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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서문
프롤로그_ 그러나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 1장_ 대한민국이라는 배, 누가 노를 젓고 있는가 1 우리는 유령선에 탄 거야 2 아예 타지 않을 수는 없었나 3 다시 돌아온 거대한 갤리선 2장_ 거위의 꿈 1 2014년 4월 15일, 세월호 2 슬픈 전화통화 3 선장 - 선주 - 기업 - 정부 4 국가는 왜 배 안에 남은 사람을 아무도 구하지 못했을까 3장_ 유령선이 떠다니는 나라 1 비행기를 탈 것인가, 배를 탈 것인가 2 우린 다 까막눈이었다, 거의 다 3 35만 원이라는 돈 4 왜 우리는 일본이 타다 넘긴 배를 타게 되었는가 5 배를 어떻게 할 것인가 4장_ 꽃다운 넋들에게 바치고 싶은 미래 1 경제적 차별, 민영화 그리고 공공성 2 준공영제와 공영제, 연안여객의 해법을 위하여 3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려는 사람들, ‘재난 자본주의’ 4 세월호 메모리얼, 잊지 않기 위하여 에필로그_ 어린이를 두고 떠나니 잘 부탁하오 |
禹晳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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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밝혀져야 할 것은 밝혀지지 않을 것이고, 상황은 오히려 더 나빠질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많은 사건이 그랬다. 사람들은 사건을 광속으로 잊는다. 이유는 분명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 있는 사람이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 「저자 서문」중에서 2014년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에는 이상한 일들이 정말 많다. 그런데 배에 대한 말이 하나도 없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정부의 대책 중에 배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 역시 없었다. 유가족들이 처음에 했던 요구는 두 가지였다.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재발방지가 공적이든 사적이든, 논의에서 사라져 버렸다. 진상규명을 왜 할까? 재발방지를 위해서다. 그런데 재발방지가 사라진 순간, 무엇을 위한 진상규명인지 길을 잃었다. --- 「저자 서문」중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페리에 사람을 태우기는 해야 할 텐데, 도대체 누가 탈 것인가? 정부, 아니 정확히 집권 세력이 원하는 것은 국내 선박산업이 융성해 4대강까지 뱃길이 이어지는 것이므로, 누군가는 배를 타줘야 하는 것이다. 시간과 비용에 상관없이, 누가 그 배를 탈 것인가? 때문에 고등학생들의 수학여행이 교육 당국의 권유에 의해서 ‘카페리’에 집중됐다. --- 「1장 대한민국이라는 배, 누가 노를 젓고 있는가」중에서 다시 말하면 군사정권 시절 이후 한국 경제는 공공성에 관한 최소한의 기준 정도는 확보하고 있었다. 공공성을 약화시키고 국가 자산을 파는 게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라는 식의 논리는, 이명박정부에서 과장된 측면이 있다. 이런 공공성 문제에서 가장 예민한 게 바로 대중교통이다. 버스의 경우 사람들이 가장 신경을 많이 쓰고, 또 가까이에서 지켜보기 때문에 상황이 다소 낫다. 그렇지만 카페리는 완전히 방치돼 있었다. --- 「3장 유령선이 떠다니는 나라」중에서 이게 경제적 차별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다. 기막힌 일을 당한 부모들을 난민 대하듯이 하는 것. 사회적으로 그런 경제적 차별이 깊숙이 내면화되고 일상화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많은 일에 경제적 차별이 발생하기는 한다. 그러나 적어도 죽음 앞에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 정도는 합의하거나 논의하지 않아도, 제대로 작동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본 것은, 한국 사회는 그것조차 안 되어 있는 나라라는 것이다. --- 「4장 꽃다운 넋들에게 바치고 싶은 미래」중에서 두 가지 질문이 있다. 세월호와 같은 사고가 나지 않게 할 것인가. 혹은 세월호와 같은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언뜻 보기에는 두 질문이 모두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앞의 질문은 경제적 차별을 줄이면서 문제를 푸는 방식을 요구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모든 재해나 사고는 예방적 방식이 효율적이고 비용도 덜 든다. 당연하지 않은가. 처음부터 사고가 생기지 않는다면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근본적으로 차별받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예방적 방식이 아니라 사후처리적 방식에서는 경제적 차별이 더 강해진다. --- 「4장 꽃다운 넋들에게 바치고 싶은 미래」중에서 오늘날의 ‘재난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안에서는 끔찍한 사고가 나면 문제가 개선되기보다는 그 반대의 기회로 작동되는 경우가 더 많다. ‘재난 자본주의’란 사람들이 엄청난 재앙에 놀라고 당황할 때, 다국적 기업이나 통치 세력들은 자신들이 원래 하고 싶었던 일을 더욱 강력하게 전개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재난 자본주의가 지금 어떻게 한국에서 작동하고 있는지 너무나 명확하고 간결하게 보여준다. 이 상황에서 권력층은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자신의 세력들을 비호하거나 더 키우고 있는가. --- 「4장 꽃다운 넋들에게 바치고 싶은 미래」중에서 20년 전과 비교하면, 여러 가지로 지금 상황이 더 안 좋다. 그렇다면 경제는 어떤가. 서해페리호를 극복하면서 우리나라 경제는 좋아진 게 아니라, 점점 더 나빠져 결국 IMF 경제위기로 국가가 부도날 뻔 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그때보다 여건이 더 안 좋으니까 더 빨리 국가부도급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 「에필로그」중에서 중등교육의 목표는 독자적으로 판단하는 인격을 가진 성인을 만드는 것이다. 대학에 가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이다. 우리의 교육은 실패했다. 국가도 실패했고, 부모도 실패했다. 위기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고 판단할 수 있는 인격체로 중등 교육의 대상에게 자기 존엄성을 만들어 주는 데에도 실패했다. 세월호 참사는 연안여객 정책의 실패이며 동시에 중등교육의 실패, 이 두 가지가 결합된 것이다. --- 「에필로그」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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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어쩌다 아무도 내릴 수 없는 배가 되었나
사고가 일어난다. 그러나 그 사고가 사회적인 비극이 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2014년 4월 16일의 세월호 참사가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트라우마가 된 것은 그 사고 자체의 규모 때문이 아니다. 적어도 안전의 문제 앞에서는 모두 공평할 것이라는 상식,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최선을 다할 거라는 믿음이 완전히 붕괴된 사회임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토록 위험한 배가 왜 운행되고 있었으며, 심지어 학생들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