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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공제 강력추천
공고 선생, 지한구
그리고 오래도록 이웃으로 살아가는 학생들
지한구
후마니타스 202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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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프롤로그. 누군가는 공고에서 어떻게 가르치느냐고 염려하지만 8

1장. 1000원을 양보한 아이 15
2장. 열여덟 살 광훈이의 네 손가락 21
3장. “어떡하다 여기까지 왔노?”: 취업 나간 학생들 29
4장. 대기업 보냈더니 회칼 들고 등장한 아이 37
5장. 새 학기 첫날 드러난 중원의 비밀 49
6장. 퇴학 위기 세 공고생의 엇갈린 운명 61
7장. 글 써서 지급한 장학금 73
8장. 그는 은밀히 자퇴를 종용했다 77
9장. 공고 교사의 목마른 변신 89
10장. 방송으로 이어진 ‘몸짱’ 도전 103
11장. 목소리 없는 아이 115
12장. 성적 하위 20퍼센트 학생을 둘러싼 경쟁 123
13장. 자퇴한 공고생의 거칠고도 쓸쓸한 귀환 133
14장. 칠판 글씨를 못 읽던 공고생 143
15장. 꼴찌를 위한 장학금 155
16장. “저 베트남에서는 공부 잘했어요”: 사라진 공고생 165
17장. 아이유 만나러 서울로 177
18장. “우리 학교는 우사다, 우사!”: 그 시절 공고의 자화상 187
19장. 공고에 걸린 웅장한 현수막 201
20장. TV에선 못 보는 ‘올림픽 챔피언’ 공고에서 나왔습니다 213

에필로그. 그렇게 이웃이 된다 222

저자 소개 1

국립대학 농대에서 임산공학을 전공했다. 나무를 키우는 일이다. 나무보다 학생을 키우고 싶어 교직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방에 있는 공업고등학교에서 15년째 국어를 가르치며, 어떻게 하면 잠자는 아이들을 깨울까 고민하고 있다. 공고에는 못 가르치는 교사만 있다는 편견을 깨고자 수업 연구대회에 나가 교육부장관상(전국 2등)을 받았다. 물론 상은 상일 뿐 수업은 여전히 어렵다. 공고생의 학업 중단율을 줄이기 위해 학내에서 헬스부를 운영했고, 그 덕에 불혹의 나이에 보디빌딩 대회에서 상도 받았다. 공고를 졸업해 산업 현장으로 떠나는 아이들이 차별받지 않는 길을 오늘도 찾고 있다. 그걸 찾
국립대학 농대에서 임산공학을 전공했다. 나무를 키우는 일이다. 나무보다 학생을 키우고 싶어 교직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방에 있는 공업고등학교에서 15년째 국어를 가르치며, 어떻게 하면 잠자는 아이들을 깨울까 고민하고 있다. 공고에는 못 가르치는 교사만 있다는 편견을 깨고자 수업 연구대회에 나가 교육부장관상(전국 2등)을 받았다. 물론 상은 상일 뿐 수업은 여전히 어렵다. 공고생의 학업 중단율을 줄이기 위해 학내에서 헬스부를 운영했고, 그 덕에 불혹의 나이에 보디빌딩 대회에서 상도 받았다. 공고를 졸업해 산업 현장으로 떠나는 아이들이 차별받지 않는 길을 오늘도 찾고 있다. 그걸 찾을 때까지 교직 생활을 이어 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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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0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232쪽 | 300g | 135*210*15mm
ISBN13
9788964374917

책 속으로

“경수야, 선생님이랑 얘기 좀 하자.”
나의 제안마저 ‘쌩 까면’ 어쩌나 싶었는데, 경수는 졸린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녀석은 나의 초대에 응했다. 상담실에 어색하게 마주앉았을 때 나는 경수에게 질문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대신 “날마다 엎어져 자는 네가 많이 밉다.”고 말한 뒤 “네 사정을 그동안 묻지도 않고 미워해서 교사로서 미안하다.”고 털어놨다.
이어 내가 겪은 가난한 청소년 시절의 분노와 농대 출신 국어 교사로서 겪은 어려움과 차별을 털어놨다. 경수는 말없이 그저 내 이야기를 들었다. 내 말이 끝났을 때, 녀석은 딱 한 번 입을 뗐다.
“말씀 끝나셨으면, 나가도 되죠?”
--- p.16~17

