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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자본주의 Self-Capitalism
인생 최고의 수익률, 나에게 베팅하는 법
정태승 저
재재책집 2025.07.28.
베스트
경영관리/전략/경영학 top100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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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6,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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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프롤로그_ 좌충우돌하지만, 내 인생이니까

I부 인생의 수익률, 자기 투자에서 시작된다

1장 젊은 날의 나를 안아주자
20대, 불안해서 방황하지만 노력해서 빛난다 17
멈춰 있는 당신, ‘제자리’가 아니다 27
전환점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33
인생 투자 1단계, 나를 믿고 저질러본다 39

2장 공부, 누구에게나 가장 공정한 투자
무능해서 대학원: 공부는 ‘모른다’에서 시작된다 53
영어는 나의 힘: 배운 만큼 유리해진다 63
임기응변도 무기라면: 패기도 공부해야 는다 75
야학, 가르치며 배우다: 진짜 공부는 교실 밖에 있다 84
독서, 가장 저렴한 공부: 배운 만큼 버티는 힘이 생긴다 97
노력한 만큼 돌아오는 확실한 수익률: 공부가 인생의 복리를 만든다 104

3장 경험과 시행착오는 최고의 자산이다
일에도 얼리어댑터가 있다 117
이름대로 사는 사람 ‘Dawn’과 이름처럼 흩어진 우리 ‘Done’ 125
한 회사에 세 번이라도 137
시행착오의 기록은 미래의 매뉴얼이 된다 148
불운인지 행운인지는 끝을 봐야 알 수 있다 156
실패의 수업료는 비싸지만, 가장 오래 남는다 166

Ⅱ부 사업의 수익률, 사람과 경영에서 완성된다

4장 사람에게 배운 관계의 7가지 법칙: 사람이 곧 기회다
사업을 한다면 쇼피그처럼: 사람의 ‘격’은 스스로 매긴다 177
드가 없이 빠삐용 없다: 책임감은 관계를 지탱하는 힘이다 184
아내, 미래를 현실로 만드는 단단한 사람 : 관계의 본질은 동행이다 191
멀리 가고 싶다면 함께 가라: 함께 만든 길 위에서 성장한다 202
네트워킹보다 지속성: 연결보다 유지가 더 큰 실력이다 212
‘아버지가방에 들어가셨다’: 이해받지 못한 마음이 이해를 낳는다 219
기억에 남는 사람이 기회를 만든다: 태도는 기억되고, 기억은 기회를 만든다 232

5장 ‘가치’와 ‘방향’에 베팅하라: 무너지지 않는 7가지 경영철학
길 위에 돈을 놓지 않는다 241
흔들리지 않는 창업원칙을 지킨다 250
삼두체제로 움직인다 259
모두의 어깨에서 바라본다 265
‘가지 않은 길’은 과감히 버린다 272
오너가 없어야 오너 리크스도, 직원 리스크도 없다 280
나의 ‘현재’ 상태와 내가 ‘기대하는’ 상태를 점검한다 287

6장 미래를 경영하라: 도전과 변화에 대응하는 성장 운영 원칙
내 시간을 저당 잡히지 마라: 돈보다 깊은 자본, 문화의 힘 303
세상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 뉴노멀의 뉴노멀을 읽는 눈 312
오늘도 달린다: 현장에서 배우는 미래의 조건 320

에필로그_ 옹졸하고 경솔하며 다소 모자란, 어느 소규모 업체의 사장 이야기 328

저자 소개 1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다. ‘문중의 장손’이자 ‘집안의 장남’이었지만, 자다가 만화책에 코 박고, 통속소설에 빠져 숙제를 잊던 소년이었다. ‘굶는 과’라 불리는 국문학과에 진학하면서 주위의 핀잔도 들었지만, 내심 사랑받는 작가나 교육자, 정치인을 꿈꾸기도 했다. 다만 확실했던 단 하나는,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절실한 바람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늘 예측불허였다. 10년 넘게 한 무역회사에서 일한 끝에 창업의 길로 들어섰고, 지금은 연 매출 200억 원 규모의 중소기업을 이끄는 대표가 되었다. ‘돈’을 좇던 정 대리는 어느덧 ‘돈’이 찾아오는 정 사장이 되었고, 이제는 인생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다. ‘문중의 장손’이자 ‘집안의 장남’이었지만, 자다가 만화책에 코 박고, 통속소설에 빠져 숙제를 잊던 소년이었다. ‘굶는 과’라 불리는 국문학과에 진학하면서 주위의 핀잔도 들었지만, 내심 사랑받는 작가나 교육자, 정치인을 꿈꾸기도 했다. 다만 확실했던 단 하나는,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절실한 바람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늘 예측불허였다. 10년 넘게 한 무역회사에서 일한 끝에 창업의 길로 들어섰고, 지금은 연 매출 200억 원 규모의 중소기업을 이끄는 대표가 되었다. ‘돈’을 좇던 정 대리는 어느덧 ‘돈’이 찾아오는 정 사장이 되었고, 이제는 인생 최고의 수익률은 결국 '나'에게 베팅하는 데서 나온다는 사실을 확신한다.

이 책은 젊은 날의 자신에게 보내는 회고이자, 오늘도 불안 속을 걷고 있는 누군가에게 건네는 ‘땡볕 속 그늘막’ 같은 응원의 기록이다. 그는 말한다. “글을 쓰기 위해선 먼저 필요한 것을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던 건 참으로 어리석고도 편협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경직된 사고조차 지금의 그에게는 소중한 자산이다.

돈을 벌고 싶었던 그는, 시간이 흐르며 돈보다 ‘가치’에 베팅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공부는 여전히 삶의 중심축이고, 관계는 가장 중요한 투자처이며,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 가장 값비싼 수업료였다. 이 책은 그런 ‘자기자본주의’의 철학과 실천이 응축된 성장의 기록이다.

