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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봉아, 우울해?
침몰하는 애인을 태우고 우울의 바다를 건너는 하드캐리 일상툰
향용이
애플북스 2025.10.23.
베스트
그림 에세이 top100 4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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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4,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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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장 우울한 남자친구 안 우울한 여자친구

우울한 남자친구 안 우울한 여자친구
재밌는 사람
우리들의 벚꽃놀이
정신 사수
영화관에서
닌텐도의 시작
장난스러운 연애
상봉이의 하루
과장 없는 시간①

2장 내 남자친구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엄마 집에 다녀왔습니다
상봉이의 꿈속에서①
잠 못 드는 밤
사주를 믿으시나요?
용감한 남자
상담의 목적
쟁반 사건
태블릿 사건
카페 나들이
깜짝 선물
우울한 남자친구와 사는 일

3장 고장 난 뇌의 명령

가장주부의 삶
상봉이의 꿈속에서②
강박증
스포일러
마카롱 사건
상봉이를 힘들게 하는 것
그리고 카페에서
가혹한 말
과장 없는 시간②

4장 내 남자친구의 진짜 우울증

우울 경보
치료의 시작
정신병동에서①
정신병동에서②
정신병동에서③
내가 할 수 있는 일
아무 하루 모음①

5장 물들임

OO싶어①
OO싶어②
향용이의 줏대
게임 구경
펑키 가이
향용이의 인성
상봉이의 인성
친절한 상봉이 모음

6장 방관자의 쓸모

상봉이의 사생활
담배를 걸리다
좋은 일
그날의 진실
상봉이가 OO에 빠진 날
동상이몽
외출 연습
나의 대단한 노트북
팬티의 주인
아무 하루 모음②

7장 이별 말고 (독립)

나는 어쩌다 콩알만 한 심장을 가졌는가
장기 연애의 비결①
상봉의 쓸모
순정 만화를 꿈꾸다!
상봉이의 아침
내 영어는 어느 나라 발음?
아무 하루 모음③
쫄보의 탄생

8장 (이별 말고) 독립

시작
우리 동네 산책길
장기 연애의 비결②
강한 남자
상봉의 입시 준비 시작!
상봉! 마라톤에 나가다

9장 녹을 지우는 일

가장주부의 자격
향용이의 사생활
중간고사 후기
상봉이의 자기 관리
새삼 연애
Vivid Dreamer
선물 받을 수 있을까?
아무 하루 모음④
우아한 사람

10장 끝 혹은 시작

용수철 남자
상봉이의 진짜 겨울 방학
속마음
게임의 시작
가장의 시작
주부의 시작
오해의 씨앗

저자 소개 1

어느 날 엄마가 내 예쁜 이름을 두고, 철학원에서 ‘향용’이라는 새 이름을 사 왔다. 7만 원 작명 값이 아까워서 만화를 그리고 글을 쓸 때만 향용이라고 부른다. 연애 6년 차 때 남자친구가 우울증에 걸렸고, 현재는 그의 우울증과 동행하며 13년째 연애 중이다. 티끌 같은 걱정도 태산같이 안고 사는 향용이는 숨이 턱턱 막힌다. 그래도 우울증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우리 연애가 즐겁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 덕에 책도 내다니! 이름값을 하게 돼서 기쁘다. 인스타그램 @someonesfavorites_hy

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0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260쪽 | 356g | 130*190*17mm
ISBN13
9791199441125

책 속으로

어느 날 나의 남자친구 상봉이는 게임을 켰다. 나는 어떤 하루, 어떤 순간, 어떤 기억을 잊기 위해 이불에 들어갔는데, 그는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잊기 위해 게임으로 들어갔다. 처음에 한 것은 웜즈라는 지렁이 전투 게임이었다. 엔딩을 봐야 한다며 일주일 동안 게임만 하길래, ‘뭘 해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지렁이 게임이 끝나기가 무섭게 곧이어 다른 게임을 찾았다. 그는 깊고 긴 동굴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곳에서 괴물 사냥꾼 게롤트가 되어 1,600시간을 살았고, 서부 개척 시대의 총잡이 아서 모건으로 800시간, 전쟁의 신 크레토스로 500시간을 살았다. 이 외에도 5년 동안 상봉이가 살 수 있는 다른 세계는 많았고, 될 수 있는 인물은 많았다.
--- p.12

