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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묵묵히 역사의 현장을 지켜보다
서울·인천·경기 지역의 봉수-17기 서울 목멱산봉수 ㆍ서울 무악동봉수 ㆍ서울 아차산봉수 ㆍ인천 백운산봉수 ㆍ인천 축곶산봉수 ㆍ강화 화개산봉수 ㆍ강화 망산봉수 ㆍ강화 하음산봉수 ㆍ강화 어류정요망대 ㆍ수원 화성봉돈 ㆍ성남 천림산봉수 ㆍ성남 인릉산봉수 ㆍ화성 염불산봉수 ㆍ화성 흥천산봉수 ㆍ평택 괴태곶봉수 ㆍ고양 독산봉수 ㆍ포천 독산봉수 2장 일출의 장관과 굽이치는 산세의 절경을 맛보다 강원·대구·경북 지역의 봉수-18기 삼척 가곡산봉수 ㆍ동해 어달산봉수 ㆍ정선고성산봉수 ㆍ속초 권금성봉수 ㆍ대구 법이산봉수 ㆍ울진표산봉수 ㆍ영덕 대소산봉수 ㆍ영덕 광산봉수 ㆍ영덕별반산봉수 ㆍ문경 탄항봉수 ㆍ안동신석리봉수 ㆍ의성 영니산봉수 ㆍ경주 하서지봉수 ㆍ포항뇌성봉수 ㆍ성주 각산봉수 ㆍ고령의봉산봉수 ㆍ청도 남산봉수 ㆍ봉화용점산봉수 3장 고갯마루에 올라 황금 들판을 바라보다 충북 내륙 지역의 봉수-11기 충주 주정산봉수 ㆍ충주 마골재봉수 ㆍ충주 심항산봉수 ㆍ충주 대림산봉수 ㆍ청주 것대산봉수 ㆍ제천 오현봉수 ㆍ단양 소이산봉수 ㆍ단양 공문산봉수 ㆍ단양 용부원봉수 ㆍ단양 의풍봉수 ㆍ옥천 고리산봉수 4장 서해안의 낙조를 바라보며 상념을 떨쳐내다 충남·전북 지역의 봉수-10기 아산 연암산봉수 ㆍ아산 도고산봉수 ㆍ당진 안국산봉수 ㆍ당진 창택산봉수 ㆍ서산 도비산봉수 ㆍ공주 쌍령산봉수 ㆍ보령 외연도봉수 ㆍ진안 태평봉수 ㆍ부안 계화리봉수 ㆍ부안 월고리봉수 5장 청량한 숲길을 걸으며 전설을 떠올리다 부산·울산 지역의 봉수-12기 부산 황령산봉수 ㆍ부산 석성봉수 ㆍ부산 기장 남산봉수 ㆍ부산 아이봉수 ㆍ부산 천성보봉수 ㆍ부산 성화예산봉수 ㆍ부산 응봉봉수 ㆍ울산 소산봉수 ㆍ울산 이길봉수 ㆍ울산 부로산봉수 ㆍ울산 남목봉수 ㆍ울산 유포봉수 6장 그림 같은 남해안의 풍광과 충무공의 충정을 가슴에 품다 경남 해안과 도서 지역의 봉수-21기 거제 강망산봉수 ㆍ거제 지세포봉수 ㆍ거제 와현봉수 ㆍ통영 미륵산봉수 ㆍ통영 우산봉수 ㆍ통영 주봉봉수 ㆍ통영 별망산봉수 ㆍ양산 위천봉수 ㆍ밀양 남산봉수 ㆍ밀양 추화산봉수 ㆍ김해 분산성봉수 ㆍ마산 가을포봉수 ㆍ고성 좌이산봉수 ㆍ남해 금산봉수 ㆍ남해 대방산봉수 ㆍ남해 설흘산봉수 ㆍ남해 원산봉수 ㆍ남해 망운산봉수 ㆍ사천 각산봉수 ㆍ하동 금오산봉수 ㆍ함안 파산봉수 7장 사각거리는 억새풀 밟으며 천혜의 비경을 내려다보다 전남 해안과 도서 지역의 봉수-26기 진도 첨찰산봉수 ㆍ진도 상당곶봉수 ㆍ진도 금갑리연대 ㆍ해남 관두산봉수 ㆍ해남 달마산봉수 ㆍ완도 삼문산봉수 ㆍ완도 여서도요망대 ㆍ장흥 천관산봉수 ㆍ장흥 억불산봉수 ㆍ강진 원포봉수 ㆍ고흥 사화랑봉수 ㆍ고흥 장기산봉수 ㆍ고흥 가내포봉수 ㆍ고흥 천등산봉수 ㆍ고흥 유주산봉수 ㆍ고흥 봉래산봉수 ㆍ고흥 마북산봉수 ㆍ여수 백야곶봉수 ㆍ여수 안도 상산봉수 