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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서울, 달동네
달동네 왕따 보이, 왕따 걸을 만나다 달동네 사람들 옛날 애인 카사노바 카풀 소풍 그 사람 우리들의 양지 몰래 데이트 장미와 보석 실연 청혼 결혼식 신혼여행 팝콘 소년과 베이컨 소녀 임종 2025년 대성리, 강가 에필로그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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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아주 가까이 있는 서울의 한 달동네, 숭인동 860번지. 별들이 달동네의 밤하늘을 수놓았고, 별들 사이로는 둥그런 보름달이 떴다. 희고 탐스러운 보름달은 밤의 왕이라도 되는 것처럼 별들을 거느리며 그 빛을 한껏 뽐내는 중이었다. 이 동네에서만큼은 그 누구도 편애하지 않겠다는 듯 밤의 왕은 달동네를 골고루 구석구석 비추어 댔다.
---p.9 옆방 애숙 누나가 샴푸와 대야를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뜨거운 물이 담긴 대야를 수돗가에 내려놓았다. 애숙이 수도꼭지에서 찬물을 받아 대야에 담긴 뜨거운 물에 섞어 미지근하게 만들고는 샴푸로 머리를 감기 시작했다. 샴푸 냄새가 향긋했다. 사시사철, 사글셋방 동지들은 연탄 아궁이나 석유곤로에 물을 끓여 써야 했다. 달동네의 수도꼭지에서도 따뜻한 물이 나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까. 보석이 치약 거품을 튕겨 가며 애숙을 향해 물었다. “누나, 오늘 몇 시에 끝나?” “왜?” 왜긴, 혼자 저녁 먹기 싫으니까 그러지. “데이트할까?” 애숙은 기가 막힌 듯 웃었다. 애숙은 공무원 연금 매점에서 일하는데 거기서 파는 빵과 우유를 보석에게 자주 사다 주었다. 보석이 가장 좋아하는 빵은 보름달 빵이었다. 맛도 좋은 데다 폭신하니까. ---p.12 보석이 갑자기 멈춰 서자 여자아이도 걸음을 딱 멈췄다. 보석이 그 애에게 퉁명스럽게 물었다. “너 뭐야? 왜 따라오는데.” 여자아이는 대답 대신 배시시 웃었다. 보석이 화를 냈다. “야, 너 말 못 해? 왜 따라오냐고!” 여자아이가 그제야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답했다. “귀여워서.” “뭐?” “꼭…… 도토리 같아.” 여자아이가 다시 한번 배시시 웃고 나서 고개를 숙였다. 보석은 자존심이 상했다. 엄마도 보석의 아픈 데를 건드리지 않는데 하물며 생전 처음 보는 말라깽이 계집애가. “저리 꺼져!” ---p.24 “누나들, 싸우지 마!” 보석이 애숙과 진미 가운데 서서 둘을 떼어 놓기 시작했다. 진미가 와락 소리를 질렀다. “쪼그만 게 왜 사사건건 끼어드니? 저리 안 가?” 진미가 보석을 밀어냈다. 순간 진미의 손에 묻은 거품이 싸움을 말리는 보석의 눈에 들어가 버렸다. 보석은 진미에게 대들며 동네가 떠나가라 외쳐 댔다. “싸우지 말라고! 그깟 남자 하나 때문에 싸우지 말란 말이야!” 눈이 매서워진 보석이 갑자기 흑, 울음을 터트렸다. ---p.45 “좋아, 그럼 우리 오늘부터 같은 편 하는 거지?” “같은 편?” “응. 같은 편이 된다는 건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뜻이잖아. 그리고 으음…….” 양지가 조금 더 생각하더니 말했다. “뭐든 함께 하는 거지. 함께 있으면 기운도 두 배로 날걸?” “그럼 앞으론 사탕 하나도 나눠 먹어야겠네? 같은 편 먹었으니까.” 양지가 풉 웃었다. “그럴까?” 보석도 맞장구쳤다. 확실히 해 둔다는 의미에서. “그러지 뭐.” 보석은 갑자기 세상을 얻은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또래 중에선 내 편이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또래 한 명하고만 같은 편을 먹었을 뿐인데 세상을 통째로 얻은 느낌이었다. ---p.50 양지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보석이 아저씨 앞으로 조르르 다가가 별사탕 두 개를 샀다. 다행이었다. 별사탕은 사 줄 수 있어서. 아이들이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놀이공원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부모들은 자동카메라로 아이들의 사진을 실컷 찍어 댔다. 보석이 양지에게 별사탕 하나를 내밀었다. 양지가 별사탕을 받아 들었다. 양지의 얼굴이 별사탕처럼 빛났다. 보석이 구닥다리 수동 카메라로 양지를 찍어 주었다. 양지가 한 손에 별사탕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론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그려 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p.56~57 보석이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하며 햇살이 더 많이 들어오는 곳으로 양지를 이끌었다. “여기가 양지야. 네 이름이랑 똑같다.” 보석이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여기를 ‘우리들의 양지’로 부를까?” “우리들의 양지? 멋지다!” 보석이 다시 한번 어깨를 으쓱했다. “이제부터 학교 끝나면 여기로 와. 다른 때도 보고 싶으면 서로 대문 앞에서 야옹 소리 세 번씩 하는 거다. 알았지?” ---p.74 “날 때리는 게 아니고 그 여자를 때리는 거야. 날 때리면서 그 여자 이름을 부르거든.” “니네 엄마?” “그 여자가 나랑 그 사람을 버리고 가출한 뒤론 많이 힘들어해. 친척 하나 없으니 얼마나 외롭겠어. 스트레스 받아 줄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내가 참아야지.” “븅신아, 그렇다고 맞아? 당장 신고해 버려.” “신고하면 날 죽일걸? 난 아직은 죽고 싶지 않아. 아직은.” 양지가 고개를 숙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p.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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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려면 자기편이 좀 더 필요해요.
