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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의 문 1
최인호
여백미디어 2004.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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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북경의 밤
목이 베인 말
비밀의 늪
싸우지 않는 병법
#의 수수께끼
제왕의 문
변방의 노래

저자 소개 1

崔仁浩

1945년 서울에서 3남 3녀 중 차남으로 출생한 최인호는 서울중·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서울고등학교(16회) 2학년 재학 시절인 1963년 단편 「벽구멍으로」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가작 입선하여 문단에 데뷔하였고, 1967년 단편 「견습환자」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다. 작가는 1970~80년대 한국문학의 축복과도 같은 존재였다. 농업과 공업, 근대와 현대가 미묘하게 교차하는 시기의 왜곡된 삶을 조명한 그의 작품들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하며 문학으로서, 청년 문화의 아이콘으로서 한 시대를 담당해 왔다.
1945년 서울에서 3남 3녀 중 차남으로 출생한 최인호는 서울중·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서울고등학교(16회) 2학년 재학 시절인 1963년 단편 「벽구멍으로」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가작 입선하여 문단에 데뷔하였고, 1967년 단편 「견습환자」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다. 작가는 1970~80년대 한국문학의 축복과도 같은 존재였다. 농업과 공업, 근대와 현대가 미묘하게 교차하는 시기의 왜곡된 삶을 조명한 그의 작품들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하며 문학으로서, 청년 문화의 아이콘으로서 한 시대를 담당해 왔다. 1975년부터 월간 샘터에 연재소설 『가족』을 연재하여 자신의 로마 가톨릭 교회 신앙과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가족』은 한 편 한 편이 짧은 연작소설이지만 우리 인생의 길고 긴 사연들이 켜켜이 녹아있는 한국의 ‘현대생활사’이다. 1990년대 들어서부터는 우리의 역사에 천착하며 한민족의 원대한 이상에 접목하는 날카로운 상상력과 탐구로 풍성한 이야기 잔치를 열어왔다.

1973년 스물여덟의 나이에 파격적으로 조선일보에 소설 『별들의 고향』을 연재하게 되었다. 이 소설은 신문에 연재될 때부터 화제가 되더니 단행본으로 묶여 나오자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또 얼마 뒤에는 이장호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져 크게 인기를 모은다. 이후 「술꾼」, 「모범동화」, 「타인의 방」, 「병정놀이」, 「죽은 사람」 등을 통해 산업화의 과정에 접어들기 시작한 한국사회의 변동 속에서 왜곡된 개인의 삶을 묘사한 최인호는 "1960년대에 김승옥이 시도했던 ‘감수성의 혁명’을 더욱 더 과감하게 밀고 나간 끝에 가장 신선하면서도 날카로운 감각으로 삶과 세계를 보는 작가"라는 찬사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호스티스 작가’, ‘퇴폐주의 작가’, ‘상업주의 작가’라는 달갑지 않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도 일간지와 여성지 등을 통해 『적도의 꽃』, 『고래 사냥』, 『물 위의 사막』, 『겨울 나그네』, 『잃어버린 왕국』, 『불새』, 『왕도의 비밀』, 『길 없는 길』과 같은 장편을 선보이며 지칠 줄 모르는 생산력과 대중적인 장악력을 보여준 최인호는 2001년 『상도』의 대성공 이후 제 2의 전성기를 맞으며 거듭나는 작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밖에도 군부독재와 급격한 산업화라는 1970년대의 특수한 시대적 상황에서 관심을 끌지 못하던 장르인 시나리오에도 관심을 가져 『바보들의 행진』『병태와 영자』『고래 사냥』 등을 통해 시대적 아픔을 희극적으로 그려냄으로써 그 만의 독특한 시나리오 세계를 구축하였다. 이렇게 꾸준한 관심의 결실로 1986년엔 영화 「깊고 푸른 밤」으로 아시아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하며, 분야들의 벽을 허물고 다양한 길을 보여주었다.