그가 운영하는 회사는 다르다. ‘오너가 없는 회사’를 지향하고, ‘삼두체제’로 돌아가며, 모두가 사장이면서도 동시에 직원처럼 일한다. ‘1년에 두 달은 자리를 비운다’는 원칙 아래, 그는 단지 회사를 경영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 자체를 경영한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자신에게 베팅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투자처는 결국 ‘나’니까.

이메일 chakan40@gmail.com
블로그 blog.naver.com/chakan40

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7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331쪽 | 148*210*30mm
ISBN13
9791198601872

책 속으로

나는 성인이 되어가면서도 가난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별로 하지 않았다. 집안을 돕는 일은 아직 내 몫이 아니라고 여겼던 것 같다. 아르바이트는 꾸준히 했지만, 용돈벌이에 지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뭔가 기대하셨던 모양이다. 방학 때 모처럼 장기간 아르바이트를 했고, 아버지는 그 돈이라도 학비에 보태려나 생각하셨겠지만, 난 덜컥 ‘세계 사상전집’을 사버렸다. 아버지는 역시 섭섭해하셨다.

흔히 훌륭한 사람들의 스토리에 등장하는 훈훈한 에피소드가 나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았다. 부모가 자식에게 아무 걱정 없이 공부하라거나, 나라에 봉사하라고 든든히 뒷받침해주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장면 말이다. 그건 책이나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보통 가정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현상이었다. 그 반대의 스토리를 기대하셨을 아버지께도 역시 마찬가지였겠지. 그러나 당시 아버지가 장남에게 표현한 불만과 섭섭함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타당했던 것으로 판명됐다. 그 전집은 끝내 다 읽지도 못했을 뿐더러, 몇 년 뒤 이사하던 날 통째로 엿장수 리어카에 던져지고 말았으니 말이다.
--- p.18

젊은 날의 나를 떠올리면 안타깝다.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심리 상담사 숀이, 방황을 멈추지 못하고 끊임없이 세상을 조롱하며 기성세대에 반항하는 젊은이 윌 헌팅에게 하듯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하며 꼭 안아주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 잘하고 있는 거라고. 사실은 네가 몰라서 그렇지, 젊은 시절엔 다들 너처럼 경솔하다고.

혹시 지금, 남들처럼 아무 문제없이 잘 사는 것 같은데 자꾸만 불 안하고 이유 없이 화나고 짜증나고 우울하고, 그래서 스스로 불행하 다고 느끼는 이들이 있다면 자책하기 전에, 그리고 질병인 줄 알고 병원에 가서 진단받고 약을 먹기 전에, 잠깐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 해볼 것을 권한다. 그 불안이나 화, 짜증은, 내 경험으로 비추어보자 면, 결국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기억하자. 불행은 절대로 나에게만 오는 것이 아니다.
--- p.31~32

학원 강사로 자리를 잡아가던 어느 날, 대학의 동창 모임에서 사달이 나고 말았다. 내가 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배가 술자리에서 내 앞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다가 냉정하게 한마디를 했다.

“형은 학교 다닐 때 그랬잖아요. 영어 공부하면서 서울에서 아침 먹고, 도쿄에서 점심 먹고, 뉴욕에서 저녁 먹는 인터내셔널 비즈니스맨이 되겠다고. 근데 지금 뭐 하는 거예요? 학원 강사 생활에 진짜 만족하는 거예요? 어쨌든 난 실망이에요.”

술을 마셔서 안 그래도 벌겋던 내 얼굴은 더욱더 시뻘게지고 말았다. ‘딩~~~’ 징 울리는 소리가 집에 돌아가서 자리에 누워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머릿속 구석구석에서 진동했다.
--- p.36

사장은 외로운 자리다.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줄 사람이 이 세상에 없다고 보는 편이 맞다. 사장은 당시 서른도 안 된 내게, 방글라데시로 오기 전과 공장 이전을 결심하며 쏟아부은 돈과 에너지,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해 구구절절 이야기했다. 집중해서 들으려 했지만 잘 이해되지 않았고, 어떤 이야기는 ‘도대체 이런 얘기까지 왜 나한테 하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나이가 든 지금 생각해보면 사장은 외롭고 힘겨웠던 거다. 이미 수백억 재산이 있다고 들었지만, 한 번도 그가 해맑고 시원하게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늘 인상을 쓰고 다녔다. 공장에 올 때면 직원이 만든 음식을 먹기 싫어 007 가방에 신라면과 초코파이를 넣어 다닐 정도로 입이 짧은 사람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원인을 인문학적 소양 부족에서 찾는다. 역사와 인간을 파악한 중년이었다면, 틀림없이 위기에서 기회를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 p.46~47

제대를 하고도 나는 철이 들지 않았다. 아무것도 자신 있는 게 없었다. 무엇을 잘하는지도 몰랐고, 하고 싶은 것도 뚜렷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취업 시장으로, 누군가는 어학 공부를 위해 미국, 호주, 일본 등 해외로 나갔지만 나는 어떠한 결정도 미룬 채 아까운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러다가 졸업반이 됐다. 대학원 교학과에서 행정조교를 하던 선배가 대학원 입학을 권유했다.

(……) 대학원 진학이 이렇게 미래에 대한 고민 없이 이루어진 사람은 아마도 나뿐일 거다. 특별한 목표 없이 대학원에 입학한 것은 경솔과 허영의 결정체가 빚은 한편의 블랙코미디였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석사과정이 시작되었다.
--- p.55

한국어라면 나는 ‘수다쟁이’ 축에 든다. 말도 재미있게 하는 편이다. 달변은 아니어도 ‘다변’이다. 그런데 영어로 말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코 큰 사람들 앞에 설 용기는 낼 수 있었지만 혀는 좀처럼 의지대로 굴려지지 않았다. 남의 나라 말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 싶었지만, 해도 해도 너무했다. 이렇게까지 가성비가 떨어질 수 있다니.
--- p.66