몇 해 전, 오전 9시를 한참 넘겨 교문을 통과한 태영이가 생각난다. 지금이 밤 9시라도 된 듯 녀석의 얼굴은 벌써 지쳐 보였다. 동료 교사가 지각한 이유를 물었다.
“부모님이 집에 안 들어오신 지 며칠 됐는데, 저한테 남은 돈은 1000원이 전부였습니다. 그거 중학교 다니는 동생 차비로 주고 저는 걸어왔습니다. 죄송합니다.”
녀석의 집은 학교에서 10킬로미터쯤 떨어져 있었다. 성인 걸음으로 두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등교 시각을 한참 넘겨 길을 걷는 공고 교복 차림의 학생을 보면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 p.18~19

공고에는 취업을 적극 원하는 학생과 학부모도 많다. 우수한 공고 졸업생을 환영하는 좋은 사업장도 있다. 문제는 그 좋은 걸 다 합쳐도 도저히 ‘취업률 70퍼센트’에는 닿을 수 없다는 점이다. 무리수는 그 간극에서 나왔다.
“니, 뭐라 캤노?”
“…….”
“선생님 말 안 들리나? 니, 뭐라 캤냐고!”
“광훈이 손가락 잘렸대요. 네 개나요. 프레스에 눌려서 붙이지도 못한대요.”
한동안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교실의 아이들은 모두 말없이 날 바라봤다. 누구도 입 밖으로 뭐라 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나와 학교를 비난하는 듯했다. 날마다 교무실 칠판에 새겨지고 지워지던 수치, 줄어드는 수업 시수의 유혹, 제자를 상대로 한 집요한 설득, 수업을 빙자한 깜지 채우기, 교사들의 경쟁……. 아이들은 그 모든 걸 따져 묻는 듯했다.
‘샘들, 왜 그렇게 열심이셨어요? 정말 우리를 위해 그런 겁니까?’
--- p.25~26

스스로 원해 입학한 사례가 거의 없는 만큼 공업고등학교의 아이들은 어떻게든 빨리 학교를 벗어나고 싶어 한다. 공고 교복이 낙인이 되어 “꼴통”이니 “공돌이”니 하는 모욕적인 수군거림을 숱하게 들으며 학교를 다녔으니, 그 심정도 이해된다. 하지만 무슨 마음인지 아이들은 졸업 후엔 공고를 그리워하며 꼭 한 번쯤 학교를 찾아온다.
--- p.37

“날마다 공장에서 단순 작업 하는 게 재미없고 견딜 수가 없더라고요. 이 일을 평생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도 캄캄했고요.”
더는 실망하지 않기로 했다. 공고생이라고 왜 취향과 적성이 없겠는가. 대기업이라고 누구에게나 다 좋은 건 아니다. 정훈은 요리를 하고 싶다고 했다.
--- p.46

학생부는 전교생 중에서 벌점이 높은 1위부터 20위까지 일명 ‘고위험 학생’을 추렸다. 이 아이들 대부분은 벌점 40점이 넘었고, 60점을 초과해 곧 퇴학을 통보받을 학생도 있었다. 학생부 교사들은 이 학생들을 선제적으로 관리해 어떻게든 살려 보기로 했다. 그 일환으로 학생부 교사 한 명당 학생 두 명씩 맡아 어떻게든 졸업시키기로 했다.
--- p.67~68

“선생님, 아이들이 제 옆에만 오면 킁킁거려요. 제 몸에서 냄새가 나니까 그러는 것 같아요.”
나는 다시 아무 냄새도 안 난다고 양훈이를 위로했다. 혹시 반 친구들의 괴롭힘이 있다면 조치하겠다고 약속했다. 양훈이의 눈에서 분노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선생님도 어제 저를 보면서 킁킁거리셨잖아요!”
“선생님이? 나는 그런 적 없는데?”
“분명히 샘이 킁킁거리셨어요! 어제는 제가 교실에 들어가니까 바로 코를 막았잖아요!”
교무실에 있던 교사들의 눈은 내게로 쏠렸다. 양훈이는 한동안 날카롭게 날 노려보다가 교실로 돌아갔다.
--- p.80

우리 공고 아이들은 많이 다르다. 학교에 오는 것도, 남아 있는 것도 힘들어한다. 내가 가르친 어느 반은 학기 초 23명으로 시작했으나, 학년 말에는 교실에 16명만 남았다. 1년간 일곱 명이 학교를 떠났다. 공고 아이들은 왜 학교생활을 어려워할까? 저마다 이유와 사정이 있을 테고, 모든 걸 학생과 학부모 사정 탓으로 돌릴 수도 없다. 학교도 아이들의 흥미와 관심을 못 끄는 건 문제다. 학교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 p.89~90

