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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와 사진
지도와 본문에 대한 일러두기 지도 서장 제1장 유럽적 러시아 제2장 1812년의 아이들 제3장 모스크바! 모스크바! 제4장 민중 속으로 제5장 러시아적 영혼을 찾아서 제6장 칭기즈칸의 후예들 제7장 소비에트의 렌즈를 통해 본 러시아 제8장 해외의 러시아 망명객 용어해설 각장의 주 러시아 연대기 감사의 말 인가 참고문헌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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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
저자는 “러시아의 예술가들은 그 어느 나라에서보다도 더 큰 도덕적 지도력과 민족적 예언의 역할을 감당하며 그 어느 나라에서보다 더 큰 국가의 두려움과 박해를 받았다. 정치적으로 공식적 러시아에서 소외되고, 교육적으로 러시아 민중과 괴리된 러시아 예술가들은 스스로 문학과 예술을 통해 가치와 이념의 민족 공동체를 형성하는 임무를 떠맡았다.”고 말하며 러시아에서 문화가 차지하는 비중을 강조하고 있다. 제1장 유럽적 러시아 상상 속의 ‘유럽’은 서구 그 자체보다는 ‘러시아’를 규정할 필요들과 더 밀접한 관계가 있다. ‘러시아’에 대한 관념은 ‘서구’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서양’이 ‘동양’ 없이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이상, 비난의 대상, 본보기로서 유럽을 필요로 한다. 유럽이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그런 유럽을 창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게르첸 러시아 귀족들 사이에선 자신들의 러시아적 뿌리를 되찾고자 하는 열정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많은 프랑스식 방식들을 버리고 그것들을 러시아적인 요소들로 대체하고 싶어 했다. 이 같은 경향은 러시아의 정체성 속에서 동-서의 갈등을 강화했다. 제2장 1812년의 아이들 “내가 선택한 길은 30년간 고향에서 추방되어 시베리아로 가게 했다. 하지만 나의 신념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다 해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 볼콘스키 러시아귀족들은 오랫동안 농민과 농노라 불리는 노동자 계급들을 천시해왔기 때문에 귀족들의 농민문화에 대한 차용은 필연적으로 농민 문화에 대한 일종의 왜곡을 수반하여 받아들여졌다. 귀족들은 노예화한 농노들의 노동으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향유하면서 일반적으로 농노들을 감정이나 가치가 없는 하등 인간으로 생각했다. 귀족들은 저택을 짓고 도로를 건설하는데, 호화로운 연회에 제공될 음식을 생산하기 위해 오페라, 연극, 오케스트라를 즐기기 위해 농노들의 노동을 착취했다. 많은 귀족들은 자신들에게 노래를 들려주거나 옛날 이야기를 해주고 농노들의 축제에 데려가 주면서 돌보아 준 농노 젖먹이 유모나 유모에게 양육되었으면서도 농노를 잔인하게 대했다. 다른 한편으로 많은 귀족들은 자신들의 유모들을 평생사랑하며 부양하기도 한다. 사냥과 1812년 전쟁을 통해 귀족들은 더 평등한 관점에서 농노들을 보게 되면서 자신들 속에 자신들이 경멸하도록 배웠던 문화적 뿌리가 있음을 알게 된다. 제3장 모스크바! 모스크바! 모스크바는 어중간하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페테르부르크는 모스크바가 촌스럽고 심미안이 없다고 놀리기를 좋아한다. 모스크바는 페테르부르크가 러시아어를 할 줄도 모른다고 비난하며…… 러시아는 모스크바를 필요로 하고 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를 필요로 한다. ―― 고골리 파이지스는 정보를 찾고 자신의 통찰력을 입증하기 위해 러시아 스타일과 러시아의 정체성 그리고 러시아 정신의 발전을 추적할 수 있도록 러시아 문학, 예술, 연극, 춤 따위의 러시아 작품들을 더 깊이 파헤치고 있다. 