ㆍ여수 남면 망산봉수 ㆍ여수 돌산봉수 ㆍ여수 북봉연대 ㆍ여수 만흥동 봉화산봉수 ㆍ여수 묘도 봉화산봉수 ㆍ순천 성황당봉수 ㆍ신안 상라산봉수 8장 고색창연한 올레길 걸으며 잃어버린 나를 찾다 제주도의 연대들-25기 제주 종달연대 ㆍ제주좌가연대 ㆍ제주 왜포연대 ㆍ제주조천연대 ㆍ제주 별도연대 ㆍ제주수근연대 ㆍ제주 조부연대 ㆍ제주남두연대 ㆍ제주 애월연대 ㆍ제주귀덕연대 ㆍ제주 우지연대 ㆍ제주배령연대 ㆍ제주 두모연대 ㆍ제주사라봉수 ㆍ서귀포 서림연대 ㆍ서귀포 산방연대 ㆍ서귀포당포연대 ㆍ서귀포 대포연대 ㆍ서귀포 연동연대 ㆍ서귀포벌포연대 ㆍ서귀포 소마로연대 ㆍ서귀포 천미연대 ㆍ서귀포말등포연대 ㆍ서귀포 협자연대 ㆍ서귀포 오소포연대 9장 잡목 속에서 잊혀진, 그러나 여전히 빛나는 그 외의 봉수-70기 경기 - 강화 진강산봉수 ㆍ김포 수안산봉수 ㆍ화성 해운산봉수 ㆍ화성 서봉산봉수 ㆍ화성 건달산봉수 ㆍ 포천 잉입점봉수 ㆍ포천 할미산봉수 ㆍ포천 미로곡봉수 ㆍ남양주 대이산봉수 ㆍ파주 도라산봉수 ㆍ안성 전재봉봉수 ㆍ여주 봉우재봉수 강원 - 고성 술산봉수 ㆍ고성 삼포리봉수 ㆍ삼척 광진산봉수 ㆍ삼척 임원산봉수 ㆍ강릉 월대산봉수 충북 - 충주 마산봉수 ㆍ청원 소이산봉수 ㆍ봉수 단양 죽령봉수 ㆍ단양 임원봉수 ㆍ음성 가섭산봉수 ㆍ영동 박달라산봉수 ㆍ음성 망이산봉수 충남 - 공주 월성산봉수 ㆍ공주 고등산봉수 ㆍ서산 삼길산봉수 ㆍ태안 백화산봉수 ㆍ보령 조침산봉수 ㆍ보령 옥미봉봉수 ㆍ보령 녹도봉수 ㆍ논산 황화산봉수 ㆍ논산 강경대봉수 ㆍ논산 노성산봉수 ㆍ서천 운은산봉수 경북 - 울진 죽변곶봉수 ㆍ울진 사동산봉수 ㆍ예천 비룡산봉수 ㆍ포항 오봉봉수 ㆍ포항 대곶봉수 ㆍ포항 도이산봉수 ㆍ의성 마산봉수 경남 - 청도 송읍리봉수 ㆍ부산 구봉산봉수 ㆍ부산 간비오봉수 ㆍ부산 계명산봉수 ㆍ부산 임량포봉수 ㆍ울산 하산봉수 ㆍ울산 가리봉수 ㆍ울산 천내봉수 ㆍ마산 성황당봉수 ㆍ거제 능포봉수 ㆍ거제 옥녀봉봉수 ㆍ고성 천왕점봉수 ㆍ고성 곡산봉수 ㆍ사천 안점산봉수 ㆍ사천 우산봉수 ㆍ진주 망진봉수 ㆍ진주 광제봉수 ㆍ함안 안곡산봉수 ㆍ망산도비문 전남 - 해남 갈두산봉수 ㆍ완도 상황봉봉수 ㆍ완도 서망산봉수 ㆍ완도 동망산봉수 ㆍ완도 남망산봉수 ㆍ고흥 망산봉수 ㆍ고흥 소포봉수 ㆍ여수 월암산성봉수 ㆍ신안 대봉산봉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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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는 꼭 위험을 경고하는 것만은 아니다. 평상시 조선 전역을 통해 만사가 평화롭다는 신호로도 사용된다. 각 지방에서 올라오는 전갈들을 서울 장안에 알리기 위해 약 15분 정도 타오르다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져간다. 남산봉수는 전국 방방곡곡에 뻗쳐 있는 봉화들의 집결지로서 소위 횃불 전신술의 마지막 지점이다.
