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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 Sijie
다이 시지에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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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 속 사람들
김병희(http://blog.yes24.com/cbang36)
중국의 5세대 감독이라고 불린 천카이거와 장이머우는 각각 1950년과 1951년에 태어났다. 장이머우의 가족은 문화대혁명기에 베이징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그는 시안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천카이거의 유년기는 더욱 극적이다. 베이징 출신으로 영화감독인 아버지와 시나리오 작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홍위병으로 활동하기도 했고, 심지어 동급생들과 함께 아버지를 구타하는 데 참가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은 천카이거의 회고록인 ‘어느 영화감독의 청춘(푸른산, 절판)’에 잘 드러나있다.
문화대혁명은 20세기 가장 큰 규모로 진행된 인간 실험이었다. 학생과 지식인들은 농촌과 벌목장, 공장으로 보내졌으며, 강단은 노동자와 농민이 차지했다. 50년대에 태어난 중국 지식인들은 빠짐없이 그 상처를 가지고 있다. 천카이거의 ‘패왕별희’와 장이머우의 ‘집으로 가는 길’은 문화대혁명에 대한 두 감독의 시각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중국 현대사를 다룬 소설이 두 권 나란히 출간되었다. 두 작가 모두 중국과 유럽을 오가며 활동중이고, 출간된 작품은 모두 해외번역이 활발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의 다이 시지에와 『굶주린 여자』의 홍잉은 각각 1954년과 1962년에 태어났다. 이들의 유년기는 이 10여년의 차이로 큰 차이를 보인다. ‘부르주아 지식인’으로 지목돼 4년 간 산골에서 ‘재교육’을 받았던 다이 시지에, 현재는 프랑스에서 활동 중이며, 오랜 역사를 지닌 페미나상을 수상하고 영화 감독으로도 활동중이다. 다이 시지에의 유년 시절이 하방(下放)과 강제 노역의 시기라면, 홍잉의 유년 시절은 굶주림의 시대였다. 경제 전부문의 생산성을 자본주의 이상으로 끌어올리려던 대약진운동이 실패로 돌아가고, 자연재해까지 겹쳐 유례 없는 대규모의 기아 상태가 온 것이다. 『굶주린 여자』는 홍잉의 대표작으로, 그녀는 런던과 베이징을 오가며 소설을 쓰고 있다고 한다. 『굶주린 여자』는 신경숙의 소설과 닮았다. 내켜 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끝까지 회상해내는 자전적인 내용과 담담한 말투, 참담한 풍경이 두 소설을 겹쳐놓고 보게 한다. 또, 격변의 시대를 겪어낸 사람들이 서로에게 가지는 연민과 참회 역시 무척 비슷하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에는 작가 자신과 무척 비슷한, ‘하늘긴꼬리닭’ 마을로 쫓겨간 얼치기 지식인 소년이 등장한다.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의 곡명을 ‘모차르트는 언제나 마오 주석을 생각한다’라고 바꿔 소개해도 알아채지 못하고 자명종 시계는 본 적이 없는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그들은 밭과 광산을 오가면 살인적인 강제 노역에 동원된다. 오지 중의 오지인 그곳에서 소년들은 재봉사의 딸을 만난다. 인근 마을과 가장 가까운 도시의 소녀 2,000명 가운데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그녀는 소년들의 우상이면서, ‘재교육 대상’이 된다. 문화혁명의 재교육과 달리 이 재교육은 발자크와 뒤마, 로맹 롤랑과 같은 프랑스 소설가들의 소설이 교재였으며, 주제는 연애와 사랑의 신비이다. 이 짧은 소설의 결말은 작은 반전을 담고 있고, 놀랍게도 문화대혁명기의 기억을 해학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건 윤흥길의 『장마』가 한국전쟁에 대해 그러하듯, 다이 시지에가 문화대혁명에서 발견해낸 화해의 가능성이다. 19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아니 여전히 중국은 실험중이다.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 넓은 땅덩어리와 오래된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실험들을 보면, 나는 거대한 세탁기가 떠오른다. 