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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림동 주택단지
스칸디나비아 컬렉션 담장을 넘는 덩굴 호재의 호재 호기심 많은 이웃 합리적 가정 호숫가 저택 어느 젊은 소설가의 아내 작가의 말 |
ペク.スンヨン,스토리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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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은 《거인이 사는 숲》에서 틈틈이 호재와 연애 시절에 실제로 나눈 대사와 장면을 찾아내는 걸 즐겼다. 매일 한 문장씩, 하얀색 색연필로 밑줄을 긋다 보면 그 남자가 지금 옆집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호흡이 흐트러졌다. (중략)
가느다란 종아리와 하얀 발목 위로 큰 창에서 들어온 햇빛이 황금빛 끈처럼 내려앉았다. 꼭 어딘가에 묶인 사람 같았다. 유림은 책을 테이블에 내려두고 원피스 자락을 올렸다. 매끄러운 오른쪽 허벅지 위로 진홍빛 흉터가 보였다. 조금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으면 나뭇가지 같은 흉터의 끝이 보이기도 했다. 그 여자는 알까. 옆집 여자의 치마 속에 이런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걸? --- p.54 유림은 당장이라도 호재의 뇌를 갈라 그 단면에 쓰여있는 문장을 읽어보고 싶었다. 이 남자의 진심은 뭔지. 한낮의 밀회가 잠깐의 불장난인지 사랑인지. 유림은 질문 대신 호재의 옆자리에 누웠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시야의 반이 뒷산으로 채워졌다. 바람이 불 때마다 습기를 머금은 나무 향이 풍겼다. 투병 중에 잠깐 다니던 한의원에서 한의사가 한 말이 떠올랐다. 오장육부 중에 폐는 슬픔을 주관하는 장기라고. 뭐가 그리 슬퍼서 한쪽을 떼어내야 했나 생각해 보면 늘 호재가 떠올랐다. 지금은 내 것이잖아. 적어도 아침부터 한낮까지는. 그러니까 더는 슬퍼하지 말자고. --- p.108 “나 너 아니면 안 돼. 우리 성공은 다 네 거야. 알지?” 어차피 옆집 사람들은 겨울이면 떠날 사람들이라고. 우리는 차기작만 성공시켜서 잘 먹고 잘살면 그만이라고. 그게 임희진 네가 원하는 거 아니었냐며 호재가 희진의 손을 맞잡았다. 희진은 늪 속에 빠진 사람처럼 스스로 만든 욕망 속으로 천천히 침잠했다. 뜨뜻하고 꽤 아늑했다. --- p.184 “아빠를 죽이는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보험금 때문도 아니고 깊은 원망 때문도 아니고 그냥 내 인생에서 삭제할 생각으로요. 탈피한 도마뱀이 자기 껍질을 먹어치우듯이 자기가 어디서 나왔는지를 깨끗하게 지워버리는 거죠.” “왜요?” “우린 다 어디서 나왔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잖아요. 전 그런 거 싫어요.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내가 나온 출구를 잃어버리고 살고 싶어요. 그래야…….” 희진이 슬쩍 슬픈 눈으로 레드 와인이 담긴 와인 잔을 들여다보았다. “진짜 나로 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 p.221 희진은 건우의 내면이 미로처럼 설계된 귀족의 정원처럼 느껴졌다. 넓고 깊고 혼란스럽지만 매혹적으로 꾸며진 정원. 호재와 유림이 헤매고 있는 미로에 어쩌면 자기도 피식자가 되어 갇혀있는 건지도 몰랐다. 그러나 희진은 그게 좋았다. 이 재미있는 연극을 제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면,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그의 정원을 기꺼이 뛰어다닐 수도 있었다. 부디 이 속에서 호재와 유림이 오래오래 공포의 비명을 질러대길. 나를 불편하게 하는 모든 것들이 건우의 입속에서 잘게 부서지길. --- p.258 보통이 아닌 것에 걸려버렸다. 