“선생님, 죽겠어요. 아무리 해도 지방이 안 빠져요.”
누구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40년을 쌓아 온 뱃살은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학교에서 축 처진 배를 바라보다가 운동복을 입고 운동장으로 달려 나간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국어 교사인지 태릉선수촌에 입촌한 운동선수인지 헷갈린 적도 있다. 학교의 많은 아이들과 동료 교사들이 응원해 준 덕분에 힘은 동나지 않았다.
--- p.97

드라마틱하게 아름다운 몸이 되면 좋겠지만, 키 185센티미터에 몸무게 74킬로그램은 아무리 봐도 40대 아저씨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볼은 야위고, 광대뼈는 더욱 돌출됐다. 운동 시간에 비례해 눈가 주름도 많아졌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물었다.
“어디 아파? 건강검진은 빠짐없이 받고 있지? 조심해. 40대는 한 방에 훅 가는 나이다.”
--- p.98

학교를 싫어하는 아이들을 어떻게든 학교로 불러내고, 또 붙들어 두려고 시작한 자기 성장 프로젝트. 눈에 보이는 근육만큼 학교에 대한 애정도 부풀어 올랐을까? 어쨌든 우리 헬스반은 첫 대회에서 학생과 교사 모두 입상을 했다.
동연이는 보디빌딩 고등부 1위를 차지했다. 나는 마스터즈 스포츠 모델 3위를 했다. 1위부터 3위까지는 트로피를, 4위부터 7위까지는 메달을 주는데 우리는 보기 좋게 금색과 동색 트로피를 하나씩 받았다. 주최 측은 “교사와 학생의 도전이 아름답다.”며 우리를 무대 위로 불러 큰 박수를 유도했다.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우리 공고생들을 향한 박수였다.
--- p.99~100

학교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는 성수. 특별한 아이일까? 어떤 면에서는 그렇지만, 내가 일하는 공고에서는 그리 놀라운 사례가 아니다. 우리 공고에는 정말 다양한 아이들이 다닌다. 경계선 지능 장애를 가진 아이가 있고, 한글 외에는 별다른 지식을 습득 못 한 아이도 있다. 부자 부모님 밑에서 사고뭉치로 자란 녀석이 있는가 하면, 부모님 얼굴을 모르거나 부모님이 계셔도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혹은 일부러 알려고 하지 않는 아이도 있다. 매년 3월 새 학기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역대급으로’ 개성 강한 아이들이 입학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중학교 시절 수업을 거의 들어가지 않았던 아이, 각종 사건 사고에 연루된 아이, 우울증으로 배움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 등.
--- p.121~122

학령인구는 해마다 줄고, 공고 기피는 그보다 더 빠르게 느는 상황. 학생 미달로 반 하나가 줄면, 교사 두세 명이 학교를 떠나야 한다. 해고 통보는 기간제 교사부터 받는다. 내면에서 다른 소리도 들렸다.
‘너 지금 뭔 짓을 하는 거냐? 아이들에게 합리적인 정보를 주고 스스로 선택하게 해야지. 네가 뭔데 아이들의 선택에 관여해? 방금 그 중학생에게 한 말, 네 자식에게도 똑같이 하면서 권유할 수 있어?’
괴로웠다. 객관적으로 우리 학교보다 더 좋은 곳에 갈 수 있는 학생을 우리 학교에 지원하라고 설득한 날, 나는 그 아이를 차에 태워서 우리 학교 교무실로 데려 갔다. 학교에서는 마치 귀인이라도 만난 것처럼 격한 환영을 해 줬고, 학생은 우리 학교에 지원할 결심을 굳혔다.
--- p.129

문제아로 찍힌 아이들 중에는 사회 취약 계층 출신이 많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제대로 돌봄을 못 받은 아이들에게 교문마저 닫힌다면, 이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시간을 보내야 할까. 그래도 학교에 오면 친구가 있고, 교사가 있고,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다. 전인교육에 실패하고, 입시 교육에서도 학원에 밀리는 대한민국 학교가 이 정도 역할이라도 하는 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학교로 돌아오라는 내 제안에 정민이는 “다시 1학년부터 다닐 자신이 없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나는 다시 정민을 불러 세웠다.
--- p.141~142

텅 빈 교실이 말해 주듯, 내가 일하는 공고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내가 맡은 방과 후 국어 수업은 기초학력 진단 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아이들이 꼭 들어야만 하는 강제로 만들어진 수업이다. 사실 ‘방과 후 수업’보다는 ‘기초학력반’이 정확한 표현이다. 상대적으로 학업 성취도가 낮아 공고에 왔는데, 여기에서도 속칭 ‘나머지 공부’를 해야 하다니. 일부 짓궂은 학생들은 “띨띨이반”이라고 놀리기도 한다. 자존감이 추락한 기초학력반 아이들은 어떻게든 수업을 빠지려고 여러 방법을 동원하곤 한다.
--- p.144

