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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의 밤
목이 베인 말 비밀의 늪 싸우지 않는 병법 #의 수수께끼 제왕의 문 변방의 노래 |
崔仁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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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영구 출판금지된 금서, 《제왕의 문》
→ 소설 속에도 나오지만 이미 1990년대 초 벌써 중국의 정책당국은 고구려를 자기 역사 속의 변방으로 편입함으로써 언젠가는 일어날지도 모르는 국토분쟁의 여지를 사전에 없애려는 치밀한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나는 이미 《제왕의 문》을 통해 그러한 불길한 전조를 수차례 경고한 적이 있었으나 언제든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야 허둥대는 우리의 민족성은 이제 와서야 ‘고구려사는 우리의 역사’라고 공허한 메아리를 울리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의 주제인 광개토대왕의 ‘#’ 문양은 중국의 교활한 동북아정책의 허구를 깨트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일 것이다. 또한 나는 언젠가는 반드시 통일될 한민족의 통일국기가 광개토대왕의 문양인 ‘#’으로 될 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제목을 바꿔 《제왕의 문》으로 새로이 상재(上梓)하는 이 작품이 내 인생에서 내가 쌓아올리는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는 초석(礎石)의 탑돌이 되기를 소망한다. <작가의 머리글 중에서> → 《상도》와 같은 작품은 중국에 번역 소개되어 베스트셀러에 오를 만큼 작가 최인호는 중국내에서도 많은 독자를 갖고 있다. 하지만 소설 《제왕의 문》은 출판금지되어 중국내에서 출간, 판매될 수 없음. ▶작가가 강제출국과 입국금지조치를 당했던 문제의 소설 →1995년 11월 24일 오전 8시 30분, 나는 서울을 향해 출발하는 중국항공의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북경공항을 들어서고 있었다. 카운터에서 짐을 부치고 비행기 탑승을 위한 좌석표를 받아들고 X-레이를 통해 소지품을 투시하는 검사대를 지나서 마지막 통과절차인 출국심사대를 들어설 무렵이었다. 이 심사대만 통과하면 나는 무사히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출발할 수 있을 것이었다. 출국 절차에 소요된 시간은 30분이 지난 정각 9시. 비행기 출발시간이 9시 50분이었으니 아주 적당한 시간에 도착한 셈이었다. 중국어로 된 출국신고서를 들고 카키색 군복을 입은 공항담당 공안원에 이르렀을 때 나는 여권과 출국신고서를 내어밀었다. 의례적인 절차로 내 여권을 받아들고 내 이름과 여권번호를 컴퓨터에 조회하던 공안원의 얼굴이 갑자기 당황한 표정으로 바뀌어지고 말았다. 내 얼굴을 흘깃 본 공안원은 두세 번 더 내 여권을 컴퓨터에 조회해 보더니 아무래도 안되겠다는 듯 내게 중국말로 따라오라고 명령하였다. 지난 여름 이미 북경공항에서 무사히 출국심사대를 통과하고 비행기 탑승시간을 기다리다가 뒤늦게 공안원들에게 여권을 압수당했던 쓰라린 기억을 갖고 있던 나는 내 이름이 그들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작가의 후기 중에서> → 이후 작가는 1995년 중국당국에 의해 강제출국을 당하고, 1999년 12월까지 중국 비자가 나오지 않아 4년여 동안 중국 입국을 금지당했음. ▶미완의 작품을 10년만에 완결시켜 다시 상재한다 → 내게 있어 《제왕의 문》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이 소설은 조선일보에 1991년부터 1993년까지 2년 6개월에 걸쳐 연재되었다. 그런데 미완성인 채로 끝내 놓고 있었다. 이 작품이 미완성 소설이라고 스스로 평가하고 있었던 것은 두 가지의 이유 때문이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고구려가 소설의 무대였고 그중에서도 광개토대왕이 소설의 숨겨진 주인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한번도 고구려의 유적이나 고구려의 옛 왕도를 답사하지 않고 있었으므로 소설에 리얼리티를 부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후 한여름인 1994년 7월에 중국 대륙은 물론 만주와 고구려의 옛 유적을 답사하는 여행을 시작하여 11월 만추에 이르러서야 대장정은 끝이 났는데,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뒤늦은 여행이 소설작업에는 더 많은 보탬이 되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답사여행 후, 11월 말부터 다음해 1월 중순까지 하루에 40장씩 1천5백 매에 가까운 원고를 새로 썼다. 