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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말
1. 동네 알아가기 2. 나는 걷는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가상디와 데카르트의 정신-신체 문제 3. 앙드레와 나자의 발걸음으로 걷기 ─기억할 만한 경험 4. 사르트르, 보부아르와 더 가까이 걷기 ─〈존재와 무〉 안의 걷기 사례 5. 콜리지, 걸어가는 상상력 6. 키르케고르, 코펜하겐의 산책자 7. 루소와 니체 ─고독과 거리의 파토스 8. 버지니아 울프 ─런던의 시골 방랑자 9. 종결부 ─나는 걷는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재현부)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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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철학자의 걷기는 각기 종류가 다르다. 특히 나는 특정 철학자들과 작가들의 작품에 나타난, 걷기와 생각하기의 교차 방식에 관심이 가 있다. 그들 중 몇몇─르네 데카르트, 장 폴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은 철학자로서는 잘 알려졌지만, 걷기와 그들 사상의 연관성은 언급된 적이 거의 없다. 다른 이들─쇠렌 키르케고르, 장 자크 루소, 프리드리히 니체─은 자신들의 철학적 사고에서 걷기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유명하다. 세 번째 그룹은 앙드레 브르통과 버지니아 울프처럼 철학적인 성향이 강한 작가들, 그리고 철학자이자 시인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도시, 들판, 숲, 등산로, 평원을 걸었고, 그들의 걷기와 사고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관한 통찰력을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기를 희망했다.
--- p.10~11 같은 길을 다시 걸으며, 우리는 선조들이 그 자연에 남긴 상상과 욕망을 소환한다. 인류학자인 웨이드 데이비스는, 호주 선주민이 ‘태초의 길Songlines’을 걸을 때 “모든 랜드마크들은 그것의 기원에 대한 기억과 결부되면서도 언제나 태어나는 상태에 있다. […] 그 땅을 걷는 것은 끊임없는 수긍 행위에 진입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 p.22 물론 보행자의 정신도 개입되지만, 신체가 감각을 통해 인지를 획득하는 만큼이나 정신도 체화된다. 신체와 정신은 ‘경험의 과정 중에’ 분리되거나 구별되지 않는다. --- p.46 키르케고르가 그의 저작 《재현》(국역본 제목은 ’반복’이다-역자)에서 설명한 것처럼, 과거 경험을 ‘회복’한다는 것은 똑같은 경험을 두 번 한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을 두 차례 경험할 때, 첫 번째 경험의 기억이 두 번째 경험을 쫓아다니기 때문에 직접적이고 정확한 재현은 가능하지 않다. 역설적으로 보이지만, 새로운 것만이 재현될 수 있다. --- p.57 걷기는 그 흔적들을 리베카 솔닛이 “도시의 무의식, 그 기억”이라고 명명한 것의 일부인 길로 묶음으로써 그것들을 소생시킬 수 있다. 그 흔적들의 거대한 저장소가 도시다. 정신과 도시는 모두 신경 경로, 기억 흔적, 도로, ‘인상’과 같은 길로 구성되어 있다. 기억이 정신의 물질적 인상으로 처음 비유된 것은 플라톤의 《테아이테토스Thaeatetus》에서였다. --- p.61 “우연한 발걸음”이 그들을 “협소한 포브 쁘와소니에르 Faubourg-Poissoniere 로”에 이르게 했을 때 나자는 브르통이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실망했다. (“결혼했다고요? 저런…그렇다면 실망이네요.”) 그녀는 브르통에게 인간의 발걸음을 “자유롭게 하는” 그의 위대한 생각이 “정말 하나의 별, 당신이 향하고 있는 별이고, 당신은 꼭 그 별에 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브르통은 감동했다. --- p.74 시몬 드 보부아르가 사르트르를 다그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힘내요, 장 폴! 1km만 더 가면 돼요!” 콜리지의 산악 횡단 방법─모험적이고 위험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막다른 지점에 이르기까지 계속 걷는 방법─을 실천한 보부아르는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이고 피로를 극복하며 쾌감을 느꼈다. 이는 물질적 장애물을 극복함으로써 자아를 극복하는 것이었는데, 그녀는 이 방식에 빠져들었다. 1930년대에 마르세유에서 가르치는 동안 보부아르는 주변의 언덕과 산을 하이킹하며 자기 스스로 “광신적”이라고 표현할 만큼 시골길 걷기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한번은 “신록과 하늘빛”으로 가득한 오트루아르Haute-Loire에서 하이킹을 하면서 자신이 세운 계획의 엄격함이 어떻게 자연의 우연성을 필연성으로 바꿔놓았는지에 주목했다. --- p.104~105 걷는 시인을 다룬 대부분의 담론은 때로 콜리지의 동료이자 친구였던 윌리엄 워즈워스를 자랑스럽게 언급한다. 