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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_내 남자 친구를 소개합니다
·꽃 지는 날 그대를 그리워하네 ·웃는다면, 웃을 수 있다면 ·노래할 수 있다면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 ·‘병맛’을 아십니까?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 ·훌륭한 어른이 되기 위해 ·여전히 어른이 되고 싶나요?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증오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바꿀 수 있다면 ·사소한 말들이 전해준 구원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가 ·구멍가게 앞에 놓인 평상을 기억하며 ·이 세상은 친절하지 않습니다 ·사랑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이유 ·아이는 어른을 사람으로 키웁니다 ·마음이 슬퍼지려고 할 때면 ·자랑하지 마라 ·어떻게든 위로, 더 위로 ·세상을 사는 방식 ·왜 아름다움을 추구할까요? ·균형은 유지하는 것 ·싸구려 위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이해하는 것 ·우리가 괴물을 키워낸 걸까요? ·사람에 대한 사람으로서의 관심 ·소명을 따라서 ·경박한 오만 ·세상이 조금은 격정적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야기가 주는 힘 ·따뜻하고도 달콤한 경험 ·끝이 없는 추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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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_내 남자 친구를 소개합니다
남들 보기에 멀쩡한 남자 친구를 별로 사귀어보지 못한 것은 나의 오랜 콤플렉스다. 남자인 친구도 거의 없고, 연애는 실패만 거듭했다.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해선 안 될 방법으로 사랑한 까닭이었다. 나 역시, 남에게 사랑을 줄 만한 사람이 못 되었다. 아귀처럼 끝없이 받기만 원하는 사람을 어느 누가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런 좋지 못한 성정과 운이 따라주지 않은 환경과 중독적으로 소비한 알코올이 합쳐져 나는 누구도 탓할 수 없이 제 손으로 평탄치 못한 삶을 만들어왔다. 게다가 최근 1~2년간은 흉사가 겹쳤다. 폭력을 동반한 이별, 가장 사랑했던 친구의 끔찍한 사고사, 실직…. 이따위 일들이 숨 가쁘게 일어나면서 나는 원래도 별로 괜찮은 상태가 아닌 주제에 더욱 신속히 망가져갔다. 마음을 의탁할 만한 종교도 없었고 몇 안 되는 친구들에게 언제까지 하소연을 늘어놓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마음에 깊이 베인 자상은 끊임없이 피를 흘렸다. 바닥에 질질 흘리고 다니는 그 피가 발바닥을 적시면 너무 미끄러워서 나는 자꾸만 넘어졌다. 피 묻은 발자국을 돌아보면 서 나는 생각했다.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지인이 많지 않아 마음을 터놓은 몇 사람에게만 사정을 말했는데 오랫동안 꺼놓았던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라종일 선생님의 목소리는 내가 기꺼이 그 고통을 쏟아놓게 되는 몇 안 되는 음성이었다. 구차하고 기나긴 사정을 다 듣고 난 선생님은 세 가지를 이야기하셨다. 첫째, 이제 아무 걱정 하지 마라. 둘째, 나는 네 편이다. 셋째, 글 쓰는 사람은 원래 어느 정도 불행해야 한다. 당신도 그것을 알지 않느냐? … 살짝 궁금하지 않은가? 쭉 엘리트 코스를 거쳐온 탁월한 정치인, 행정가, 교육자이며 6개 국어를 구사하는 외교가에 대학 총장까지 지낸 석좌교수와, 몇 권의 안 팔리는 책을 내고 삼십 대 초반인데도 여태껏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성격도 별로 좋지 않고 가끔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는 날백수, 겹치는 데라곤 전혀 없는 두 사람이 네 계절 동안 서른두 통이나 되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대체 무슨 이야기를 했을지._5~9쪽 꽃 지는 날 그대를 그리워하네 선생님께. 지난번 뵌 이후로 어쩐지 ‘꽃 지는 날 그대를 그리워하네’라는, 어디선가 읽은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꽃이 져도, 꽃이 피어도 선생님께서는 특유의 안온한 표정을 잃지 않으실 것만 같아 그런가 봅니다. 세상만사 삼라만상이 무서운 일은 없고 모두 우스운 일뿐이라는 말씀이 마음속에 깊이 박혀서 그런 모양입니다.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세상에 무서운 일은 없고, 우스운 일뿐이다. 살아오면서 참되고 바르고 아름다운 기억은 그다지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누가 물어보면 나는 그냥 즐겁고 행복하다고만 말한다.” 선생님은 엷게 웃으며 이게 무슨 말인지 알겠냐고 물으셨죠. 그때 선생님의 미소가 깊은 바닷속을 담담히 흐르는 거대한 해류와 같아서 저는 한참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이 나이 먹고도 인생이라는 바다의 얕은 물에서 발목이나 찰랑거리며 모래나 간질이고 있는 저로서는 결코 엄두가 나지 않는 그런 심해의 물결 말입니다. 산다는 것의 엄중함이 무엇인지 생각하니 숙연해졌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한참을 되뇌어보았습니다. 세상에 무서운 일은 없고, 우스운 일뿐이다. 선생님께서는 우리나라 역사의 격변기를 직접 보셨고, ‘킹메이커’라 할 만큼 정치판에서도 큰 역할을 하셨고, 커다란 대학의 총장도 역임하셨지요. 그러면서 온갖 사람들이 머리 쓰며 제 이익을 좇는 광경을 무수히 보셨을 텐데, 어떻게 하면 제 이득을 위해 눈에 불을 켠 무서운 사람들을 우습다고 여길 수 있을까요. 아주 사소한 불행 하나도 저는 사실 두렵습니다. 이것들을 우스운 일로 여길 수 있는 마음 자세는 과연 어떤 것에 있을까요. 저는 정말 알고 싶습니다. 아직 삼십 대 초반에 앞다투어 찾아온 반갑지 않은 일들, 이런 제 개인의 상처까지도 모두 우스운 일로 만들고 싶습니다.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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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외교관이자 교육자 라종일 교수와 에세이스트 김현진