지금까지 수십 권의 책을 썼지만 책을 펴낼 때 1천5백 매의 원고를 새로 써본 일은 전혀 없었던 일이었다. 두 번째로 내게 있어 《제왕의 문》이 미완성의 작품이라고 느껴지고 있었던 것은 신문에 연재할 때는 소설적 공간과 사실적 공간의 교차적 혼합으로 그 구성이 산만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결함이 있어 언젠가는 이를 바로잡으리라고 결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첫 번째 출간된 뒤 정확히 10년 만에 재출간을 할 때는 과감하게 소설적 공간을 대부분 삭제하고 원고지 800매 정도를 제거함으로써 전3권의 분량을 전2권으로 압축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10년 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이 작품에 대한 마음의 빚을 갚을 수 있었다. <작가의 머리글 중에서> ▶이미 90년대초부터 중국의 역사왜곡을 경고했던 소설 → 이미 1990년대 초 벌써 중국의 정책당국은 고구려를 자기 역사 속의 변방으로 편입함으로써 언젠가는 일어날지도 모르는 국토분쟁의 여지를 사전에 없애려는 치밀한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나는 이미 《제왕의 문》을 통해 그러한 불길한 전조를 수차례 경고한 적이 있었다. <작가의 머리글 중에서> → 웬만한 사람들은 잘 알고 있겠지만 중국에서는 조선족의 문제에 대해서 아주 신경이 예민해 있다. 중국에서는 티베트와 위구르족, 그리고 조선족들에 대해서 삼대 위험 소수민족을 분류해 놓고 있다. 그중에서도 조선족은 배후에 강력한 국력을 지닌 한국이 모국(母國)으로 있으며 가까운 언젠가는 한국이 통일될 것이고, 그때에는 만주에 살고 있는 이백만 명의 조선족들에 의해서 독립과 국경문제가 야기될지도 모른다고 먼 미래에까지 사전 예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후기 중에서> ▶장장 4만킬로의 역사탐험, 고구려의 영광 재현한 역작 →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어떤 운명적인 만남이 아닐까 하고 생각되는데, 어쨌든 나는 # 문양의 비밀을 추적하기 위해서 전국의 방방곡곡을 다녀보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성산성에서부터 서울대학교 박물관, 여주, 영동, 그중에서도 중원지방이었던 충주는 대여섯 번에 걸쳐 답사하였으며 경주를 비롯하여 김해, 양산 같은 남해지방까지 서너 차례에 걸쳐 국내만 해도 약 1만 킬로나 답사를 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중국으로의 ‘#’ 문양을 좇는 내 추적여행은 좀더 깊숙이 중국 대륙의 내부로 번져 나갔던 것이었다. 국내성보다 더 오랜 고구려의 왕도였던 졸본부여의 환인(桓仁), 고조선의 유적지였던 심양, 대련을 비롯 발해의 요람터였던 흑룡강 부근의 광활한 지역, 그리고 민족의 성산(聖山)인 백두산, 백두산의 정상에 있는 하늘의 우물인 천지에 이르기까지 나는 3차에 걸쳐서 거의 3만 킬로에 걸친 답사여행을 했었다. 태어나서 나는 그처럼 많은 곳을, 그처럼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또한 그처럼 고생스럽게 여행했던 적은 없었다. ▶해방둥이 작가가 해방60주년을 앞두고 역사에 바치는 헌사 →《제왕의 문》은 고구려, 그중에서도 우리나라가 낳은 가장 뛰어난 영주, 동양의 알렉산더 ‘광개토대왕’의 영광에 관한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더구나 내년은 광복 60주년. 해방된 해에 태어난 해방둥이인 나로서는 고구려와 광개토대왕의 영광을 기리는 이 소설이 분단된 조국을 하나로 통일케 하는 작은 초석이 되어주기를 소망한다. 또한 감히 백제와 고구려에 관한 소설을 씀으로써 위대한 선인(先人)이었던 조상들에 대한 후손으로서의 빚을 어느 정도 갚았다고 생각한다. 우연히 발견한 고구려 토기에 새겨진 낙서와도 같은 ‘#’ 문양에 대해서 어째서 내가 그처럼 집요한 추적을 벌이게 되었는지 나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나는 지금껏 수많은 작품을 통해 각양각색의 탑돌을 차곡차곡 쌓아왔다. 앞으로도 내가 쉼 없이 쌓는 탑돌이 내 인생을 통해서 어떤 탑파(塔婆)의 모습으로 형상화될지는 나 자신도 모른다. 그러나 매번 쌓아올리는 그 탑돌 속에 내가 혼신의 힘을 다해 내 몸을 불태운 진신(眞身)의 사리(舍利)들을 봉안할 수 있다면 나는 마침내 수승(殊勝)한 다보탑(多寶塔)을 쌓아올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작가의 머리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