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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1월에 쓰고 6월에 받는 편지 * 11
둘, 성수 사람들 * 57 셋, 여름이 녹아 사랑이 되는 날에 * 115 넷, 인연과 사연 * 163 다섯, 답장해도 될까요 * 213 여섯, 가을엔 편지를 할래요 * 251 일곱, 찬란했던 시절에게 * 293 여덟, 당신의 안녕 * 339 아홉, 답장하는 밤 * 365 에필로그: 조용한 안부 * 411 추신: 차원을 넘어온 편지들 * 431 about. 편지 가게 글월 * 440 |
스토리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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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글월의 오픈 10분 전이었다. 연우가 카운터 안쪽에 둔 책상에 앉아 맥북을 켜고 편지 가게의 플레이리스트를 틀었다. 아직 6월이지만, 아오키 하야토 〈morning July〉 앨범을 골랐다. 음과 음 사이의 여백이 투명하게 반짝이는 듯했다. 새벽잠에서 깨어, 하얀 이 불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쓰다듬는 느낌. 상쾌하지만 어딘가 고요함도 느껴지는 새벽녘의 풍경 같은 음악이 글월의 무드를 채웠다.
효영은 날카롭게 깎은 연필을 연필꽂이에 넣었다. 만년필과 볼펜 등의 다양한 필기구가 담긴 연필꽂이는 전부 글월에 편지를 쓰러 온 사람들을 위해 준비한 것들이었다. 효영이 카운터 한쪽에 연필꽂이를 일렬로 두었다. 조금 있으니 금방 또 정오가 지났다. 6월의 햇살이 맑게 비치는 창문이 효영을 부드럽게 끌어당겼다. --- p.17 영광의 웹툰은 전작에서 크나큰 사랑을 받은 주인공 ‘연정’이라는 인물이 회사로 들어가서 사내 로맨스를 펼치는 이야기였다. 현실에 가까운 연애 묘사로 팬들을 모았는데, 어떤 에피소드는 효영과의 실제 연애 이야기를 담은 것이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효영에게 미리 아이디어 노트를 써서 허락을 받았었는데, 당연히 이제는 영광 혼자서 아이디어를 짜야 하니 곤욕일 거 였다. 효영이 매주 웹툰 원고로 골머리를 썩던 영광의 축 늘어진 어깨를 떠올리며 가볍게 웃었다. --- p.21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의 경이로운 순간을 포착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행동을 한다거나 뭐, 꿈에 빠져 있는 모습도 좋죠. 제일 좋은 건 그 사람이 내 앞에서 가장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잘 지키고 있을 때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게 남아 있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또 사랑이기도 하고요.” 이 말을 끝으로 강의가 끝났다. 작게 손뼉을 치는 수 강생들에게 인사를 한 영광이 거리로 쏟아지듯 빠른 걸음으로 나왔다. 인파들 사이에 섞여 익명성이 생기고 나니 조금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았다. 발걸음이 닿는 대로 성수 일대를 빙글빙글 돌다가 자기도 모르게 글월이 있는 LCDC 근처까지 왔다. 오늘도 효영이 근무하는 요일일까? 연우에게 메시지를 보낼까 하다가 괜한 객기가 생겼다. 우연히 효영을 만난다고 해도 이제는 부끄러울 게 없다는, 더는 주고받을 감정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다. --- p.41 효영은 알까. 이별 후 도망치듯 떠나간 네덜란드에서도 밤마다 고래 문진의 무게를 상상하며 눈을 감았다고. 가슴 위에 올린, 사랑이었던 것의 무게가 묵직하게 통증을 가져올 때도 있었다고. 그런 사랑도 결국엔 다 과거가 되었다는 게 이상하지. 화석처럼. 영광은 언젠가 네덜란드 북해 남부에서 향유고래가 집단으로 폐사한 채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었다. 먹이를 찾던 수컷 무리가 얕은 수심 때문에 길을 잃고 해안으로 밀려와 고립되는 일이 희박한 확률이지만 발생한다고 했다. 깊은 줄만 알았던 바다가 그 깊이를 잃었을 때, 향유고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는 막막함과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공포를 느꼈을 거다. 사랑도 그렇지 않나. 아주 깊고 넓다고 생각한 사랑도 나 하나 헤엄칠 수 없을 정도로 얕고 좁아졌을 때, 결국 제자리에서 길을 잃고 멈추게 되지 않나. 세상을 사는 건 자꾸만 길을 잃는 일이지만, 영광은 그보다 길 잃은 거리에서 누구의 손도 잡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 더 두려웠다. --- pp.141-142 영광은 효영이 한창 시나리오 공모전을 준비하던 때 어머니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숨겼다. 시나리오를 마무리 짓는 중에 괜히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다는 핑계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그게 다 배려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냥 다 자기의 이기적인 마음 탓이라는 걸 알았다. 어차피 직접 해결해야 하는 일에 다른 사람의 걱정에 대한 걱정을 보태고 싶지 않았다. --- p.144 활짝 웃는 효영의 등 뒤로 동규는 순간 5년 전의 그 벚꽃을 다시 본 것 같았다. 양 뺨이 분홍빛으로 물들 정도로 딱 기분 좋게 취한 효영이, 벚꽃 길을 걸으며 양손으로 네모난 프레임을 만들던 날의 추억을. 