지독한 저주에 발이 묶였다. 희진은 이제 자기 남편이 며칠 뒤 뒷산에 거꾸로 매달린 장면을 보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다리에 힘이 풀린 희진이 네 발로 거실까지 기어갔다. 주택단지의 다른 이웃들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품은 채 각자의 행복을 전시하고 있을까?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마음, 남편을 죽이고 싶은 마음, 부모를 버리고 싶은 마음, 뱃속 아이를 지우고 싶은 마음, 혼자서 살고 싶은 마음. 그런 것들을 숨긴 채 가정을 만든 걸까? 울지도 비명을 지르지도 못한 채, 희진은 그대로 바닥에 누워 눈을 감았다. --- p.2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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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다신 안 내려가.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허울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타인과 자신을 해하는 양극의 욕망이 교차하는 네 사람의 균열의 울타리 오래도록 무명 소설가였던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가장으로서 고생하던 희진. 우연한 기회로 출간한 호재의 자전소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고급 주택단지에 입성하며 오랜 꿈이었던 완벽한 가정을 이루었다는 행복을 만끽한다. 남편 소설의 주인공이 옆집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진. “독하지 않고 어떻게 원하는 걸 가지는데?” 행복한 중산층을 꿈꾸며 가족을 이끈 가장, 희진. “나 너 아니면 안 돼. 우리 성공은 다 네 거야. 알지?” 뒤늦게 성공한 욕망의 베스트셀러 작가, 호재. “우리가 언제 이유를 알고 행동했어?” 남편 덕에 호의호식하지만 사랑이 그리운 여자, 유림. “아무도 믿지 않으면 평생 속을 일도 없죠.” 사랑도 인간도 믿지 않는 차가운 의사, 건우. 각기 다른 욕망을 품고 각자의 허울을 지키기 위해 질투와 집착, 광기에 휘말린다. 이웃의 담장을 넘은 욕망은 끝내 누구를 삼키고, 무엇을 마주하게 될까. “아직도 자기 자신으로 살 준비가 안 된 거예요?” 행복한 가정이라는 환상, 그 이면에 드리운 가장 치명적인 욕망의 얼굴 작가는 말한다. ‘타인의 불행에 입맛을 다셔본 적 없다고, 그 누가 말할 수 있을까’라고. 인간은 누구나 남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에 집착하고 ‘완벽한 가정’과 그 속의 ‘행복한 나’을 전시하고 싶어 한다. 《합리적 가정》의 두 가정 속 네 사람은 성공, 사랑, 명예, 쾌락 등의 욕망으로 점철된 각 꼭짓점을 교차하며 서로와 자신을 파멸로 몰아넣는다. 이를 통해 작가는 가장 보편적인 욕망이 사실은 껍데기였음을, 그 껍데기를 쟁취하기 위해 인간은 타인의 불행을 탐하고 스스로를 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풀어내는 방식 또한 인상적이다. 가장 평범한 보통의 욕망을 꿈꾸는 희진의 이야기로 드라마 장르처럼 시작하는 듯하지만, 점차 네 명의 인물들이 손에 움켜쥔, 결코 내려놓을 수 없는 욕망들이 폭주하면서 영원한 선과 악이 없는, 그저 껍데기가 벗겨진 날것의 인간만 남게 된다. 이는 극단적으로 보이면서도 매 장면마다 선명하고도 입체적인 캐릭터들로 이입할 수밖에 없게 만들며, 과거부터 쌓아왔던 스토리 구조가 현재와 교차되며 쾌감을 자아낸다. 숨 쉴 틈 없이 넘어가는 페이지 너머 존재하는 각각의 캐릭터들에 때론 공감하고 때론 분노하고 때론 안쓰러울 때쯤 마침내 껍데기만 부여잡은 네 명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치명적이고 매혹적인 스토리라인과 작가의 생생하고도 유려한 문장 속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