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목소리 7
위험 속에서 24 로잘리에가 죽으러 가다 50 탈출구 77 동양 92 수녀원장에게 답장하다 117 토론에 글 올리기 127 내가 어떻게 거짓말을 하며 죽어 갔는지 157 위험 속에서 190 옮긴이의 말 205 |
Daniel Kehlmann
다니엘 켈만의 다른 상품
임정희의 다른 상품
|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말하는 걸 즐기지만, 많은 걸 경험한 사람은 느닷없이 할 말이 없어지는 법이라고 몇 년 전에 어느 노의사가 말했다.
--- p.29 “사실은, 난 이런 건 다 관심 없어. 난 글만 쓸 뿐이야. 창작을 한다고. 실은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아.” 레오가 말했다. “난 소설 속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레오가 엘리자베스를 쳐다보았다. “내 이미지를 만들지 마. 나를 소설 속에 집어넣지 말라고. 그게 당신한테 하는 유일한 부탁이야.” “하지만 그건 어차피 당신이 아니야.” “나야. 그게 내가 아니라도 해도 그건 나야. 당신도 잘 알잖아.” --- p.48 밤에 로잘리에는 몇 년 전부터 꾸지 않은 꿈을 꾼다. 혈관이 격정적으로 뛰었고 감각적으로 달뜬 흥분이 있었는데, 잠을 깬 뒤 로잘리에는 거의 충격에 휩싸여 꿈을 다시 기억해 낸다. 수많은 사람들, 소음, 그리고 과열된 포옹. 또 로잘리에가 50년 동안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갑자기 나타난다. 영원히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린 듯한 사람들이었는데 아마도 살아 있는 사람 중에는 아직도 로잘리에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게 얼마나 오래전의 일인지. 정말 로잘리에도 가야 할 때가 된 모양이었다. --- p.53 나를 살려 줘. 로잘리에가 마지막으로 애원한다. 당신 소설. 그건 잊어버려. 나를 그냥 살려 줘. 넌 네가 진짜로 존재한다는 환상에 집착하고 있군. 내가 대답한다. 하지만 넌 글자와 모호한 영상, 몇 가지 간단한 생각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것도 모두 다른 사람 거야. 넌 네가 고통을 당한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고통받는 이는 없어. 아무도 없다고! --- p.71 왜냐하면 로잘리에처럼 나 역시 다른 사람의 관심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다른 사람이 내게서 눈길을 거두는 즉시 절반만 진짜인 내 존재가 끝난다는 걸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 내가 이 소설에서 최종적으로 손을 떼면 로잘리에의 존재는 그냥 사라진다. 한순간에. 단말마의 고통, 통증이나 변화의 과정을 겪지 않은 채. --- p.76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사기꾼이 랄프의 자리를 꿰찬 걸까? 루프풀에서 만난 닮은꼴인지도 모른다. 그 닮은꼴이 랄프를 간파하고는 그 순간을 이용해서 랄프를 마티아스 바그너, 관객, 닮은 꼴, 팬의 역할로 완전히 몰아냈는지도 모른다.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우상의 존재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자신의 진짜 존재와 혼동한 남자의 역할로. 랄프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기사를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랄프는 생각에 잠긴 채 신분증을 꺼내 인쇄된 이름을 처음 보듯 읽어 보고는 다시 집어넣었다. --- p.90 남편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면서 마치 옛날에 알던 사람 같았다. 다른 세상에서, 전생에서. 마리아는 자신의 숨소리를 들었고, 그러다가 자신이 이미 잠들었으며 꿈속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걸 깨달았다. 마리아는 이런 순간들이 흔치 않으며 조심스럽게 대처해야 한다는 걸 아주 분명히 알았다. 몸을 잘못 까닥하다가는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하고, 옛 존재는 이미 떠나서 다시는 되돌아오지 못한다. 마리아는 한숨을 지었다. 아니, 한숨을 짓는 꿈을 꾼 건지도 모른다. 그때, 마침내 마리아의 의식도 꺼져 갔다. --- p.116 기술력 덕분에 우리가 사는 세상에 한정된 장소가 사라졌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사람들은 행방을 감춘 채 말하고,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르며, 또 아무것도 입증할 수 없기 때문에 상상하는 것이 모두 기본적으로 사실일 수도 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입증할 수 없다면, 나조차 내가 있는 곳을 완전히, 또 확실히 알지 못한다면 누가 어떻게 알겠는가? --- p.170 “왜 이렇게 안 되는 일이 많은지 묻고 계십니까, 신사 양반? 사람들이 많은 걸 되고 싶어 하기 때문이죠. 말 그대로입니다. 사람들은 많은 게 되고 싶어 하죠. 다양하게. 여러 개의 삶을 원합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만 그렇고, 내심으로는 그렇지 않아요. 마지막 갈망은 하나가 되고 싶어 합니다. 자신과 모든 것과 말이죠.” --- p.185 “우린 늘 소설 속에 있어.” 레오는 빨갛게 타오르도록 담배를 한 모금 빨고 나서 담배를 내려놓더니 더운 공기 속으로 연기를 내뿜었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 이야기가 어디서 끝나고 어디서 시작하는지는 아무도 몰라! 현실에서는 모든 게 뒤섞이지. 책에 서만 말끔하게 분리되는 거야.” --- p.200 |
|
“이야기 속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 이야기가 어디서 끝나고 어디서 시작하는지는 아무도 몰라!”