** 강화는 섬 전체가 항전의 요새다. 성곽 13개소, 진과 보가 12개소, 돈대 54개소, 봉수와 요망대는 15개소나 된다. 지금까지 확인된 관방유적만 94개소이며, 앞으로 얼마가 더 나올지 알 수가 없다. 국내에서가장 많은 유적이 강화도에만 집중 쌓인 것은 밀물과 썰물의 차가 심한 서해안에서 큰 배가 다닐 수 있는 곳이 강화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한강이 강화에 접해 있어 삼국시대부터 군사들의 이동수단으로는 요충지에 해당되었다. **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수원화성에는 우리나라 봉수 중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봉수가 있다. 우선 위치로 볼 때 대부분의 봉수가 산봉우리에 있는데 비해 화성봉돈은 평지에 축조되어 있다. 이름도 봉수가 아닌 봉돈으로 부른다. 이는 유사시에 봉홧불만 피우는 것이 아니라 돈대 기능도 겸했기 때문이다. 돈대는 성벽에 구멍을 내 대포를 쏠 수 있는 구조물이다. ** 1960년대의 인릉산 아래 사는 아이들은 서울이 보고 싶으면 봉화둑으로 올라갔다. 이곳에서는 남산과 한강철교가 빤히 보였다. 철교 위를 달리며 검은색 화통에서 뿜어져 나오는 흰 연기의 기관차는 아이들에게는 신기한 동심의 세계였다. 당시 아이들은 더 높은 곳에서 기차를 보기 위해 올라선 곳이 어른 키보다 높은 봉홧불을 피우던 돌무더기였다. ** 조선시대에는 봉수 주변에서 제사나 무속 행위를 하는 것을 법으로 엄격하게 다스렸다. 푯대를 세워 백 걸음 안에서 거짓 봉화나 방화가 일어나면 관할 병조에서 단속하고, 백 걸음 밖이면 해당 진영에서 단속하게 했는데 위법자는 사형에 처했다. 인근 마을 사람들이 봉수에서 제사를 지내는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지만 조선 후기 봉수제도가 사라지고 나라가 쇠퇴기에 접어들 때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 한 장의 사진은 어떤 글보다 강하다. 국적과 언어가 달라도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도구 중 사진만큼 큰 매력덩어리가 없다. 사진은 또한 잃어버린 옛 향수를 들춰내기도 한다. 천년 역사를 지켜 온 조상들의 혼이 서린 호국간성(護國干城) 봉수가 어느 날 멸실됐다. 25년 전 필자가 찍은 한 장의 사진만 홀로 남아 봉수를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다. ** 근대화의 물결로 봉수 제도가 사라지고 봉홧불이 멈춰 버리자, 봉수군들은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채 마땅히 갈 곳조차 없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이들은 쓰러져가는 봉수가옥에서 홀로 지내다 생을 마칠 수밖에 없었고, 죽은 뒤엔 그 터에 묻히기도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봉수 주변의 원주민들은 정월대보름이나 사월초파일 전후가 되면 봉화제·고사·별신제 등을 지내는 곳도 생기게 되었다. 정성으로 제사지내면 천신이 마을을 지켜 준다는 믿음 때문이다. ** 최첨단 통신문화를 접하고 있는 이 시대에 봉수의 존재는 마치 전설 속 얘기로만 들릴 뿐, 힘겨웠던 봉수군들의 생활은 누구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연기나 횃불 전달이 어려울 때 그들은 북과 나팔로 산 아래 위치한 진·보에 급보를 알렸으며, 어떤 때는 봉수군이 직접 다음 봉수까지 말을 타고 달려가서 알리기도 했다. 봉수군은 고독한 직책이었다. 횃불이 꺼지는 날은 일백 대의 매를 맞거나 심하면 사형에 처하기도 했다. 횃불이 풍우에 꺼지지 않도록 산속을 헤매며 늑대 똥과 솔잎 등을 채취해 연료를 만들어야만 했다. 통신수단이 없었던 시절 봉홧불로 호국을 생각했던 조상들의 혜안이 참으로 존경스럽다. ** 우리의 산은 참 묘하다. 뒷동산에서부터 민족의 영산 백두산까지 산은 우리 민족과 친근한 존재다. 도적 떼나 산짐승이 나타나는 등 민심이 흉흉해지면 산신이 있어 우리를 지켜주었고, 전란이 터지면 산으로 들어가 후일을 도모하거나 결사로 항전했다. 오천 년의 역사를 통틀어 산성과 봉수만큼 우리 민족의 환희와 비애를 깊이 새기고 있는 곳은 없을 것이다. 우리네 산은 그 자체가 역사다. ** 경칩이 지난 어느 봄날 자정, 해안에서 검은 물체들이 움직였다. 봉수에서 경계를 서던 봉수군의 두 눈이 번뜩거렸다. 물체를 발견한 봉수군은 옆에서 졸고 있는 동료 봉수군을 흔들었다. 잠결에 눈을 부비며 앞을 내다 본 동료 봉수군의 눈도 동그래졌다. “헉! 적선이다.” 긴장한 봉수군은 재빠르게 봉수에 불을 붙였다. 까만 밤하늘을 뚫고 횃불이 피어올랐다. 