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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편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화평하게 하다
44 인간 세상은 화평하게 하기 어렵다 ‘천하’의 원래 의미를 이해하다|무엇을 “혈구지도”라고 하는가 45 저울은 저절로 오르내리지 않는다 위정자가 공평하고 올바르지 않으면|먼저 ‘덕을 세워야만’ 민심을 얻을 수 있다|위정자는 언행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재’와 ‘화’의 원래 의미|유방, 이연, 주원장의 솔직한 말 46 무대에 오르기는 쉬워도 내려오기는 어렵다 아두와 손호를 대비하다|폐하께서는 관직을 팔아 그 돈을 사문에 넣으셨습니다 47위진 남북조 시대 당시의 세 가지 관건을 이해해야 한다|오랑캐와 중화 민족의 혼합|호한 문화의 또 다른 일면|석륵과 불도징의 고사|부견, 구마라습을 얻으려 군사를 일으키다|유가는 잠잠하고 불가가 창성했던 시대 48 도리에 어긋나게 들어온 것은 도리에 어긋나게 나간다 유준, 소연, 소역, 진숙보의 고사|양견과 양광 부자의 고사|그 누가 형체도 없는 인과율을 피할 수 있는가 49 인한 사람이라야 남을 사랑할 수 있고 남을 미워할 수 있다 증자는 「진서」를 가지고 설명했다|진 목공이 백리해를 중용하다|“건숙이 군사를 위해 울었다”는 고사|유여가 문화와 문명을 논변하다|이웃 나라의 성인은 적국의 근심거리이니|세 가지 방면에서 진 목공을 평가하다 50 의리지변의 재정 경제 학설 백성이 부유하면 나라가 부유하고 나라가 부유하면 백성이 강해진다|재정에 치중했던 명재상과 명신|증자는 몸소 의리지변의 도를 실행하였다|공자에게 제자 자공이 없었다면|「화식열전」의 훌륭한 이론과 탁월한 식견 제8편 유학의 변화와 국가 발전 51 불가와 도가의 정수로 저술한 「정성서」 불교의 전래로부터 이학의 흥기까지|「정성서」를 잘 배웠던 강희제 52 사서오경과 중국 문화 오경박사의 시작|현학과 현담의 시대|찬란하고 운치 있었던 당대 문예|유?불?도?선과 당대 문화|백장선사와 여순양의 심원한 영향|송대 이학의 뿌리인 「원도」와 「복성서」의 출현 53 유가 경학과 당에서 오대까지의 난세 문화 오대는 제2차 남북조의 시작이었다|하늘을 향한 이사원의 축수 54 문치를 고수해 군주를 약하게 만든 송의 정책 어머니로서 예의범절이 위엄스러웠던 두 태후|개국 황제 조광윤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백성을 우롱했던 송 진종의 우민 정책 55 송 초의 문운과 송유의 이학 문운 전성의 원인|명성과 지위를 영광과 총애로 여기지 않습니다|진정한 유종이요 유행이었던 범중엄|범중엄이 송 초의 대유학자들을 길러 내다|북송 후기 유림의 도학 현상|성명의 학설은 자공도 듣지 못했습니다 56 남송 왕조와 사서장구 송 고종의 모순된 조서|주자의 ‘제왕의 학문’을 평하다|학이치용을 주장했던 이름난 유학자들 57 몽고의 서방 원정과 서양인의 오해 칭기즈칸은 왜 서방 원정에 나섰는가|티베트 밀교하의 유가 58 명?청의 과거 제도와 송유의 이학 주원장의 심리를 분석하다|과거로 선비를 뽑는 제도의 이로움과 폐단|양명학의 흥기|명 왕조의 정치 문화를 총결하다 59 유학을 표방하고 불가와 도가를 사용했던 청조 청이 천하를 얻은 것은 드물고 특별한 경우였다|치학에 근면했던 강희제|중국의 근심은 변방에 있었다 60 옹정제에서 건륭제까지 주야로 부지런히 노력하여 “일을 반듯하게 처리하다”|옹정제는 어떻게 평천하하였는가|대선사가 불교를 정리하다|천하를 장악한 채 가업을 발전시켰던 뛰어난 인재|완벽한 노인 건륭제 제9편 서양 문화와 중국 61 서양 문화의 변천을 조감하다 명?청 무렵의 동서 문화 교류|청 초 이래 서양 국가의 중대한 변혁|미국 문화와 미국식 맹주 62 반성하고 검토해야 할 세 가지 큰 문제 국제 형세에 관한 문제|서양 문화와 문명|인문 문화와 정치 사회에 관하여 63 중국은 평화 공존의 세계를 희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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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를 화평하게 함이 그 나라를 다스림에 있다[平天下在治其國]”라는 큰 이치인데, 말하자면 이 책의 결론인 셈입니다. 이것이 바로 증자가 스승인 공자의 가르침을 계승하여 터득한 바였으며, 외왕(外王)의 학문에서 위정(爲政)의 큰 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송대의 유학자들을 위시한 많은 사람들이 『대학』과 『중용』을 ‘제왕학(帝王學)’이요 ‘치국평천하’의 경전이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영도학(領導學)’의 대원칙이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단락의 함의 역시 시간적(시대적)이거나 공간적(지역적)인 제한이 없을 수 없으므로, 반드시 “신중하게 생각하고[愼思]” “명확하게 판단해야[明辨]” 합니다. 