리베카 솔닛, 조지프 아마토 등은 실제로 낭만적 걷기를 발명한 것이 워즈워스의 공이라고 말한다. 문학평론가 앤 월리스는 워즈워스를 자신이 “소요학파적peripatetic”이라고 부른 시 장르의 창시자로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사는 동안 시적으로 가장 창조적이었던 시기(1797-1802)에 콜리지는 소요학파적인 시인으로 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 p.124 야외 사생파 화가들과 달리, 콜리지는 고정된, 전망 좋은 지점에서가 아니라 걷는 동안 변하는 시점에서, 감각 이미지의 꼴과 배열을 제공한 그 걷기의 에너지와 리듬을 느끼며 자연을 연구했다. 해즐릿은 콜리지의 걷기 스타일, 즉 결코 일직선을 따라 걷지 않고, 선을 이탈하는 방식의 걷기를 그의 “드라마틱하며”, “생동감 넘치고 다채로운” 말하기/글쓰기 스타일과 연관짓는다─“콜리지는 평탄하지 않은 땅을 걷거나 작은 나무숲의 흐트러진 나뭇가지를 헤쳐 나아가며 시 짓는 일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걷기, 말하기, 시는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보행자의 시적 상상력으로서 콜리지의 ‘방법Μεθοδο?’이었다. --- p.139 그 지역 주민들은 그를 “미친 학생”이라고 불렀다. 마음을 차분하게 하기 위해, 키르케고르는 해안가를 따라 긴 산책을 하곤 했다. 목적지는 나무 아래에 앉아 외어순Øresund 해협 건너 스웨덴을 바라볼 수 있는 길뱌흐 호을Gilbjerg Hoved의 언덕이었다. 비록 언제나 코펜하겐의 산책자였지만, 그는 간혹 도시의 사회적 삶의 긴장을 풀기 위해 절벽 꼭대기 길을 걷곤 했다. 길뱌흐 호을의 고요 속에 잠겨, 그는 자아 역시 온전히 자신인 상태가 되는, 현재에 온전히 존재하는 순간을 누렸다. 다이앤과 나는 5월 말의 어느 화창하고 온화한 날 그곳을 찾았다. --- p.205 이것은 새로운 생각이었다. 루소 평전을 쓴 레오 담로쉬에 따르면, “과거 용법에서 ‘몽상’은 기껏해야 나태한 공상daydreaming을, 최악의 경우 망상을”, 즉 행위 주체를 현실에서 없애는, 건강하지 못한 꾸밈make-believe을 “뜻했다.”루소는 이 개념을 뒤집었다. 그에게 몽상은 자연세계를 향해 가장 살아 있는 사고의 형식이었고, 몽상자의 자아를 꿰뚫어 보는 최상의 통찰을 제공했다. --- p.236~237 다음 날은 산에서 청쾌한 산들바람이 부는 온화하고 화창한 날이었다. 니체가 자주 그랬던 것처럼 나는 실바플라나 호수 남쪽 기슭을 따라 큰길 옆으로 난 좁은 흙길을 걸어 수어레이와 그 폭포까지 갔다. 실스 마리아의 다채로운 색채에 관한 니체의 언급은 과연 과장이 아니었다. 들판과 초원, 숲과 산비탈 여기저기에 야생화가 피어 있었고, 여러 색조의 초록빛(소나무, 낙엽송, 전나무, 노간주나무, 활엽수와 관목, 양치식물, 들풀)과 호수와 하늘의 파란빛은 태양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고 흰 구름이 하늘을 가로지를 때 빛과 그림자의 움직임에 따라 변화하면서 야생 참제비고깔의 푸르스름한 자줏빛부터 흰색과 금색의 아르니카까지 눈부신 색조 배열을 빚어냈다. --- p.287 울프에 따르면, 오직 백열광을 내는 정신만이 생명의 “깊은 물결”을 습관, 관습, 사회적으로 강제된 제약─특히 여성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관습들─의 방해 없이 자유롭게 흐르게 해, 실재 그 자체에 접촉할 수 있다. 하나인 실재, 콜리지가 말한 것처럼 “하나의 살아 있는 사물”, “하나의 정신, 하나의 편재하는 정신, 만물을 창조하는 것”이자 “하나의 경이로운 전체”인 실재에. --- p.330 로드멜의 아름다움 외에도 울프는 자기 마음속으로 “깊이 잠수”할 수 있게 해준 “관찰이 주는 자유”를 즐겼다. (D3 137: 1927년 6월 6일)─“이곳은 점점 더 사랑스럽기만 하고, 더 친근하고, 매혹적이고, 빼어나고, 고요하다. 홀로 걷고 싶고, 내 생각과 합의점을 찾게 되는 커다란 텅 빈 곳이 여기엔 있다”(D4 85: 1932년 3월 24일). 이곳에서 그녀는 마음이 “다시금 부드럽고 따뜻하고 풍요롭고 […] 생기 있고 촉촉한 상태로” 변하는 것을 느꼈다. (D4 42: 1931년 9월 3일) --- p.3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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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신이 도보 여행 중독자이기도 한 저자 브루스 보는 걷기와 도보 여행에 관한 사색을 펼쳤던 사상가들, 걸으며 자신의 사상을 구축했던 사상가, 작가들을 두루 섭렵한 채 이 책에서 걷기론을 총정리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책은 걷기 철학에 관한 책일 듯하다. 그러나 그는 그 사상가들 가운데 일부가 걸었던 길과 풍경을 직접 찾아 나서서 그곳을 자신의 두 발로 직접 재경험한다. 이 행위를 그는 과거 경험의 ‘재현’이라고 부른다. 그들의 걷기와 여행을 그대로 반복하되 오늘의 시점에서 새롭게 반복하는 이 ‘재현’ 행위와 더불어 브루스 보는 그들이 그 장소들에 부딪쳐 어떤 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펼쳐 냈을지 역시 추적하고 사색한다.