가내포봉수에서 시작된 봉화는 순식간에 이웃의 가화봉수로 전달되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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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한 산봉우리 우뚝 솟은 봉수 찾아 DMZ에서 제주도까지
이 책에는 남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것, 쉽게 담아낼 수 없는 것들에 깊은 애정을 갖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 저자가 발로 뛰며 찾아낸 212기의 봉수 사진과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둘러메고 접근이 어려운 산봉우리를 찾아다니는 것은 고행의 연속이었다. 등산로가 없어 연장으로 잡목을 쳐내며 길을 뚫고 찾아갔는가 하면, 봉수대에서 짚단만한 구렁이와 마주쳐 혼비백산하기도 했다. 비 내리는 산등성이에서 방향을 잃고 애써 찾아낸 봉수가 멸실되어 허탈해하기도 하고, 험준한 계곡으로 부지런히 몸을 실어나르던 자동차가 추락하는 아찔한 사고도 겪었다. 그러한 피와 땀의 결실로 탄생한 이 책이 봉수의 존재가치에 대한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올바른 인식과 봉수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활성화를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된다면 그 이상의 보람은 없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여전히 사람의 손길을 그리워하는 전국의 봉수들 조선말에 편찬된 《증보문헌비고》에는 남북한 통틀어 676기의 봉수가 축조됐다고 전한다. 이 가운데 남한에는 현재 400여 기의 봉수는 흔적이 남아 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 유실되거나 인위적으로 파괴되고 말았다. 유적은 한 번 멸실되면 다시는 원형 복원이 어렵다는 사실도 외면한 채 천편일률적으로 복원해 원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봉수 앞에서 저자는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 전망 좋은 봉수대는 해맞이 장소로 관광상품화됐고, 지방자치단체의 각종 이벤트로 몸살을 앓고 있다. 호국유적인 봉수대 터에 호화판 묘지가 조성된 예도 있다. 그런가 하면 예부터 지금까지 봉수대에 올라 산신에게 고사를 지내며 마을 전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곳이 있어 가슴 찡한 감동을 자아낸다. 과거의 통신수단인 봉수의 존재는 이제 무의미해졌지만, 봉수군들의 예지가 번뜩이던 거화선은 지금 산등성이에 홀로 남아 자신을 찾아줄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다. 호국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를 지닌 봉수 저자는 전국에 산재한 봉수를 연차적으로 조사해 원형이 잘 보존된 유적을 우선적으로 선별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숲길 따라 등산로를 개설하고 봉수 주변의 잡목을 벌채한 후 역사 유적으로서 봉수를 재탄생시키자는 것이다. 봉수군들의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 또한 훌륭한 콘텐츠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봉화 올리기, 수마석 던지기 등 그 영역은 무궁무진하다. 옛것에 대한 향수와 무수한 이야기들로 가득한 호국유적 봉수가 일반인들에게 한 걸음 성큼 다가가는 데 이 책은 톡톡히 한몫을 해낸다. 고색창연한 올레길 걸으며 잃어버린 나를 찾는 제주도의 독특한 관방유적 한반도 최남단의 섬 제주도, 거친 바다에서 살아온 제주 사람들은 내륙과 또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그들은 속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강인한 불굴의 개척정신으로 섬을 지켰으며, 외세에 물러설 수 없다는 임전무퇴의 각오로 섬 곳곳에 관방유적을 쌓았다. 적의 침입이 예상되는 해안에 진과 장성을 축성하고 내륙에는 읍성을 둘렀다. 그리고 봉수와 연대를 설치해 적선이 나타나면 신속하게 연기와 불을 피워 성과 진으로 그 정보를 알렸다. 요즘 힐링 열풍이 몰아치고 있다. 올레길 걷기 여행 중에서 연대 답사는 매력 덩어리다. 해안을 따라 이어진 연대는 들길, 산길, 오름길 사이에 접해 있다. 이곳에 가면 역사향기 가득한 제주의 옛적 풍경을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