송대 이학가들처럼 『대학』과 『중용』, 『논어』의 절반만 읽으면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정말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 p.25 “치국평천하”라는 크나큰 원칙에 입각해서 말한다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왕조, 모든 정체(政體), 모든 제도(制度)에는 좌우의 의견 차이로 인한 갈등이 형성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최고 지도자는 원칙상 우파가 싫어하는 일이나 주장을 좌파에게 하라고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좌파가 싫어하는 일이나 주장을 우파에게 하라고 강요해서도 안 됩니다. 최고 지도층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 상하, 전후, 좌우의 각종 갈등을 바르고 순리에 맞게 조정하고 해결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스스로가 큰 지혜, 큰 인덕(仁德), 큰 용기를 지닌 그릇이라야 합니다. -- p.33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라고 말한 이치라고 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말라”라는 것은 단지 개인적인 학문 수양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 절에서 말하는 상하, 전후, 좌우에 관한 내용은 시종일관 “대학지도”의 “명덕(明德)” 및 내명(內明)의 학문에서 출발한 후에 그것을 외용(外用) 및 “친민(親民)”에까지 소급하고 있습니다. 지도자가 되려면 대인 관계, 일 처리, 처세를 놓고 말하더라도 그 속에 들어 있는 내외(內外), 표리(表裏), 정조(精粗)의 문제에 실로 적절히 대처하는 대(大)학문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 p.33 증자는 앞에서 『시경』의 역사적 경험을 인용하여 “백성들의 부모”가 되려고 마음먹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정권을 잡고 있는” 사람은 수시로 자기 자신을 돌이켜 반성해야 하며 권력에 미혹되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권력과 부귀공명은 모두 외부적인 물욕이긴 하지만 가장 쉽사리 사람의 마음을 미혹하여 ‘이지’적인 이성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p.37 당신이 나라를 세우고자 한다면, 혹은 어떤 사업을 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인화(人和)’를 갖추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인심이 자기 쪽으로 기울게 하고 싶다면, 혹은 개인적으로 자신을 도와줄 친구를 원한다면 모름지기 스스로 ‘덕을 세우는[立德]’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만약 그 사람됨, 태도, 언어, 사상 등이 곳곳에서 ‘덕이 부족하다[缺德]’면 그다음은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 p.41 어떠한 창업이든 성공의 기본 조건은 개인의 행위 도덕 즉 심리(心理) 행위와 처사(處事) 행위 두 가지를 포괄한 종합적인 것에 달려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덕이라는 것은 근본이요 재물이라는 것은 말단이다[德者, 本也, 財者, 末也]”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말(末)’ 자는 재물이라는 것이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 말은 개인의 도덕적 행위가 근본이고, 재물은 근본으로 말미암아 생겨나고 발전하는 지엽적인 것이라는 뜻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덕행은 나무의 뿌리와 같고 재물은 나무의 가지나 잎과 같습니다. 뿌리가 견고하지 않으면 가지와 잎이 무성하지 못한 법입니다. -- p.42 한 사람의 선악이 겉으로 드러난 것은 신체적 행동이고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의식 사유입니다. 그런데 이 둘 사이에서 안에 들어 있는 것을 밖으로 표현하는 작용을 하는 것이 바로 언어입니다. “오직 입에서 나온 것이 싸움을 잘 일으킨다[唯口出好興戎]”라는 말처럼 선한 말은 덕행이지만 악한 말은 재앙입니다. 