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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양반이 한 푼도 못 되는구려
허생전 범의 꾸중 열녀함양박씨전 방경각외전 머리말 말 거간전 예덕 선생전 민 노인전 양반전 김 신선전 광문자전 우상전 2부 옛것을 배우랴 새것을 만들랴 중국에서 마음 맞는 벗을 사귀다 옛것을 배우랴 새것을 만들랴 글은 뜻을 나타내면 그만이다 말똥구리의 말똥 덩이 뒷동산 까마귀는 무슨 빛깔인고 사흘을 읽어도 지루하지 않은 북학의 밤길의 등불 같은 책 제 몸을 해치는 것은 제 몸속에 있으니 다섯 아전의 큰 의리 흥학재를 지은 뜻 겨울 눈 속 대나무 나를 비워 남을 들이네 3부 나는 껄껄 선생이라오 천하 사람의 근심을 앞질러 근심하시오 나는 껄껄 선생이라오 나더러 오랑캐라 하니 《열하일기》에 아직도 시비라니 도로 네 눈을 감아라 개미와 코끼리 돼지 치는 이도 내 벗이라 나의 벗 홍대용 우리 고전 깊이 읽기 ㆍ연암 박지원의 삶 ㆍ연암의 시대, 그리고 우리 시대의 연암 사상 ㆍ《연암 산문집》에 관하여 |
朴趾源, 호 : 연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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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른바 사대부라는 게 대체 무엇인가? 오랑캐 땅에 태어나서 스스로 사대부라며 으스대는 꼴이라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바지와 저고리를 온통 흰색으로 차려입으니 이것이야말로 상복이 아닌가? 머리는 또 어떠한가? 이리저리 쥐어 묶어 삐쭉하게 쪼았으니 이거야말로 남방 오랑캐의 북상투가 아닌가? 도대체 무엇이 예법이란 말인가? 번오기는 사사로는 원수를 갚기 위하여 자기 머리를 아끼지 않았고, 무령왕은 자기 나라를 강하게 하기 위하여 오랑캐 옷 입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거늘, 지금 명나라를 위하여 복수를 한다고 하면서 고작 그 머리칼 한 오리마저 아끼겠단 말인가? 장차 전장에 나가 말을 달리고 칼을 내두르고 창을 쓰고 돌을 날릴 궁리를 한다면서 그놈의 넓은 소매를 그대로 두는 것이 너희들이 말하는 이른바 예법이란 말인가?
--- p.25 「허생전」 중에서 네가 세상 이치를 펴 늘어놓을 때는 걸핏하면 하늘이 어쩌니 저쩌니 하지마는 참말 하늘이 마련한 대로 본다면 범이나 사람이나 별반 다를 바 없는 천지만물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 천지만물이 살아나가는 어진 도리에서 본다면 범이나 메뚜기나 누에나 벌이나 개미나 모두 다 사람과 함께 같이 살기 마련이지, 서로 등지고 지낼 터수가 아니렷다. --- p.38~39 「범의 꾸중」 중에서 선비는 양반이라고 부르는데 잇속이 그보다 더 큰 것은 없다. 밭도 갈지 않고, 장사도 하지 않는다. 그저 책이나 조금 훑어 읽으면 크게는 문과에 급제하고, 작게는 진사 정도는 떼어 놓은 당상이다. 문과의 홍패로 말하자면 길이가 두 자에 지나지 않지만 온갖 물건이 전부 갖추어 있는 만큼 그야말로 돈더미나 다를 바 없다. 진사만 해도 서른 살쯤에는 첫 벼슬을 하게 되는데 조상 덕에 훌륭한 벼슬자리에 앉을 수 있고 더구나 남쪽 큰 고을의 군수 자리에도 오를 수 있다. 일산 바람에 귀밑이 희어지고, 방울 소리에 대답하는 하인 목소리에 뱃가죽이 허예지며, 집 안에 고운 기생을 두고, 뜰아래 두루미를 기른다. --- p.86~87 「양반전」 중에서 대체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나는 어찌할 것인가? 그만두어야 하는가? 아! 옛것을 배우는 사람은 형식에 빠지는 것이 병이고, 새것을 만들어 내는 사람은 법도가 없는 것이 탈이다. 만약에 옛것을 배우더라도 변통할 줄 알고, 새것을 만들어 내더라도 옛것에 뿌리를 둔다면 오늘의 글이 옛글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 p.128~129 「옛것을 배우랴 새것을 만들랴」 중에서 아하! 저 까마귀를 보건대 날개보다 더 검은빛이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언뜻 보면 엷은 황색도 돌고 다시 보면 연한 녹색으로 반짝인다. 햇빛에서는 자줏빛으로 빛나다가 눈이 아물아물해지면서 비취색으로 바뀐다. 그러니까 푸른 까마귀라 일러도 좋고 붉은 까마귀라 일러도 또한 좋다. 사물에는 일정한 빛깔이 없으나 내가 먼저 눈으로 단정해 버린 것이다. 눈으로 단정하는 것이야 그래도 낫지마는 보지도 않고 먼저 마음속으로 단정해 버린 것은 또 어쩌겠는가? --- p.139~140 「뒷동산 까마귀는 무슨 빛깔인고」 중에서 돌이켜 생각하면 오십 년 동안 항상 끼니를 거르고 입 주체를 못하던 변변찮은 주제가 돌연 임금의 은혜를 한껏 입어서 이제는 부잣집 할아버지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뜰 한복판에 큰솥을 수십 개 걸어 놓고 굶주려 비슬비슬하는 천사백여 명의 백성들을 청해다가 한 달에 세 차례씩 즐거운 자리를 가집니다.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습니다. 세상에 어떤 즐거움이 이만하겠습니까? --- p.180~181 「나는 껄껄 선생이라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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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깨우려 쓴 기운 펄펄한 글,
