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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장. 안식일과 첫째 계명 2장. 불안에 저항하다(출 20:12-17) 3장. 강요에 저항하다(신 5:12-14) 4장. 배타주의에 저항하다(사 56: 3-8) 5장. 과중한 일에 저항하다(암 8:4-8) 6장. 안식일과 열째 계명 |
Walter Bruegge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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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에서도 파라오의 시스템과 같은 곳에서 떠나야 하지만, 이 떠남은 지리적 떠남이 아니다. 도리어 이 떠남은 정서와 제의와 경제면에서 떠나는 것이다. 이 떠남은 그저 생각이 아니라 실제 행동이다. 따라서 네 번째 계명이 말하는 안식일 지킴은 파라오의 시스템을 뒤집어엎으시고 출애굽을 가능케 하신 첫 번째 계명의 하나님을 신뢰하는 행동이요, 두 번째, 세 번째 계명이 말하는 하나님, 곧 쉼의 하나님께 복종하는 행동이다. 안식일은 실제로 그런 시스템을 벗어 버림으로써 생산과 소비가 아니라 사랑이 오고 가는 이웃 사이의 사귐이 우리 삶을 규정하게 하는 것이다.
---「1장. 안식일과 첫째 계명」중에서 안식일은 탐욕의 힘을 깨뜨릴 실제적 바탕이요, 탐욕을 제한하는 데 강조점을 두고자 하는 공중의 의지를 만들어 낼 실제적 바탕이다. 안식일은 사람들이 폭넓게 공유하는 탐욕 행위를 그치는 것이다. 안식일은 각박하고 서두르는 일상의 경제활동을 통해 더 많은 상품을 얻는다 해도 그것들이 결국은 만족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침내 인정하게 될 시간과 공간과 에너지와 상상력을 제공해 준다. 안식일은 불안 전문이 되어 버린 사회의 구체적 관행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제한하거나, 그만두거나, 벗어 버리는 것이다. 안식일은 우리의 갈망에서 나와 다시 그 갈망을 더 키워 주는 불안을 물리치는 해독제다. 안식일은 우리가 소유가 아니라 선물로 산다는 것을 인정하는 마당이요, 우리가 상품을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이웃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신실한 관계에서 만족을 얻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마당이다. 우리는 복음서 전승을 통해 우리가 실제로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어버릴 수 있음을 안다(막 8:34-37). 결국 안식일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아시는 우리 아버지 앞에서, 아버지가 주시는 것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취하며 생명을 받아들이는 것이다(눅 12:30). ---「6장. 안식일과 열째 계명」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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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브루그만은 안식이 어떤 점에서 구약성경의 가장 중심되는 주제인지를 간결하고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안식일 계명과 안식하시는 하나님의 이미지는, 경제적 노동생산성 추구를 통해 자기구원을 맛보려는 노예 소유자나 지주들의 탐욕에 맞서는 항구적인 해방 기표다. 이 책은 노동자, 농민, 노예, 심지어 가축의 안식권을 보장하기 위해 출애굽 구원을 일으키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안식일 계명은 자기 노동을 통해, 혹은 예종(隸從)적인 지위에 처한 타자의 노동을 통해 안식과 구원을 맛보려는 파라오적 탐욕을 영구적으로 경계하고 분쇄한다. 심지어 자신의 몸값과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스스로를 가혹한 노동으로 몰아가는 현대인의 자기 착취적 노동 숭배와 생산성 신화를 질책한다. 이러한 점에서 안식일은 하나님의 불타는 사랑과 연민의 얼굴을 보여주지만, 인간의 죄성과 힘겹게 쟁변하시는 하나님의 겸손하신 저항 또한 보여준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구원의 열매는 평화로운 안식으로서의 영생이 아닌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안식을 명하시는 하나님께 순복하는 행복이 넘치기를! - 김회권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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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개신교, 특히 영미 교회에서 주일은 기독교 안식일이라고 부를 만큼 중요한 가치임에도,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주일 성수 개념은 점차 희박해져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월터 브루그만은 그만의 독특한 성경신학적 깊이와 현대적인 삶의 적용점을 가지고, 어찌하여 안식일이 단지 유대주의의 잔재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교회 정체성의 핵심 가치가 되며 인간을 위한 희망이 될 수 있는지를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저자는 “안식일은 저항이자 대안”이라는 한마디 말로, 현대의 세속 주류문화에 휩쓸려 가는 교회에 대안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회복시킬 수 있는 중요한 영적 자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 주고 있다. - 김지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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