러시아적인 것의 형태는 차르의 시대나 공산주의 시대와 무관하게 일관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제4장 민중 속으로 민중은 우리에게 아직 하나의 이론이며 그들은 아직도 우리에겐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민중을 사랑하는 우리는 그들을 어떤 이론의 일부로 보고 있으며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실재하는 민중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 각자가 상상하고 있는 민중을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사랑하긴 하지만 러시아 민중이 우리가 상상하고 있는 것과 같지 않다면 거리낌 없이 즉시 민중을 저버리게 될 것이다. ―― 도스토예프스키 러시아는 자신들의 독특한 문학, 음악, 미술 그리고 건축을 개발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미국인들이 인디언들을 고귀한 야만인들로 보았던 것처럼 자신들이 순수하고 때 묻지 않았다고 상상했던 농민 문화에서 많은 것들을 차용했다. 러시아 귀족들은 농민들의 민속 전승, 음악, 춤, 미신, 의상, 종교, 수공예와 장식 미술, 언어 등에 주목했다. 제5장 러시아적 영혼을 찾아서 러시아는 당신이 제시한 것처럼 신비주의, 금욕주의나 신앙심이 아니라 교육, 문명과 문화에서 구원을 봅니다. 러시아는 설교(러시아는 너무 많은 설교들을 들어왔습니다)나 기도(러시아는 너무 자주 기도를 중얼거려왔습니다)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민중에게 진흙탕과 오물 속에서 수세기 동안 잃어 왔던 인간적 존엄성을 일깨울 필요가 있습니다. ―― 벨린스키 정교에서처럼 종교는 서구에서와 같이 신학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의식의 관점에서 정의된다. 엄청난 박해는 성직자들이 민중을 자신들이 더 진정한 그리스적 형태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복귀시키려고 시도하면서 일어난 변화와 관련이 있다. 구교도들은 끔찍한 억압에도 지속된다. 민중의 신앙은 수도사들의 생활, 늘어나는 종교 분파들 그리고 기이한 성스러운 바보에 대한 존경과 같이 신비주의적 측면이 있었다. 기독교 예배는 고대 무속신앙에 영향을 받았으며 때로 공존했다. 제6장 칭기즈칸의 후예들 이제 절제는 적절하지 않다 나는 야만적인 스키타이인처럼 마시고 싶다. ―― 푸쉬킨 파이지스는 수 세기에 걸친 몽골에 대한 러시아 지배의 문화적 영향을 탐구하면서 많은 독자들을 새로운 영역으로 안내하고 있다. 칸 제국들이 멸망하자 몽골인들 중 상당수는 러시아에 남아 살아간다. 러시아의 언어, 이름, 많은 관습들이 몽골기원을 갖고 있다. 제7장 소비에트의 렌즈를 통해 본 러시아 아니, 외국의 푸른 하늘 아래에서가 아닌, 그리고 외국의 품에서가 아닌 ― 나는 당시 민중과 함께 있었다, 그곳, 불행하게도 나의 민중이 있는 곳에. ―― 아흐마토바 공산주의 시대를 설명하는 장에서 파이지스는 같은 나라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차르의 러시아와는 아주 다른 나라를 기술하고 있다. 초기에 사회적 변화는 사회의 옛 규율들이 적용될 수 없는 하나의 유토피아를 계획했던 지적인 이상주의자들이 추진한 것이었다. 그들은 계급 구조, 결혼, 종교 그리고 구 정부 형태를 일소하고자 했지만 그들이 시도했던 것들 중 어느 것도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편집증적인 강경론자들이 테러와 검열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로 표현되었던 음악, 미술, 영화, 연극과 문학은 국가 도구화되도록 강요되었지만 예술은 강력한 문화적 힘으로 남아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일종의 구원이었다. 사람들이 함께 일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후 감시와 체포 고문이 재개됐다. 스탈린 하의 지식인 공동체는 계속해서 암울한 시기를 보내야 했지만 스탈린도 예술 전체를 없앨 수는 없었다. 제8장 해외의 러시아 망명객 저는 나의 러시아적인 많은 것과 일반적인 러시아적인 많은 것을 싫어하지만 제 의지로 러시아를 떠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러시아를 비판할 권리는 나의 것입니다. 