살면서 자연스럽게 맞을 수 있는 고민을 하고, 사소한 갈등을 겪으며, 내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만 안고 살 수 있다면 그건 참 다행인 삶일 것이다. 내 남자친구가 살고 있는 세계는 그런 다행스러운 삶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암 병동에 가면 암에 걸린 사실이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우울증의 세계에서는 사람들의 안부 인사에 심장이 뛰는 것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이, 밥 먹기가 버거워지는 것이, 도저히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날 수 없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게 된다.
--- p.13

상봉이와 연애 초기부터 동거를 시작해 10년째 함께 살고 있는 나는 남자친구를 따라 그런 것이 자연스러워지는 세상에 들어와 함께 지내고 있다. 어쩌다 상봉이의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내게 “곁에서 우울증을 지켜보는 너도 힘들겠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사실 나와 제일 가까운 곳에 우울증을 두고 사는 일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만큼 그렇게 숨 막히는 일은 아니었다. 우리는 방 안에 앉아 같이 게임을 했고, 현실에서의 고민 대신 게임 속 세상에 관해 이야기 나눴다. 한 계절이 지나도록 밖에 나가지 않고 같이 집에서 노느라 바쁘기도 했고, 그러다 오랜만에 외출을 한다며 벚꽃이 진 줄도 모르고 벚꽃놀이를 가기도 했다. 그래서 우울한 상봉이는 자주 행복하다고 했다. 만약 사랑도 커리어가 될 수 있다면 그런 점에서 나의 커리어는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p.14

그래서 상봉이도 나도, 그리고 우울증 가까이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도 더 이상 지난 시간을 억울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여전히 억울하고 멈춰 있는 시간을 산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것 또한 자연스럽게 세상을 사는 모습 중 하나라고 믿을 수 있다면 좋겠다.
--- p.16

지내온 시간과 기억은 흘러가지 않고 몸 구석구석에 고여 있다가 말투, 마음 씀, 손짓과 발짓에 새어 나온다. 작은 행동 하나에도 그의 지난 시간과 기억, 더불어 부모님의 시간, 그 너머에는 먼 조상부터 내려오는 DNA가 스며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연인과 연인이 만나는 일을 두고 우주와 우주가 만나는 일이라고들 하는 게 아닐까.
--- p.40

어쩌면 나와 상봉이에게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우주가 열린 것일지도 모른다. 이곳은 캄캄하고 먹먹하고 때로는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벗어나거나 도망치고 싶은 곳은 아니다. 제자리에 앉아 당장 눈앞에 보이는 잡초를 뽑다 보면, 어느 날에는 땅을 일구고 있을 것이고 또 어느 날에는 그 자리에 조촐한 오두막을 짓고, 그러다 보면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상봉이의 친구들도 초대하는 날이 올 것이다.
--- p.45

우울증을 마음의 병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들을 붙잡고 우울증은 뇌의 병에 가깝다고 항변하는 상상을 하곤 한다. 사람들은 암이나 눈에 보이는 상처에 대해서는 마음이 나약해서 생긴 병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또 다른 정신질환인 조현병에 대해서도 쉽사리 의지를 운운하지 않는다. 도리어 자신의 의지로 치료하겠다는 조현병 환자가 있다면 적극 말리고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기를 조언할 것이다.

반면, 유독 우울증에 대해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철학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울증에 걸릴 성격은 따로 있다고도 하고,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아 정신이 아픈 거라고도 말하고, 팔자가 편해서 생기는 병이라고들 한다. 그건 우울증을 온전히 ‘마음먹기에 달린 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 p.68

상봉이의 의지는 매일매일 죽어 있는 시간을 살게 할 정도로 나약했지만, 죽어 있는 시간 안에서도 버티어 살게 할 만큼 강했다.
--- p.70

어느 산책길에 상봉이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라’는 말에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가 담겨 있다는 걸 깨닫는 중이라고 말했다. 우울증을 인정하는 일은, 상봉이에게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었고 나에게는 그런 그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는 과정이었다. 흔하디흔한 그 말이 우리는 참 어려웠다.
--- p.91

