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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리. 1940년 사순절~부활절
니콜라 데 지노상 클로드 르 비스트 주느비에브 드 낭테르 2. 브뤼셀. 1490년 성령 강림절 주간 조르주 드 라 샤펠 필립 드 라 투르 알리에노르 드 라 샤펠 크리스틴 뒤 사블롱 3. 파리와 셸. 1491년 부활절 니콜라 데 지노상 주느비에브 드 낭테르 클로드 르 비스트 4. 브뤼셀. 1491년 오월제~1492년 칠순절 조르주 드 라 샤펠 알리에노르 드 라 샤펠 크리스틴 뒤 사블롱 필립 드 라 투르 5. 파리. 1492년 칠순절 니콜라 데 지노상 에필로그 작가의 말 옮긴이의 말 |
Tracy Cheval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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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서 마침내 2년의 세월에 걸친(노심초사하며 일을 하느라 머리가 세고, 어깨가 굽고, 눈은 사시가 된) 일을 뒤로하고 리시에 조르주는 밖으로 걸어나갔다. 나가면서 태피스트리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다시는 그 태피스트리를 보지 않게 되어 기쁜 듯했다.
두 사람이 나간 뒤 나는 오래도록 ‘시각’을 바라보았다. 여인은 앉아 있고 일각수는 그녀의 무릎에 기대고 있다. 사람들은 그들이 서로 사랑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인은 거울을 들고 있고 일각수는 사랑 가득한 눈으로 여인이 아닌 자신을 보고 있다. 여인의 눈은 초점이 없고 게슴츠레하다. 여인의 희미한 미소에는 슬픔이 가득하다. 어쩌면 여인은 일각수를 보지 않는지도 모른다. 내 생각이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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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피스트리, 고마워요.”
클로드가 개의 눈을 들여다보며 덧붙였다. “누군가 당신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나요? 태피스트리는 아주 아름답군요. 볼수록 슬퍼지긴 하지만.” “왜지요, 아름다운 아가씨?” 클로드는 나를 보았다. “태피스트리를 보면 전에 내가 어땠는지, 얼마나 명랑하고 행복하고 자유로웠는지 생각나니까요. 이제는 무릎에 일각수가 기대고 있는 여인만 나 같아요. 그 여인은 슬퍼 보이고 세상에 대해 뭔가를 아는 것 같은 표정이죠. 나는 다른 여인들보다 그 여인이 마음에 들어요.” 나는 한숨을 쉬었다. 여인들을 다 잘못 만든 것 같았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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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클뤼니 중세박물관에 걸려 있는 여섯 점의 태피스트리
1841년 역사 유물 발굴가인 프로스페르 메리메는 프랑스 중부 부삭의 한 성에서 쥐에 쏠은 자국이 있고 몇 군데는 잘려나간 상태인 「여인과 일각수」 태피스트리 연작을 발견한다. 작가 조르주 상드는 소설과 일기에 이 태피스티리에 관한 이야기를 쓴다. 1882년 프랑스 정부가 파리의 클뤼니 미술관(현 국립 중세박물관)에 소장하기 위해 이 태피스트리를 사들였고, 복원 후 특별히 지정된 방에 걸어두었으며 아직도 그곳에 걸려 있다. 이 태피스트리의 정체를 캘 수 있는 열쇠는 태피스트리에 사용된 문장(紋章)이었다. 파리의 귀족 장 르 비스트 가문의 문장. 태피스트리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옷과 태피스트리 직조 기술은 이 태피스트리의 탄생 시기를 15세기 말쯤으로 짐작게 한다. 그러나 르 비스트 가문의 누가, 언제, 왜 의뢰했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여인과 일각수’ 전설을 모티브로 한 이 아름다운 태피스트리 연작은 밀플뢰르(꽃무늬 바탕 장식) 기교로 보아 브뤼셀 장인의 손에서 만들어졌으리라 추측된다. 그러나 르 비스트 가문의 누가, 언제, 왜 의뢰했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명화(名畵)를 한 편의 뛰어난 소설로 재탄생시킨 바 있는 『진주 귀고리 소녀』의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태피스트리의 미술사와 중세의 풍속사 위에 소설적 상상력을 풍성하게 직조시켜 15세기 태피스트리 속 여인들의 이야기를 생생한 현재로 불러낸다. 15세기 파리와 브뤼셀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중세의 태피스트리는 미술 작품이라기보다는 실용품에 가까웠다. 태피스트리는 실내를 장식하는 기능말고도 천장이 높고 큰 방을 보온하는 효과와 함께 소리가 울리지 않도록 하는 기능도 있었다. 태피스트리는 벽에 틈새를 두지 않고 서로 붙여서 걸었으며 모서리에 맞게 만들어져 벽 전체를 덮었기 때문에 태피스트리에는 여러 가지 이미지가 같이 들어간 경우가 많다. 물론 제작하는 데도 엄청난 비용이 든다. 소설에서 장 르 비스트는 태피스트리 장인의 작업실에는 물론 그림을 그린 화가와 중개상한테도 돈을 지급해야 했다.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적게 잡아도 지금 돈으로 250,000달러(약 3억 원)가 들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작가는 미술사와 풍속사에 대한 치밀한 탐구를 바탕으로 15세기 파리와 브뤼셀을 생생하게 재현해 보여준다. 