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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Seung Woo,李承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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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위원 김갑수
남양주군에 사는 작가 이승우네 집 근처에 왕릉이 하나 있다. 한밤중에 산책 삼아 종종 들르는 곳인데 울창한 소나무 숲속에 이상한 나무가 함께 있다. 마치 늘씬한 여인의 나신 같은 모습을 한 그 나무는 소나무 뿌리와 칭칭 엉켜 한 몸체를 이루듯 뻗어 있었다. 때죽나무. 독성이 있어 수액을 물에 뿌리면 물고기들이 죽어 둥둥 떠오른다는 그 이름도 이상한 나무는 어떤 소나무 한 그루와 정사를 벌이듯 뒤엉켜 있었다. 저들의 사연은 무얼까. 저 은밀한 포옹의 뒤켠으로 어떤 쓰라림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잘못된 혹은 좌절된 사랑. 작가의 상상이 이어진다. 모든 사랑은 선(善)일까.
그 즈음 작가는 어떤 실화를 전해듣게 되었다. 불구인 아들의 성욕처리를 위해 정기적으로 아들을 업고 사창가엘 찾아오는 어머니의 눈물겨운 사연이었다. 그 어머니와 아들에게서 때죽나무를 읽었다. 잘못된 혹은 좌절된 사랑의 엽기성과 간절함. 한국 문단에서 희귀하게 관념소설의 영역을 떠받치고 있는 [생의 이면]의 작가 이승우의 신작장편 [식물들의 사생활]은 그렇게 출발했다. 두 개의 사랑이 대위법을 이루는 이야기다. 대위를 이루되 화성에는 이르지 못하는 불협화음의 사랑. 먼저 형제의 사랑. 모든 면에서 동생보다 우월한 형의 연인을 그 동생이 사랑한다. 동생의 가출은 형의 군대 강제징집으로 이어졌고, 군에서 사고로 하반신이 절단된 형은 음지식물처럼 집에 틀어박히는 신세가 된다. 형의 고통은 간헐적인 발작증세로 나타난다. 발작을 완화시키는 길은 그를 업고 사창가를 찾아가는 것이다. 처음엔 어머니가, 나중엔 사실을 안 동생이. 형의 연인이었던 순미는 종적이 묘연하다. 또 하나의 사랑은 어머니의 몫. 그녀 나이 스물 한 살 때 가계를 떠맡느라 나가게된 고급식당에서 한 남자를 만난다. 권력자였지만 불우한 결혼생활을 하는 로맨티스트였다. 그와의 도피행각이 이루어지는 상상의 공간 '남천'에서 형이 잉태된다. 로맨티스트는 권력을 잃고 국외추방이 되고 그때 아이를 받아준 식당 요리사와의 사랑 없는 결혼생활이 삼십여년간 이어져 온 것이다. 형제의 아버지, 그러니까 어머니를 헌신적으로 사랑해온 남편 또한 음지식물처럼 정원의 화초를 가꾸며 평생을 소리없이 살아왔다. 소설의 얼개는 이 두가지 사랑의 재회의 과정으로 엮어진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의 한가운데에 형의 연인을 사랑해온 열등한 동생이자 아버지의 친자식이자 심부름 센터를 운영하는 동생 기현이 있다. 기현은 형부의 성노리개로 전락한 순미를 찾아내고 어머니의 숨겨진 사랑을 드러나게 하고 마침내 어머니 대의 한스러운 사랑과 순미의 존재를 남천이라는 공간에서 동질화시킨다. 그는 이 식물 같은 가족관계에서 유일한 동물적 존재였다. 밤의 숲속에 홀로 들어가 나무들이 수런거리는 소리를 들어 보라. 신화의 공간 속에서 "모든 나무들은 좌절된 사랑의 화신"이다. 그들이 머리칼을 흔들며 외치는 소리를, 그들이 아파하며 감추고 있는 사생활을 들어주고 느껴줄 수는 없을까. 내 안의 식물들이 수천 갈래의 뿌리를 뻗어나오며 묻는다. 모든 사랑은 선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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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향해 달려가는 그 자동차 안에서, 그는 자기가 지금까지 헛 살았고 가짜로 살았다고 고백하듯 말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면 놀랄 것이다. 이젠 그렇게 살지 않을 거다. 윤희가 나에겐 유일한 희망이다."