[샘터]지에 34년 6개월 간 연재한 '가족'을 건강상의 이유(2008년 발병한 침샘암 투병중)로 2010년 2월을 기해 연재중단을 선언하였다. 2010년 1월에는 죽음과 인생에 대해 성찰하는 내용을 담은 에세이집 『인연』을 출간하였고, 2010년 2월에는 어린이를 위한 동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를 선보였다. 2011년에는 투병 중 집필한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발표하며 등단 이후 왕성하게 활동을 했던 ‘제1기의 문학’과, 종교·역사소설에 천착했던 ‘제2기의 문학’을 넘어, ‘제3기의 문학’으로 귀착되는 시작을 알렸다. 이 소설로 2011년 동리목월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암 투병 중에 병세가 악화되어 2013년 9월 25일 오후 7시 10분에 향년 68세로 사망하였다.

최인호는 1970년대 청년 문화의 중심에 선 작가다. 세련된 문체로 ‘도시 문학’의 지평을 넓히며 그 가능성을 탐색한 그는 황석영, 조세희와는 또 다른 측면에서 1970년대를 자신의 연대로 평정했다. 1970~80년대 한국문학의 축복과도 같은 존재였다. 농업과 공업, 근대와 현대가 미묘하게 교차하는 시기의 왜곡된 삶을 조명한 그의 작품들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하며 청년 문학의 아이콘으로서 한 시대를 담당했다. ‘최연소 신춘문예 당선’, ‘최연소 신문 연재 소설가’, ‘작품이 가장 많이 영화화된 작가’, ‘책 표지에 사진이 실린 최초의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으며, 담배를 피우지 않는 대신 시거를 피웠다.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청계산에 오르는 생활 습관이 있었으며 컴퓨터로 작업한 글은 "마치 기계로 만든 칼국수" 같고 왠지 "정형 수술한 느낌"이 들어 지금도 원고지 위에 한 글자, 한 글자씩 새겼다.

소설집으로 『타인의 방』, 『잠자는 신화』, 『개미의 탑』, 『위대한 유산』 등이 있으며, 『별들의 고향』, 『도시의 사냥꾼』, 『잃어버린 왕국』, 『길 없는 길』, 『상도』, 『해신』, 『유림』,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등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수필집으로는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천국에서 온 편지』, 『최인호의 인생』 등이 있다. 작고 이후 유고집 『눈물』, 1주기 추모집 『나의 딸의 딸』, 법정스님과의 대담집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 문학적 자서전이자 최인호 문학의 풋풋한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작품집 『나는 나를 기억한다 1, 2』, 세 번째 유고집 『누가 천재를 죽였는가』, 네 번째의 유고집 『나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 싶다』와 5주기 추모작 『고래사냥』이 재간행되었다.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가톨릭문학상, 불교출판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동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13년 ‘아름다운 예술인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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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4년 11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287쪽 | 434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58660057

출판사 리뷰

▶중국에서 영구 출판금지된 금서, 《제왕의 문》
→ 소설 속에도 나오지만 이미 1990년대 초 벌써 중국의 정책당국은 고구려를 자기 역사 속의 변방으로 편입함으로써 언젠가는 일어날지도 모르는 국토분쟁의 여지를 사전에 없애려는 치밀한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나는 이미 《제왕의 문》을 통해 그러한 불길한 전조를 수차례 경고한 적이 있었으나 언제든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야 허둥대는 우리의 민족성은 이제 와서야 ‘고구려사는 우리의 역사’라고 공허한 메아리를 울리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의 주제인 광개토대왕의 ‘#’ 문양은 중국의 교활한 동북아정책의 허구를 깨트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일 것이다. 또한 나는 언젠가는 반드시 통일될 한민족의 통일국기가 광개토대왕의 문양인 ‘#’으로 될 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제목을 바꿔 《제왕의 문》으로 새로이 상재(上梓)하는 이 작품이 내 인생에서 내가 쌓아올리는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는 초석(礎石)의 탑돌이 되기를 소망한다. <작가의 머리글 중에서>
→ 《상도》와 같은 작품은 중국에 번역 소개되어 베스트셀러에 오를 만큼 작가 최인호는 중국내에서도 많은 독자를 갖고 있다. 하지만 소설 《제왕의 문》은 출판금지되어 중국내에서 출간, 판매될 수 없음.