휴대전화기를 처음 구입한 에블링은 잘못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전화기 너머에서 랄프를 찾는 사람들과 거듭 통화하다가 에블링은 돌연 랄프가 되어 보기로 한다. 한편 유명 배우 랄프 탄너에게는 더 이상 전화가 오지 않는다. 마치 누군가 그의 인생을 가로채기라도 한 것처럼. 소설가 레오 리히터는 여자친구 엘리자베스와 라틴아메리카를 방문한다. 그를 위한 행사도 만찬도 모두 권태롭기만 한 레오는 그에게 극적인 영감을 불러일으킬 탈주를 꿈꾼다. 레오가 창조한 여주인공 라라 가스파드의 열성팬인 몰비츠는 인터넷 중독자다. 급기야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구분하지 못하고 착란에 빠진 그는 레오의 소설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한다. 로잘리에는 암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그녀는 스스로 생을 정리하기 위해 스위스의 조력 자살 센터를 찾아가는 길이다. 하지만 그녀는 죽을 마음이 없다. 자신을 창조한 소설가 레오에게 제발 줄거리를 바꿔 자신을 좀 더 살려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국경 없는 의사회’의 부름으로 전쟁의 한복판에서 구급 활동을 하던 엘리자베스는 짐작조차 못한 곳에서 라라 가스파드와 맞닥뜨린다. 순간,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늘 두려워했던 바로 그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한다. 다니엘 켈만의 『명예』는 마치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다. 각각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한 이야기에서 주인공을 맡았다가 다른 이야기에서는 조연이나 실루엣으로만 등장하고, 몇 쪽 넘어가면 현실이 가상으로, 가상의 세계는 현실로 판명나기도 한다. 일부 이야기와 등장인물은 현실 또는 가상의 논리적인 경계를 침범하기도 한다. 「로잘리에가 죽으러 가다」 에서는 노부인 로잘리에가 죽음을 맞이하러 가는 길에 자신을 창조해 낸 레오와 언쟁을 벌이며 독자를 혼란에 빠뜨린다. 레오는 엘리자베스를 모델로 라라 가스파드라는 인물을 만들어 낸 뒤 엘리자베스와 라라 가스파드를 서로 맞닥뜨리게 한다.(두 편의 「위험 속에서」) 「토론에 글 올리기」에서는 몰비츠가 라라 가스파드를 몹시 좋아한 나머지 직접 만나기 위해 레오의 소설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한다. 아홉 개의 에피소드들은 퍼즐 조각처럼 서로 맞춰지고, 꼬리에 꼬리를 물듯 이어지며 연결된다. 끝과 시작은 모호하게 흐려지고 이야기들 사이의 경계를 나눌 수 없게 된다. “마치 텍스트라는 몸뚱이를 얽어매는 신경이 ‘아홉 이야기’ 위로 뻗어 있는 것 같다. 각각의 연결을 해독하는 것이 『명예』를 읽는 가장 큰 즐거움”(《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이다. 다니엘 켈만은 한 인터뷰에서 “이 작품의 허구는 평면적이지 않고 다층적이기 때문에, 굳이 이를 의식하지 않고 읽어도 좋지만, 전체적인 연관성을 염두에 두고 읽는다면 훨씬 더 재미있는 독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
|
“다니엘 켈만이 천재라는 징후는 점점 또렷해지고 있다. 현실과 평행 현실, 픽션과 메타픽션을 멋지게 표현한 작품으로, 가볍지만 심오하고, 슬프지만 웃기고, 구성이 뛰어나고 문체가 유려한 지적인 작품.” -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
|
“동시대의 유럽에서 가장 예리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재치 있는 작가 중 하나다.” - [더 가디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