영어 공부는 4단계를 거쳐 완성된다. 그리고 영어 실력은 계단식으로 오른다. 어느 공부도, 어떤 훈련도 하루아침에 성과를 내기는 어렵지만, 영어 공부는 그중에서도 특히 정직한 공부다. 어느 순간, 내가 다음 단계로 올라섰음을 스스로 실감할 수 있다. 내가 경험한 영어 공부의 4단계는 이렇다. 1단계 착각의 결심, 2단계 ‘아다다’의 좌절, 3단계 ‘소크라테스’의 자각, 4단계 물 만난 물고기.
--- p.71

야학 동료의 모친에게 대학생이 다 같은 대학생이 아니었듯이, 나도 어느 순간부터 사람이 다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본주의라는 개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를 얻은 것이다. 대한민국은 ‘그냥 사람’과 ‘자본을 (많이) 소유한 사람’이 철저하게 구분되는 사회였다. 호숫가에 벌집처럼 층층이 빼곡하게 들어찬 살림집, 장미를 하나도 닮지 않은 데다가 부자들만 모여서 살고 있는 그 건물을 ‘장미아파트’라고 부르는 현실이 우습기도 하고, 내 신세가 처량하기도 했다. 새삼 모든 건물과 집은 그 주인들이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알고 보니 몇 안 되는 기득권자들이 엄청난 금융자본과 부동산을 움켜쥐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사는 도시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 사회과학 공부는 분명히 필요한 교양이다. 특히 한국 사회처럼 불평등이 구조화된 현실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 지식이 혐오 섞인 분노와 알량한 자존심 위에 얹힐 때, 세상을 읽는 눈은 넓어지기보다는 오히려 한쪽으로 좁아질 수 있다. 나는 그 시절, ‘누가 착하고 누가 나쁜가’를 너무 단순하게 구분했다. 우리나라의 주인도 따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 삶의 주인도 내가 아닌 것 같았다.
--- p.91~92

그즈음, 어렴풋이 알게 된 것 같다. 진짜 공부는, 나와 내 삶을 제대로 책임지기 시작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을. 그리고 야학에 서 내가 가르치고 보호해야 한다고 착각했던 이들은, 우리 사회의 밑바닥을 떠받치고 있는 아틀라스(Atlas)였다는 것을. 이미 매일 혹독한 현실을 마주하면서도 지치지 않고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학강들은, 나보다 훨씬 먼저 진짜 공부를 시작해 자신 들이 겪는 현실을 제대로 해석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가르침은 결코 일방적이지 않았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법이다. 그 들이 있었기에 내가 배웠다.
--- p.96

회사 일에서 실무 능력은 결정적이지 않다. 그보다는 조율과 합의, 타협과 조정 등과 같은 타인과 교감을 통해 공감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사람을 아는 힘’이 필요하다. 세상을 이해하는 데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직접 경험을 하는 방법, 다른 하나는 간접 경험을 쌓는 것. 책은 간접 경험을 통하는 가장 효율적인 길이다. “어리석은 인간은 경험에서 배우고, 현명한 인간은 역사에서 배운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경영서든 인문서든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사업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사람을 모르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말이다. 모든 비즈니스는 결국, 사람 관리로 귀결된다. 다른 이들의 생각과 행동을 분석하기 위해 동서고금의 현인들과 선각자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연구를 진행했고, 책을 썼다. 우린 읽기만 하면 된다.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시간을 비교적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읽고 쓰는 것은 언제든 가능하다. 골프도 하고 가끔 지인들과 술도 마신다. 하지만 점점 내 시간의 많은 부분은 책읽기와 글쓰기로 채워지고 있다. ‘나는 작가가 되려는 사장인가, 사장이 된 작가인가.’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가 오늘도 읽고 있다는 사실이다. 읽는 사람은 무너지지 않는다
--- p.103

드라마에서처럼 ‘들켜버린 일탈’은 현실이 되었고, 신뢰가 무너진 가장은 집에서 필요 없는 존재가 됐다.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살림을 하는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남편이 큰 꿈을 꾸고 있고, 매우 도덕적이고 성실하며, 또 진실된 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있던 아내는 경악했다. 아내는 절망했고, 우리에게 더 이상 미래가 없다고 판단했다. 아내는 이혼을 결심했고 서류를 준비했으며 나는 찍소리도 못하고 도장을 찍어야 했다. 너무 빌어서 손이 발이 됐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 피로와 스트레스는 금연도 금주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알았다. 약한 체력은 의지의 박약을 부른다. 금욕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몸이 피폐해지면 절제도, 결단도, 그리고 멈추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확신한다. 금연도 금주도 금욕도 결국엔 ‘공부’라고. 몸도 공부하고 갈고 닦아야 하는 것이라고. 그래야 정신이 건강해진다고 말이다
--- p.111

신사업팀은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세계적인 컴퓨터 제품 박람회 ‘CeBIT’에 주목했다. 출품된 수많은 신제품들 중엔 틀림없이 국내의 틈새시장을 비집고 들어올 품목이 있을 거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박람회에 전시된 신제품 목록을 살피다가 발견한 아이템이 ‘애플리카’였다. 회사 형편 관계상 프랑크푸르트에서 개최되는 박람회에 직접 참석할 수는 없었기에 온라인을 통해 제품목록과 기술 자료를 하나하나 조사하다가 발견한 ‘쾌거’였다. 위대한 발견의 주인공은 인문학과 IT를 공부한 하이브리드 괴짜, 안 대리였다. (……) 사업화를 결심한 이들은 미국의 제품개발업체와 직접 소통했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을 찾았다. 그때 친구가 나를 떠올렸고, 추천했다. 나는 신사업팀에 합류했다. 나에게 주어진 첫 번째 미션은, 미국의 제품개발업체에 연락해 ‘애플리카’를 국내 독점 공급 판매할 수 있도록 계약을 성사시키는 일이었다. (……) 신사업팀의 세 사람은 죽이 잘 맞았다. 오전에 만나 각자 맡은 일을 조율하고, 흩어져 각자 필요한 업무를 수행했다. 나는 새벽에 통화한 내용을 팀원들과 공유하고, 그날 새롭게 파악한 정보에 맞춰 미국에 보낼 이메일을 새로 썼다.
--- p.120~121