그녀는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묻지 않았다. 그 대신 그에 대한 자신의 전적인 신뢰를 표시하는 뜻으로 그의 품 속에 안겼다. 정말이지 정치 같은 것에는 티끌만큼이 관심도 없었다. 그녀의 관심은 오직 그 남자 한 사람이었다. 그것으로 그녀는 말이 필요없다는 뜻을 전했고, 그것으로 그는 말이 필요없다는 뜻을 전달받았다. 그들은 오래 침묵했다. "내가 당신에게 희망인 것처럼 당신은 나의 희망이에요. 난 언제나 한 자리에 있을 거예요." 차에서 내리기 전에 그녀가 한 말이었다. 그는 고맙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 그는 손수건을 건냈다. 그녀는 그의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그것을 손에 말아 쥐었다. 그것이 긴 이별의 시작일줄을, 그녀는 몰랐다. 그렇지만 예감까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차가 떠나갔는데도 자꾸만 눈물이 나와서 견딜 수 없었다고 어머니는 회상했다. 내면 깊숙한 곳으로부터 터져올라오는 듯한 무겁고 비장한 슬픔이 목을 타고 넘어오더라고, 참으려고 해도 안 되더라고, 처음에는 실처럼 가느다랗던 울음이 폭포수와도 같은 오열이 되고 통곡이 되어 땅바닥에 그녀를 주저앉히더라고, 그것이 그와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징후가 아니었겠느냐고 어머니는 회상했다. --- p.1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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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들 속에서 나무들은 흔히 요정이 변신한 것으로나온다. 요정들은 신들의 욕정과 탐욕을 피해 육체를 버리고 나무가 된다. 신들은 권력을 가진 자이고, 권력을 가진 자들은 한결같이 탐욕스럽다. 그들의 욕망은 도무지 좌절되는 법이 없다. 그들의 절대욕망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변신이다. 탐욕스런 권력자인 신들의 욕망으로부터 자신들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요정들은 어쩔 수 없이 나무가 된다. 나무들마다 이루어지지 않은 아프고 슬픈 사랑의 사연들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 p.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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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밤마다 한 번씩 바다를 건너가는 나무를 상상했었지만, 그러나 그 나무가 밤마다 한 번씩 바다를 건너가야 하는 사연에 대해서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 부분이 빠져 있었으므로 내 상상은 불안전했다. 하지만 불안전한 내 상상을 완성시키기 위해 그녀가 꿈을 꾼 것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런 해몽은 자의적이고 엉터리다. 나는 그렇게 파념치해지고 싶진 않다. 모든 나무들은 좌절된 사랑의 화신이다..... 그 문장이,미리 대기하고 있던 것처럼 불쑥 떠올랐다.
--- p.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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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성의 욕망, 식물성의 사랑
장편『생의 이면』으로 제1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하고, 최근 같은 작품의 프랑스판이 나와 유럽 문단의 호평을 받기도 했던 이승우의 작품 세계는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탐색을 통해 인간 구원의 문제에까지 육박해가는 도저한 정신성에서 뚜렷한 개성과 성과를 보여왔다고 할 수 있다. 제대로 된 관념소설의 전통이 빈약한 우리 소설계에서 그간 이승우가 자신의 소설 속에 형상화해온 정신의 폭과 깊이는 예외적이라 할만큼 돋보이는 것이었고, 그만큼 한국 소설의 영토확장에 기여한 것이었다. 그러나 소설과 관념의 만남은 자칫 소설의 이야기성에 부담을 주어 독자와 작품을 멀어지게 할 소지가 있는것도 사실이고, 이 점에서 이승수 소설의 독자층을 제한하는 측면도 없지 않았다.
