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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 왕
에필로그 감사의 말 |
Nathanael Less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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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이란, TV에 나오는 장면과는 완전히 다르다. 주인공이 상대방을 단 한 방에 때려눕힌다? 천만에, 현실에서는 온통 엎치락뒤치락, 서로 치고받기 바쁘다. 상대방의 옷 지퍼에 얼굴이 긁히기 일쑤고, 내가 뻗은 주먹은 의도한 곳에 꽂히는 법이 없다. 영화는 순 구라다.
애들이 나랑 우리 무리에 덤비지 않는 까닭은 오로지 우리가 무조건 이긴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따금 우릴 존중하지 않는 인간이 나타나고, 그러면 우리가 본때를 보여 줘야 한다. --- p.9 먹이사슬 꼭대기에 있는 존재의 유일한 고충은 모두가 그 포식자의 몰락을 바란다는 것이다. 8학년 애들이 기어오르거나 GCSE를 앞둔 10학년들이 예민하게 굴지를 않나, 선생들이 제 주장만 내세우며 아직 우리보다 위라는 걸 보여 주려 들지를 않나. 무난한 선생도 한두 명 있지만 자기가 못 이룬 꿈의 한을 우리한테 푸는 인간이 한둘이 아니다.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 사우스런던의 어느 교실을 벗어나지 못하는 게 내 잘못은 아니잖은가. 꿈이란 건 토트넘 팬들과 마틴 루터 킹을 위한 단어다. 난 그딴 거 없어도 된다. 이 몸은 학교의 왕이고, 내 삶은 이미 최고다. 다른 건 다 의미 없다. --- p.10 “어, 할머니는 저 버스 타면 돼. 난 343번 타고 애들 있는 데로 가려고.” 실망하셨을까? 그렇다면 할머니는 티 안 내기의 달인이다. 설마 내가 집까지 모셔다 드리지 않았다고 엄마한테 일러바치지는 않겠지? “알았다, 아가.” 할머니는 살짝 입술을 깨물더니 묻는다. “근데 난 어디서 내리라고?” “사우샘프턴 웨이. 몰리스 보이면 벨 눌러. 은행을 털거나 폭동을 일으키고 싶거나 해도 꾹 참고.” “약속은 못 한다.” 할머니는 피식 웃더니 버스가 서자 긴장한 얼굴로 느릿느릿 걸어간다. 그러다 불현듯 나를 돌아보며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어 10파운드 지폐 하나를 뽑고는 “아, 깜빡할 뻔했네” 하면서 내 손에 쥐여 준다. 난 2초쯤 멍하니 지폐를 내려다보다 얼른 주머니에 넣는다. 모르는 사람이 할머니를 부축해 함께 버스에 오르는 걸 보면서 난 부리나케 폰을 꺼내 케힌데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 p.30 난 느릿느릿 일어나 가방을 바닥에 질질 끌며 매튜 옆자리로 간다. “안녕, 친구.” 녀석이 인사한다. “아니, 안녕 못 해.” 같이 앉기도 싫은 판에 잡담을 나눌 기분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 책상에 앉은 케힌데와 케일럽이 나를 향해 비웃음을 날린다. 나는 의자에 낮게 걸터앉아, 매튜가 유인물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는 걸 쳐다만 본다. “헤, 주기율표다.” 녀석이 날 본다. “내가 아는 원소는 하나뿐인데…….” 갑자기 목소리를 낮춘다. “뤽 베송의 〈제5원소〉.” 난 번쩍 손을 쳐든다. “쌤, 제발 자리 좀 바꿔 주세요.” 영 선생은 들은 체도 않고 반 전체에 엄포를 놓는다. “시간 안에 못 끝내는 사람은 다 끝낼 때까지 쉬는 시간 없다.” 매튜 녀석이 헉, 하더니 종이에 글씨를 쓰기 시작한다. 꽤나 빠르게 휘갈긴다. 다 쓰고는 내 쪽으로 종이를 밀며 말한다. “내가 아는 건 다 적었어. 더 생각나는 거 있어?” “없어.” 구리와 아연이 빠진 게 보이지만 그냥 귀찮다. 녀석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더 떠올려 보려 애쓴다. 쉬는 시간을 날리긴 싫은데……. 결국 나는 녀석이 놓친 원소명을 말해 준다. “고마워”라며 녀석이 내게 윙크한다. “야, 하지 마.” --- pp.40-41 “내가 아빠처럼 되고 싶다면 어떡할 건데?” 나도 감정이 격해진다. 아빠가 감방에 간 이후로 내겐 단 한 번도 아빠를 보여 주지 않아 놓고, 아빠를 알 기회조차 주지 않아 놓고, 이제 와 마치 욕이라도 하듯이 내가 아빠를 닮았다니! “그 사람은 오래전에 실수 한 번 한 거야. 근데 아직도 엄마 머릿속에 눌러앉아 있네?” 난 씹어뱉듯 말한다. “내가 닮고 싶지 않은 건 엄마야.” 엄마는 내가 토한 오물을 뒤집어쓴 것 같은 표정이다. 잠시 눈을 감고 머리를 흔들며 숨을 고른다. “앤톤, 범죄랑 실수는 달라. 하지만 이건 그 사람 문제가 아니라 네 문제야. 네가 어떤 길을 가느냐의 문제.” 뒤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할머니가 우릴 말리려고 방에서 나왔다. 엄마랑 내가 이렇게 크게 다툰 적은 없었다. 몸이 덜덜 떨리는데 왠지 일부러 더 긁고 싶다. “아니, 그 남자랑 애를 낳은 건 엄마잖아. 엄마가 범죄자를 선택해 놓고 왜 이제 와서 나한테 화풀이야? 한심하게.” “앤톤.” 할머니가 주의를 준다. --- pp.56-57 난 물끄러미 탁자 모서리를 응시한다. 