그래야 힘들지 않게 버틸 수 있거든요.” 1980년대 서울 달동네의 가난과 고독 속에서 피어난 소중한 사랑과 우정! 고통을 견디고 슬픔을 이기는 법, 그리고 삶이라는 사막을 건너는 법! 『팝콘 소년 베이컨 소녀』는 1980년대 서울의 달동네를 배경으로, 떠날 때 웃는 경우는 있어도 이사 올 때 웃는 사람은 본 적 없는 다가구주택에 사는 외톨이 소년이 같은 동네에 사는 외톨이 소녀와 만나 써 내려가는 동화 같은 사랑 이야기를 그린 청소년소설이다. 가난과 고독과 무시, 그리고 결핍이 삶의 조건으로 주어진 달동네의 신산한 삶 속에서 아빠 없이 엄마와 다가구주택의 단칸방에 사는 ‘보석’과 엄마 없이 아빠와 단둘이 지하 셋방에 사는 ‘양지’가 서로를 보듬으며 삶의 무게를 함께 지고 나가는 따뜻하고도 가슴 시린 러브스토리가 펼쳐진다. 보석이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보석처럼 대우받지 못하는 ‘보석’이나 양지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햇볕이 들지 않는 컴컴한 지하 셋방에 사는 ‘양지’는 서로의 외로움과 결핍을 알아보고 우정과 연대의 관계를 맺게 된다. 둘은 그들만의 비밀 장소에 ‘우리들의 양지’라는 이름을 붙이고 소중하게 가꾸며 점차 서로에게 의지해간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보석은 늘 돌아가신 아빠에게 그날의 일들을 편지로 쓰지만, 엄마는 홀로 생계를 이어가느라 보석을 세심히 보살필 여력이 없다. 양지의 아빠는 자신과 딸을 남겨두고 도망가버린 양지 엄마에 대한 분노를 양지를 때리며 풀고 늘 술에 절어 있다. 그런 둘을 챙기는 것은, 하나의 화장실과 하나의 수도를 나눠 쓰며 살아가는 다가구주택의 식구들이다. 가난과 저마다의 문제로 신음하면서도 어린 보석을 챙기는 착한 어른들과 아이를 학대하고 돈과 사회적 지위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쁜 어른들이 공존하는 세상 속에서 서로를 팝콘 소년과 베이컨 소녀로 명명하는 중학생 소년 소녀의 사랑은 햇빛을 머금은 보석처럼 소중하게 빛난다. 두 아이를 둘러싼 다가구주택 식구들의 웃기고 짠한 이야기들도 색다른 유머와 재미를 선사한다. 80년대 달동네 다가구주택 식구들의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서사, 소년 소녀의 순수해서 더 설레는 연애, 믿을 수 있는 한편이 있다는 사실이 주는 용기와 위로, 등장인물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에 담긴 위트와 유머가 청소년 독자들의 세계를 한층 더 깊고 넓게 열어줄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자기편이 좀 더 필요해요. 그래야 힘들지 않게 버틸 수 있거든요.” 보석이 아빠에게 쓴 편지 속 말처럼, 삶이라는 때론 가혹하고 삭막한 사막을 무사히 건너기 위해서는 서로를 보듬는 자기편이, 그리고 아이들을 돌보는 착한 어른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팝콘 소년 베이컨 소녀』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로 들려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