꿈 많고 순수했던 한 영화감독 지망생의 반짝이는 눈빛을, 동규는 동경했던 것 같다. 어린 동생이라는 핑계로 알아채지도 못하고 있던 감정이었지만. “효영아.” “응?” 어느새 효영 옆에 멈추어 선 동규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말했다. “좋아해, 효영아.” “뭐?” 동규가 활짝 웃으며 효영의 앞에 마주 섰다. “아니. 사랑해. 무척이나.” --- pp.221-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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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끝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자연스러운 어색함 속에 끝나버린 우리. 이대로... 괜찮은 걸까? 연희동 편지 가게 ‘글월’에서 직원과 손님으로 만나 연인이 되었던, 효영과 영광. 효영은 ‘글월’ 성수점의 직원이 되어 일하며 영광과 함께 성수동에서 새로운 추억을 쌓았지만 영광이 끝내 벗어 던지지 못한 상처가 둘 사이에 작은 균열을 냈고, 시간이 지날수록 삐걱대면서 두 사람은 이별을 맞이한 상태. 6개월 뒤, 이제는 영광을 다 잊었다며 마음을 다독이던 효영은, 편지 가게 선반에서 이별 뒤 영광을 떠올리며 쓴 편지를 발견한다. 보내는 이는 있지만 받는 이는 없는 편지. 그야말로 선반 구석에 고여 있는, 외로운 편지. 그리고 얼마 후 효영은 퇴근길 성수동 거리에서 동규를 만난다. 20대 초반 영화학도 시절, 영화 커뮤니티에서 만난 인연. 채팅창에서 밤을 새워가며 영화 얘기를 하다가 술도 마시고 함께 독립영화관을 돌던 남자. 자기도 모르게 썸을 탔지만 연애까지는 가본 적 없는 마치 안 읽어 본 편지 같은 남자, 동규. 그렇게 끝까지 가봤다고 믿는 사랑과 시작도 해본 적 없던 사랑이 얽히기 시작한다. 편지 문화의 가치를 전달했던 1편의 고유성을 바탕으로 성수동과 서울숲에서 펼쳐지는 풋풋하고 아련한 ‘힐링 로맨스’ 『너의 답장이 되어 줄게』는 성수동의 트렌디한 분위기와 서울숲의 싱그러운 풍경 사이로 펼쳐지는 세 남녀의 연애 이야기를 다룬다. 1초면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세상에서, 편지가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연애편지’덕이 아닐까 생각했다는 작가는 다 읽어 본 편지 같은 남자와 안 읽어 본 편지 같은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효영의 이야기를 이어 나가면서 ‘사랑’에 대해 고찰했다. 여느 로맨스 소설처럼 이 작품에도 연인 간의 갈등, 달콤한 대사, 기억에 남을 황홀한 장면 등 로맨스 장르를 구성하기 위한 재료들이 적절하게 포진되어 있지만 작가가 가장 공을 들였던 대목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마음을 여는 과정’이었다. 주인공 효영과 그녀의 남자들인 영광과 동규, 그리고 그들의 여러 주변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려 애쓰는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애틋한 온기, 뭉클한 감동, 화사한 미소를 느낄 수 있다. 로맨스 장르에서 더욱더 빛을 발하는 특유의 다정한 시선, 섬세한 감각. 그것을 구현하는 필사 유발 ‘백승연 표 문장들’ 『편지 가게 글월』과 마찬가지로 『너의 답장이 되어 줄게』 또한 밑줄 긋고 싶고, 따로 적어 수시로 꺼내 읽고 싶은 표현들이 그득한 작품이다. 사람, 풍경, 감정을 자세히 그리고 집요하게 들여다보는 끈기와 성실함의 산물인 ‘백승연 표 문장들’은 사람을 밑바닥까지 드러내고, 풍경에 서사를 쌓게 하고, 감정을 종잡을 수 없이 요동치게 하는 ‘연애’라는 사건과 만나 그 스펙트럼이 얼마나 확장될 수 있는지 그 단단함과 유연함을 톡톡히 보여준다. 자연스럽게 공간을 떠올리게 하고, 그 속의 사람을 생생하게 구현하고, 그 내면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게 하는 문장과 문장을 읽어나가다 보면 독자는 어느새 극 중 인물이 되어 있고 극 중 인물을 통해 어쩌면 보듬어 주지 않고 있던 자신을 만나게 된다.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과정을 기록하는 것처럼 쓰인 이 로맨스는 그렇게 독자가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할 수 있는 길로 이르는 문장의 징검다리를 건너게 한다. 영미·유럽 포함 전 세계 17개국 수출 『편지 가게 글월』의 후속작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을 만한, 포텐셜 강한 K-소설 시리즈 『편지 가게 글월』이 2024년 런던국제도서전 화제작으로 조명받고, 출간 전 유럽 주요 국가에 수출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편지의 소멸 위기’가 전 세계적인 보편 현상인 와중에 편지에 대한 그리움 또한 커져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연희동과 성수동에서 운영 중인 ‘글월’이 그 증거다. 『편지 가게 글월』의 첫 해외판이 출간된 이탈리아에서 어느 독자분이 ‘글월’로 연락을 해 책에 대한 감상을 전하면서 펜팔 편지를 보낼 수 있는지 물었다고 한다. 그만큼 ‘글월’에서 피어나는 이야기는 편지가 전하는 진실한 감정과 섬세한 감성을 온전히 경험하기에 적합하다. 『너의 답장이 되어 줄게』는 ‘성수동 글월’을 배경으로 힐링에 초점을 맞추었던 전작으로부터 한발 더 나아가 ‘사랑’과 ‘연애’라는 테마를 품고 편지에도 장르가 있다면 연애편지가 최고의 편지 장르라고 이야기하듯 떨림과 울림이 있는 이야기를 선사한다. 세계 시장에서 보다 대중적인 장르인 로맨스로 풀어낸 편지 가게 ‘글월’ 이야기는 더 넓게 퍼져 나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