“니, 내 말 알아듣나?”
“저는 머얼라요.”
첫 수업 때의 정희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나와 교실의 아이들은 정희가 한국어를 잘 알아듣지 못한다는 걸, 베트남에서 왔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그 후에도 쭉 이어진 정희의 침묵과 튀지 않는 조용한 행동, 그 모든 건 이주 배경 가정의 아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 진즉에 알아챈 정희의 본능적인 선택이었다.
--- p.170

나는 학생들의 영어 교육을 위해 작은 영상을 만들었으나, 지금 망해 가고 있으며, 이런 상황에서 아이유 당신이 우리를 도와준다면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식의 말들을 두서없이 길게 쏟아 냈다. 다시없을 기회여서 최대한 간곡히 부탁했다. 할 말을 마치고 아이유 씨의 표정을 살폈다. 아이유 씨는 우리 교사들이 무안해하지 않도록 흔쾌히 웃으며 영상 촬영을 허락했다. 아이유 씨는 카메라를 보면서 외쳤다.
“여러분은 할 수 있습니다. You can do it!”
--- p.182~183

그 시절 공고 교실에서 “You can do it!” “I can do it!”을 메아리처럼 주고받았던 나의 제자들도 이젠 모두 30대가 됐다. 그 한 문장 외운 게 삶에 얼마나 보탬이 됐을지 잘 모르겠다. 다만 살면서 혼자 넘기 힘든 거대한 벽을 마주할 때면 속으로 ‘난 할 수 있다.’를 작게 되뇌어 보길 바랄 뿐이다.
--- p.185

7월이 됐다. 우리 학교에 정식 헬스부가 생겼다는 소식이 우리 지역의 보디빌딩협회에 전해졌다. 전국체전 보디빌딩 고등부 예선전에 참가를 권하는 연락이 왔다. 나는 아이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보디빌딩협회에서 전국체전 예선전에 도전하라는데, 느그 생각은 어떴노?”
“몇 명 뽑는데예?”
“우리 지역에선 세 명.”
흥분한 동연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샘, 대박! 우리가 체전 예선을 나갈 수 있다는 말입니꺼? 당연히 나가야지요.”
--- p.205

2024년 피트니스 코리아 대회에서 우리 학교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비기너 부문 석권을 비롯해, 성진이가 노비스 부문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동연이는 엘리트 부문 3위에 올랐다.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상금 100만 원의 주인공은 형준이었다. 며칠 뒤, 우리 학교 교문에는 이런 현수막이 걸렸다.
“헬스부, 꿈의 무대에 서다.”
인문 계열 고교에서 서울대 몇 명 보냈다는 현수막을 이런 맛에 거는 걸까? 출퇴근길에 현수막을 볼 때마다 내 마음은 저절로 웅장해졌다.
--- p.209

아이들의 자퇴를 막아 보고자 시작한 헬스부 활동. 웃어야 할지 아니면 울어야 할지, 표현할 길이 난망한 일도 생겼다. 함께 운동했던 헬스부 1학년 학생 두 명이 우리 학교를 떠났다. 학업 중단이 아니다. 둘은 인문 계열 고교로 전학을 갔다. 아이가 스스로 원해 노력해서 공고를 떠나는데 마음껏 축하를 해야 할지, 교사로서 박수를 쳐 주면 이 학교에 남은 아이들은 그런 내 모습을 어떻게 볼지, 내 마음은 한없이 복잡했다. 각자의 길을 응원하고,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가슴이 헛헛한 건 어쩔 수 없었다. 2025년, 나는 또 헬스부를 맡았다. 공고를 지키고, 남은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단단히 만들어 주는 게 나의 여전한 책임이다. 올해 헬스부에서는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미래는 알 수 없지만, 마음껏 시도하고 실패할 생각이다.
--- p.210~211

“지금 공부 못해도 개안타! 우리 학교 와가 기계만 잘 만져도 성공할 수 있대이!”
공부를 못해도 기계를 잘 다루면, 무엇이든 하나만 잘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하지만 이젠 우리 사회의 어른 누구도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해 주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마을에서도, 미디어에서도 듣기 어려운 말이 돼 버렸다. 우리가 과거의 추억으로 보내 버린 건 카퍼레이드만은 아닐 터다. 우리가 진정으로 잃어버린 건 기계만 잘 만져도 성공할 수 있는 세상, 공부는 조금 못해도 열심히 몸을 움직이면 먹고살 수 있는 사회가 아닐까 싶다.