알고 보니, 미국의 Dawn 사장이 싱가포르의 한 업체와 아시아 총판 계약을 체결했던 거였다. 아시아 총판권을 싱가포르 업체에 주었고, 그 업체가 다시 한국의 한 업체에 한국 내 판권을 넘긴 것이다. Dawn 사장은 우리 ‘아이디어시스템’과 한국 독점 판매권 계약을 체결한 뒤에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런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우리는 즉시 미국 본사 사장 돈에게 항의했고, 조치를 취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하지만 실제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아마 싱가포르 업체와 계약상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통제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시장에 같은 기능의 두 제품이 서로 다른 가격으로 유통되는 상황은 신뢰에 치명적이었다. 경쟁 업체는 제품을 대량으로 수입해 우리보다 훨씬 싸게 팔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수입 원가는 우리보다 많이 높았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미국 본사에서 직접 수입했지만, 그들은 아시아 총판을 거쳐 들여왔기에 두 업체의 마진이 가격에 포함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 나는 경쟁 업체와 협상을 시도했다. 같이 망하는 길을 가지 말고 제품의 특성을 고려해 협업하면 어떻겠느냐고 의사를 타진했다 “이 제품은 판매보다 유지보수가 더 중요한 제품이다”, “매출에 연연하다 보면 앞으로 남고 뒤로 손해 본다”, “A/S 등 유지보수에 관한 일은 거점을 두어 공동으로 관리하고, 판매 지역을 나누어 상생하는 길을 찾아야한다”라고 주장했다. 협력을 제안했다. 우리보다 나이가 많은 기성세대였던 그들은 우리 젊은이들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그들은 박리다매를 노렸다. 제품에 대한 특성을 전혀 무시한 처사였다. 수십만 원 하는 컴퓨터 관련 제품을 붕어빵 팔 듯 했으니 말이다. 그들은 제품을 제대로 설치할 줄도 모른다고 했다. IT 관련 일을 하던 사람들도 아니었다.
--- p.130~131

신사업팀은 해체됐다. 기술 영업을 하던 타 부서 사람들은 제자리로 돌아갔지만, 끝까지 남아 제품을 설치하고 A/S까지 책임진 팀원이 있었다. 괴짜 안 대리였다. 홈페이지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올려놓고 마지막 문의 하나까지 응대했던 그의 행동은 임진왜란 당시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왜군과 최후의 일전을 벌이다 전사한 신립 장군을 떠오르게 했다. 무너진 자리에서 완수의 의미, ‘Done’을 배웠다. 그 일을 통해 나는 한 가지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사업은 끝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비로소 ‘사업’이다. 아이템이 좋고 시장 반응이 뜨거워도, 그것을 끝까지 밀어붙일 체력과 자금이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의 실패 원인을 돌아보면, 결정적인 순간마다 발목을 잡은 건 자금 경색이었다. 당장 첫 수입 물량 대금을 마련하지 못해 금고에 담보를 제공하고 물건을 하나하나 꺼내 쓰듯 팔았던 것부터, 전국 A/S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후속 조치를 중단했던 일까지. 사업의 본질은 결국 ‘자금’이었다. 유동성의 확보, 자금조달 능력 그리고 자금을 움직이는 힘이 없이는 아무리 좋은 비전도 ‘완수’로 이어지지 않는다.
--- p.135

나는 오만하고 경솔했다. 그러한 태도와 정서는 동료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됐을 터. 사장 편도 없었지만 내 편도 없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이글스(Eagles)의 노래 〈데스페라도(Desperado)〉는 스페인어로 ‘절망 또는 체념한 사람’이라는 의미다. 이 노래의 주인공이 바로 나였다. 엘도라도를 찾아 떠났지만 세상에 그 따위 일확천금의 기회는 거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일상으로 돌아온 탕아. 경험은 정답이 아니더라도,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은 되어준다. 확신 없이 시작한 길도, 돌아서며 얻은 후회도, 다시 돌아와 다잡은 마음도, 모두 내가 겪고 지나온 내 삶의 구성 요소다. 절망과 체념을 경험하고 나면 더 이상 두렵거나 의심스러울 것이 없다. 그러한 경험들이 연륜과 경륜이 되어 내 삶을 묵직하게 지켜줄 것이기 때문이다. 어설퍼도, 실패하더라도, 해보는 게 낫다. 망설이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 p.147

그때부터 나는 업무 중 겪는 작고 큰 시행착오들을 기록해 남기기 시작했다. 처음엔 일기처럼 시작했고, 이후엔 간단한 업무 보고서 형식으로 정리했다. 분량은 정해두지 않았다. 일의 경중에 따라 형식도 자유롭게 쓴다. 업무의 배경과 진행 상황, 발생한 문제, 대응 방식, 그리고 느낀 점까지 정리해두는 식이다. 그렇게 쌓인 시행착오의 기록은 몇 년 지나지 않아 든든한 나만의 ‘비즈니스 매뉴얼’이 되었다. 다음번 일을 시작할 때마다 가볍게, 혹은 준비하는 마음으로 펼쳐보는 나만의 비즈니스북이 되었다. (……) 실패 경험은 시간이 지나면 ‘안 해본 사람은 모르는 노하우’가 된다. 단, 기록해두었을 때만 그렇다. (……) 사업이나 인생이나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라는 방심이 가장 큰 위험이다. 그러나 그런 예상 밖의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과거의 기록이 한 줄기 빛이 되어준다. 거기에 담긴 시행착오와 교훈, 그리고 판단의 기준은 어둠 속의 빛과도 같다. 정확하게 실측된 지도가 되어준다. 실패를 쓴맛으로만 삼지 말자. 씹고 삼킨 뒤, 꼭 기록하자. 그래야 언젠가 그 경험이 누군가의 나침반이 된다. 내 기록이 그렇듯이
--- p.154~155

가장으로서도, 사장으로서도 자리를 잡을 수 있을 만큼 나쁘지 않은 성적표를 받았다고 자부하던 무렵, 까맣게 잊고 있던 소식이 메일함에 날아들었다. 호주 이민성에서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내 사무실까지 컴퓨터로 배달된 이메일의 제목은, 호주 입국을 승인하는 서류(Grant Letter)였다. ‘웰컴 투 오스트레일리아’로 시작하는 편지는 호주 거주 비자가 승인되었으니 1년 내 입국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영주비자를 신청한 사실조차 흐릿한 기억으로 남았을 무렵, 그러니까 비자를 신청한 지 3년쯤 경과한 후 날아든, 반갑다고만 하기엔 편치만은 않은 편지였다. 그렇게 기다릴 땐 안 오더니만!

