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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서론 우크라이나 문제 1장 우크라이나 혁명, 1917년 2장 반란, 1919년 3장 기근과 휴전, 1920년대 4장 이중 위기, 1927년부터 1929년 5장 집단화: 농촌에서의 혁명, 1930년 6장 반란, 1930년 7장 집단화 실패, 1931년부터 1932년 8장 기아를 일으키기로 결정하다, 1932년: 징발, 블랙리스트, 국경 봉쇄 9장 기아를 일으키기로 결정하다, 1932년: 우크라이나화의 종말 10장 기아를 일으키기로 결정하다, 1932년: 수색과 수색자 11장 굶주림: 봄과 여름, 1933년 12장 생존: 봄과 여름, 1933년 13장 기근, 그 뒤 14장 은폐 15장 역사와 기억 속의 홀로도모르 맺는말 우크라이나 문제를 돌이켜보다 옮긴이의 말 주 참고문헌 사진 출처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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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17년부터 시작한다. 당시 우크라이나 혁명이 일어났고, 우크라이나 민족운동이 벌어지다가 1932년에서 1933년의 기근으로 궤멸되고 만다. 책의 끝은 현재다. 아직도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기억의 정치를 논하며 마무리된다.
사학자 안드레아 그라치오시는 ‘나치의 잔학 행위’라는 전반적인 역사와 히틀러의 유대인 및 집시 학살이라는 매우구체적인 이야기를 혼동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지적했다. 같은 논리로 이 책은 소련이 1930년에서 1934년 사이에 겪은 대규모 기근, 특히 카자흐스탄과 그 밖의 소련 변방 지역의 기근으로 인한 높은 사망률을 논하지만, 우크라이나가 겪은 비극에 더 직접적으로 초점을 맞춘다. --- p.20~21 이제, 그리고 오직 지금, 기근이 휩쓸고 있는 지역에서 사람들이 뜯어먹히고 있는 때, 그리고 수천 또는 수백 구의 시체가 길거리에 널려 있는 때, 우리는 가장 광적이고 인정사정없는 에너지를 빌려 최소한의 저항만으로 교회 재산을 제거할 수 있소(그리고 해야만 하오). 이제, 그리고 오직 지금, 대다수의 농민은 우리 편이 되거나, 아니면 적어도 이 한 줌의 (반동적인) 사제와 반동적인 도시 프티부르주아들을 돕는 입장에는 서지 않을 것이오. --- p.153 전시 공산주의는 실패했다. 급진적인 노동자 국가는 노동자들에게 번영을 선사하지 못했다. 그러나 1920년대 후반에는 레닌의 신경제정책도 실패하고 있었다. --- p.186 열심히 일해서 농장을 키우면 ‘인민의 적’인 쿨라크가 된다. 하지만 다른 선택을 해 빈곤한 농민인 베드냐크로 남으면 경쟁 상대인 ‘미국 농민’보다 형편이 더 나빠진다. 이 함정에서 탈출할 방법은 없어 보였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이바니소프가 친구에게 물었다.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까?” 상황은 악화되고 있었다. “우린 이제 소를 팔아야 해. 소가 없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거야. 농민의 집에는 눈물, 끝없는 고함, 고통과 저주가 가득해. 이곳에 와서 농민 가정에 가보면, 너도 이런 말을 듣게 될 거야. ‘이건 사는 게 아니에요. 고된 노동이자 지옥이고, 악마도 모를 정도로 끔찍한 일이죠. 고통 외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요.’” --- p.193~194 나와 같은 세대는 모두 그랬지만, 나 역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굳게 믿었다. 우리가 추구하는 위대한 목표는 공산주의의 보편적 승리였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면 거짓말, 도둑질은 물론 우리 일을 방해하거나 방해할 수 있는 수십만, 수백만 명을 죽이는 일도 허용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에 대해 주저하거나 의심하는 것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특징인 ‘지적 비굴함’과 ‘어리석은 자유주의’에 굴복하는 일이었다 --- p.243~244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심을 샀다. 살아 있다는 것은 음식이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음식이 있다면 음식을 넘겨야 했고, 그러지 않았다면 쿨라크, 페틀류라파, 폴란드 간첩이나 기타의 적으로 간주되었다. 체르카시주에서 미하일로 발라놉스키의 집을 수색하던 한 무리는 “어떻게 이 가족 중에 아무도 죽지 않았는지”를 설명하라고 요구했다.51 수미주의 흐리호리 모로즈의집에서 지붕 볏짚을 수색하던 한 무리는 음식을 찾지 못하자 “누가 도와줘서 살고 있느냐?”라고 물었다.52 날이 갈수록 요구는 더 거세지고, 언어는 더 무례해졌다. 왜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지? 왜 아직 죽지 않았어? 대체 왜 아직까지 살아 있냐고? --- p.446 공포와 탈진, 생명에 대한 비인간적인 무관심, 증오의 언어에의 끊임없는 노출은 그 흔적을 남겼다. 또한 이러한 요소는 극도의 식량 부족과 결합해 우크라이나 시골에서 매우 드문 형태의 광기를 낳았다. 늦봄과 여름, 식인 풍습이 널리 퍼진 것이다. --- p.500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대규모 우크라이나 민족운동이라는 개념이 완전히 죽고 묻혀버린 것처럼 보였다. 지식인들이 일부 도시에서 그 불씨를 유지하고는 있었으나 러시아인 대부분과 많은 우크라이나인은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한 지방이라 생각했다. 