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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I. 스피노자와 정치 스피노자의 입장 『신학정치론』 : 민주주의 선언 『정치론』 : 국가학 『윤리학』 : 정치적 인간학 II. 스피노자, 반오웰 스피노자, 반오웰 : 대중들의 공포 스피노자에서 개체성과 관개체성 스피노자, 루소, 마르크스 :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에서 정치의 타율성으로 부록 옮긴이 해제 : 에티엔 발리바르의 스피노자론에 대하여 용어 해설 참고문헌 연표 찾아보기 |
Etienne Balib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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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담론의 구성은 저절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신학정치론』의 상당 부분(7장에서 10장까지)은 그 조건을 논의하고 있다. 이 논의의 중심에서 서사라는 통념이 등장하다. 역사적 서사는 근본적으로는 기록의 사회적 관행이며, 이는 대중의 상상에서 자신의 요소를 이끌어 오지만 역으로 그것에 효과를 산출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역사 과학은 이차 수준의 서사-스피노자는 “비판적 역사”라고 말한다-이어야 한다. 이러한 이차 수준의 서사의 대상은 재구성될 수 있는 한에서의 사건들의 필연적인 연쇄 과정 및 자신들을 움직이는 원인들 대부분에 대해 알지 못하는 역사적 행위자들이 자신들의 역사의 “의미”를 상상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응용과 분리될 수 없다. 『신학정치론』전체에 걸쳐 스피노자는 자신의 동시대인들이 그들 자신의 역사를 지각하는 방식과, 그들에 대해 인류의 운명의 대서사로서의 성경이 구성하는 탁월한 해석의 모델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를 대상으로 삼으면서 스스로 역사가가 된다.
--- p.64 『신학정치론』: 민주주의 선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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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에 스피노자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스피노자 전공자가 극히 드문 상황에서 비전공자들이 스피노자의 철학을 소개하고 번역하다 보니 많은 이론적 오해와 부적절한 번역이 생겨나고 있다. 국내의 스피노자 전공자 진태원 선생이 에티엔 발리바르의 스피노자에 관한 주요 연구를 묶어 번역한 이 책은, 발리바르의 철학은 물론 스피노자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에 올바르게 접근할 수 있는 흔치 않은 독서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출간 의의 스피노자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범신론자”라는 편견만큼이나 뿌리 깊은 편견은 아마도 “스피노자는 형이상학자”라는 편견일 것이다. 이것이 편견인 이유는 스피노자가 형이상학자가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스피노자는 형이상학자라는 주장이 스피노자가 정치학자라는 점을 원칙적으로 부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언표 속에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암묵적으로 스피노자에게는 정치학이 없다는 언표가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스피노자에 대한 에티엔 발리바르의 주요 연구를 묶은 이 책은 이러한 선입견에 맞서 스피노자의 철학 속에서 정치학의 요소를 발견하고, 이것이 현대 사회의 정치적 쟁점을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이론적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본다는 점에서, 스피노자의 철학을 새롭게 이해하는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이다. 국내에서 스피노자의 철학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증가하기 시작한 것은 알튀세르와 들뢰즈, 발리바르, 네그리 등과 같은 현대의 주요 이론가들이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자신들의 이론적 원천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중 특히 발리바르는 현대 사회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을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얻고자 했으며, 1980년대 이후 집약적인 연구를 통해 스피노자의 철학 및 정치학의 새로운 면모를 밝혀 스피노자에 대한 연구의 방향을 새로이 개척해 왔다. 