아내에게 호주에서 온 편지를 보여줬다. 그녀는 “일단, 급한 것들만 먼저” 하면서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짐을 쌌다. 우유부단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단호하고 추진력 있는 사람답게. “오빠, 내가 애들하고 가서 잘 살아볼게. 오빠는 왔다 갔다 하면 되잖아요.” 나는 까맣게 잊고 지내고 있었지만, 그녀는 이민성에서 날아들 그 그랜트 레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동상이몽이란 사자성어는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임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대출을 끼고 어렵게 산 집을 팔아 이민 경비를 마련했다. 나는 여름과 겨울, 각각 한 달씩 호주에 머무는 방식으로 생활하기로 했다. 마치 옆 동네로이사하듯, 우리의 이민은 그렇게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 그러나 이왕 여기까지 온 것, 호주 이민 불발로 사업을 시작하고, 사업이 다행스럽게 궤도에 오르고, 큰아이가 6학년이 된 해에 이민 허가가 나왔으니, 마음먹은 대로, 인연 닿는 대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 여기까지 온 이상, 우리는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기로 결단했다.
--- p.160~161

내게도 약속된 보상이 있었다. 내 나이 마흔이 넘어가고,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생, 갓 태어난 둘째가 돌이 되어가는 즈음이었다. 사장이 내게 약속한 인센티브는 ‘집’이었다. 몇 억씩 하는 집을 통째로 사줄 리야 없겠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는 보태주겠다는 말을 지속적으로 했기 때문에 나는 사장의 약조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 말은 내게 엄청난 동기부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은 조용히 나를 불렀다. “아이 학년도 올라가는데 어쩌려고 그래? 내가 도움을 줄 테니 학군 좋은 데로 이사해.” 구체적으로 얼마를 어떻게 도와주겠다는 말은 없었다. 그냥 밑도 끝도 없이 이사를 추진하라는 것이었다. 아내와 상의했다. 아내는 자양동에서 잠실대교를 넘어 송파구로 이사하자고 했다. 이른바 강남으로의 진출이었다.

우선 잠실의 소형 아파트에 반전세로 들어가기로 결정하고 계약을 했다. 사장에게 보고했다. 한참을 뜸을 들이던 사장은 내가 읽기 힘든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어쩌려고 겁도 없이 강남으로 이사를 해?” 하루아침에 낯빛과 말투가 달라져 있었다. 당황이 실망으로 바뀌고 다시 절망이 되었다. 이사하는 날 사장은 이사비용에 보태라며 백만 원짜리 수표 두 장을 건넸다. 이 사건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었다. 단순히 ‘집’에 관한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의 반응은 더 이상 내가 회사에 필요하지 않게 됐다는 사인이기도 했다. 회사 내 임원진은 대부분 친인척 등 사장과 특수 관계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당연히 사장은 이들과 내 문제를 상의했을 것이다. 내 나이는 마흔을 넘어섰다. 정력적으로 일할 나이를 넘긴 것이다. 회사에 더 이상 기여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 p.168~169

그 시절, 나는 갈망과 혐오라는 감정의 양면을 오가며,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고 싶다’는 막연한 탈출을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사업이란 결국 책임을 지는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착수되고, 완성되며, 또 마무리되는 일이었다. 진짜 중요한 건 아이템도, 계획도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사업은 혼자서는 해낼 수 없다. 누군가는 책임지고 지켜야 할 자리를 묵묵히 지켜야, 그 틈에서 또 다른 누군가는 새로운 기회를 향해 뛸 수 있다. 책임감 있는 사람이 있어야 새로운 사업의 개척도 가 능하다. 책임감은 사업의 일부가 아니라, 전체를 지탱하는 기반이 다. 빠삐용이 날 수 있었던 건, 드가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 때 문이다. ‘드가 없이 빠삐용 없다’는 말은 결국, 나 혼자 해낸 건 아무 것도 없었다는 깨달음이자 함께했던 사람들의 책임감이 만들어낸 모든 결과에 대한 감사의 고백이다.
--- p.189~190

아내는 미용 기술을 배운 지 6개월 만에 자격증을 땄다. 그러고는 내가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주말에 제법 규모가 있는 미용실에 가서 보조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했다. 나는 아내의 추진력에 감동했지만 부담스러웠다. 힘겨웠다. 이 여성은 왜 그리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지. 나는 매일매일 한 치 앞만 보고 그때그때 열심히 살면 될 것 같다고 말했는데, 아내는 10년 후를 내다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아내가 큰 그림을 그리고 남편은 코앞 일 처리에 바쁜 집, 우리 집이다. (……) 아내는 늘 겸손했고 모든 일에 감사해했으며 부모님이나 아이들을 대할 때도 한결같았다. 또 항상 알뜰했다. 그녀에게 돈은 큰 의미가 없다. 도전과 성취, 우리 가족의 미래와 행복 등에 더 많은 가치를 두고 사는 사람이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이 여성은 왜 그렇게도 가만히 있지를 못했을까. 그녀는 힘들다고 주저앉는 법이 없었다. 현실을 부정하기보다 항상 뭔가를 준비하고, 배우고, 개선하고 있었다. 사업의 본질은 그런 끈기와 준비성에 있다는 걸 아내를 통해 배웠다.