새로운 시대 새로운 생각을 담아 낸 연암의 글을 《연암 산문집》 한 권에 담았다 가진 것이 많은 이들은 새로운 시대를 두려워하는 걸까? 연암이 살던 조선 후기, 양반들은 청나라를 중심으로 급격하게 달라진 국제 질서와 상공업 중심으로 옮겨 가던 사회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고, 어려운 백성들의 삶을 외면했다. 연암 박지원은 노론 명문가에서 태어난 양반이었지만 이들과 달랐다. 영조의 신임을 받던 할아버지, 어려서부터 두각을 나타낸 문장력, 연암이 이것들을 출세하는 데 활용했다면 아마 부와 권력을 쥐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암은 다른 길을 택해 새로운 지식인이 되었다. 조선 후기 지식인들은 새 시대가 온 만큼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눈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평생 글쓰기에 매진했던 연암은, 이러한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시선을 문학작품에 담아냈다. 뛰어난 문장력으로 써 내려간 연암의 작품들에는 ‘옛것을 그대로 좇지만 말고 오늘에 맞게 새롭게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녹아 있다. 널리 알려진 소설 ‘허생전’, ‘양반전’, ‘범의 꾸중’ 같은 작품들은 물론, 비평글, 상소문, 편지글들이 《연암집》으로 묶여 지금까지 전해 온다. 보리 청소년 고전 ‘만남’ 시리즈에서는 청소년들이 재미있게 읽기 쉬운 소설들과 연암 사상의 핵심이 될 만한 산문들을 모아 《연암 산문집》으로 펴냈다. 연암의 붓끝에서 쓰여진 생기 넘치는 글, 살아 움직이는 옛사람들 청소년들이 읽기 쉬운 말로 다시 쓴 《연암 산문집》 연암 박지원은 명분보다 실리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보통 사람들이 살고 일하고 싸우고 있는 현실 속에서 진리를 찾으려 했다. 그리고 글을 쓸 때 문장을 우아하게 쓰는 것보다 뜻을 잘 전달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았다. 낡은 문체를 버리고 사실적이면서도 생동감이 넘치는 자신만의 문체로 글을 썼다. 그래서 연암의 작품들에는 중국 고사 속 인물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이 생생하게 등장한다. ‘양반전’의 몰락한 양반, ‘범의 꾸중’의 북곽 선생은 도덕과 윤리를 내세우면서도 힘없는 백성을 수탈하는 양반들 모습 그대로다. ‘허생전’의 변 씨와 ‘양반전’의 부자는 당시 상공업으로 부를 모은 새로운 계층이다. 생계를 책임지지 않고 공부만 하는 허생을 다그치던 허생의 아내는, 조선 후기 달라져 가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허드렛일을 묵묵히 하는 엄 행수와 소탈하고 따뜻한 성품을 지닌 거지 광문이, 뛰어난 재주를 지녔던 역관 이언진도, 연암이 붓끝으로 살려내 우리와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북녘 학자 홍기문이 한문 원전을 쉬운 우리말로 옮기고 토박이말을 잘 살려 읽는 맛이 나는 글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현직 국어교사 박종오가 지금 우리 청소년들이 읽기 쉽도록 어려운 말들을 덜어 내고, 이해를 돕기 위해 자세한 설명을 달았다. 날마다 새로워지는 2025년, 지금 우리가 되짚어 보아야 할 연암의 사상 연암이 살던 때에서 250년이나 지나 세상은 말도 못할 정도로 달라졌지만, 2025년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은 그때와 닮아 있기도 하다. 우리는 여전히 강대국들의 압박 속에 있고, 가진 자들은 새로운 세상을 두려워하며 낡은 가치관을 고집하고 있으며, 낮은 자리에 있는 이들의 삶은 여전히 고달프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더욱 복잡해졌고, 변화의 속도는 너무 빨라 어지러울 정도다. 날마다 새로워지는 이 세상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바로 지금 《연암 산문집》을 통해 연암 박지원이 내놓은 해답을 들어 보자. 연암은 늘 변화하는 현실에 발을 딛고 열린 자세로 다른 생각과 가치를 인정하며, 자기를 성찰하고 다른 이를 존중하며 공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연암 사상은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