▶작가가 강제출국과 입국금지조치를 당했던 문제의 소설
→1995년 11월 24일 오전 8시 30분, 나는 서울을 향해 출발하는 중국항공의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북경공항을 들어서고 있었다. 카운터에서 짐을 부치고 비행기 탑승을 위한 좌석표를 받아들고 X-레이를 통해 소지품을 투시하는 검사대를 지나서 마지막 통과절차인 출국심사대를 들어설 무렵이었다.
이 심사대만 통과하면 나는 무사히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출발할 수 있을 것이었다. 출국 절차에 소요된 시간은 30분이 지난 정각 9시. 비행기 출발시간이 9시 50분이었으니 아주 적당한 시간에 도착한 셈이었다.
중국어로 된 출국신고서를 들고 카키색 군복을 입은 공항담당 공안원에 이르렀을 때 나는 여권과 출국신고서를 내어밀었다. 의례적인 절차로 내 여권을 받아들고 내 이름과 여권번호를 컴퓨터에 조회하던 공안원의 얼굴이 갑자기 당황한 표정으로 바뀌어지고 말았다. 내 얼굴을 흘깃 본 공안원은 두세 번 더 내 여권을 컴퓨터에 조회해 보더니 아무래도 안되겠다는 듯 내게 중국말로 따라오라고 명령하였다.
지난 여름 이미 북경공항에서 무사히 출국심사대를 통과하고 비행기 탑승시간을 기다리다가 뒤늦게 공안원들에게 여권을 압수당했던 쓰라린 기억을 갖고 있던 나는 내 이름이 그들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작가의 후기 중에서>
→ 이후 작가는 1995년 중국당국에 의해 강제출국을 당하고, 1999년 12월까지 중국 비자가 나오지 않아 4년여 동안 중국 입국을 금지당했음.

▶미완의 작품을 10년만에 완결시켜 다시 상재한다
→ 내게 있어 《제왕의 문》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이 소설은 조선일보에 1991년부터 1993년까지 2년 6개월에 걸쳐 연재되었다. 그런데 미완성인 채로 끝내 놓고 있었다. 이 작품이 미완성 소설이라고 스스로 평가하고 있었던 것은 두 가지의 이유 때문이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고구려가 소설의 무대였고 그중에서도 광개토대왕이 소설의 숨겨진 주인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한번도 고구려의 유적이나 고구려의 옛 왕도를 답사하지 않고 있었으므로 소설에 리얼리티를 부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후 한여름인 1994년 7월에 중국 대륙은 물론 만주와 고구려의 옛 유적을 답사하는 여행을 시작하여 11월 만추에 이르러서야 대장정은 끝이 났는데,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뒤늦은 여행이 소설작업에는 더 많은 보탬이 되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답사여행 후, 11월 말부터 다음해 1월 중순까지 하루에 40장씩 1천5백 매에 가까운 원고를 새로 썼다. 지금까지 수십 권의 책을 썼지만 책을 펴낼 때 1천5백 매의 원고를 새로 써본 일은 전혀 없었던 일이었다.
두 번째로 내게 있어 《제왕의 문》이 미완성의 작품이라고 느껴지고 있었던 것은 신문에 연재할 때는 소설적 공간과 사실적 공간의 교차적 혼합으로 그 구성이 산만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결함이 있어 언젠가는 이를 바로잡으리라고 결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첫 번째 출간된 뒤 정확히 10년 만에 재출간을 할 때는 과감하게 소설적 공간을 대부분 삭제하고 원고지 800매 정도를 제거함으로써 전3권의 분량을 전2권으로 압축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10년 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이 작품에 대한 마음의 빚을 갚을 수 있었다. <작가의 머리글 중에서>