마이너스 통장으로 시작한 신혼, 도봉산 자락의 월세방에서 반지하를 거쳐, 엘리베이터 없는 5층짜리 아파트 꼭대기 층에서 살다가 대형 평수의 아파트에 입주하기까지―그 모든 과정에서 아내는 자신이 설계한 미래를 현실로 만드는 ‘단단한 사람’이었다. 이었다. 시시포스의 형벌(?)에서 벗어난 어느 날,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거기엔 아내가 그려놓은 커다란 그림이 있었다. 비로소 그녀가 다시 보였다. 그리고 그 깨달음 이후로, 인간관계든 사업이든 내가 가장 먼저 점검하는 기준은 이것이다. “내 옆의 사람과, 나는 지금도 함께 걷고 있는가?”
--- p.200~201

때로는 혼자 결정하고 혼자 움직이는 것이 더 빠를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속도의 차이는 의미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방향이었고, 지속성이었다. 멀리, 오래, 함께 가기 위해선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와의 관계가 핵심이었다. 삼두체제의 빛나는 장점 중 하나는 판단의 정확도다. 확실히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삼두체제는 ‘일을 함께한다(同業)’는 개념을 넘어서는 관계를 의미한다. 업무 능력이나 역할 분담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진짜로 의지해야 하는 건 서로를 향한 신뢰다. 실수했을 때 신속하게 인정하고 나서는 건, 책임 추궁이라는 작은 의미를 위해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빠르고 정확한 해결책을 찾는 과정이고 마음이었다. 성과를 냈을 때 기여도에 따라 기쁨의 강도가 다르지 않듯이, 셋 중 한 사람의 실수도 곧 삼두의 실수라는 말이다. 우리는 서로의 거울이 되고, 성장의 촉매가 되었다.
--- p.210

그로부터 채 한 달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거래처 구매부서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가 납품하고 있는 주요 원료에 대해 상의할 것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경쟁사의 원료 샘플이 견적서와 함께 제시됐다는 거였다. 알고 보니, 우리가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온 거래를 방해하기 위해서, A가 경쟁회사의 제품을 들고 나타난 것이었다. 나와 동료들은 경악했다. 그 친구는 우리에게 그동안의 지원과 격려가 감사하다며 다른 아이템을 개발해 우리와 계속해서 비즈니스를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미래를 함께 도모하자고 다짐하고 돌아간 지 한 달도 안 된 상황이었다. A가 우리에게 보인 태도와 말과는 전혀 다른 모습과 행동이었기 때문에 안타까웠다. 이해할 수 없었다. (……) 급여 명목의 일정 금액과 경비는 시한부 지급이었다. 타당한 이유와 근거를 토대로 합의된 중단이었다. 이 친구가 앙심을 품은 것이라는 전언을 듣게 된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나에게서 받을 돈을 받지 못했다고 주변에 소문을 내며 돌아다녔다고 한다. 만일, A가 형편이 어려우니 도와달라고 말했다면 나는 도와줄 수 있었다. 호의는 호의고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다. 그간 베푼 호의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연락을 취했으나 A는 회피했다
--- p.214~215

아버지 유전자 중에서 내게 미처 제대로 넘어오지 못한 유전자는 ‘낙천’을 담당하는 놈들이었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그렇게 낙천적이었다. 단칸방에 살아도 늘 웃었다. 그 좁은 집에 친구들이 모여들어 날이면 날마다 술담배를 하며 왁자지껄했으니……. 난 염세적이었다. 가난한데 즐거울 리가 있느냐 말이다. 첨엔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초대한 친구들 집에 한 번, 두 번, 세 번 다녀오면서 알게 됐다.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것을. 그것도 몹시.

웃을 수가 없었다. 그냥 받아들이고 열심히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온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렇게까지 우수에 젖어 살지는 않았을 건데……. 그저 그런 외모와 머리, 가난은 내 어린 날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고등교육을 이수하고 나면서 조금씩 나아지긴 했다. 어쨌든 가난은 유전자의 속성 인자가 아니었지만, 위대한 유산이 되어 내 속에 들어와 똬리를 틀었다. 그래서 젊은 날의 내가 시원하게 웃는 모습을 좀처럼 기억해내기 힘들다. 가끔 나는 ‘웃어라 젊은 날의 나 놈아’ 한다. 과거의 사진을 보며 꾸짖기도 하는 것이다. 강도 높은 업무와 독서가 나를 바꾸기 전까지는 그렇게 웃지 않고 살았다.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참 대단하다. 뭐가 그렇게 행복했을까 싶다. 아들인 나와는 좀 다르게 맑은 영혼의 소유자였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기적인 유전자 놈들 같으니라고!
--- p.224~225

그렇게 전시회에 방문했다가, 마침 찾고 있던 원료를 발견했다. 대화를 시도했는데 담당 매니저가 냉정하게 말했다. “한국 시장을 담당하고 있는 에이전트가 이미 있으니 당신과 대화할 이유는 없다.” 표정은 ‘꺼지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런 호로 ××를 봤나’ 하며 욕을 잔뜩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꾹 참았다. 코로 들이마시고 다시 코로 내뱉으며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아주 정중하게 다시 말했다.

“에이전트가 있다고 해서 안 해주는 것을 보니 당신네가 개발한 이 원료는 아주 훌륭한 제품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보안을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한국의 협력업체에게 독점적 영업권을 보장한 것을 제대로 지키는 것을 보니 당신네 회사는 상도의가 있어 보인다. 귀사에 신뢰가 간다.”

나는 한참 더듬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그랬더니 이 친구가 귀를 기울이는 거였다. ‘어? 뭔가 있어 보이는데?’ 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한걸음 더 파고들었다. “어차피 비즈니스는 사람이 하는 거 아니겠는가? 변수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게 없다는 사실’ 하나뿐이지 않은가?”
그리고 명함을 내밀었다.