어쩌면 상대를 거짓 없이 받아들일 줄 아는 일보다 그저 맹목적인 사랑을 쏟는 일이 훨씬 단순하고 쉬운 일일 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사랑한다는 믿음 뒤로 몸을 숨긴 다른 마음들이 있었다. 그의 잔잔하고 평화로운 일상에 기대 나의 안녕을 바랐던 마음, 자식의 성공이 자신의 성공 이 되는 부모의 마음처럼 상봉이를 바라보았던 마음들이 쭈뼛쭈뼛 서 있었다.
--- p.92

병원에 입원하던 그날 상봉이는 초라하고 쓸쓸해 보였다. 나는 꾹꾹 울음을 참는 그를 몸과 마음을 다해 꼬옥 안아주었다. 그런데 그 순간! 그에게 대체 왜 이런 일이 닥친 것인지, 우울증은 운이 나빠 발생한 신경회로의 문제인지 나약함 때문인지, 대체 낫기는 하는 병인지 그 어떤 것도 궁금하지 않아졌다. 그런 건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대신 지금 힘든 상봉이를 꼬옥 안아줄 수 있다는 것, 상봉이가 죽지 않아서 이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 연인이 제일 작아 보인 그 순간 도리어 애틋하고 아련하고 소중한 기운이 나를 에워싼 채 뽈록뽈록 숨을 쉬었다.
--- p.93

우울증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이 우울증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다. 나는 그저 상봉이가 가끔 해주던 말들, 그가 짓던 표정, 그가 보낸 하루를 보며 우울증은 이런 모양이기도 하구나, 윤곽만 더듬어 볼 수 있을 뿐이다. 이 글이 우울증에 관한 글이면서도 정작 우울증의 정의, 증상, 치료 방법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건 그 때문이다.
--- p.138

사실 방관에는 다른 이의 힘듦을 지켜봐 줄 수 있는 인내와 그가 자신의 몫을 해낼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래서 애정하는 것에 쉬운 방관은 없다. 애정할수록 그의 힘듦은 나의 힘듦이 되고, 자신의 몫을 해낼 것이라는 믿음 뒤에는 혹시나 하는 염려가 자꾸만 자꾸만 따라붙기 때문이다. 특히 ‘죽음’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는 더욱 그렇다.
--- p.141

한 아이가 자신의 그림자가 쫓아오지 못할 때까지 달리기 연습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자신의 우울증이 나을 수 있다고 믿는 남자친구가 그 어린아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언젠가 자신의 의미 없는 인생을 말하게 될 상봉이가 슬펐다.
--- p.184

그런데 여느 날과 다름없는 산책길을 걸으며, 내가 ‘지금 이 시각’ 눈앞에 보이는 ‘이 보도블록’을 밟고 지나갈 확률은 얼마나 될까? 생각했다. 옥상에서 떨어지는 화분에 맞을 확률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내 일상도 극히 드문 확률의 일들이 모여 흘러가고 있었구나. 그리고 알게 된 것이다. 상봉이에게 우울증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구나. 그 깨달음이 바로 내 발밑에 있었는데 6년이 지나서야 그걸 알았다.
--- p.189

어느 날은 우울증이 우리에게서 빼앗아 간 것들을 생각했다. 내가 생각했던 우리의 30대는 가끔은 고급 음식점에 가서 오붓하게 밥을 먹고, 함께 좋아하는 스포츠를 배우고, 여행은 싫어하지만 여기만은 꼭 가보고자 했던 몽골 여행을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어느 것도 해보지 못하고 한참 싹을 틔울 20대의 끝자락과 30대의 봉오리가 집안 구석에 틀어박혔다. 궂은비가 내릴 때는 되레 낭만적이라 말하고, 진눈깨비에도 마음이 포근해지고, 볕이 뜨거운 날에는 정열을 만끽할 일들이 어느 때보다 더 많았을 텐데 그러지를 못했다. 그래서 나는 우울증 때문에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 p.213

그런데 한 편씩 글을 쓸 때마다 내 철통같은 몸통에 묻어 있는 녹이 조금씩 지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우울증에 걸린 남자친구를 이야기하는 자리에 나의 땟국물이 잔뜩 묻어났던 건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이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지금은 나에게 묻어 있던 어떤 녹은 다 지워져서 어느 한때에 대해서는 더 이상 유난 부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보다는 늘 이대로 괜찮지 않다고 말하는 상봉이에게 위로가 되고 추억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나를 위한 선물이 된 셈이다.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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