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부 햇빛 속에서도 어둡다
무인도 걸레 존재의 방 생의 무게와 길이 빗물 그 바아압 자살 회상 해 담아 마시는 노래 아프다는 것 갈대숲 빌딩 숲 지금은 독백 죽음의 가치 머릿고기 승리자 서울역 2부 이리 가나 저리 가나 가야 할 길이라면 친구 동행 짜디짠 노래 놔요 후회 없이 싸워라 스스로 연어 생사의 기로 어둠처럼 실망 자서전 그렇게 죽으리 우리 집으로 간다 신이여 왕권 축하 인사 소명 3부 이 세상 어디에도 갈 곳이 없을 때 평화의 궁전 숨쉬기 반겨 줄 사람 보인다 차별 찬란한 기쁨 그리운 난장판 봄날 옛 노래 눈사람 잘 떠났어 쪽방촌 사람들 시 그 언덕 위 작은 방 죽은 자에 대한 회상 4부 고독해 눈물 흘려 보지 않은 자 몇이나 되겠는가 0 눈 위에 쓴 글씨 설날 전야 편지 어떤 설날 고함 역사의 진정한 주인은 역사 응시 동행자 배고픈 갈대 쪽방촌의 명절날 아픔의 환희 밥처럼 살자 5부 청춘의 재 속에 불씨가 남아 있는 것일까 첫눈 자유는 나의 감옥 울음 추억 노숙자 모든 길은 종착점으로 달려간다 목소리 가호가 있기를 위선과 배신 못 부친 편지 매일매일이 괜찮아요 꽃의 질문 걸레 속에는 무슨 기적의 씨앗이 있을까 살아간다는 건 발문 -박경장(문학평론가) 해설 -김응교(시인·문학평론가) |
|
장대비 속에 긴 배식 줄
빗물 바아압 빗물 구우욱 비잇무울 기이임치이 물에 빠진 생쥐 새끼라 했던가 물에 빠져도 먹어야 산다 이 순간만큼은 왜 사는지도 호강이다 왜 먹는지도 사치다 인간도 네발짐승도 없다 생쥐도 없다 오직 생명뿐이다 그의 지시대로 행위 할 뿐, 사느냐 죽느냐 따위는 문제가 아니다 오로지 먹는 것 쑤셔 넣는 것 빗물 반 음식 반 그냥 부어 넣는 것 --- 「빗물 그 바아압」 중에서 저것이 또 취했군 세상이 몽땅 제 울분의 안방이겠지 안타깝고 불쌍한 인간아 어디서 굴러와 어디로 가느냐 이 추운 밤 어디에 꼬꾸라져 어느 꿈으로 가려 하느냐 그 개소리 그 개소리 어제의 내 참혹한 모습이 아니던가 잘되고 싶었겠지 그게 그렇게 만만하더냐 너의 건방진 혀뿌리가 문제로다 아 불쌍하고 가련한 내 참회의 스승이여 서울역의 긴 겨울밤이여 --- 「서울역」 중에서 분노의 바람이 내 영혼을 휘감고 피할 수 없는 안개 속의 운명의 흙바람으로 이리저리 깎이고 밟히며 설여문 돌멩이로 뒹굴며 살았다 억울했다, 노력만큼 나를 증명할 길이 보이지 않았다 창조와 개척만이 유일한 길이었다 사업과 일과 사랑은 욕심이었다 질곡의 어두운 바람이 잔혹하게 불어만 왔다 세금 없는 꿈이라 초등학교 때는 전혀 가능성이 없지만 대통령처럼 마음먹고 권좌를 잃어버린 왕세자처럼 헤매고 충절의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그뿐이었다 돌아온 건 질타와 멸시 알 수 없는 고통과 병명 없는 병고뿐 남은 것은 노숙이었다 몇 번의 자살 시도 이것도 마음먹은 일이라 이 역시도 끝내 실패였다 많이 헤매고 많이 몸부림치며 외치며 울었다 그뿐이었다 최후엔 기도였다 따졌다 사랑은 무엇이며 전지전능은 무엇에 쓰며 어떤 게 발동하는 것이냐 인간적인 노력은 할 만큼 했다 신은 뭐 하는 것이냐 신에게 따지며 엉기다 더 죽을 뻔했다 괘씸죄로 그때 감을 잡았지 있긴 있구나 그렇다면…… 보았지 그 신이란 분을 작은 것은 여러 번 큰 것은 두 번 미지근한 확신이 이제 더 확신이 되더군 어찌어찌 뒹굴다 사각모자를 쓰게 되었다 대통령의 꿈이 쪼잔하고 시들해지더군 내 자신을 조금 알게 된 거지 그 자리에 시인이 들어왔다 --- 「자서전」 중에서 몇 군데 제출한 이력서로부터 연락이 왔다 90만 원에 4대 보험 경비원을 뽑는데 웬 젊고 건장한 사람들이 면접관이 힐끔 나를 쳐다본 후 차례로 불러 이런저런 것들을 묻는다 나의 차례는 맨 나중이었다 대충 이런저런 것들을 묻고는 안경테 너머로 나의 얼굴을 쏘아보면서 아저씨는요, 저 뒤쪽 문을 경비하는데요 70만 원입니다. 하실래요. 