“언제든 한국에서 일이 생기면 연락 주길 바란다.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떤 일이든 도움이 된다면 우린 움직인다. 좋은 인연이 됐으면 좋겠다. 제발?플리즈(Please), 이 명함을 버리지 말고 간직해달라. 반드시 필요한 순간이 올 것이다!
--- p.234~235

사업을 하면서 몇 번의 큰 갈림길에 섰다. 누군가는 그걸 ‘이익’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아주 좋은 기회’라고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지금 내가 선택하려는 이 길은, 돈이 아니라 내가 믿는 방향 위에 놓여 있는가?” 그 답이 “아니요”라면 나는 돌아섰다. 그 선택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회사를 경영하는 일도 다르지 않다. 내가 내리는 결정은 단지 매출을 위한 전략이 아니라, 나와 동료들이 함께 세워가고 있는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경영은 돈의 게임이 아니라 가치의 게임이라고 믿는다. 누가 내 가치를 증명해주지 않는다. 누가 내 길을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내 존엄은 내가 선택한 길에서 내가 감수한 대가로, 내가 지켜낸 원칙으로 입증된다. 오늘도 삼두의 올바른 길을 위한 ‘힘겨운 결의’는 계속된다.
--- p.249

세 번째 창업원칙은 ‘같이 벌어 같이 나눈다’였다. 우리는 매년 발생한 순익을 공동창업자 셋(나는 이를 ‘삼두체제’라 부른다)이 똑같이 나눈다. 대충이 아니라 철저하게! 우리 회사는 형식은 하나의 개인회사, 그리고 이후 하나의 주식회사로 설립해 내가 대표가 되어 경영했지만, 사업의 시작은 동업이었다. 혼자 결정권자가 되는 것이 창업의 정신적인 리스크였다면, 자본금은 물리적인 리스크였다. 셋이 모이자 이 자본 문제가 해결되었다. 여력이 되는 사람은 담보대출 또는 신용대출을 받아 필요한 수입 물품 대금과 당장의 고정비를 감당했다.

시작할 때 대부분의 사업가들이 실수하는 부분은, ‘네 돈이 내 돈이고, 내 돈이 네 돈이다’라는 헛된 망상이다. 당장은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자금의 규모가 커지고, 업무량은 늘어나며 새로운 직원들이 입사하고 나서 회사가 어지간한 기업의 면모를 갖추게 되면, 동업자들은 보통 각자의 회사에 대한 헌신과 기여도를 계량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기여도를 내세우고, 타인의 실수를 침소봉대하며 파열의 나팔 소리를 울린다. 이런 흐름을 대부분 간접경험을 통해 알고는 있지만, 정작 예방에는 실패한다. 난 여기에 집중했다.
--- p.255

나는 ‘삼두체제가 이끄는 삼두회의’를 통해 회사를 운영하고 싶었다. 이는 단순히 권한을 분산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책임과 전략적 분업’을 전제로 한 실질적인 협업 모델이다. 그리고 이 회의의 핵심 목적은,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지 않기 위해서였다.
--- p.261

나는 21세기의 망이·망소이들이 모여 만든 회사를 차리고 싶었다. “사장의 씨가 따로 있느냐?” 그게 내가 회사를 시작하면서 마음먹은 기본 창업 이념이었다. ‘까짓, 나도 사장 해보자’가 그 시작이었고, 나만이 아니라 직원도 사장이 될 수 있는 회사여야 했다. 내가 신입이었던 시절만 해도 ‘사장’은 회사와 직원들을 마음껏 부릴 수 있는 존재였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사장은 회사의 주인이 아니라 회사를 대표해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조직의 ‘일원’일 뿐이다. 책임과 의무를 다하라는 의미에서 회사의 ‘대표’다.
--- p.266

경영도 마찬가지다. 어느 시점엔 통했던 방식이 다른 시점엔 전혀 통하지 않는다. 이것은 원칙과는 다르고, 변칙과도 다른 이야기다. 사업이 살아 있는 유기체라서 그렇고, 사람과 사회가 변화무쌍한 존재라서 그렇다. 사람과의 관계, 특히 ‘사장과 직원의 거리’는 그런 ‘타이밍의 예술’ 속에서 조율된다. 이는 유연함과 성찰이 동반되어야 사업도 관계도 유지된다는 의미다.
--- p.269

경영자든 직장인이든, 수험생이든 취준생이든, 프로스트의 시 앞에서 회한에 빠질 수 있다. 독립된 사업체를 꾸리고 시간이 꽤 흐른 지금, 난 더 이상 프로스트의 시를 책상 옆에 붙여놓지 않는다.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 길을 가지 않는 결정에도 힘겨운 결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두 갈래 중 하나를 택했다면, 가지 않은 길을 생각하는 시간에 내가 간 길에 확신의 카펫을 펼친다. 그리고 ‘가지 않은 길’을 과감히 기억에서 지워버린다.

내 인생의 좌표는 어쩌면 내가 길을 떠났을 때 이미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길을 우회하다가 탈선도 하고 중간에 쉬기도 하겠지만, 결국 나는 그 좌표를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음을 시간이 지나면서 알 때가 많았다. 그건 내가 어느 갈래로 가든 방향만큼은 잃지 않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알프스를 넘든 지중해를 건너든 한니발의 종착지가 유럽 대륙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나’를 믿는 것이 그 시작이다.
--- p.279

우리에겐 ‘직원’이 없다. 함께 일하는 ‘파트너들’만 있을 뿐이다. 회사를 운영하게 되자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필요한 경우엔 최선을 다해 일했지만, 관리만 잘한다면 자기만의 시간을 만들 수 있었다. 바쁜 와중에도 간섭받지 않고, 통제도 받지 않는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내겐 혁명이었다.
--- p.283

‘내 시간을 저당 잡히고 싶지 않다’는 결심은 단순히 회사를 떠나겠다는 선언이 아니었다. 그 말은 곧 내 삶의 의미를, 내 시간을 내가 선택한 방식으로 채우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그 방식이란, 내가 어떤 자본을 갖고 싶은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해답과도 닿아 있었다.
--- p.305

이글스의 [데스페라도]는 내 인생의 자막처럼 느껴졌다. 3장에도 썼지만, 나는 이 노래의 주인공처럼 살았다. 철부지 어린 시절, 나는 ‘담장 너머 저 멀리 어디든 가면 파라다이스가 있겠지’ 하고 어른들이나 남들이 해주는 충고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무시한 채 헤매고 다녔다. 하지만 아무리 돌고 돌아봐도 세상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국 나는 결코 돌아가지 않으리라 결심했던 예전의 울타리 안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런데 울타리를 떠날 때의 ‘나’와 먼 길을 돌아와 울타리를 넘는 ‘나’는 같은 사람이 아니다. 집을 떠나 전쟁을 겪고, 지중해의 온갖 섬들을 거쳐 돌아온 오디세우스처럼 말이다.
--- p.308

하라리의 책은 내게 지식을 보태주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두려워하는지, 어떤 가능성을 믿고 싶은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들었다. 여러 차례 읽은 이유다. 나를 흔들고 성장시킨 책들은 늘 그런 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책을 읽는다. 세상을 잘 이해하고 대비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나를 더 잘 경영하기 위해서다.