내 인생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앤톤 찰스, 모두가 설설 기는 운동장 패거리의 일원인 내가, 학교 공인 찐따 매튜와 해피 캠퍼들 틈에 섞여 있다니. --- p.71 창밖을 보니 엄마가 벌써 날 데리러 와 있다. 할머니도 오셨다. 와. 우리가 예정보다 20분 늦게 도착해서 그런지 둘 다 좀 초조해 보인다.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다 나려는 걸 참느라 죽겠다. 길 위의 사나이는 그렇게 울지 않는 법이다. 태연하게 나가야 한다. 하지만 정말 많이 보고 싶었다. 버스 짐칸에서 가방을 꺼내는 것도 잊고 엄마한테 먼저 달려가 내 인생 통틀어 가장 진하게 껴안는다. 그런 다음 할머니를 똑같이 힘껏 끌어안자 할머니는 어색한 듯 작게 흐흐, 한다. “엄마, 내가 주말에 겪은 일 들으면 깜짝 놀랄걸?” 말이 폭포처럼 쏟아진다. “버스에서 합창을 하더라. 음식은 끔찍했어. 그러다 숲에서 길을 잃었는데, 나 죽을 뻔했다? 타란툴라도 만져 봤고…….” 뭔가 이상하다. 엄마랑 할머니가 걱정스레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할머니가 곧 울 것 같은 얼굴로 뒤돌아보며 내게 말한다. “앤톤, 네 아버지 말이다. 오늘 아침에 출소했어.” --- pp.141-142 “앤톤, 그 사람과의 관계는 네가 결정할 일이야. 그건 괜찮아, 그 사람 때문에 네가 상처 입는 일만 없다면. 하지만 나한테 그 사람은 그저 지구상의 80억 인구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아. 용서한다는 건 놓아준다는 뜻이고, 난 이미 오래전에 그렇게 했어. 널 위해서도 그 사람 험담은 안 할 거야. 그렇지만 그 사람을 잘 알고 널 진심으로 위하는 사람으로서 한마디하자면, 정말 신중했으면 해.” “신중하라니?” “네가 누구인지 잊지 말라는 얘기야. 네가 얼마나 다정한 사람인지, 엄마랑 할머니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꼭 기억하라고.” --- p.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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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톤 찰스는 학교 복도를 마음껏 활보하는 ‘일진 패거리’의 우두머리다. 아버지가 폭력 범죄로 수감되면서 얻게 된 ‘아무도 감히 맞설 수 없는 학교의 왕’이라는 지위는 자신이 가진 거의 유일한 자부심이다. 패거리를 이뤄 학교를 지배하고 있는 앤톤과 친구들(케힌데, 케일럽, 마커스)은 서로를 부추기며 그 명성을 공고히 지키려 한다. 그러자면 잘잘못을 따질 것도 없이 어떠한 시비에서든 위력을 과시해야 하고, 선생님들의 말도 무시해야 하며, 만사를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해야만 한다. 하지만 엄마와 외할머니랑 셋이 살고 있는 집에선 앤톤은 철부지 사고뭉치 아들이고 손자일 뿐이다. 결국 학교에서 사고를 치고 엄마와 크게 부딪친 후 인터넷 한 달 금지라는 벌을 받게 된다.
엄마는 앤톤에게 인터넷 사용을 다시 허락해 주는 조건으로 지역 봉사 동아리 ‘해피 캠퍼스’에 매주 참여할 것과 지역 리모델링 프로젝트 ‘세인트 루크스’의 일을 도울 것을 강요한다. 마지못해 참여한 ‘해피 캠퍼스’ 모임에서 앤톤은 학교의 ‘공식 찐따’ 매튜와 같은 팀이 되고, 심지어 캠핑까지 함께 가게 되면서 예기치 못한 사건에 얽히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앤톤은 이제껏 자부심을 느끼며 당연하게 여겨 온 자신의 세계에 조금씩 의구심을 느끼기 시작한다. 거기다 앤톤의 아버지가 감옥에서 출소하면서 상황은 더 복잡하게 흘러간다. 이제 앤톤은 지금껏 필사적으로 지키려 했던 ‘학교의 왕’이라는 타이틀을 상실할 위험을 무릅써야 할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과연 앤톤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삶을 그려나가게 될까? 학교의 우두머리와 찐따 소년 사이의 어색한 만남과 더디지만 솔직한 상호 이해의 과정은, 우정을 빙자하지만 사실은 서로를 망가뜨리는 앤톤의 교우관계와 대조를 이루며, 그의 삶에 파열음을 낸다. 편견으로 가득 찬 자기만의 세계를 깨고 더 넓은 시야를 처음 접하게 되는 10대 청소년들이라면 누구나 겪게 마련인 혼란과 내적 갈등을, 저자는 특유의 속도감 있는 문장과 능청스러운 유머, 생생하게 살아 있는 캐릭터들을 통해 유쾌하게 풀어냈다. 『아무것도 아닌 왕』은 진지하면서도 위트가 넘치는 코미디와 감동적인 성장 드라마를 넘나들며 남성성에 대한 또래 집단의 압박, 가족 사이의 상처와 화해, 좋은 관계와 진실한 우정을 맺는 자세, 그리고 삶의 진정한 가치와 같은 만만치 않은 주제들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청소년들을 위한 완벽한 책이자, 성인 독자들의 마음까지 단번에 사로잡을 사랑스러운 소설이다. 특히 청소년들이 직접 읽고 투표로 선정하는 ‘카네기’의 ‘섀도어스 초이스상’을 수상했다는 점에서 드러나듯, 읽는 재미와 높은 작품성을 동시에 갖춘 소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