왜냐하면 러시아는 나의 것이며 나는 러시아를 사랑하고 나는 어떤 외국인에게도 러시아를 비판할 권리를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스트라빈스키 마지막 장은 1917년 이후 외국에서 확립된 이주민 공동체를 다루고 있다. 약 3백만의 러시아인들이 러시아를 탈출했고 베를린, 파리, 뉴욕, 헐리우드와 세계의 다른 대도시에 있는 공동체 내에서 거주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책을 쓰고, 음악을 작곡하고, 무용 특히 발레를 발전시켰다. 그들은 모국을 그리워했지만 귀국한 사람들 대부분은 큰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들은 조국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갖 고 있었지만 공산주의 체제에 저항하며 세계에 그 실상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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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호 톨스토이의 원작 『전쟁과 평화』에서 나오는 나타샤가 춤추는 장면에서 따온 책 제목>
책 제목 『나타샤 댄스』는 젊고 아름다운 백작녀 나타샤가 민중적 멜로디를 듣고 농민의 리듬과 스텝을 본능적으로 깨달아 리듬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하는 『전쟁과 평화』의 유명한 장면에서 따온 것이다.『나타샤 댄스』는 러시아의 근대화를 시작한 표트르 대제가 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한 18세기 초에서부터 소비에트의 브레즈네프 시대인 1970년대까지 300백년간의 러시아 문화사를 다루고 있다. 기존의 러시아 문화사가 서구주의자와 슬라브주의자들의 대립에서 마르크스주의와 인민주의로 이어지는 도식적인 사상사에 그치거나 아니면 문화적 인물들의 전기에 그치고 있는 반면 이 책은 역사와 미술, 음악, 발레, 영화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는 최초의 본격적인 러시아 문화사이다. 자료적인 면에서도 유럽적 러시아와 전통적 러시아를 대표하고 있는 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펼쳐져 있는 러시아를 유럽적 러시아와 아시아적 러시아의 그것으로 상세하게 표시하고 있는 지도는 러시아에 가지 않고도 그곳을 머리 속에 그릴 수 있게 하고 있다. 또한 60여장에 이르는 희귀한 자료 사진과 컬러 도판들은 글과 긴밀한 조화를 이루며 글을 읽으며 이미지 보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한다. 러시아 전통에서 가장 위대한 문화적 인물들(카람진, 푸쉬킨, 글린카, 고골리,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도스토예프스키, 체호프, 레핀, 차이코프스키와 림스키-코르사코프, 쟈길레프, 스트라빈스키,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 샤갈과 칸딘스키, 만델스탐, 아흐마토바, 나보코프, 파스테르나크, 메이어홀드와 에이젠쉬테인)의 작품 및 그들과 관련된 일화만이 아니라 귀족과 여자 농노의 금지된 사랑, 님 웨일즈의 작품인 『아리랑』의 김산을 연상시키는 1812년 데카브리스트 일원 볼콘스키의 생애, 농노로써 귀족의 노예와 같았지만 창조적인 예술가로서 살았던 농노 예술가들의 흥미진진한 일화를 소개하면서 파이지스는 러시아 문화를 고급 교양서이자 흥미진진한 읽을거리로 엮어내고 있다. 문학 작품을 설명조로 다루는 다른 문화사들과는 달리 농노 예술가와 귀족들, 혁명가와 망명객, 성직자와 자유주의자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으며 18세기 성 페테르부르크의 화려함에서 스탈린주의 선전 활동까지, 민속 예술에서 아시아 무속의 마법적 의식까지, 푸쉬킨의 시에서 무소르그스키의 음악과 에이젠슈테인의 영화에 이르는 다채로운 문화적 현상들을 아우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는 러시아는 유럽인가 아시아인가? 