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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과 고통으로 자기 증명을 하지 않는 이야기를 만날 가능성 -속박의 이야기를 새로 쓰는 일에 대하여‘옛날 옛적에 어떤 여자아이가 갖은 고생을 하며 고통받은 이야기.’ 누구를 원망할 수 없이 그저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이야기를 만날 때의 씁쓸함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을까. 은모든 작가는 그럴 때마다, 한 번쯤은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새로 쓰는 일에 매달려보고 싶다는 소망을 가져왔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접할수록, 그중에 여성이 주인공이면서 고생과 고통으로 자기 증명을 하지 않는 이야기를 만날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지, 그런 소망을 가져서 무엇할지 회의를 품게 되었다. 그러다. 강릉 단오제를 찾은 어느 날 남대천 무대에서 상영 중이던 제주의 무속 신화 「가믄장애기」를 만난 순간 안에서 꿈틀대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거지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딸은 실은 운명의 신이라는 정체를 가지고 있었다. 이 인물은 얄팍한 효성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나지만 기죽지 않고, 반성의 기색도 없다. 외려 매몰찬 부모와 동조한 언니들에게 저주를 내려 언니들을 버섯과 지네로 변하고 부모는 나란히 장님이 된다. 과감한 전개는 가문장애기가 연 잔치에 부모가 나타나 시력을 되찾으며 뜻밖에 심청전과 겹치게 된다. 그러나 애달프게 아버지를 반기던 청이와 달리 가믄장애기는 마지막까지 아는 체하지 않으며 부모에게 시련을 준다. 간단히 용서할 마음이 없으며 끝내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듯이. 이렇게 극명하게 다른 두 인물이 함께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는 궁금증이 이 소설의 출발점이 되었다. 심청의 속내를 소환해 들어보되, 누구보다 자기중심적이고 독립적인 가믄장애기와 함께하도록 하면서. 그리하여 일찍 엄마를 여의고 상실한 채 칩거하는 아버지를 보살피며 자기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루미와 부모의 욕망에 어린 시절을 빼앗겨야 했던 현은 서로 친구를 사귈 수 있을 만큼의 여유를 갖지 못한 채 ‘동창’이라는 느슨한 연결고리만 갖고 있다가, 졸업 후 한참 시간이 흘러서야 다시 만난다. 이들의 예상치 못한 만남은 서로의 삶에 모종의 변화를 가져다주게 된다. 그렇게 작가가 오래 꿈꾸던 가능성은 각자의 삶에서 감당해야 할 몫을 나눌 수는 없을지라도 멀지 않은 곳에 서로가 있다는 사실 자체로 든든한 연대와 신의를 전해주며 따뜻하고 든든한 이야기로 새롭게 탄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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