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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들의 속삭임 -베를린 사람들1
네게 강 같은 평화 -베를린 사람들2 귓가에 남은 음성 -베를린 사람들3 섬 -베를린 사람들4 열쇠 -베를린 사람들5 별들의 들판 -베를린 사람들6 해설 작가의 말 |
孔枝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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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따라와서 바라는 게 대체 뭐요?"
그가 물었다. 상대하고 싶지 않으니 빨리 용건을 끝내라는 기색을 감추지도 않겠다는 듯 성의없는 발음이었다. 여기까지, 따라와서, 바라는 거…… 시간이 많다면, 십년쯤 전으로 되돌린다면 그녀는 그 낱말들 하나하나를 가지고 그와 다툴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그랬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사흘, 무모하다면 무모하게 그녀는 이리로 온 것이었다. 그러면 뭐 하나, 기껏 그 시간에 내가 가서 무엇을 할 수 있겠나, 그런 생각은 이제 그만 하자고 그녀는 오래도록 생각해온 터였다. 그는 밤색 카디건에 빛바랜 청바지 차림이었다. 그녀는 좀 헐렁한 베이지색 바바리에 살구빛 스카프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이보다 앳되어 보이는 부드러운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래서인가 누군가 팔을 끄는 사람이 있으면 별 저항 없이 따라갈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그는 그녀에게 약간 등을 진 채로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물었다 이제 생의 굽이를 돌아 막 건너편 언덕에 도착해 안도하고 있는 나른함 같은 것이 그에게는 있었다. 해질 무렵 집집마다 피어오르던 흰 연기 같은 매콤한 냄새 …… 가을이었고 강가에는 어둠이 빨리 왔다. 그녀는 말하곤 했다 네가 옆에 있어도 이 시간이 되면 고아같이 느껴져…… 그때 그는 자신의 귀에 있던 이어폰을 떼어 내서 그녀의 귀에 가만히 끼워주고는 들고 있던 소형 워크맨을 눌렀다. Sometimes I feel like a motherless child…… ---pp. 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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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내가 작가라는 일이 감사하다.” 나는 거의 오년이 넘도록 글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엔 좀 쉬자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써지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고, 떨어지는 이파리와 부는 바람, 피는 꽃을 봐도 그저 멍했다. 사십년 만에 처음으로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던 시간들이었다. 무서웠다. 그렇게 일년이 지났다. 베를린에서 짐을 다 꾸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돌아온 이후, 비 뿌리고 우박 내리고 폭풍우 몰아쳐 음산한 베를린, 해 짧아 어두운 그 무뚝뚝한 도시가 나를 따라다녔다. 그냥 사는 일로 생각하고, 실은 조금 귀찮아하며 만났던 내 아이의 친구 엄마와 연변 출신 불법체류자와 낙오한 유학생과 망명자, 한국 생각만 하면 아직도 서러움에 복받치는 동포들, 간호사 광부 출신들, 대사관 직원들과 특파원들…… (…) 왜 소설을 쓰기 시작했던가, 왜 묘사하고 싶다고 생각했던가, 왜 저 사람의 웃음 뒤에 울음이 차오르고 있다고 느끼고야 말았던가? 나는 그런 통찰력을 받았던가? 왜 스무살 시절 엄마의 말을 듣지 않고 내 인생을, 감히 여자가 이 한국이란 땅에서, 나는 내 인생을 살겠어, 누구의 것도 아닌 내 인생을 내 인생으로 살아가겠어,라고 그토록 굳게, 돌이킬 수도 없이 결심했던가. 가끔씩 글이 풀리지 않으면 그런 쓰잘 데없는 회한들을 기억해내기도 했다. 가끔씩 혼자 책상 앞에 앉아 멍해 있으면, 나를 배반하지 않는 것은 글쓰기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그건 전적으로 내게 달린 일, 나의 감각을 인화해내고, 나의 경험을 완성해주어서, 내게 삶을 삶으로 명확하게 살도록 해주었으니까. 잘못되었을 경우 내 탓이라고 하면 되니까, 책임의 실체가 있고 능력의 부재가 뚜렷한 거니까. 최소한 운명이나 배신은 아닌 거니까…… 그러니 이제는 알게 된 것이다. 쓰는 일보다 사는 일이 더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두 개가 적어도 내 인생에 있어서는, 실은 처음부터, 갈라놓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말이다. 모든 인생길이 나침반처럼 이곳을 가리키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새삼 내가 작가라는 일이 감사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그러는데, 진심으로 감사하다. 2004년 초가을 운교리에서 공지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