또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로 “화는 입에서 나오고 병은 입으로 들어간다[禍從口出, 病從口入]”라는 말도 같은 이치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단지 개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이고 국가나 천하를 책임진 사람의 경우라면 문제가 훨씬 심각합니다. 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온 백성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 p.43 어떻게 해야 “때를 알고[知時]” “기량을 알 수[知量]” 있는지, 언제가 되어야 정말로 “때가 이른[時至]” 것인지에 관한 것은 완전히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고 지식이 지극해지는[物格知至]” 지혜의 학문의 경지입니다. 하늘이 내린 재능도 있어야 하지만 그 밖에 힘써 배워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 p.45 인생철학의 각도에서 보면 ‘명(名), 이(利), 재(財), 화(貨)’, ‘부귀공명(富貴功名)’, ‘권위금전(權位金錢)’ 등은 모두 생존과 생활에서 단지 일시적인 조건에 불과합니다. 때와 사안에 따라 한동안 지배할 필요가 있는 기제(機制)일 수는 있어도 결코 영원한 소유로 귀속되지는 않습니다. 그 까닭은 여러분의 생명 역시 부귀공명처럼 그저 잠시 우연히 존재할 뿐, 결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영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p.52 이러한 이해(利害)의 갈림길에서 잘 간파하고 열린 사고를 하고 공평하게 취하고 또 포기할 줄 알려면 반드시 “머무를 곳을 안 뒤에야 정함이 있다[知止而后有定]”라는 말에서 “생각한 뒤에야 얻을 수 있다[慮而后能得]”라는 구절에 이르는 평상시의 함양과 수련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특히 “물격(物格)”, “지지(知至)”의 이치가 내명(內明)과 외용(外用)의 열쇠라는 사실을 더욱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런 후라야 비로소 “친민(親民)”이라는 대용(大用)에 사용하여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의 공덕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 p.52-53 역사와 정치는 어두운 가운데서도 항상 무형의 규율이 그 선악과 시비를 중재하는 법입니다. 어떠한 권모술수를 동원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인과의 법칙을 비껴갈 수 없습니다. 바로 증자가 말한 “재물이 도리에 어긋나게 들어온 것은 또한 도리에 어긋나게 나간다”라는 인과응보의 원칙이기도 합니다. --- p.61-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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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강의』는 어떤 책인가
오랜 세월 유교 대표 경전으로 지존의 지위를 누려 왔던 『대학』. 남회근은 천여 자의 원본 『대학』으로 상하 권 사십만 자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의 『대학강의』를 풀어냈다. 이 책은 좁게는 수신의 학문이고 넓게는 수신의 외용의 학문이며, 더 넓게는 삼천 년 중국 역사를 다루며 유학의 핵심을 드러낸다. 이 책의 내용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원본 대학’을 왜 복원해야 하는가 그 이유를 밝힌 다음 ‘원본 대학’이 어떤 내용인가를 보여 준다. 둘째, ‘원본 대학’에 숨겨진 유학이 밝혀낸 ‘수증(修證)’의 이치를 논증적이며 명쾌하게 알려 주며, 내명(內明)의 학문으로서 『대학』의 가치를 내보인다. 저자는 몸과 마음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만 다를 뿐 유가와 불가, 도가의 수증 이치가 다를 바 없음을 강조한다. 셋째, 심신을 밝히는 내명의 학문에 대한 강의에 이어 외용의 이치를 보여 준다. 그 방법은 유가의 핵심과 중국 삼천 년 역사가 어떻게 서로 공감하며 호흡하고 있는가를 역사 속에서 찾아내는 데 있다. 왜 원본 『대학』인가 ‘원본 대학’과 ‘대학’은 서로 다른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학』과 원본 『대학』을 구분하는 이유를 잘 모른다. 