노래와 책은 나의 문화자본이다. 내가 머릿속에 쌓아 올린 책들은 나의 정서적 기반이자, 오늘도 흔들리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정신 자산이다. 나는 이 자산 덕분에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도 나만의 판단과 방향을 가질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내 시간을 저당 잡히지 않는 법’이자, ‘나만의 방식으로 미래를 경영하는 법’이다.
--- p.311

우리가 트렌드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예의주시하는 이유는 단순한 유행 때문이 아니다. 무역업을 하는 우리는 산업의 패러다임이 어떻게 바뀌는지 실시간으로 체감하며 일한다. 원자재 수급의 변화, 기술 진보의 속도, 수요 구조의 재편이 모두 ‘어제는 맞았지만 오늘은 틀릴 수 있다는’ 경험적 진리를 보여준다.
--- p.315

세상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는 건, 단순히 ‘트렌드에 밝다’는 수준을 넘어서는 일이다. 그것은 곧 ‘생존’의 문제다. 기술의 발전, 소비 패턴의 변화, 문화적 감수성, 심지어 기후나 도시 구조의 변화까지 모든 것이 기업의 방향성과 맞물려 돌아간다. 실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일으켰을 때 밀 가격이 폭등했다. 그리고 최근 경북지역에 산불이 났을 때 사과 가격이 폭등했다. 이러한 재변은 농산물의 가격뿐 아니라 기후 변화를 야기한다. 나는 지금 우리가 단순한 변화가 아닌, 변화가 거듭된 끝에 도달한 ‘뉴노멀의 뉴노멀’ 속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과거의 상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어제의 정답은 오늘의 리스크가 되기 십상이다. (……)결국 나만의 ‘해석’과 ‘판단’, 곧 ‘오리지널리티’를 유지한 인식의 태도를 견지해야 방침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는 여전히 불확실한 미래를 앞에 두고 회사를 경영하는 중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세상의 트렌드를 읽고, 패러다임을 이해하며, 그 안에서 흔들림 없는 나만의 오리지널리티를 지키는 것. 그것이 도전과 변화에 대응하는 우리 회사의 가장 확실한 운영 원칙이며 뉴노멀의 뉴노멀 시대를 살아남는 단단한 힘이다.
--- p.318~319

15년 전 아무것도 없이 맨주먹으로 시작한 우리 ‘삼두’는 연 매출 200억에 육박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급기야 미래를 위한 교두보인 자체 제조공장을 건설 중인 것이다. 사실, 객관적으로 보자면 대기업 한 부서의 매출도 못 되는 규모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이 수십조의 세포로 이루어진 우주이듯 수십만 개의 기업들도 각각 하나의 우주다. 나는 우리가 이룩한 우주가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당신의 인생을 사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아무것도 기적이 아닌 것처럼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사는 것이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준비된 자들에게 매일은 기적 그 자체다. 내게도 하루하루가 기적 ‘그 잡채’다!

--- p.326

출판사 리뷰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투자처는 결국 ‘나’다”
흙수저 청년이 ‘돈을 좇던 정 대리’에서 ‘돈이 좇는 정 사장’이 되기까지

저자는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무역회사에 입사해 10여 년간 국내외에서 해외영업과 수출입 실무를 쌓았다. 아무런 자본도 ‘빽’도 없었지만 ‘사람’과 ‘태도’ 그리고 ‘자기 신뢰’라는 무형의 자산만큼은 든든했기에 창업에 뛰어들었고, 현재는 연 매출 200억 원 규모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저자의 여정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엇에 투자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결국 가장 확실한 투자처는 ‘자기 자신’임을 증명한 한 사람의 기록이다.

1장에서는 불확실한 20대의 방황 속에서도 자신을 믿고 움직였던 초창기 이야기를 통해 ‘제자리 같지만 결코 멈춘 것이 아닌 시간’의 가치를 조명한다.

2장에서는 공부가 인생에서 가장 공정한 투자처임을 강조한다. 대학원, 영어, 독서, 야학 등 저자의 실제 사례를 통해 배움이 어떻게 버티는 힘이 되고, 장기적으로 복리 수익률을 주는지를 보여준다.

3장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어떻게 자산으로 전환하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일에도 얼리어댑터가 있다’는 통찰부터, 이름처럼 살아간 동료들, 실패의 수업료가 남긴 교훈까지, 경험의 총량이 결국 실행력을 만든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4장에서는 사업을 이끄는 데 필수 불가결한 ‘사람’이라는 자본의 힘을 다룬다. 관계의 본질을 알려준 아내, 책임감의 본령, ‘관계 맺기’보다 중요한 ‘관계의 지속성’, 함께 가는 일의 의미와 기회를 만드는 태도 등을 돌아본다.

5장에서는 회사를 성장시킨 7가지 경영철학을 소개한다. 원칙을 지키는 경영, 권한 분산, 겸손한 리더십, 나와 조직의 기대치를 점검하는 시스템 등 실무와 철학을 동시에 아우르는 전략적 경영의 정수를 담았다.

6장에서는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법, 문화적 감수성과 흐름을 읽는 감각, 그리고 현장에서 얻은 생생한 실천 전략을 소개한다. 미래를 준비하는 운영자적 마인드셋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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