▶이미 90년대초부터 중국의 역사왜곡을 경고했던 소설
→ 이미 1990년대 초 벌써 중국의 정책당국은 고구려를 자기 역사 속의 변방으로 편입함으로써 언젠가는 일어날지도 모르는 국토분쟁의 여지를 사전에 없애려는 치밀한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나는 이미 《제왕의 문》을 통해 그러한 불길한 전조를 수차례 경고한 적이 있었다. <작가의 머리글 중에서>
→ 웬만한 사람들은 잘 알고 있겠지만 중국에서는 조선족의 문제에 대해서 아주 신경이 예민해 있다. 중국에서는 티베트와 위구르족, 그리고 조선족들에 대해서 삼대 위험 소수민족을 분류해 놓고 있다. 그중에서도 조선족은 배후에 강력한 국력을 지닌 한국이 모국(母國)으로 있으며 가까운 언젠가는 한국이 통일될 것이고, 그때에는 만주에 살고 있는 이백만 명의 조선족들에 의해서 독립과 국경문제가 야기될지도 모른다고 먼 미래에까지 사전 예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후기 중에서>

▶장장 4만킬로의 역사탐험, 고구려의 영광 재현한 역작
→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어떤 운명적인 만남이 아닐까 하고 생각되는데, 어쨌든 나는 # 문양의 비밀을 추적하기 위해서 전국의 방방곡곡을 다녀보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성산성에서부터 서울대학교 박물관, 여주, 영동, 그중에서도 중원지방이었던 충주는 대여섯 번에 걸쳐 답사하였으며 경주를 비롯하여 김해, 양산 같은 남해지방까지 서너 차례에 걸쳐 국내만 해도 약 1만 킬로나 답사를 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중국으로의 ‘#’ 문양을 좇는 내 추적여행은 좀더 깊숙이 중국 대륙의 내부로 번져 나갔던 것이었다. 국내성보다 더 오랜 고구려의 왕도였던 졸본부여의 환인(桓仁), 고조선의 유적지였던 심양, 대련을 비롯 발해의 요람터였던 흑룡강 부근의 광활한 지역, 그리고 민족의 성산(聖山)인 백두산, 백두산의 정상에 있는 하늘의 우물인 천지에 이르기까지 나는 3차에 걸쳐서 거의 3만 킬로에 걸친 답사여행을 했었다. 태어나서 나는 그처럼 많은 곳을, 그처럼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또한 그처럼 고생스럽게 여행했던 적은 없었다.

▶해방둥이 작가가 해방60주년을 앞두고 역사에 바치는 헌사
→《제왕의 문》은 고구려, 그중에서도 우리나라가 낳은 가장 뛰어난 영주, 동양의 알렉산더 ‘광개토대왕’의 영광에 관한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더구나 내년은 광복 60주년. 해방된 해에 태어난 해방둥이인 나로서는 고구려와 광개토대왕의 영광을 기리는 이 소설이 분단된 조국을 하나로 통일케 하는 작은 초석이 되어주기를 소망한다. 또한 감히 백제와 고구려에 관한 소설을 씀으로써 위대한 선인(先人)이었던 조상들에 대한 후손으로서의 빚을 어느 정도 갚았다고 생각한다.
우연히 발견한 고구려 토기에 새겨진 낙서와도 같은 ‘#’ 문양에 대해서 어째서 내가 그처럼 집요한 추적을 벌이게 되었는지 나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나는 지금껏 수많은 작품을 통해 각양각색의 탑돌을 차곡차곡 쌓아왔다. 앞으로도 내가 쉼 없이 쌓는 탑돌이 내 인생을 통해서 어떤 탑파(塔婆)의 모습으로 형상화될지는 나 자신도 모른다.
그러나 매번 쌓아올리는 그 탑돌 속에 내가 혼신의 힘을 다해 내 몸을 불태운 진신(眞身)의 사리(舍利)들을 봉안할 수 있다면 나는 마침내 수승(殊勝)한 다보탑(多寶塔)을 쌓아올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작가의 머리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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