서구화된 엘리트주의와 민중주의의 대립은 세계화라는 현대의 추세 속에서 이미 축적된 부와 정보화를 통해 좁아진 세계 속에서 그 혜택을 충분히 향유하고 있는 상류 계층과 그 와중에 기본적 생존권마저 위협받고 있는 각국의 중산층과 하층 계급 사람들에게서 불길처럼 타오르고 있는 민족주의를 떠올리게 하며 러시아의 고민이 오늘날에도 유효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저자의 러시아에 대한 애정, 대학과 연구기관의 아낌없는 지원, 저자의 오랜 연구 성과와 재능이 어우러져 대중적 열광을 이끌어낸 역사서의 걸작> 저자는 후에 펭귄 출판사와의 인터뷰에서 이 책을 쓰기 위해 분명한 계획 없이 3년간 책을 읽으며 대략적인 기록을 하기만 했다고 밝히고 있다. 인터뷰 내용을 뒷받침하듯이 그의 글은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마치 오랫동안 자료들을 조사하며 축적하다가 어느 한 순간 제방이 터지듯 거침없이 써내려간 속도감 있는 문장으로 흥미롭게 기록되어 있다. 조사 자료에 따르면 이 책에서 인용된 서적만도 176권에 달하며 아직도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러시아의 문서 보관소 알카에브에 보관중인 편지, 일기, 회고록 등 1차 원사료를 대거 인용하고 있다. 또한 학자들이 한 편의 논문을 작성할 때 책 한 권에서 인용할 문장 하나도 건지기 힘들다는 푸념에도 이 책은 각 장마다 200여개에 달하는 인용문이 마치 저자의 글인지 사료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본문에 정확하고 적절하게 인용되어 저자의 글과 결합되어 있다. 다른 한편으로 희귀한 자료사진과 아름다운 컬러 삽화들을 통해 독자들이 역사적 인물들의 당시 모습과 예술자료들을 보며 저자의 글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때문에 책은 전공자가 아니라도 마치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다. 저자가 서문에서 말하고 있듯 『나타샤 댄스』는 연대기 순으로 기술되어 있지 않으며 부분적으로 시대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독자들은 그 이유를 책의 끝에 가서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소설이 결론을 미리 슬쩍 암시하는 복선을 사용하듯 일관된 주제의 통일성을 단조로운 역사 서술방식에서 벗어나 소설 같은 서술방법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서술방식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책이 출간되고 아마존에서 만만치 않은 책 두께에도 2달간 베스트셀러 100위권 내에 머물렀으며 일년도 안돼 18,000부가 팔려나가 재판 25,000부를 찍을 정도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현재도 꾸준한 인기를 얻으며 러시아사 전문가 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고 있다. <인문학의 위기를 논하기 전에 인문학이 어떻게 일반 독자들에게 다가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실례> 이 같은 역사 책 쓰기는 현재 인문학의 위기를 한탄하는데 그치고 있는 인문학자들에게 세분화된 자신의 분야에 갇혀 스스로 일반인들과 괴리되고 있는 전문가들이 어떻게 독자들에게 다가가야할지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역사전공자들이 공감하고 있듯이 이 책은 올랜도 파이지스의 단순한 학문적 탐구 성과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의 러시아에 대한 사랑, 대학과 학술기관의 아낌없는 지원 그리고 뛰어난 재능이 드물게 결합되어 일반 독자의 열광적인 반응을 얻게 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나타샤 댄스』는 대중적인 성공과 함께 미국과 영국의 권위 있는 논픽션 및 역사 부문 수상 최종 후보자로 경합할 정도로 그 학문적 성과도 인정받고 있다. 이 책은 미국 컬럼비아 대학이 수여하는 미국 최고의 논픽션부문 2003년 Lukas Prize Project Awards 역사부문 최종 후보작, 2003년 영국 논픽션부문 최고 상금을 수여하는 BBC 후원 사무엘 존슨 상 논픽션부문 최종 후보작으로 경합했으며 미국에서 서평으로 가장 권위 있는 「뉴욕 타임즈」는 『나타샤 댄스』를 2002년 기억할만한 책 25중 한 권으로 선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