그러나 발리바르의 이러한 연구는 지금까지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못했는데, 발리바르의 이론 체계에서 스피노자 철학이 차지하고 있는 중요성, 그리고 발리바르의 스피노자 연구가 차지하는 독창성과 영향력을 감안할 때, 이는 매우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스피노자 철학을 정치학으로서 고찰하고 있는 이 책은 발리바르의 스피노자론의 진면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마련해 줄 것이다. 아울러 피상적으로 머물고 있는 국내 스피노자 연구의 양과 질을 확장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스피노자의 철학이 어떤 점에서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인식하고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지 보여 준다는 점에서, 현대 사회의 문제들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통찰을 제공해 줄 것이다. 이 책에 대해서 이 책은 지난 20여 년 동안 발리바르가 발표한 스피노자에 관한 연구들 중에서 국내에 소개할 필요가 있는 중요한 것들을 묶은 것이다. 발리바르는 국내에서는 주로 알튀세르의 제자로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이론가로 알려져 있지만, 이미 스피노자 연구자로서도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따라서 그동안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 못한 발리바르의 최근 작업, 특히 스피노자에 대한 연구의 중요한 측면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큰 의미를 지닌다. 이 책의 1부에 수록된 『스피노자와 정치』는 1985년에 프랑스대학출판부의 “철학들 Philosophies”이라는 총서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된 저작으로, 분량은 적지만 스피노자 정치철학에 관한 권위 있는 해설서로 널리 인정받아 온 책이다. 2부에 수록된 글 중 첫째 논문인 「스피노자, 반오웰: 대중들의 공포」는 발리바르가 스피노자에 관해 발표한 첫 번째 논문이자(1982), 현대 스피노자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논문이다. 이 논문의 중요성은 네그리의 『야생의 별종』과 더불어 스피노자 철학에서 대중들 multitudo이라는 개념의 위치를 체계적으로 해명한 최초의 작업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2부 둘째 논문인 「스피노자에서 개체성과 관개체성」은 스피노자의 철학, 특히 그의 “존재론”을 관개체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체계적으로 구성하고 있는 논문이다. 이 글은 현대의 스피노자 연구, 더 나아가 구조주의 철학의 이론적 진전을 위해 매우 풍부한 시사점을 제시해 준다. 마지막으로 2부 셋째 논문인 「스피노자, 루소, 마르크스: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에서 정치의 타율성으로」는 스피노자에서 루소를 거쳐 마르크스 또는 20세기 후반에 이르는 근대 정치학의 역사를 조감하면서,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이론적 해결책의 실마리를 스피노자의 정치학에서 찾고 있다.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과 스피노자의 이데올로기 비판의 결합을 이론적 과제로 제시하고 있는 이 글은 우리에게 90년대 이후 발리바르의 이론적 작업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또한 이 책에 실린 옮긴이의 상세한 해제는 발리바르와 그의 철학에 대한 설명과 그가 최근 10여 년 간 수행한 연구 경향을 담고 있어, 발리바르의 철학에 대한 더 정확한 이해를 돕고 있다. 아울러 한 문장 한 문장 세심하게 정성을 들인 번역과 상세한 용어 해설은 기존의 부적절한 번역으로 빚어진 스피노자에 대한 이론적 오해를 바로잡아, 국내의 스피노자 연구를 한 단계에 발전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본문 내용 요약 정치학으로서 스피노자 철학 스피노자의 철학을 정치학으로 이해한 현대의 스피노자 연구자로는 발리바르 외에도 알렉상드르 마트롱과 안토니오 네그리를 들 수 있는데, 발리바르는 이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스피노자의 정치학을 파악한다. 우선 스피노자 철학의 단절성을 강조한 네그리와는 달리 발리바르는 스피노자의 형이상학 또는 존재론과 정치학에는 연속성이 존재하며, 스피노자의 정치학은 스피노자의 존재론을 특징짓는 자연주의적 관점에 따라 논증되고 서술되고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스피노자의 존재론(및 인식론)은 정치학의 주장 및 분석을 이해하기 위한 개념적인 전제, 또는 적어도 도구가 된다고 보았다. 또한 발리바르는 스피노자의 존재론에서 정치학이 체계적으로 연역된다고 강조한 마트롱과도 약간 다른 견해를 취하는데, 발리바르에게 스피노자의 인간학과 정치학에 관한 논의는 스피노자의 형이상학적 기초로부터 연역적으로 도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존재론에 내재한 난점 내지는 아포리아를 드러내고, 나아가 이를 새롭게 파악할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정치학적 독해는 스피노자의 철학을 관개체성의 철학 및 관계론의 철학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것이다. 