외부인들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구분하지 못했고, 우크라이나라는 이름자체를 잊어버린 이들도 있었다. --- p.569 디아스포라 학자인 프랭크 시신은 학술 분야의 ‘민족화’가 우크라이나 역사를 부차적이고 가치 없는 연구 대상으로 보이게 했고, 결과적으로 다른 학술 분야와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낳았을지도 모른다고 썼다.44 또한 나치 점령에 대한 기억과 일부 우크라이나인들이 나치에 협력했던 사실 때문에, 독립 우크라이나를 옹호하는 사람은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파시스트’라 불리곤 했다. 우크라이나를 떠난 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고집하는 모습은 많은 북미인과 유럽인에게 그저 ‘민족주의자’로 보일 뿐이었고, 결과적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받을 뿐이었다. --- p.645~646 소련 해체 후의 러시아 국가는 또다시 기근에 대해 ‘완전 부인’을 내세웠다. 홀로도모르는 일어나지 않았으며 오직 ‘나치’만이 그렇게 주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논쟁은 ‘제노사이드’라는 단어를 적용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러시아나 우크라이나에서 이 단어는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한 일로 취급될 만큼 논쟁적인 일이 되었다. 사람들은 논쟁에 피로감을 느꼈으며,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러시아가 기근을 다루는 역사 기록학을 공격한 핵심 이유일지 몰랐다. --- p.684 오늘날 러시아 정부는 과거에 소련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가짜 정보, 부패와 군사력을 이용해 우크라이나 주권을 훼손하고 있다. 러시아가 1932년처럼 ‘전쟁’과 ‘적’에 대한 언급을 지속하는 것은, 정체된 생활 수준을 설명하거나 자신들이 누리는 특권과 부, 권력을 정당화하지 못하는 러시아 지도자들에게 여전히 유용한 수단이다. --- p.690 우크라이나국가 가사에서 선언하는 것처럼, 우크라이나는 죽지 않았다. 결국 스탈린은 실패했다. 1930년대 우크라이나 지식인과 정치인 세대 전체가 살해당했지만, 그들의 유산은 살아남았다. 1960년대에는 민족적 열망이 되살아났고,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지하에서 명맥을 유지했으며, 1990년대에는 다시 공개적으로 표출되었다. 2000년대에는 새로운 세대의 우크라이나 지식인과 활동가들이 다시 등장했다. 기근의 역사는 행복한 결말이란 없는 비극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역사는 비극이 아니다. --- p.6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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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을 살아내라는 저주
정직한 불타협으로, 무엇을 진실로 구축할 것인가 “우리는 모든 이들에게, 특히 러시아 연방에 호소합니다. 스탈린주의와 전체주의 소련의 범죄를 고발함에 있어 형제들 앞에서 진실하고, 정직하며, 진솔해지십시오…… 우리는 모두 같은 지옥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비극의 원인을 특정 인물에게 돌린다는 뻔뻔한 거짓말을 거부합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범죄자는 단 하나, 바로 제국주의적인 공산주의 소련 정권입니다.” 나치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도 스탈린이 닦아둔 탄압의 틀은 전시 구호만 바꿔 끼운 채 다시 돌아갔다. 이후 전쟁이 끝났대도 이제는 정권의 언어가 달라져 있었다. 히틀러가 소련의 곡물 수탈 정책을 그들의 선전에 이용했기에, 우크라이나 기근을 언급하며 소련의 만행을 폭로하는 일은 나치에 협조하는 것으로 간주됐다. 실제로 일부 우크라이나인이 나치에 협력했다는 사실은 독립 우크라이나를 옹호하는 일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서방세계는 우크라이나에 되물었다. “그런 기근이 존재했다면 우크라이나 정부는 왜 대응하지 않았나? 자국민이 굶주리는 모습을 방관하는 정부가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1980년대에 이르러 우크라이나 디아스포라에도 변화가 생긴다. 가난한 난민에서 벗어난 디아스포라 단체들은 흩어진 문헌 자료와 구술 증언을 수집하고 연구를 체계화하며 우크라이나 대기근이라는 실체에 다가간다. 또한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소련의 공산주의가 국민을 첨단 기술 개발의 미래로 이끌어주리라는 믿음을 저버리게 했을뿐더러 소련의 비밀주의가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의구심을 품게 했다. 서서히 은폐된 진실이 일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1991년 우크라이나 독립 이후 비로소 온전한 기근의 실체가 밝혀진다. 라파우 렘킨은 ‘제노사이드’라는 말을 만든 사람으로, 우크라이나 대기근을 이 개념의 “고전적 사례”라고 말했다. 제노사이드는 개인이 아니라 민족 전체를 말살하는 ‘과정’이다. 굶주림이 극심해지며 육체라는 물적 토대와 영혼이라는 정신적 토대가 쇠하여 사라지는 것처럼 한 민족을 서서히 역사에서 지우는 것이다. 지난 역사는 이게 너무 쉽다고 말한다. 경도된 이념과 편집증은 서로에 불을 지피고, 뿌리 깊은 배제와 멸시는 관성적이다. 우리는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폭격을 가한 날을 기억한다. 오늘날에도 러시아 정부는 가짜 정보, 부패, 군사력을 동원해 우크라이나 주권을 훼손하고 있다. 100년 전에 우크라이나 땅에 가해진 저주, 죽은 듯이 살라는, 불가능을 살아내라는 저주가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기억한다. 우크라이나 민족은 소련의 악몽처럼 어김없이 되돌아왔고, 생존자들은 감시를 피해 땅에 묻어뒀던 일기장을 기어코 꺼내 펼쳐 보였으며, 스탈린은 실패했고 우크라이나의 유산은 살아남았다. 