그런 의문은 옛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명나라 때 왕양명이 원본 『대학』을 각인하자 당시의 문사(文士)들은 그런 책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또 청나라 때 학자 이돈이 “학자들 가운데는 늙어 죽도록 대학 원문을 보지 못한 자도 있었다”라고 탄식할 정도로 원본의 존재는 잊혀졌다. 심지어 사람들이 주자의 ‘장구본’만 읽었기 때문에 『예기』를 새긴 사람들도 아예 목록만 남기고 글자는 모두 삭제해 버렸다. (『대학』과 『중용』은 원래 『예기』 속에 포함된 편篇이다.) 왜 그런가. 그 이유는 송대 주희가 원본 『대학』의 편집 순서에 문제를 제기한 스승의 학설을 이어받아 스스로 순서를 다시 정하고 새로 장을 지어 넣은 ‘장구본’이 『대학』의 정통으로 자리 잡았고, 그 때문에 원본 『대학』은 거의 소실(消失)될 정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은 오늘이라고 다르지 않다. 전통과 관행의 힘은 위력적이어서 세상은 지금도 주희의 『대학』 장구본을 신봉하고 있다. 주희의 장구본은 “『대학』 자체의 사상이라기보다는 주희의 사상적 이념을 고전에 덧씌워 개인의 철학을 밝힌 것”이라는 일부 평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권위는 절대적이다. 이 책이 원본 『대학』을 강의한 이유는 분명하다. 무엇보다 춘추 시대 증자가 쓴 원본 『대학』은 논리 정연하고 일관된 체계를 갖춘 한 편의 훌륭한 논문이고, 또 공자의 심법(心法)을 계승한 증자가 유가의 학문 수양 방법을 제대로 밝힌 것이기 때문이다. 원본 『대학』은 전체가 산만해지지 않도록 앞에서 큰 줄기를 드러내 결론을 내리고 뒤에 설명을 덧붙인 다음, 『시경』 등 고문을 전고(典故)로 인용하는 방식으로 쓰여 구조가 수미일관하다. 또 『대학』의 문장은 고대 중원 문화의 정수로, 함축적 의미를 가진 간결하고 담백한 말 속엔 깊고 심오한 뜻이 담겨 있다. 그러니 구태여 순서를 옮기고 글자를 바꾸고 내용을 덧붙일 필요가 없는 완결된 구조의 내용을 주희가 개편함으로써 『대학』의 참된 뜻이 왜곡되고 가려지게 되었다. 이것이 원본 『대학』을 강의하는 이유이자, 내면의 학문 수양을 통해 이치를 밝히고 그것이 밖으로 자연스럽게 내비쳐 가까운 사람들에서 나아가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유학이 품은 이상을 온전히 복원해야 하는 이유다. 『대학』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대학』 하면 으레 떠오르는 말이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일 것이다. 이 말을 살짝 비틀면 “수신제가도 못하면서 치국이라니” 하면서 타인을 비난하는 뜻으로 곧잘 쓰인다. 저자는 이 말의 본의가 다른 이를 폄하하거나 어느 누구도 쉽게 다가갈 수 없을 만큼의 도덕성을 요구하며 타인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라는 것이 아님을 알려 준다. “우리는 ‘수신제가’라고 했을 때 그 중점이 자기 자신의 ‘수신’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를 수양하지도 않고 집안을 바로잡지도 못하고서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하겠다고 호언해서는 안 된다기보다는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지요. 왜 공자는 그렇게까지 요순을 높이 받들었을까요? 그의 강조점은 ‘수신’에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송대 이학가들은 『대학』의 ‘천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자신의 수양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라는 구절에 근거하여, 황제인 천자로부터 신하인 왕후장상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러한 학문 수양을 갖춤으로써 허령불매에 이르고 욕망을 모두 없애 세상 사람들의 본보기가 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에게 승려보다 더 승려다워질 것을 요구한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대학』이 ‘제왕학’이자 ‘영도학’으로, 오늘날로 치면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행과 위정자의 정치 지침서로 그 의미가 변질된 것도 남송 이후의 일이다. 정주의 학설을 추종하던 유학자들이 『대학』의 본의를 제왕이 갖추어야 할 강령과 덕목을 밝힌 것으로 축소 왜곡했기 때문이다. 『대학』의 저자인 증자는, 전통문화가 타락하고 사회도덕은 쇠미해졌으며 제후들 간 정치도덕이 혼탁한 춘추 시대에 살았다. 