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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SF의 거장] 한국 SF 대표작가 김보영의 신작 소설집. 총 9편의 SF는 우리에게 서늘한 경고를 하기도 하고, 슬픔을 위로하기도 하며, 죽음의 의미를 성찰하게도 한다. 멸망이라는 무서운 결말도 그가 그리면 아름답고 경이로워진다. 표제작은 The Best of World SF 선정작이자 로제타상 후보작이기도 하다. - 소설/시 PD 김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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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눈이 내리다
저예산 프로젝트 너럭바위를 바라보다 껍데기뿐이라도 좋으니 느슨하게 동일한 그대 까마귀가 날아들다 새벽 기차 귀신숲이 내리다 봄으로 가는 문 작가의 말 | 감사의 말 | 수록 작품 발표 지면 |
J. 김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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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상이란 해류에 몸을 맡기며 떠다니다 콧잔등에서 반짝이는 발광포를 먹을 것인 줄 알고 온 작고 굶주린 것들을 입을 벌려 삼키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이처럼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이면 우리도 한데 모여 축제를 벌이지 않을 수 없다.
--- p.11 「고래눈이 내리다」 중에서 믿게 할 것. 당신이 세상의 주인공이라고. 영웅적인 선택도 바보 같은 선택도 할 수 있는, 누구보다도 중요하고 특별한 사람이라고. --- p.77 「저예산 프로젝트」 중에서 “못 지킬 것 같다고요?” “네. 그렇잖아요. 바위는 쓸모가 없어요. 먹지도 못하고. 바위가 없으면 그 공간을 더 가치 있게 쓸 수 있겠죠. 다른 동네에서 우리더러 이기적이라고 욕해요.” “다 아는 이야기네요. 그래도 오실 거죠?” “그래야지요.” --- p.84 「너럭바위를 바라보다」 중에서 “서버에서 바로 입맛을 조정해줬나 봐. 이러면 어떻게 요리하든 상관없지 않았을까?” “그래도 요리하지 않았으면 상상할 수 없었을 거야.” “그랬을지도.” --- p.102 「껍데기뿐이라도 좋으니」 중에서 나는 그렇게 삶과 죽음 사이에 놓였다. 부모님이 사망신고를 하고 내가 회생 신청을 하지 않는 사이, 내 신분은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존재와 비존재를 확률적으로 오가는 양자처럼 유예 상태에 놓였다. --- p.124 「느슨하게 동일한 그대」 중에서 염라대왕께서는 네가 죽으면 새 저승사자로 데려오라고 하셨어. 전부터 너를 눈여겨보셨다더라고. 나는 됐다고 했지. 젊은 나이에 목숨을 버리는 패기 없는 영혼을 데려와서 뭐에 쓰겠느냐고. 물론 새 직원 구하기가 쉽지는 않아. 자살한 영혼은 어두컴컴하고, 사고나 타살로 죽은 놈은 원한이 깊고, 수명을 다해 죽은 놈은 비리비리하단 말이지. 그런데 나는 지금 다른 의미로 너를 데려가기 싫어졌어. 너 같은 인간은 저승에 오려면 아직 한참 멀었어. 넌 이승에서 바스라지도록 살아야 해 --- p.179 「까마귀가 날아들다」 중에서 어린 마음에도 나는 이 모든 것을 상상했고 그 상상은 신화적인 면은 있되 허무맹랑하지는 않았다. 그는 우리보다 먼저 종말에 이를 것이고 그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나는 필연적인 종말을 향해 달리는 그 힘없는 사람을 두려워했고 내가 알기로는 우리 모두가 그랬다. --- p.193 「새벽 기차」 중에서 나는 버짐이 피고, 갉아 먹히고, 녹슬고, 뭉글뭉글해지고, 썩고, 벌레 먹고, 악취를 풍겼다. 사람들의 행복한 웃음은 투덜거림으로, 투덜거림은 욕지기로, 욕지기는 공포로 변해갔다. 다시 아침이 온다. 내 귀신 들린 아침이. --- p.205 「귀신숲이 내리다」 중에서 문은 말 그대로 문이었다. 어딘가로 뚫린 직사각형의 통로였다. 카메라에도 찍히지 않았고 거울에도 비치지 않았다. 뒤로 돌아가거나 고개를 빼꼼 내밀어 보면 또 아무것도 없었다. --- p.262 「봄으로 가는 문」 중에서 |
“슬픔이든, 아픔이든, 여기에서는 모두 같아.
