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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사 : 트로이의 영웅들
2. 방랑자 : 오디세우스의 귀환 3. 시인 : 사포와 서정시인들의 시대 4. 정치가와 극작가 : 연극, 정치의 또다른 무대 5. 철학자 : 그리스인들이 본 세상의 원리 6. 예술가 : 조각 속에 표현된 이데아 7. 문명의 두 물줄기 : 그리스 로마 문명, 유대 기독교 문명을 만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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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을 주고받는 동안 유모와 에우리노메는 잠자리를 보살폈다. 서둘러 잠자리 준비를 마치자 유모는 자기 방으로 자러 가고, 에우리노메는 손에 관솔불을 밝혀들고 부부를 침실로 안내한 뒤 돌아갔다. 그 옛날 향기롭던 침대에 두 사람이 다시 함께 드니, 그 기쁨 어이 다 형언하겠는가.'
아마 이 부분이 사망 직전에 호메로스가 써놓은 마지막 행이었을 것이다. 서사시의 나머지 부분은 제자가 완성했을 것이다. <오디세이아> 1권의 첫 부분에서 눈빛을 반짝거리는 아테나는 텔레마코스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한다. "위대한 오디세우스가 아직 죽지 않았음을 네게 전하노라." 그 오디세우스는 아테나가 그렇게 말한 시점으로부터 20년이 지났을 때에도 죽지 않았다. 아니 27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죽지 않았다. 호메로스는 이 코믹하고, 잘 울고, 따뜻한 성품을 가진 오디세우스가 아주 먼 훗날에 깡패 같은 전쟁 영웅들과 소멸해가는 군인정신의 전통보다 더 생생하게 되살아나리라는 것을 미리 내다보았을까? 우리는 호메로스의 예술이 그려내는 커다란 반원형의 궤적을 한번 살펴본다. 그것은 트로이 해변의 전장에서 솟구친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하여 <오디세이아>의 마지막 장면인 평화로운 가정의 안락함으로 끝난다. 이런 궤적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평생에 걸쳐 발전해온 호메로스의 예술을 단 한 마디로 표현하는 방법이 있을까? 나는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아킬레우스(전쟁)의 분노는 페넬로페(가정)의 침대에서 진정되는 것이다. - 97~98pp '오디세우스의 귀환' 중에서 소크라테스는 땅딸막하고 못생긴 맨발의 남자였다. 그는 아고라를 어슬렁거리거나 구두장수 시몬의 가게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 툭 튀어나온 눈, 들창코, 비죽 나온 입, 불룩한 배 등은 신이나 영웅과는 거리가 먼 생김새였다. 석공의 아들로 태어났고 그래서 직업은 석공이었으며 따라서 중산층 출신의 장인이었다. 그는 민간 행사나 정치적 행사에 참가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일 외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질문을 던질 때도 고개를 푹 숙이고 이맛살을 찌푸리는 등 별로 매력적인 자세는 아니었다. '소크라테스 방식'으로 알려진 그의 질문 방식은 많은 시민들을 화나게 했다. 질문을 당하는 사람의 무식함이 서서히, 모든 사람이 앞에서 드러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유지들의 허풍에 구멍을 뚫는 일을 특히 즐긴 듯하다. 이런 우상 파괴적인 행동 때문에 그는 아테네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그래서 못생긴 얼굴의 소크라테스는 나타나는 곳마다 젊은이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파격적인 생활 태도의 록 스타가 10대 자녀를 둔 부모에게는 원수이듯이, 소크라테스의 질문 방법이 버릇없고 영리한 말대꾸와 동의어가 되면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성공 때문에 오히려 희생될 위기에 몰렸다. 어른들의 혐오증은 그의 주위에 몰려다니는 젊은이들을 더욱 환호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가 입을 뗄 때마다 젊은이들은 떠들썩한 환호성을 외쳐댔다. - 203~204pp '그리스인들이 본 세상의 원리' 중에서 --- 본문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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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전사-트로이의 영웅들
절세 미녀 헬레네를 사이에 두고 꼭 10년간 일진일퇴를 거듭한 트로이 전쟁. 그러나 트로이전에 참전한 용사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전쟁 기계가 아니었다. 아가멤논와 아킬레우스, 헥토르, 제우스와 아폴론 등 전쟁의 주역들은 오늘날의 시각으로 볼 때 낯설기도 하지만 놀랄 만큼 인간적이다. 또한 캐힐은 기원전 6세기에 벌어진 트로이전이 후대의 전쟁들, 심지어 2차 걸프전과 딕 체니, 럼스펠드의 전쟁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장 방랑자-오디세우스의 귀환 트로이전에 참전했던 영웅들은 대부분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아가멤논도 아킬레우스와 헥토르도, 전쟁의 원인이었던 파리스도 죽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10년 동안의 방랑 끝에 아내와 아들이 기다리는 고향 이타카로 무사히 귀환한다. 호메로스는 이 귀향을 통해 남자가 인생에서 거둘 수 있는 진정한 성공은 전쟁에서의 승리나 사회적 명예가 아니라 가족이 있는 따스한 집으로 돌아가는 것임을 암시한다. 3장 시인-사포와 서정시인들의 시대 고대 그리스는 서구 정치와 민주주의의 고향인 동시에 서정시와 문학, 그리고 음악의 발원지이기도 했다. 그리스인들에게 '음악이 없는 삶은 곧 죽음'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리스 시인들은 향연(심포지엄)이라는 파티에서 술과 담소를 나누며 디오니소스를 찬양했다. 향연의 단골 주제 중에는 미소년과 시인 사이의 동성애도 빠질 수 없었다. 4장 정치가와 극작가 - 연극, 정치의 또다른 무대 연극은 고대 그리스의 정치관념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무대였다. 탁월한 극작가 소포클레스는 가장 정치적인 연극 <오이디푸스 왕>을 통해서 아무리 뛰어나고 용감한 지도자라고 해도 본질적으로 숙명에 순종할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임을 보여준다. 5장 철학자-그리스인들이 본 세상의 원리 그리스 철학자들은 세상의 온갖 이치를 철학으로 설명하려고 애썼다. 그리스의 철학자들 중 소크라테스 전파의 학설들은 아인슈타인의 우주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여러 철학자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그리고 가장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철학자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었다. 6장 예술가-조각 속에 표현된 이데아 그리스 조각 중에는 똑바로 선 나체의 소년상 '쿠로이'가 단연 눈에 띄는 존재다. 영원한 젊음, 그리스적 이상향. 도달할 수 없는 본질을 상징하는 쿠로이는 후대의 조각들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심지어 20세기 들어 미 항공우주국(NASA)이 우주에 실어보낸 남녀의 그림에서도 쿠로이의 영향을 찾을 수 있을 정도다. 7장 문명의 두 물줄기 - 그리스 로마 문명, 유대 기독교 문명을 만나다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함락되며 찬란한 그리스 문명은 종말을 고하게 된다. 그러나 아테네의 전성기가 끝난 후에도 그리스 문명의 불씨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 불씨는 기독교 문명을 만나며 새로운 불꽃을 피워올린다. 그 결과, 그리스 문명과 기독교 문명은 오늘날 서구 문명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두 갈래의 큰 물줄기를 이루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