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홍당무의 다른 상품
|
■ 오늘은 파 뽑는 날!
하늘엔 구름 한 점 없다. 준비, 시작! 짹 짹 짹, 어슴푸레 안개 속을 새들이 재잘댄다. 아, 맞다, 오늘 파 뽑는 날이지! 어젯밤에 아빠가 지금 뽑지 않으면 바로 파꽃이 피어 버려 시장에 팔 수가 없다고 내일 일찍 다 같이 파 뽑으러 가자고 했다. 얼른 일어나 채비를 서둘러 아빠랑 엄마랑 경운기에 탔다. 덜덜덜, 새벽안개를 헤치고 나아가는 경운기. 덜컹덜컹 흔들흔들 들썩들썩…… 울퉁불퉁한 길이 마치 가족 소풍이라도 가는 것처럼 설렌다. 드디어 도착한 파밭! 파란 하늘 아래 초록빛 파가 빽빽이 꼿꼿이 서 있다. 드넓은데 촘촘한 파밭, 그 앞에 선 우리 세 식구는 마치 조그만 동그라미 같다. 하지만 아무리 넓은 파밭도 시작이 반, 준비, 시작! 아빠의 구령을 신호로 파를 뽑기 시작한다. 파 줄기를 ‘꽉’ 잡아서 ‘쏙’ 뽑아서 ‘탁’ 놓는다. 꽉, 쏙, 탁, 꽉, 쏙, 탁, 꽉, 쏙, 탁…… 오로지 파와 내 손에 집중하는 시간, 방울방울 땀방울이 떨어진다. 꺄악! 쏙 뽑아 올린 파 줄기에 꿈틀꿈틀 지렁이, 알록달록 무당벌레가 빼꼼 고개를 내밀지만, ‘자연의 농부들’이라는 아빠의 말에 금세 친구가 된다. 손에도 올려 보고 두 팔 벌려 훨훨 뛰어다니기도 하고……. 점심시간, 함께 먹는 비빔밥은 더 맛있다. 한잠 잔 뒤 다시 꽉, 쏙, 탁, 꽉, 쏙, 탁……. 이웃집 아저씨가 새참으로 사 온 빵 봉지를 두 손으로 펑펑 터뜨려 먹으니 꿀맛이다. 아저씨까지 도와 함께 쌓아 올린 거대한 파 탑! 어느덧 해가 집으로 돌아갈 시간, 우리도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 아이의 마음속에 영원한 추억, 커다란 사랑을 심은 여름날 하루 어린이다운 순수한 설렘, 놀이의 즐거움, 노동의 씩씩함, 해 뜰 때부터 질 때까지의 여름날 하루가 강렬한 색감으로 펼쳐지는 《파 뽑는 날》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만드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홍당무 작가가 말 그대로 마음속에 간직한 어린 시절 추억의 하루를 쉽게, 편안하게 펼쳐 보이는 기분 좋은 그림책이다. 넓은 파밭에서 허리를 숙이고 파를 뽑는 일은 나름 힘든 농사일이지만, 아직 일의 힘듦도 그 일을 하는 부모의 어려움도 알기에는 어린 나이의 아이는 그저 신이 난다. 고사리손이나마 ‘꽉 잡아서 쏙 뽑아서 탁 놓는’ 일에 열심히 손을 보태 꽉, 쏙, 탁, 가족의 호흡이 척척 맞는다. 평소 아침에 나가 저녁에나 들어오는 아빠랑 종일토록 같이 있는 게 신이 나고, 새로운 곤충을 만난 파밭도 재미있기만 하다. 일거리 가득한 그 파밭에서 놀거리를 발견한 아이의 천진함이라니! 세상 모든 것이 재미있고 궁금할 그런 아이의 설렘과 즐거움이 시종일관 유쾌하다. 책장을 넘길수록 기분이 좋아진다. 군더더기 없는 터치, 굵고 친근한 선, 화려한 색감은 홍당무 작가의 특징이다.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노랑 땅과 초록색 파는 원색의 강렬함과 순수함으로 시선을 확 끈다. 과감한 색의 조화, 노랑, 하늘, 핑크, 보라 등은 더없이 화사하게 자연과 사람과 시간의 흐름을 펼쳐 보인다. 처음엔 회색 안개가 자욱했는데 점점 밝아지다 어느새 새파래지고 한참 뒤 다시 주황색에서 핑크빛으로 보라색으로 깊어지는 하늘이 멋지다. 여름날 내리꽂히는 태양처럼 강렬한 색감, 짧은 문장, 뚜렷한 인물 표현은 생동감 넘치게 뜨거운 여름날의 더 치열한 노동의 하루를 낭만적으로 전개한다. 