스승인 공자가 죽은 후 증자는 평생 배운 것을 글로 써서 후세에 전하는 것을 자신의 할 일로 삼았다. 그것이 곧 『대학』 집필이었다. “증자가 『대학』을 저술한 때는 스승이 세상을 떠난 후였습니다. 당시는 위로 중앙의 천자에서부터 아래로 열국의 제후들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군주 된 자는 군주답지 못했고 신하 된 자는 신하답지 못했습니다. 내적인 수양이 부족했을 뿐 아니라 입신 처세에 있어서도 외용의 덕행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증자는 서글프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대학』을 저술하여 공자가 계승한 중국 전통문화의 심법(心法)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후세에 전해 주려 했던 것입니다.” 상고 시대 교육의 근본은 인륜의 본분을 완성하는 데 있었다. 사람 됨됨이야 어떻든 지식과 기능만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자리에 있든 무엇을 하든 그것은 모두 직업상의 차이일 뿐 올바른 사람됨은 그야말로 본분이었다. 『대학』은 그러한 사람됨의 “도(道)”를 밝힌 것이다. 사람의 심성에 본래부터 있는 “밝은 덕을 밝히는[明明德]” 것으로, 심리적 신체적 행위를 닦아 수양에 이르고 그러한 개인의 성취가 바깥으로 향해 세상을 위해 쓰이는 것이 “백성과 친하게[親民]” 되는 일이다. 이 두 가지가 “지극히 선한 경지[止於至善]”에 머무르는 것이 『대학』이 말한 네 가지 강령 즉 사강(四綱)이라고 저자는 본다. 여기서 내면을 밝히는 수양의 단계로 “지(知), 지(止), 정(定), 정(靜), 안(安), 여(慮), 득(得)”의 이치를 찾아내고, 그다음에 “격물, 치지, 성의, 정심”의 내명의 덕목과 그것을 이어주는 “수신”의 과정, 이후 내면을 밝힌 덕이 바깥으로 드러나 “치국평천하”하여 세상에 이롭게 쓰이도록 하라는 것이 대학이 밝힌 큰 뜻이다. 주자는 『대학』의 핵심을 삼강 팔목으로 명명하고 정치 지침서로 탈바꿈시켰다. 하지만 이 책은 『대학』의 핵심을 사강, 칠증, 팔목으로 다시 짚어 내며 실질적인 심신 수양이 뒷받침된 유학의 본모습에 성큼 다가간다. 『대학』, 유학의 수증 단계를 밝히다 『대학강의』는 남회근 식 경전 해석 방식이 유독 돋보이는 책이다. 바로 유불도 삼가를 두루 통달하고 “가슴을 열고 다른 사상가들의 학설을 빌려 와서” 서로의 개념을 비교하고 같음과 다름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어느 학파의 입장에 서서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 저자의 태도는 사실 학계에서는 호응을 얻지 못한다. “학자들은 이런 제 방식을 대단히 싫어하고 반감을 드러냅니다. (...) 사실은 다른 산의 돌을 가지고 옥을 갈아 흠을 없애는 이치인데 말입니다.” 저자가 강의한 『대학』에서 가장 독창적인 부분은 유학의 일곱 단계 수증 과정을 설명한 대목이다. 바로 “지(知), 지(止), 정(定), 정(靜), 안(安), 여(慮), 득(得)”의 이치다. 역사에 남은 『대학』의 어떤 주해에서도 저자가 제시한 수증 과정을 설명한 적이 없었다. 『대학』의 저자 증자마저도 더 이상 설명을 보태지 않았으니 후학들이 이 문제를 파고들기는 어려웠을 테다. 이 칠증의 수증 과정을 제대로 밝히기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실제로 심신 수양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몸과 마음으로 겪게 되는 상황을 명료하게 개념화하고 논리적 증거를 들어 설명하기가 어렵다. 저자는 중국 문화의 저변을 흐르는 유불도 삼가의 학설에 해박하고 몸으로 깊은 체험까지 했다. 그러니 불가의 학설을 빌려 유가의 수증 단계를 설명하는 것이 남의 것을 억지로 끌어다 갖다 붙이는 식이 아니라 논리 정연하고 고증적이어서 그 방식과 설명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저자의 다음 글을 보면 유학을 강조하지만 다른 학설을 들어 설명하는 방식이 얼마나 솔직하고 유연한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이제 계속해서 연구하려면 ‘알고 멈춘 뒤에야 정함이 있다[知止而后有定]’라는 말이 지적했듯이 ‘지(止)’에서 ‘정(定)’에 이르는 두 단계에 대해 토론해야 합니다. 간단히 구분지어 말하면 지(止)는 정(定)의 원인이고, 정은 지의 결과입니다. 또는 지(止)는 정(定)의 전주곡이고, 정은 지의 효과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런 경로를 따라 설명하는 것이 유가의 심법(心法)인 『대학』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더욱 가치가 있고, 상고 시대 전통문화의 정화가 지닌 특색을 더 잘 드러낼 수 있습니다. 