모두가 아름다운 눈송이가 되지.” 낯선 세계의 경이, 거기엔 오래 기다린 당신이 있다 버려짐으로써 쓸모를 찾고 떠남으로써 재회하는 정교한 아이러니 우리의 끝, 혹은 새로운 시작의 예감 김보영은 SF를 본격 문학의 범주에 드는 보편 소설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대표적인 작가이며, SF의 기본 시학에 충실한 작가이다. (한국현대문학 연구자 우미영) 우생학, 로봇, AI 등 종의 진화를 뒤집어서 장애, 질병, 그리고 퀴어적 세계로 확장시킨다. 그야말로 페미니스트SF라 부를 만하다. (문학평론가 허윤) “가장 SF다운 SF를 쓰는 작가”, 2000년대 한국 SF에 영감을 불어넣은 작가라 독자와 평단이 입을 모으는, 소설가 김보영의 신작 단편집 《고래눈이 내리다》가 독자를 만날 채비를 마쳤다. 2010년대 한국 SF의 흥행에 관한 질문에 “우리는 여기 늘 있었는데, 최근에야 많은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온”(《한겨레》 2019년 7월 27일 자) 것이라고 설명하는 그는, 지난 20여 년간 듀나, 배명훈, 정세랑 등과 함께 대중 독자의 가시권 안에서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며 현재의 SF를 보편 소설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주역 중 한 명이다. 국내뿐 아니라 미국의 대표적인 SF 웹진 〈클락스월드〉에 단편소설 〈진화 신화〉(박지현·고드 셀러 옮김)를 발표하고 2021년 《종의 기원과 다른 이야기들》(박선영 엮음, 김소라·이정민 외 옮김)로 한국 SF 작가 최초로 전미도서상 번역문학 부문 후보에 오르는 등 우리 문학의 저력을 세계에 보여왔다. 이번 소설집에는 작가가 지난 5년여간 발표해온 신작 단편 8편과 2013년 발표한 〈새벽 기차〉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심해나 우주, 서버, 이세계 등 낯선 공간을 무대로 이질적인 동물과 기계 혹은 데이터 인격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들이지만, 인물 저마다의 얼굴은 우리가 아는 누군가와 닮았다. 소박하고 용감한 이들의 목소리로 제시되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이 되어 돌아온다. 기계와 유기 생명체, 동물과 인간의 구분을 허물고 인간과 문명 중심의 사고를 뒤집는 우리 시대 가장 급진적인 상상력이 이번 책에도 가득 담겼다. 고정된 관념을 전복하고 가치의 기준을 질문하다 내 기준에서 그 사람은 죽었다. 탄소, 산소, 수소, 그 외의 온갖 미량원소로 분해되어 저장탱크에 담겨 사라졌다.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른 전송기에서 나와보았자 같은 기억과 몸을 가진 다른 사람일 뿐이다. (〈느슨하게 동일한 그대〉, p. 116) “바위는 못 지킬 거예요.” 내가 예지 씨에게 속삭였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너럭바위를 바라보다〉, p. 90) 과학적이고도 신화적인 세계에서 신선한 반전들을 선사하며 SF의 경이감을 전해온 김보영 소설의 특장은 이번 소설집에서도 빛을 발한다. 순간이동을 다룬 〈느슨하게 동일한 그대〉는 익숙한 ‘테세우스의 배’ 역설을 호출하면서도 동시에 신앙과 교리를 초과하는 신념과 신뢰의 문제를 제시한다. 나의 목숨은 하찮게 느껴져도 타인을 위한 간절한 마음만큼은 진심인 이들이 결국 이러한 믿음으로 서로를 구원하게 되는 역설은 산뜻한 감동을 전한다. 한편, 〈너럭바위를 바라보다〉에서는 인류가 서버로 모두 이주한 뒤의 세계에서 데이터 부족의 문제로 세계의 일부가 지워져야 한다면 그 대상은 무엇이어야 할지를 묻는다. 