멋스러운 노년의 신사와 속상한 청춘이 따뜻하고 현실적인 위로의 말을 주고받다 기획의도 뻔하지 않은 질문, 뻔하지 않은 대답 속에서 진정한 ‘위로’를 발견하다 대한민국 1퍼센트라 불리는, 이른바 성공적인 엘리트 코스를 밝아온 라종일 한양대 석좌교수와 10대 시절 《네 멋대로 해라》를 출간하며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자칭 집도 절도 빽도 없는 도시빈민이자 비정규직 노동자 에세이스트 김현진. 두 사람이 뜻밖의 책을 펴냈다. 이메일로 주고받은 편지들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서로를 알게 된, 겹치는 데라고는 전혀 없는 30대 ‘날백수’와 멋스러운 70대 노교수는 네 계절 동안 32통이나 되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이 편지들 안에는 이 시대 ‘청춘’을 둘러싼 거대한 사회담론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 그 반대다. 아주 사소해 보이는 이야기, 그렇지만 누군가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상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길을 걸으면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혹은 직장에서, 가정에서 느꼈던 감정의 흐름들, 내면에 꼭꼭 숨겨놓았지만 빙산의 일각처럼 그 작은 편린만 종종 드러나곤 했던 아픈 상처들, 일상에서 문득 발견하는 소중한 깨달음들에 대한 이야기가 잔잔하게 흐른다. 사소해 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삶의 ‘구원’이 될 수 있는 이야기 이 책의 저자 김현진은 만만치 않은 사회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삶의 어려움을 똑같이 체감하는 또 하나의 ‘청춘’이다. “누구도 탓할 수 없이 제 손으로 평탄치 못한 삶을 만들어왔다”고 자책하던 그에게 라종일 교수와의 만남은 어쩌면 ‘평탄치 못한 삶’에서 벗어날 새로운 돌파구였는지 모른다. 그리고 김현진이 찾은 돌파구는 청춘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만나고 싶은 기회이자 계기이기도 할 것이다. 속 깊이 묻어두었던 아픔, 상처, 진심을 남김없이 털어놓을 상대가 있다는 것, 그가 기꺼이 자신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고 아무 편견 없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다는 것, 그리하여 그와 주고받은 허심탄회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는 것, 이것이 아주 개인적인 편지를 ‘책’이라는 물성에 담아 모두에게 공개하는 이유다. 김현진은 이렇게 말한다. “궁지에 몰린 쥐가 도망칠 틈새를 찾아내듯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사소한 구원에 매달렸다. 그것이 선생님과의 서신 교환이었다. … 선생님은 몇 번이나 이 기록들을 책으로 묶어내는 것을 망설이셨다. 그럼에도 부끄러움이 충만한 이 기록들을 세상에 내놓는 것은 선생님의 답장들을 나 혼자 읽기가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다. 내가 겪은 아픔들은 누구라도 한 번쯤 지나치게 되는 보편적인 것에 불과하지만, 선생님의 답신들은 흔히 접하기 어려운 혜안과 어렵지 않은 스마트함을 동시에 지닌 것들이었다.”(김현진 들어가며) ‘멘토’가 아닌 같은 인간으로서 주는 공감과 위로 그렇다면 대화 상대인 라종일 교수는 어떨까? 그의 말은 어떤 것을 품고 있기에 이 시대 청춘에게 ‘혜안’과 ‘스마트한 위로’를 주는 걸까? 김현진은 “이 시대의 멘토라는 사람들은 얼마나 뻔한 이야기만 하는지. 그래서 나는 라 선생님께 매달리게 된 것이다”라고 말한다. 김현진의 말대로 라종일 교수는 뻔한 이야기, 어설픈 조언이나 충고를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가장 현실적이고 어쩌면 뼈아플 수 있는, 그래서 피부에 와 닿는 이야기를 진심을 다해 전한다. 그렇기에 40여 년이라는 차이가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 공감과 이해 그리고 위로가 오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일방적으로 무엇인가를 들려주어야만 할 것 같은 흔히 말하는 ‘멘토’로서가 아닌, 더 나아가 인생을 좀더 경험한 선배로서가 아닌, 똑같은 인간으로서 상대를 대할 때 우리는 그의 말에서 힘과 깨달음을 얻는다. 라종일 교수는 마지막 편지에서 김현진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 역시 큰 힘을 얻었다고 말한다. “처음 현진이 글을 주고받자고 제안했을 때는 물론 그것이 책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고 현진에게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려웠던 상황에서 저와 글을 주고받은 것이 현진에게 큰 힘이 되었다는 글을 보면서 저를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현진에게 밀려서(?) 신통치 않은 답을 쓰면서 어쩌면 저도 현진 못지않게 힘을 얻었는지 모릅니다.”(본문 248쪽) “웃는다면, 웃을 수 있다면 주변의 누추함마저도 사랑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라종일 교수만의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잔잔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그 에너지에서 나오는 사려 깊은 나눔과 소통, 이것이 이 시대 ‘청춘’들에게 가장 필요한 위로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