이 두 편의 소설은 말하자면, 이제 '헹굼' 중인 세탁기 속에서 보내는 현장 리포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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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끔찍한 것은 똥을 지고 날라야 한다는 것이다. 원통 모양의 나무통들은 인분이나 짐승의 똥을 나르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것이다. 날마다 그 나무통에 똥물을 채워서 어지러울 정도로 높은 곳에 위치한 밭까지 등에 지고 날라야 했다. 걸음을 뗄 때마다 통 속에서 똥물이 출렁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고, 뚜껑에서 조금씩 새어나온 구린내 나는 똥물이 방울방울 떨어지면서 몸통을 따라 흘러내리곤 했다. 친애하는 독자들이여, 차마 넘어지는 장면을 이 자리에 소개하고 싶지는 않다. 발을 헛디뎠을 경우에 일어날 결과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 p.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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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도둑질에 성공한 이후 9월 한 달 내내, 우리는 서양의 작가들이 하루하루 페이지마다, 책마다 드러내는 바깥세상의 신비, 무엇보다도 여자와 사랑과 섹스의 신비로움에 사로잡히고 매료되었다. ‘안경잡이’는 감히 우리를 고발하지 못한 채 떠났을 뿐 아니라, 다행히 우리 마을의 촌장마저 관할 공산당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 용징에 가 있었다. 촌장이 없는 틈을 타서 마을에 일시적으로 퍼지고 있던 은밀한 무정부주의를 이용해서 우리는 밭일을 거부했고, 우리의 영혼을 지키는 간수로 바뀐 예전의 그 아편 농사꾼들도 그런 우리의 반항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해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두문불출한 채 서양소설들을 읽는 일로 나날을 보냈다. 나는 뤄가 유독 푹 빠진 발자크의 작품들을 내버려두고, 내 열아홉 살의 경박함과 진지함으로 플로베르와 고골리, 멜빌, 로맹 롤랑 들과 차례차례 사랑에 빠졌다.
--- pp.151~1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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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계급의 두 청년과 바느질 소녀와의 사랑과 우정,
발자크에 대한 동경과 찬사, 마오쩌둥 문화대혁명 시대를 유쾌하게 풍자한 페미나상 수상작가 다이 시지에 첫 장편소설 2000년 프랑스 언론이 극찬한 화제의 베스트셀러! 문학의 장엄한 힘을 멋들어지게 전달하고 있다. - 라이브러리 저널 Library Journal 재미있고 감동적이며 교묘함이 뒤섞여 있는 유쾌한 소설이다. - 워싱턴 포스트 The Washington Post 낯선 시대와 장소 속에서의 인생의 묘사가 너무 매혹적이다. - 뉴욕 타임즈 The New York Times 감동적이면서도 종종 고통스럽다. 기대하지 못했던 익살스럽고도 경이로운 인간의 이야기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Publishers Weekly 2003년 페미나상을 수상한 다이 시지에의 첫 번째 장편소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가 드디어 재출간되었다. 중국 태생으로 프랑스에서 영화감독과 소설가로 맹활약 중인 다이 시지에는 두 번째 소설 『D콤플렉스 Le complexe de Di』로 단숨에 페미나상을 거머쥐며 현재 가장 주목받는 신예 작가로 급부상하였다. 중국 정체성의 문제를 특유의 해학과 유머로 섬세하게 그려낸다는 평을 받으며, 그는 약관의 나이에 프랑스에 입문, 불과 몇십 년 만에 영화와 소설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천재적인 재능의 예술가’란 찬사를 받고 있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는 2000년 프랑스에서 출간되자마자 프랑스 언론의 극찬을 받으며 그해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프랑스 출판계는 모두 다이 시지에를 주목했고, 미국의 유명 출판사들은 소설의 판권을 사기 위해 앞 다투어 경쟁을 벌여 화제를 낳기도 했다. 