이 역사 앞에 선 우리는 타협하지 않는 정직함으로써 무엇을 진실로 구축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때 애플바움과 수많은 증언이 구현한 당대의 살풍경은 대체할 수 없는 서사로서 불가결해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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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애플바움의 해석은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정치적 잔혹 행위를 이해하는 표준이 될 것이다. 저자가 재현해낸 목가적인 세계에서 우리는 파괴를 목격한다. 저자는 우크라이나 농민들이 의도된 굶주림에 시달려 죽었으며, 이는 소련이 우크라이나 민족에 가한 더 큰 정책의 일환이었다고 주장한다. 물론 러시아는 소련이 아니며, 오늘날의 러시아인들이 스탈린주의적 과거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그들의 손에 달려 있다. 하지만 무엇을 선택하기에 앞서 우리는 역사적 감각을 체화해야 한다. 그 점에서 우리는 이 놀라운 책에 고마워해야 한다. - 180100 (『피에 젖은 땅』 저자, 『워싱턴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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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가 정교하고 치밀하게 기술된다. 웨일스의 젊은 기자 개러스 존스가 우크라이나 실태를 폭로하자, 스탈린 정부는 모스크바 주재 영국 및 미국 특파원들을 압박해 존스의 증언을 부인하게 했다. 우리는 이 일화에서 선동가들이 진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하고자 어떤 일까지 저지르는지 알 수 있다. 80여 년 전 소련에서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나라에서 진실이 밝혀지지 못하고 있다. - 애덤 호크실드 (『뉴욕 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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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질긴 인연이 차르 시대부터 오늘날까지의 역사를 아울러 풍부하고 상세하게 기록됐다. 앤 애플바움은 처절한 구술사를 통해 기아와 소련의 폭력 사이에 갇힌 우크라이나인들의 절박한 고통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 그레그 반히셀 (『피츠버그 포스트 가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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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애플바움은 스탈린이 의심, 편집증, 공포 위에 세운 소련이 어떻게 우크라이나 파괴를 자행했는지 세밀하게 기록한다. 저자는 당대를 살아낸 이들의 목소리를 더하고 그로써 역사의 관점을 벼린다. 우크라이나의 운명은 다시 한번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책이 우리에게 상기하듯 ‘역사란 비극만큼이나 희망도 제공한다’. 우크라이나인과 우리 모두 이 책으로써 그 사실을 절실히 깨달을 것이다. - 스티브 도너휴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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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료하고 신중하며 강력하다. 스탈린이 우크라이나를 표적으로 삼고 특별히 처벌하기로 했다는 저자의 주장은 치밀하게 기술된다. - 애나 리드 (『월 스트리트 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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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이 초래한 우크라이나 대기근, 장엄하고도 가슴 아픈 역사. - 사이먼 몬티피오리 (『런던 이브닝 스탠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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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강력하고, 끈질기고, 충격적이고, 설득력 있다. 저자는 소련의 범죄를 연구하는 선도적인 역사가로, 이 책이 그의 명성을 확고히 해줄 것이다. - 대니얼 핑켈스타인 (『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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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수단을 통한 정치의 연속이다. 스탈린은 우크라이나를 소비에트화하고자 했고 그 수단은 기아였다. 식량 공급은 유토피아적 몽상가들의 실수로 실패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식량은 무기화되었다. 이 책은 자국민과의 전쟁을 벌인 정권이 ‘후진성’을 근절하고자 선전을 벌일 때 어떤 끔찍한 결과가 초래되는지 날카롭게 보여준다. -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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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뜩하고 극적이며 상세하고 잘 짜인 서술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현재 관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배경을 제공한다. 저명한 안내자를 따라 민족 갈등의 권위 있는 역사가 제시된다. - 『커커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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