쓸모를 증명하지 못해 지워질 위기에 처한 바위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 가망 없는 싸움 속에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는 이들을 통해 우리가 생각하는 ‘가치’의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도록 한다. 어제 버려진 것들의 가치를 묻고 오늘 살아나는 것들의 힘을 믿다 “저 위의 주민들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이제 세상이 조금은 좋아지려나요? 흙 위를 뒤덮은 괴물들이 지금 다 사라지고 나면, 썩지 않는 것을 먹고 죽는 아이들도, 그런 것에 목이 감겨 살이 짓물러가며 죽는 아이들도 사라지려나요?” (〈고래눈이 내리다〉, p. 22) 실상 지구에 인간만 한 자연재해는 없다. 원전이 터져 방사능으로 뒤덮인 곳이나 태풍으로 초토화된 지역, 폭탄으로 유리질처럼 녹아내린 도시마저도, 사막처럼 황량해지는 대신 울창한 숲이 들어선다. 치사량의 방사능이든 맹독성 낙진이든, 그 어떤 재해도 인간만큼 파멸적이지 않다. 재해는 오히려 지상 최대의 재난인 인간이 떠나가게 하여 동식물의 낙원을 되돌리곤 한다. (〈귀신숲이 내리다〉, p. 226) 심해어나 기계 생명체와 같은 비인간 존재가 소설의 중심이 될 뿐 아니라 가장 현명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도 김보영 소설의 매력을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대상으로 등장한다. “썩지 않는 물질들을 배설하는” 인간에 의해 깊은 바다마저 병들었다고 해도, 물이 따뜻해지고 떼죽음이 일어난다 해도, 끝내 모든 종말 끝에 회복될 지구의 힘이 느껴지는 〈고래눈이 내리다〉는 이 글을 읽는 우리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기묘한 통쾌감이 느껴진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온갖 변종 균사체로 뒤덮인 채 버려진 우주 거주구가 지구로 추락할 때, 모든 것이 불타고 녹아버릴 파멸 이후에 새롭게 피어날 존재들을 기대하게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김보영은 이러한 재생과 회복의 가능성을 깊은 바닷속에 내리는 눈송이로, 혹은 끈질기게 대지를 뒤덮는 산호와 버섯의 군락으로 그려내며 지독하게 아름다운 세계로 펼쳐 보인다. 떠난 이에게는 다른 결말을 주고 남은 사람은 깊은 위안을 얻다 나는 사랑한다는 말을 유서 마지막에 덧붙였다. 그때 퇴원하면 아이들과 그간 못 갔던 여행도 실컷 하기로 했었다. 어릴 때 한 번 가고 다시 못 간 예쁜 산장이 있는데 거기 가서 꽃구경도 맘껏 하자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이야기의 결말도 짓기 위해 여기를 그 산장처럼 꾸몄다. 비록 모든 것이 겉보기만 그럴듯하다 해도……. (〈껍데기뿐이라도 좋으니〉, p. 108) 소설은 또 다른 현실이기에, 떠난 이에게 다른 결말과 인생을 줄 수도 있지요. 그것으로 나와 당신을 위로할 수도 있지요. (작가 인터뷰, 〈“늘 고마워요. 저는 계속 쓰겠지요.”〉 중에서) 이번 책에서 뒤집히는 또 한 가지의 관념은 ‘죽음’이다. 죽은 옛 동료가 끝내 출시하지 못했던 어떤 게임이 눈앞에 도착하고(〈저예산 프로젝트〉), 유언을 남기기 위해 데이터화된 자아가 잠시 머무는 공간에서 일찍 헤어진 동생과 재회한다거나(〈껍데기뿐이라도 좋으니〉), 죽음 자체가 ‘다른 세계[異世界]’와의 연결로 의미화돼 이를 통해 자신의 삶과 세상을 이해해가는 과정을 담아내는 이야기(〈봄으로 가는 문〉) 등 우리 삶에 밀착한 생과 사, 수용과 애도를 은유적으로 다루어낸다. 우리가, 그리고 세계인이 사랑하는 김보영의 이야기는 이렇게나 다채롭고 낯설며 친밀하다. 신비와 경이로 가득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모험의 재미를 선사하면서 동시에 깊은 성찰과 상상력을 요청하는 그의 소설은 언제나처럼 오늘도 나아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