복의 충동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예상치 않았던 것이기 때문에 더욱 기이하고 돌연하게 느껴졌던 것이리라. 사실 끊임없이 일상의 온갖 일에만 매달리며 살아오는 긴긴 세월 동안 이런 순간들이야말로 긴장이 풀리는 유일한 때였다. 그녀는 또 너무나도 부드럽고 너무나도 순종하는 한 마리 짐승을머리에 떠올렸다. 그저 "꼬리를 저리 치워, 조심해야지"하고 그 짐승에게 말하기만 하면 그 털이 붉은 작은 아못는 파리 떼가 마구 달려드는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기껏해야 그 가엾은 두 귀를 끊임없이 흔들 뿐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 '세상 끝의 정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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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하여
‘캐나다 문학의 큰 부인’이라 불리며, 세 번의 캐나다 총독상 수상, 캐나다 작가 최초의 페미나상 수상 등의 화려한 수상 경력에 어울리는 문학적 깊이와 감동을 겸비한 가브리엘 루아의 작품들은 캐나다 국내에서는 물론이고 영미문학권, 유럽문학권, 제3세계 문학권에서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가브리엘 루아의 대표작 『내 생애의 아이들』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데 이어, 간결하고 고즈넉한 문체의 만년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세상 끝의 정원』이 김화영 교수의 깊이 있는 번역으로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이 소설집은 캐나다 서부 내륙, 즉 매니토바, 서스캐처원, 앨버타 등 3개 주에 펼쳐져 있는 광대한 평원지역에 이주하여 정착한 소수민족들을 주제로 한 네 편의 중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작품은 「삼리웡, 그대는 이제 어디로 가려는가?」. 한 인간의 고독과 소통의 부재 등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소설은 또 다른 이민들인 삼리웡 주변의 인물들을 통해 캐나다 이민의 작은 역사를 보여준다. 20세기 초 캐나다 이민법에 의해 희망을 갖고 본국을 떠난 중국인 삼리웡은 야트막한 야산 줄기가 뻗어 있는 지형에 매료되어 서스캐처원 주의 ‘호라이즌(지평선)’ 마을에 정착한다. 그는 곧 예전에 밀 저장소였던 곳을 빌려 작은 식당을 연다. 그리고 그곳에서 불행을 이고 사는 피레네 지방에 온 늙은 스무야, 아내가 집을 나간 후 에그 프라이만 먹고 사는 짐 파렐, 아이슬란드에서 와서 지평선 마을의 구역장이 된 피트 핀린슨, 그리고 옛 퀘벡에서 온 자콥을 만난다. 어느 정도 그 마을의 일원으로 인정받던 삼리웡은 4년 동안의 가뭄이 아닌 유전의 발견으로 갑작스러운 개발과 함께 변화된 그 마을로부터 축출당한다. 마을 사람들이 그가 생각지도 못했던 송별연을 준비함으로써, 그는 떠날 수밖에 없게 된다. 떠밀리듯 기차에 몸을 실은 삼리웡은 마치 인간의 삶은 다시 계속된다는 것을 보여주듯 호라이즌 마을을 찾아냈을 때처럼 창밖으로 스치는 아주 보잘것없는, 그저 조그만 간이식당 하나 정도에 어울리는 그런 마을을 또다시 찾는다. 그리고 이 세상 어느 곳에 우연히 내려앉은 한 마리 새가 둥지를 틀 듯, 지난번보다는 덜 거창하게 유리창에 비누로 식당 간판을 쓴다. 여기서 작가는 이주 외국인이 겪는 의사소통의 부재나 번영으로부터의 소외를 통해 척박한 삶을 사는 삼리웡이라는 개인이 느끼는 고독의 문제를 제시한다. 두 번째는 「한 나그네가 찾아와 문을 두드린다」. 이 소설은 한 나그네의 방문을 통해 가족의 확대, 이야기의 허구와 진실의 경계 너머를 보여준다. 어느 날 한 나그네가 찾아와 문을 두드린다. 그는 자신이 아버지 쪽의 친척이라고 밝히고 그날부터 친척들과 소문으로만 남아 있을 법한 고향 마을의 구석진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어 들려준다. 낮 동안은 그저 묵묵히 일하는 사람일 뿐인 그가 저녁 화로 가에서 들려주는 아버지가 모르고 있는 아버지의 다른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는 아버지의 추억 속의 인물들을 되살려내고, 그의 이야기에 옷을 입히게 된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돈에 너무 인색했던 마르슬린같이 굴지 말아!” “알베르틴, 당신은 수프를 필로멘느처럼 좀 못 끓여?” 그는 찾아올 때 그랬던 것처럼 떠날 때도 돌연 떠난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가 들려준 돌팔이 의사, 살인한 여자, 백 살 먹은 늙은이, 만병통치약을 만든 에프렘 브라방의 이야기는 아버지와 가족들에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가 다시 찾아왔을 때 그는 지친 심신을 누이며 횡설수설 늘어놓는다. 