별다른 수식이 없는 간결한 글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고개 숙인 채 파를 잡는 손, 흐르는 땀방울…… 그 위에 ‘시간이 간다.’는 짧은 문장은 얼마나 집중해서 일하는지 해는 또 얼마나 높아졌는지, 시간의 흐름을 직관적으로 느끼게 한다. 층층이 진 안개 속을 나아가는 덜덜덜 경운기가 마치 하늘을 미끄러지듯 나는 듯이 느껴지는 것은 아이의 기대와 셀렘에 물들어서일까? 검붉은 얼굴이 점점 핑크빛으로 익어 가는 아빠, 장갑도 안 끼고 맨발로 일하는 아빠는 정말 베테랑 농사꾼이다. 길가에 심어진 홍당무, 시금치, 상추, 온갖 작물, 그리고 파…… 노란 바탕에 녹색과 흰 줄기의 파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뭔가 쑥쑥 이 순간에도 자라나는 것만 같다. 뽑아도 뽑아도 끝이 없을 것 같은 파밭인데 그래도 일의 끝은 있는지, 어느새 쌓아 둔 파가 탑을 만들고 파가 뽑힌 노란 바닥에는 구멍이 숭숭하다. 꽃이 피어 뽑지 않고 그냥 놔둔 파들, 그 파의 씨앗이 보라색 밤하늘을 훨훨 날아가 다시 또 노란 흙에 자리 잡는다. 내년에도 파 뽑는 날은 이어진다! 높다랗게 쌓은 파를 싣고 집으로 돌아가며 다 같이 하하하 웃는 모습은 마음속에 오래 남을 장면이다. 어른의 일에 참여해 한몫해 낸 뿌듯함과 작게나마 땀을 흘리며 깨달은 일의 가치와 무엇보다도 우리를 위해 고되게 일하는 부모님의 사랑을 직접 느낀 아이의 마음은 더없이 좋았을 것이다. 어느 여름날, 밭에서 파를 뽑고, 마음에 절대 사라지지 않을 튼튼한 사랑을 심었다. 작가의 말 짹짹 짹짹, 언제부터 지저귀었을까? 엄마가 밥솥을 방에 들고 와 뚜껑을 열자 후욱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아, 맞다. 오늘 파 뽑는 날이지! 어젯밤에 아빠가 지금 뽑지 않으면 바로 파꽃이 피어 버려 시장에 내다 팔 수 없으니, 내일 다 함께 파를 뽑으러 가자고 했다. 설레며 선잠이 들었는데, 벌써 일어날 시간이다. 후딱 아침을 먹고 경운기를 탔다. 덜덜덜 떨리는 진동이 엉덩이를 타고 손끝과 머리카락까지 전해 왔다. 서서히 안개가 걷히며 나타나는 초록빛 밭, 빽빽이 서 있는 파들……. “자, 봐. 파의 아랫부분을 꽉 잡아서, 쏙 뽑은 다음에, 탁 하고 옆에 놓으면 돼.” 아빠는 파 농사가 처음이라면서도 베테랑 농부답게 능숙했다. 나도 아빠 따라서 파 줄기를 꽉 잡아 힘껏 뽑아 올렸다. 그러면 지렁이랑 무당벌레도 쏙쏙 고개를 내밀었다. 신기하게 손바닥이 얼얼하고 허리도 아프고 힘들면서도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엄마 아빠와 함께 일하는 게 마냥 좋았다. 이렇게 하루 종일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며 같은 리듬으로 움직인 건 처음이었다. 땀에 젖은 아빠의 웃음소리, 엄마가 건네주는 시원한 미숫가루, 숟가락으로 쓱쓱 떠먹는 비빔밥, 옆집 아저씨가 사 오신 빵, 우유……. 그날은 단순히 농사일을 도운 날이 아니다. 부모님의 일터에 나도 발을 들여, 보살핌을 받으면서도 당당히 함께 일한 날이다. 농사가 얼마나 고되고 힘든 일인지 어렴풋이 느끼면서, 그 속에 가득한, 우리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부모님의 사랑을 직접 본 따뜻한 소풍 같은 날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던 경운기 위에서 바라본 노을이 내리던 하늘, 새벽안개를 헤치고 나와서 어둑어둑 해 질 녘에 들어가던 그 장면이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