이렇게 하여 이 책은 걷기 철학, 기행문학(여행문학), 사상기행(인간과 도시와 길과 자연과 세계에 관한 그들의 성찰과 저자의 성찰)이라는 세 가지 성격을 동시에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가 찾아간 길을 먼저 걸었던 사상가와 작가는 누구일까? 니체, 키르케고르, 버지니아 울프,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 앙드레 브르통, 루소, 시몬 드 보부아르 등이 바로 그들이다. 저자는 이들을 자신의 걷기 동료 삼아, 그들의 유령과 함께 걸으며 ‘재현’을 실현한다. 대체 걷는다는 것은 어떤 행동인가? 걷기는 어떻게 공간과 장소를 드러낼까? 길과 도시는 그저 물리 공간의 일부에 불과한가? 걷기는 어떤 식으로 의식의 체화를, 신체화된 인지를 알게 해줄까? 과거의 인물이 걸었던 길과 흔적을 그대로 따라 걸으면서 그 인물의 경험을 ‘기억’하는 것이 가능할까? 자연에서 몸의 한계를 느끼고 그것을 넘어선다는 행위의 의미는 무엇일까? 걷기는 어떤 식으로 시적 창조성을, 시적 상상력을 이끌어 내는 것일까? 위대한 사상가들은 대개 고독을 고집하며 고독한 걷기 속에서 독자적인 사상을 이룩하곤 했지만, 정말로 고독은 사색적 걷기에, 사고의 확장에 필수적인 요소인 것일까? 왜 어떤 사람들은 도시 걷기를 선호했고, 왜 어떤 사람들은 자연 걷기를 선호했던 것일까? 저자는 이런 질문들을 하나씩 제시하면서 해답을 찾아간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저자 나름의 답변의 총합만은 아니다. 책의 묘미는 구체성과 디테일에 있다. 독자가 얻는 즐거움의 큰 부분은, 보부아르와 사르트르, 니체와 루소와 키르케고르, 버지니아 울프와 콜리지의 생각을 보다 잘 알게 되는 것에 있기보다는 그들의 인간적 면모, 삶의 세부를 알게 되는 것에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세부에서 저자 자신이 경험한 도시와 자연의 장소들과 풍경들은, 그 자신들이 하나의 주체로서 중요한 몫을 해낸다. 요컨대, 한편으로 이 책은 위대한 철학자들과 그들의 작품을 읽는 새로운 시선과 방법을 제공한다. 다른 한편으로 저자는 걷기와 도시와 자연이 그들의 삶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현장을 직접 걸으며 연구함으로써, 그들이 살아낸 삶의 실재와 세부에 다가서게 해준다. 그리고 이 현장 연구가 곧 저자 자신의 기행문학이 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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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책! 문학적이고, 매력적이고, 철학적으로 세련되고, 지적으로 방대하다. 사려 깊고 열정적인 오랜 지적 노동의 정점인 이 책은 다른 저작들, 인물들, 장소들, 철학적인 발상들에 깊이 닿아 있다. 반복해서 이 책을 펼쳐들 것 같다. - 피터 S. 파슬 (미국 트랜실베니아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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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걷기가 명상적인 사고를 자극한다는 것, 그리고 많은 위대한 사상가들이 열성적인 보행자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저자인 보Baugh 역시 실제로는 자신이 사는 동네인 캠룹스를, 은유적으로는 주요 저작들을 포괄하는 놀라운 범위를 거닐고 있다. 그의 작업은 개인적이며, 학계에 적당히 의존하지 않는다. 이 책은 읽고 또 읽어야 할, 집을 나서기 전에 배낭에 챙겨야 하는 필수품이다. - 제프리 블뢰흐 (미국 보스턴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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