그를 위하여 약을 구하러 간 아버지가 방문했던 집마다 그 집안 사람임을 자처하는 사기꾼이었음을 알게 되고 분노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를 신뢰하지 않았던 어머니는 오히려 그의 거짓 얘기들을 선의로 따뜻하게 받아들이며, 아주 침착한 어조로 말한다. “그래서요?” 그리고 떠나는 그를 향해 소리친다. “잘 가요……. 여행 잘 해요……. 우리 귀스타브 사촌님!” 세 번째는 단편 「우두 골짜기」. 별이 점지해준 길을 따라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나는 두코보르 무리. 선발대로 떠난 사람들은 막막한 초원지대에서 깜짝 놀랄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과 맞닥뜨린다. 황홀한 산맥과 골짜기를 따라 흘러가는 강물, 그리고 불타는 지평선. 그곳은 인간들의 불안정한 영혼에 끼치는 기이한 영향력 때문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인디언들이 이름을 붙여놓은 ‘우두 골짜기’다. 선발대를 이끄는 식민 요원 맥퍼슨은 난감해하며 “저기 보이는 것은 산들이 아니고 골짜기에 보이는 것은 강이 아니”라며 그들을 설득한다. 그들은 그들이 본 것들이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신들의 눈에 그것들이 보이니 상관없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정착할 땅이었을까, 아니면 끊임없이 그들 앞에 펼쳐질 고난을 뚫고 나갈 믿음이었을까. 두코보르 사람들은 말한다. 자신들이 본 것을 우리의 여자들, 아이들도 보게 된다면 그들 역시 안심하지 않겠느냐고. 표제작이자 이 작품집에서 가장 아름다운 중편 「세상 끝의 정원」은 가브리엘 루아 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자품이다. 어느 날 인간이 개간한 땅의 끝에서 꽃들이 가득한 한 정원을 보고 씌어진 이 작품은 그 정원을 가꾼 노년의 병든 여인, 마르타의 삶을 통해 그녀의 시선에 묻어 있는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을 들여다보고 있다. 앨버타 주 북부 인적 없는 평원에서 남편과 함께 외로이 살고 있는 여주인공 마르타. 그녀는 우크라이나를 떠나 이곳에 정착하여 늙음에 이른 고독한 여인으로 암에 걸려 쓸쓸한 만년을 보낸다. 그녀에게는 이젠 멀리 떠나 영어로 이따금 편지를 보내오는 아이들이 있을 뿐, 그녀와 남편은 끝내 영어를 배우지 못했다. 그들은 가장 기본적인 소통수단인 언어에서마저 캐나다 사회에 편입되지 못했다. 마르타는 온갖 고생을 다 하며 가난하고 외롭게 살아왔지만 삶을 깊이 사랑한다. 삶에 대한 이 끈덕진 사랑은 그녀가 죽을 날을 기다리며 애지중지 가꾸어 놓은, 아무도 보아주는 이 없는 꽃들을 통해서 감동적으로 표현된다. 그녀의 남편은 아내 때문에 이 머나먼 고장으로 이민을 왔다고 원망하는 삶을 산다. 그는 삶으로부터 너무나 많은 쓴맛을 본 것이다. 그는 오직 정원 가꾸기에 인생을 걸고 있는 그녀를 질투하고 시기하며, 그럴수록 그의 삶은 피폐해져만 간다. 그것은 그가 아내가 죽고 혼자 남겨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자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그녀에 대한 쓸쓸한 애정이었던 것, 그러던 그는 어느 순간 아내가 자기에 대해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버려져 있던 숲을 다듬는다. 그리고 서리가 내리는 시월 어느 날 아침, 마르타는 문득 밤새 꽃들이 얼어죽지 않도록 남편이 종이 모자로 꽃들을 씌워주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녀가 꽃들을 위해 해왔던 수고들을 그녀의 남편이 그녀를 대신해서 하게 됨으로써 그녀는 마침내 자신의 모든 노고에 대한 보상을 받게 됨을 깨닫는다. 이로써 마르타는 삶의 에너지, 삶에의 사랑과 열정이 자신의 진정한 몫이라는 걸 확신하게 되며 생의 마지막을 고요히 맞이한다. 이 작품은 사랑 받지 못한 한 여인에게 자기 주변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 주는 위안, 그리고 자연이라는 거대한 휴식처를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세상 끝의 정원』은 1974년 봄, 작가의 나이 65세에 완성한 만년의 작품집이다. 때문인지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과 삶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오는 너그러운 사랑이 시종 아름답게 이 책의 문장들을 시들지 않고 꽃피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