발리바르 스피노자론의 또 다른 특징은 넓은 의미의 이데올로기론의 관점에서 스피노자의 정치적 개입과 이론적 분석을 고찰하여, 스피노자의 철학이 어떻게 당대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정세 속에서 형성되었고, 또 이러한 정세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변모하고 발전해 나갔는지 고찰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는 곧 발리바르가 스피노자 철학을 당대의 네덜란드 연합주 공화국의 구체적 현실과의 긴밀한 상호 작용 속에서 파악하는 관점을 취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의 이러한 분석은 스피노자가 사변적인 범신론자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그의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대중들에 대한/대중들의 공포 발리바르는 스피노자 정치학의 문제 또는 대상을 “대중들에 대한/대중들의 공포”라고 했다. 이 개념은 본래 고대 로마의 역사가인 타키투스의 『연대기』에서 따온 “[대중들은] 공포를 느끼지 않으면,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다”는 문장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발리바르에 따르면 이 개념은 스피노자 정치 사상의 이론적 핵심 및 그것이 내포하는 근본적인 아포리아를 드러내 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이중적인 공포야말로 스피노자 정치학에서 온전한 민주주의의 구성 불가능성을 보여 주며, 더 나아가 근대 정치학에서 전개된 민주주의 개념 자체의 아포리아를 집약적으로 표현해 주기 때문이다. 발리바르는 이 개념이, 통치자들이 대중들의 걷잡을 수 없는 소요와 폭력에서 느끼는 두려움(“대중들에 대한 공포”)을 가리키며,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들이 통치자들의 권력과 압제에 대해 느끼는 공포(“대중들의 공포”)도 표현한다고 말한다. 즉 통치자들에게는 기성의 법적·제도적 질서 안에 존재하지만 이 질서로 완전히 포섭하거나 억압할 수 없으며, 더 나아가 끊임없이 이 질서를 동요시키고 위협하는 대중들의 집합적 행동이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이라는 것이고, 대중들에게는 자신의 사고와 행위의 자유를 제한하고 이에 대한 저항을 처벌과 폭력으로 억압하는 통치자들이 큰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발리바르는 스피노자가 이러한 대중들의 양가성을 이상적인 규범적 모델에 따라 가상적으로 해소하거나 심지어 보수주의적으로 통제·억압하려고 하지 않고, 당대의 주어진 이론적·정치적 공간 속에서 이것이 함축하는 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했다는 점에서 스피노자의 이론적 독창성과 현재성이 있다고 보았다. 관개체성의 “존재론” 이 책에서 발리바르가 제시하고 있는 핵심 테제는 스피노자의 철학은 관개체성의 철학, 관개체성의 “존재론”이라는 것이다. 이미 발리바르는 「스피노자, 반오웰: 대중들의 공포」에서 스피노자의 근본적인 인간학적 테제 중 하나는 모든 개체들 안에는 “압축 불가능한 최소”의 개체성이 존재한다는 점에 있음을 지적했다. 하지만 「스피노자에서 개체성과 관개체성」에서는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를 관개체성이라는 개념으로 새롭게 정식화하고 있다. 곧 스피노자에서 개체성은 단지 자연적인 개체와 개인들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국가 자체에도 존재하는 것으로, 다른 개체들과 독립해서 실존할 수 없으며, 다른 개체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실존할 수 있는 개체의 성질을 가리킨다. 이처럼 타자들과의 관계가 곧 각각의 개체의 실존을 구성한다는 점에 바로 “관개체성”의 철학의 요체가 존재하는 것이다. 관개체론의 관점에 따르면, 개체는 타자들과의 관계 바깥에서 미리 구성되어 실존하는 원자와 같은 항이 아니라, 타자들과의 관계를 통해 형성되고 변화하는 실재이다. 따라서 스피노자의 근본적인 비판은 권리의 주체로서의 개인이라는 관점을 거부하고, 오히려 개인의 실존 및 권리는 사회적 관계를 통해 성립하고 유지될 수 있다는 관점에 의거하고 있다. 결국 스피노자의 관점에서 볼 때 정치학의 진정한 과제는 계약의 타당한 절차를 형식화함으로써 주권의 정당성을 근거짓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개인들의 생산과 재생산 과정에 대한 분석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개체론의 관점은 대중들의 역량이라는 개념을 관계론의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게 해 주는데, 이러한 통찰은 파시즘과 같은 정치적 현상을 이해하고, 세계화가 산출하는 구조적 폭력을 하나의 정치적 문제로 인식하는 데 필수적이다. 따라서 발리바르가 반폭력의 정치 또는 시빌리테의 정치로 부르는 것은 역량에 대한 이러한 관계론적 관점을 요구하고, 또 역으로 이 후자는 반폭력의 정치를 정치의 핵심 과제 중 하나로 부과한다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