분노가 치밀었다, 알았어요 하고 일어서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상처, 이 얼굴의 상처 때문이리라 인정사정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계단을 내려오다 헛디뎌 무릎이 까졌다 길가의 노상에 걸터앉아 한없이 한없이 울었다 이제 경비원도 할 수 없다 욕하지 않으리라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맞다, 두고 봐라, 이 혐오를 영광으로 만들리라 아니 이제부터 경비 같은 직업은 내가 안 한다, 꿈도 안 꾼다 천금을 줘도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너를 확고하게 차별하리라 이제 또 어디에 이력서를 내야 할까 --- 「차별」 중에서 찬란한 고독의 순간이지 이것도 사치다 쌩쌩 부는 찬바람의 한파 속에 신문지 한 장 전날 마신 강소주에 담배꽁초가 무거울 정도로 뒤틀린 탈진 물 한 모금이 간절히 필요한데… 지하철 방호수 꼭지까지 기어갈 최후의 힘도 다 소진되어 찢어지고 짓밟힌 병든 쥐새끼로 헐떡거리는 그때 눈치 빠른 노숙인이 종이컵에 물을 따라왔을 때 그 거룩한 손 찬란하고 찬란한 신비의 종소리 --- 「찬란한 기쁨」 중에서 어디서 어떻게 살다가 이리저리 흘러왔을까 휑한 눈망울에 삶이 저리도 무거운 한숨 속의 쪽방촌 사람들 살갑지 않은 얼굴마다 걸음마다 지나온 삶의 버거움의 향기가 굳은살처럼 배어 있다 벗어날 수 없는 생존의 감옥 한 명 한 명 하나같이 비루한 역사의 긴 대하소설들 많이 무겁다 누구도 읽지 않는 아직도 존재의 이유를 찾지 못한 시작과 끝이 없는 나의 이야기들 --- 「쪽방촌 사람들」 중에서 홀로 고독해 눈물 흘려 보지 않은 자 몇이나 되겠는가 홀로 분노해 입술을 깨물어 보지 않은 자 몇이나 되리 배꼽을 두 개 달지 않은 이상 모두는 홀로다 그러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스승이며 제자다 그러므로 똑같은 눈물을 흘리며 같은 길을 서로 다르게 걸어가는 동행자 --- 「동행자」 중에서 |
|
시인의 말
우리는 모두 죽음의 가치를 채워 가는 존재들 - 「죽음의 가치」 부분 세상이 몽땅 제 울분의 안방이겠지 안타깝고 불쌍한 인간아 어디서 굴러와 어디로 가느냐 - 「서울역」 부분 어디쯤에 왔는가 알 수조차 없네 아 기약 없는 꿈이여 - 「실망」 부분 2025년 가을 권일혁 |
|
30여 년을 거리 노숙인으로 살아온 선생님에게 죽음은 때론 삶보다 유혹적인 갈림길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구속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삶을 살았으나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했던 경계 밖의 삶. 스스로 짓고 스스로 지고 다녔던 자유라는 감옥 속에서 선생님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선택한 것이 글 길 ‘시’였다.
‘권일혁 시인.’ 선생님 인생에서 사회적으로 처음 공인된 호칭이다. 나는 막 나온 시집을 들고 권 시인께 달려갈 것이다. 마음 병을 앓고 있는 시인의 환우들 앞에서 시인 대신 몇 편의 시를 낭독할 것이다. 넘어질 때마다 십자성이 되었다던 시인의 어머니 계신 곳을 향해 창문을 열어 시집을 올려놓고 시인 대신 큰절을 올릴 것이다. - 박경장 (문학평론가) |
|
이 시집에는 그만의 체험이 없으면 쓸 수 없는 구절들이 보석처럼 빛난다. 병들고 배고파 더 이상 기어갈 힘도 소진되어 병든 쥐새끼로 헐떡거리는 그때 눈치 빠른 노숙인이 종이컵에 물을 따라 왔을 때 “그 거룩한 손 찬란하고 찬란한 신비의 종소리”(「찬란한 기쁨」)라는 구절은 경탄할 만하다. 밑바닥에서 죽음의 지경을 넘어선 그만이 쓸 수 있는 놀라운 구절이다. 자신만의 체취로 대한민국의 밑바닥을 드러낸 이 시집은 기억해야 할 작품집이 될 것이다.
드디어 그는 시로 지은 집을 지었다. 이 시집이 그의 집이다. 이 시집을 읽는 당신은 ‘권일혁 시인의 궁궐’에 놀러 오신 손님이다. 자신만의 오롯하고 고유한 단독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타자를 배척하지 않고, 타자의 상처까지도 포옹하는 보편성(universality)으로 지은 튼실한 ‘평화의 궁전’이 이 시집이다. - 김응교 (시인,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