신작 장편『식물들의 사생활』역시 '욕망'과 '사랑'의 관계에 대한 깊은 사유를 바닥에 깔고 있다는 점에서 기왕의 이승우 소설 세계에 이어지지만 그것의 소설적 형상화에서는 유례없이 유연하고 풍성한 서사를 선보임으로써 작가의 새로운 면모에 주목하게 만든다. 어머니와 아들 세대에서 각기 전개되는 사랑의 삼각구도는 장편의 이야기성을 충분히 만족시키면서 강력한 흡인력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불구가 된 형에게 여자를 사주러 창녀촌을 기웃거리는 첫 장면부터가 그러하며, 형의 여자에 대한 동생의 갈증은 시종 소설의 서사를 팽팽하게 긴장시킨다. 결코 녹록치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서사의 유연함과 풍성함을 전혀 잃고 있지 않은 것이다. "줄거리와 문체, 미학 사상, 그리고 소설의 규모와 분량까지 각각 진경을 개척하면서 동시에 최적의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김정환 시인의 평처럼 오랜만의 수작 장편이다. 『식물들의 사생활』이라는 제목은 어떤 함의를 갖고 있는걸까. 소설에 따르면 '식물'은 동물성의 욕망을 넘어서는 초월지점이며 좌절된 욕망(사랑)들이 승화되는 지점이다. 그리하여 '식물들의 사생활'은 좌절된 사랑 속에 숨겨져 있는 비밀스러운 상처와 역사에 대한 전면적인 탐사가 된다. 자신 안에 가득한 동물성의 욕망을 아프게 들여다보는 이들에게 사랑이란 욕망과 한몸인 절망의 근원이 아닐수 없다. 작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식물성의 절대사랑을 대안적 상상력으로 풀어놓고 있는 것이다. 형의 애인을 사랑하는 동생, 그 빗나간 사랑이 도화선이 되어 뒤틀려버린 형의 인생, 마침내 두 다리를 잃고 짐승의 시간을 사는 형, 두 사람 모두에게 사랑을 받고 있지만 형부의 성적 놀이개로 전락해버린 순미, 불구가 된 아들을 업고 사창가를 헤매다니는 어머니, 평생 어머니의 마음을 지배해버린 한 남자, 그런 어머니를 그저 바라만 보는 아버지... 등 소설은 빗나간 사랑의 삼각형들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모두 좌절된 사랑이었고, 위험하고 불길한 사랑이었다. 하지만 작가는 그 좌절된 사랑들로부터 식물성의 절대사랑이라는 상상력을 길어내고, 그것들을 사랑의 성소로 이끌어간다. 이와 관련, 문학평론가 김미현씨는 사랑과 식물성을 연결시키는 작가의 상상력에 대해 다음과 같은 분석을 내보인다. "작가는 상대방을 향해서 사랑하는 열정이 아닌 상대방을 위해서 사랑하는 분별력을 사랑의 진정한 요소로 본다 .그런 사랑만이 세상의 동물성을 극복할 수 있게 해준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 때 사랑은 숭고미와 신성성을 획득하게 된다. 나무가 되어서라도 이루려 하거나 나무가 되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사랑을 통해 인간은 비로소 인간다워질 수 있다. 그리고 삶 또한 삶다워질 수 있게 된다. 욕망을 초월하려는 욕망만큼 절망적이면서도 희망적인 욕망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의 삶은 신성하다." 『식물들의 사생활』에는 식물성의 절대사랑이 실현되는 꿈의 장소 "남천"이 등장한다. 그곳은 어머니가 권력과 명예를 벗어던진 한 남자와 사랑을 확인한 장소이며 이 소설의 상징목과도 같은 야자나무가 있는곳이다. 이곳에서 아버지는 어머니를 돌보며 생의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냈고, 두 아들은 어머니의 사랑의 비밀을 듣는다. 병들어 돌아온 옛 남자를 어머니의 성스러운 알몸이 감싸안는 곳이기도 하며 순미의 사랑이 마침내 형을 짐승의 시간으로부터 구해내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곳은 다음과 같은 작가의 말처럼 아직 지상의 공간이 아니다. "내 소설의 주인공들, 나무가 되려고 하고, 혹은 이미 나무가 되어있는 그 인물들에게 나는 하나의 정원을 만들어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그들의 정원입니다. 그러나 혹은 그래서 불안정합니다. 그런곳은 존재하지 않거나 거의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이 소설 안에서 그 장소는 남촌이고, 그곳 역시 신의 에덴과는 달리 혹은 그처럼 불안정합니다. 그런곳은 존재하지 않거나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할테지만 그런곳에 대한 꿈이야말로 지금 이곳의 누추한 욕망을 새롭게 성찰하는 문학의 아름다운 성소일 것이다. 그런점에서『식물들의 사생활』은 현실의 아픈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그 현실을 넘어서는 자리를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좋은 문학만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꿈,『식물들의 사생활』은 그 꿈 속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