민족의식 때문에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불학을 빌려 와서 설명하지 않으면 여전히 애매모호할 것입니다. 송?원?명?청 이래로 유학의 이학가들은 파벌 개념에 사로잡혀 기존의 울타리만 사수하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 결과 유학의 도를 더 발전시키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유학의 도가 쓸모없는 땅에서 자라도록 방치해 버렸습니다.” 『대학강의』는 유가의 학문과 수양을 말하기 위해 불가와 도가의 개념, 선현들의 말씀 등을 빌려 와서 설명했다. 중국 원시 유학에 내재해 있는 수증 단계를 밝히기 위해서다. 저자는 『불교수행법 강의』나 『정좌수도강의』 등에서 불가와 도가의 수증 이치를 밝힌 데 이어 『대학강의』에서 유가의 수증 이치를 분명한 개념과 단계를 들어 설명함으로써 유불도 삼가의 수증 단계를 정리했다고 할 수 있다. 유학의 발전사와 삼천 년 역사가 장대하게 흐른다 이 책의 또 하나 특징으로 풍부한 역사적 사례를 들 수 있다. 저자는 내명의 학문을 설명하는 과정에서는 불교의 학설과 일화를 많이 들었지만 외용의 학문인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의 이치를 설명하면서는 삼천 년 중국 역사 속 인물들의 수신과 치국의 성쇠를 흥미롭고 생생한 예화를 가져와 설명한다. 겉으로는 화려해도 실제로는 문제가 많았던 제왕의 가정을 들여다보면서 부모 자식의 관계, 남편 아내의 관계를 통해 보편적인 인간의 내면 심리를 분석해 내는가 하면, 역대로 부자지간, 형제지간, 부부지간에 왕위 쟁탈을 놓고 벌였던 수많은 혈육 간의 싸움을 통해 숭고한 정치적 덕성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정 안에 있음을 강조하였다. 천하를 잘 다스린다는 것이 결국은 백성들로 하여금 일상을 편안하게 누리게 해 주는 것이라는 결론은, 언제 어디에나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가깝고도 일상적인 것들 속에 지고한 이치가 숨어 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더불어 중국 역사에서 한족과 오랑캐로 불리는 이민족과의 화합과 갈등의 역사를 그려 현재 중국의 소수 민족 문제의 기원을 드러내는가 하면, 각 왕조의 흥망과 함께 유가 불가 도가가 어떻게 일어섰고 어떤 역할을 하다가 어떻게 변질되어 가는지도 장대하게 보여 준다. 저자는 중국의 후학들에게 원본 『대학』으로 유학의 본모습을 강의하면서 앞으로 중화 민족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권면한다. 물론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기엔 꽤나 자국 중심적이고 중화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하지만 그 또한 저자의 역사 인식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면 될 것이다. “이번 『대학』 강의에서는 인용과 논의가 비교적 방대하고 복잡했는데, 그 주요 원인은 삼천년 중국문화를 가지고 역사 발전을 인증(引證)하고 내성외왕(內聖外王)의 이치를 설명하고자 했던 데 있습니다. 맹자가 말한 ‘벼슬길이 막히면 자기 자신을 잘 보존하고, 높은 지위에 오르면 천하를 두루 잘 다스린다’는 이치 말입니다. 『대학』은 사람 노릇을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강령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어떻게 하면 사람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집안을 제대로 다스릴 수 있는지 말해 줍니다. 나라를 잘 다스리고 천하를 태평하게 만드는 것은 성인(聖人)의 일이요 내성(內聖)의 발휘일 뿐입니다. 저는 이번 원본 『대학』 강의를 통해 『대학』의 본래 모습을 찾아주고자 했으며, 아울러 중국인이 본국의 문화 정신을 잘 이해하여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개척해 주기를 바랍니다. 또 선입견이나 편견을 지니고 있는 외국인들이 이번 기회에 중국 문화의 정신 및 우리의 민족성을 잘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지구상의 모든 국가와 민족이 서로를 잘 이해하고 서로 교류하고 융합함으로써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촉진시킬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이번 원본 『대학』 강의의 목적이며 제가 수십 년간 축수해 온 염원이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