또한 영화로도 만들어져 2002년 칸 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2000년 국내에서도 『소설 속으로 사라진 여자』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마니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마오쩌둥에 의해 주도된 문화대혁명. 다이 시지에는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에서 암울했던 문화대혁명이라는 중국 현대사의 한 부분을 개인의 문제로 끌어들여 한 편의 영화처럼, 그러나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발자크와 플로베르 등 서양소설을 둘러싼 두 소년과 바느질 소녀와의 이야기를 유쾌하고 흥미진진하게 풀어놓고 있다. 직접 문화대혁명을 겪은 작가의 체험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이 소설에서 다이 시지에는 섬세하고 위트 있는 문장들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준 서양의 스승들 발자크, 플로베르, 도스토예프스키 등에게 찬사를 표하고 있다. 또한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는 그가 어느 인터뷰에서 밝혔듯, 책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진지하게 생각한 세대의 ‘책에 대한 동경과 찬사’를 담은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는 문화대혁명 기간 중 하방정책下枋政策의 일환으로, ‘부르주아 지식인’으로 분류되어 ‘하늘긴꼬리닭’ 산이 있는 농촌으로 재교육을 받으러 간 두 소년과 그곳에서 만난 바느질하는 소녀와의 사랑과 우정에 대한 유머러스하고 낭만적인 이야기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젊은 지식인’들은 모두 농촌으로 보내져 재교육을 받아야만 했던 시절, 고등학교에 가보지도 못한 두 소년은 부모가 부르주아계급 의사라는 이유만으로 첩첩산골로 보내진다. 이들의 재교육이란 것은 소위 똥지게를 지고 나르거나 탄광에서 석탄을 캐는 일 등이다. 문명의 냄새를 풍기는 유일한 물건은 주인공이 가져온 바이올린뿐이고, 두 소년은 무서운 마을 촌장을 속이면서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곡을 ‘마오쩌둥 주석을 찬양’하는 곡이라며 연주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에게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다. 하나는 발자크를 포함한 중국어로 번역된 숨겨진 서양문학과의 만남이고, 다른 하나는 바느질하는 소녀와의 첫사랑이다. 마오쩌둥의 ‘붉은 어록’ 이외에는 거의 모든 책이 금서로 통했던 때 그들은 발자크와 플로베르, 도스토예프스키, 스탕달, 톨스토이, 빅토르 위고 등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새로운 세계에 눈뜨게 된다. 그리고 두 소년이 읽어준 발자크 소설에 매료된 바느질하는 소녀는 소설 속 여주인공과 도시 생활을 한없이 동경하며, 급기야 긴 머리를 자르고 새하얀 테니스화를 신고 도시로 떠나버린다. 인터뷰 중에서 “물론 미래가 없는 몹시 서글프고, 힘든 시기였어요. 하지만 중국 민족은 좀 다른 사람들이에요. 마오쩌뚱이 주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동쪽의 어느 나라처럼 살풍경하지 않았어요. 사회 체제는 늘 가혹했는데도 사람들은 착한 아이로 남아 있을 줄 알았지요. 그들은 삶의 기쁨을 느긋하게 즐기고 있었고, 공산주의도 그것만은 결코 뿌리뽑지 못했지요.” 오늘날의 중국에 대한 질문에 그는 씁쓸함이 밴 어투로 대답한다. “생활수준은 많이 향상되었어요. 그 산골 마을에도 가보았는데, 이제는 집집마다 텔레비전이 있더군요.” 그리고는 시니컬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그들에게는 이제 영화를 이야기로 들려주는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아요!” 그것이 그의 마음에 걸리는 것 같았다. 중국이 자유에 눈을 뜨기는 했지만, 교양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유럽의 고전 작품들이 도처에 있지만,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보느라고 책을 거의 읽지 않아요. 나는 책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세대에 속해 있지요.” 그는 마오가 사망하고, 서양문물이 중국에 마구 밀려오기 전에는 중국인들에게 독서 열풍이 일었다고 힘주어 말한다. “우리가 뒤라스, 보르헤스를 발견할 수 있었던 80년대에는 굉장했어요. 하지만 우리는 문학을 사랑하는 마지막 세대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