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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서주: 마일즈는 살아 있다 1.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2. 비밥의 숲 3. 위대한 쿨의 탄생 4. 1950년대, 그 열정과 절망 5. 재즈의 이정표, 카인드 오브 블루 간주: 어떤 외로움에 대한 보고서 6. 꿈을 위한 혼돈 속의 투쟁 7. 초감각적 인식의 발라드 8. 재즈 록, 또 하나의 개벽 1. 변화에 맞선 격정의 나날들 2. 세상을 향한 첫 미소 3. 최후의 미스터리 후주: 재즈계의 피카소 마일즈 데이비스 주요 디스코그래피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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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재즈 팬이 죽어서 성 베드로가 있는 저승에 갔다. 성 베드로는 그를 재즈 클럽으로 데려 갔다. 그런데 조명도 형편없었고 테이블엔 빈 자리가 남아 있지 않았으며 웨이트리스들도 불친절하기 그지없는 게 아닌가. 그러나 손님 중에는 레스터 영과 빌리 할러데이, 몽크, 그리고 버드도 포함돼 있었다. 그걸 본 그가 성 베드로에게 이렇게 외쳤다, "와, 여기가 진짜 천국이로군요!" 그 때, 그는 바의 맨 끝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온통 검정색으로 옷을 해 입은 그는 등을 보이고 앉아 있었기에 누구인지 잘 분간되지 않았다. 그가 물었다, "저건 누군가요?" 성 베드로가 대답했다, "아, 저기 저 사람? 하느님일세. 자기가 마일즈 데이비스인 줄 착각하고 있지."
하루는 마일즈가 키스 재릿에게 왜 자기가 더 이상 발라드를 연주하지 않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것은, 그가 그 곡들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키스 재릿은 이 말의 의미를 몇 가지 방법으로 받아들였다. 우선, 발라드를 엉터리로 연주하느니, 이류 밴드를 데리고 이류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낫겠다는 것. 그러나 동시에 키스 재릿은 이 말을 다음과 같이 이해하기도 했다. "언제나 투쟁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밴드 리더들은 투쟁하지 않는 자유의 희생물이다." 실제로 마일즈는 이런 말을 자주 했다―자기가 사랑하는 일만 계속해서 되풀이하는 것은 크나큰 실수이다, 그렇게 하면 새로운 것을 개발할 수도, 진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 마일즈는 데이비드 앰램에게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자신이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너무나 싫고, 방 안을 가득 메운 스물다섯 명의 또 다른 마일즈 데이비스를 바라보는 게 죽기보다 더 싫다. 마일즈가 지나간 자리마다 남겨 놓은 수많은 삶의 파편들은 그 누구도 쉽게 이해하거나 용서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었다. 그를 용서한 사람들이나 그 때문에 겪은 희생과 대가를 애써 외면한 이들은 결국 이 모든 것들이 그 나름대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격정과 분노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생각해야 했다. 옳든 그르든, 그가 저지른 모든 일들은 어차피 음악을 위한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이렇게 많은 이들의 관대함을 등에 업고서도, 막상 마일즈 자신은 그가 이룬 성공의 기쁨을 충분히 누릴 수 없었으며, 자신이 만들어낸 성과물에 대해서도 결코 만족하지 못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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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노이 주에서 한 치과의사의 수줍은 아들로 태어난 마일즈 듀이 데이비스 3세는 이른바 쿨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음악인으로 자리하기까지 여러 차례 변화를 겪었다. 그 변화는 마일즈 데이비스의 생애와 음악을 일구어낸 원동력이었다. 그는 음악의 흐름과 새로운 정체성에 대한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하는 동시에 그 두 가지를 극단적으로 재창조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마일즈 데이비스는 여러 음악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꾸준한 성장을 보여주었다. 찰리 파커에서 존 콜트레인 같은 거장들과의 협연이나 디지 길레스피, 소니 롤린스, 웨인 쇼터, 그리고 작곡가 길 에반스 등과의 작업이 마일즈 데이비스의 음악을 완성시켰지만, 언제나 외로운 존재의 이미지를 떨쳐내지 못하며 관객에게 등을 돌린 채 연주하는 기행으로 또 다른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는 한 음악인이 성취할 수 있는 최상의 음악성을 선보였으며 그 누구보다 높은 스타덤에 올랐다. 하지만 그 영광의 순간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무렵 화려한 무대의 조명을 떠나 은둔자의 길을 걷기도 했다. 외관상 그의 삶을 점철한 이런 모순의 순간들이 마일즈 데이비스를 둘러싼 신화와 전설을 증폭시킨 것도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