이미 『진주 귀고리 소녀』에서 독자들을 17세기 네덜란드로 초대했던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길드조합이 번성했던 브뤼셀의 그랑플라스, 질척거리는 오물투성이의 파리 뒷골목, 창녀가 나오는 브뤼셀의 술집, 파리 귀족의 호화로운 저택, 중세 수녀원, 루브르 성과 노트르담 성당을 조망할 수 있는 센 강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일각수, 무한한 상징의 스팩트럼 언뜻 낯설기도 한 일각수라는 상상동물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으며 여러 문화권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대 아시리아나 그리스 로마 시절부터 여러 문헌에 일각수에 대한 언급이 나오며 중국이나 일본에도 일각수 전설이 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보듯이 일각수는 오늘날까지도 매우 널리 쓰이는 아이콘이다. 일각수가 등장하는 가장 유명한 전설은 이 소설에서 화가 니콜라가 들려준다. 사실 니콜라의 이야기에는 두 가지 전설이 섞여 있다. 일각수는 원래 거칠고 난폭한 동물이지만 정결한 처녀 앞에서는 양처럼 순해져 처녀의 무릎 위에 얌전히 기댄다. 일각수 뿔에 독을 정화시키는 힘이 있다는 것 또한 유명한 전설이다. 일각수가 냇물에 뿔을 담그고 있고 동물들이 뒤에서 기다리는 이미지는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일각수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프로이트에 기대면, 일각수의 뿔은 바로 남성의 성기를 연상시킨다. 특히 ‘여인과 일각수’의 이미지에서 여성이 뿔을 잡고 있다는 점을 떠올리면 더욱 그러하다. 이때 일각수는 정조나 순수와 같은 미덕을 상징한다. 처녀만 일각수를 사로잡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일각수가 순수라는 상징을 얻게 된 듯하다. 하지만 여인과 일각수라는 모티프는 사랑하는 여인의 주술에 걸려 있는 연인을 나타내기도 하고, 사나운 야생 동물이라는 점에서 자유분방한 성적 욕망을 나타내기도 한다.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일각수와 여인은 때로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를 나타내기도 한다. 중세는 기독교적 의미망을 피하기 힘든 시기이기도 했지만, 사냥꾼의 화살에 맞고 처녀의 무릎 위에 엎드려 있는 일각수의 모습은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온 예수를 안고 있는 피에타의 전형적인 구도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릴케의 『말테의 수기』에도 일각수가 자주 등장한다. 아비뇽으로 망명해 온 법왕 잔 22세가 독살을 피하기 위해 포도주 잔에 일각수의 뿔을 넣어 변색 여부를 확인하는 장면이 언급되는가 하면, 일각수의 신비스러움을 처녀의 욕망 성숙 과정으로 형상화하기도 했다. 『말테의 수기』에서, 처녀들은 「여인과 일각수」라는 태피스트리 앞에서 경건해지려고 애쓰지만 그럴수록 우울해진다고 한다.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세월의 힘 앞에서 처녀들 역시 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내들의 욕망에 스스로 몸을 던지는 타락한 처녀가 되고자 함이 그것이다. 태피스트리 속으로 걸어 들어간 여인들 태피스트리 밑그림을 주문받은 파리의 바람둥이 화가 니콜라 데 지노상을 중심으로 귀족 가문의 여인들, 시녀들, 태피스트리 작업실의 여인들 등, 다양한 중세 여인들이 소설에 그려진다. 아들을 낳지 못해 남편 장 르 비스트로부터 외면당하는데다 딸 클로드의 싱싱한 젊음을 늙어가는 육체로 질투할 수밖에 없는 귀부인 주느비에브 드 낭테르는 남편의 뜻을 거슬러 ‘여인과 일각수’ 전설을 태피스트리의 주제로 삼게 만든다. 그것은 아마도 시들어가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교묘한 복수였을 것이다. 꽉 짜인 귀족 생활에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며 비밀스러운 사랑을 꿈꾸고 있던 주느비에브의 딸 클로드에게 태피스트리의 밑그림을 맡게 된 바람둥이 화가 니콜라의 등장은 참을 수 없는 일탈의 유혹으로 처녀의 욕망을 이끈다. 브뤼셀의 태피스트리 장인 조르주의 아내 크리스틴은 여자들한테는 허용되지 않던 태피스트리 직조 작업에 참여하면서 또다른 중세 여성의 강인한 욕망을 보여준다. 크리스틴의 눈먼 딸 알리에노르는 작업장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혼해야 하는 운명을 거부하고 니콜라의 유혹에 적극적으로 몸을 연다. 니콜라는 그림을 완성해가는 과정에서 이들 네 여인한테 각기 숨은 욕망을 발견하고, 그것들은 「여인과 일각수」 태피스트리의 예술적 영감이 된다. 그렇게 해서 원근과 중력을 무시한 피사체의 배치와 도도한 듯, 유혹당한 듯한 일각수의 표정, 실물인지 장식인지 구분할 수 없는 작은 동물들의 몸짓, 당당하게 펄럭이는 깃발과 우아하게 늘어진 스커트의 곡선이 독자의 눈으로 걸어 들어온다. 소설을 다 읽을 때쯤이면 태피스트리 속 여섯 여인의 표정과 손끝 하나하나가 다르게 보이며, 밋밋해 보이던 여인들의 표정은 소설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운명과 겹쳐지면서 그들의 고뇌와 욕망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