--- p.219

출판사 리뷰

‘공고’도 (공고)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공고 이야기

“꼴통, 공돌이 학교, 양아치 우글거리는 곳.”
“이왕 교사를 할 거면 인문계로 가야지 웬 공고냐?”
“어머, 어떡해요. 거기, 정말 힘들죠?”
“여기서 일할 수 있겠나? 어쩌다 여기까지 왔노?”


공고 선생 지한구는 날선 말들로 ‘공고’를 강조하거나, 공고를 묵음인 양 감추려는 시선을 매일 공기처럼 만난다. 친한 친구는 “이왕 교사를 할 거면 인문계로 가야지 웬 공고냐?”며 타박 아닌 타박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분”이라고 운을 뗀다.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듯이 ‘공고’는 언제나 삭제되고 숨겨진다. 교사 집단도 마찬가지여서, 공고에서 근무한다고 하면 다들 진심으로 걱정하는 표정으로 말한다. “어머, 어떡해요. 거기, 정말 힘들죠?”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적극 동조하면 자신의 일터와 제자들을 폄훼하게 될지도 모르는 난감한 상황이 거듭될수록 교사로서의 자존감은 점점 낮아진다. 교사조차도 이런 일을 비일비재하게 겪는 사회에서, 공고생들은 어떤 대접을 받으며 살아갈까. 고등학교 3학년을 마치면 대학 입학 대신 취업을 하는 학생들을 위해, 때때로 공고 교사는 취업처를 확보하려 전국 곳곳을 누비는 ‘영업 사원’이 된다. 공단을 돌아다니다 크고 깔끔하다 싶은 공장이 보이면 일단 밀고 들어가 취업 담당자를 만났다. 종일 회사 수십 곳을 찾아다니며 “우리 공고생 좀 받아 달라.”며 사정하지만, 문전박대만 당한 채 ‘취업 승낙서’ 한 장 못 받은 날도 부지기수다.

“선생님, 걱정하지 마시소. 애한테 무슨 큰일이라도 시키겠습니까? 여기 계신 어르신들이랑 치킨 박스 좀 만들고 하면 됩니더. 육십 넘은 노인들도 다 하는 일이니 잘할 겁니대이.”

첫 담임을 맡아 처음으로 취업을 보낸 제자 우현(가명)을 공장에 직접 바래다주고 싶었다. 페인트 공인 아버지가 현장에 갈 때 쓰는 승합차에 태워 데려간 공장에서 우현이가 맡은 일은 3미터 넘게 쌓인 치킨 포장 상자를 접는 일이었다. 그대로 두고 올 엄두가 나지 않아서, 선생 지한구는 페인트 냄새 가득한 운전석에 앉아 한참을 고민한다. 이러려고 학교는 3년간 그 노력을 했던 걸까? 지금이라도 우현이에게 돌아가자고 할까? ‘노가다’로 삶을 일군 아버지에게 자랑이었던 ‘화이트칼라’ 교사 아들이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을, 자신조차 납득할 수 없는 노동 현장에 떨구고 있다는 걸 알면 아버지는 계속 나를 자랑스러워할까?

“꿈과 희망을 가르치는 초중고 12년의 끝이 대개 비정규직이라는 현실이 허망하고 슬플 뿐이다. 공장에서 종일 치킨 박스를 접어도 안정적인 삶을 꾸릴 수 있고, 그런 노동도 존중받는 세상이 오면, 나는 학교에서 당당하게 꿈과 희망을 학생에게 가르칠 수 있을까? 그런 세상은 멀어 보이고 여름은 정점으로 달려가고 있다. 여름이 끝나면 공고 3학년 교실은 텅 비어 간다. 아이들은 공장으로, 식당 주방으로, 배달 현장으로 흩어진다.”

공고 이야기,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우리 시대 학교 이야기

성적순으로 소수의 학생이 특목고, 자율고와 영재고에 지원하고, 대다수의 학생은 대개 ‘일반고’라 일컫는 인문계고 진학을 결정한다. 해마다 차이가 있지만, 중학교 성적 80퍼센트 안쪽 아이들이 인문계고에 진학하고 그 외 학생들이 공업고등학교 등 특성화 고교에 들어온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자신만의 간절한 꿈을 이루겠다며 특성화고에 오는 학생은 거의 없다. 취업에 나가서 죽거나 손가락 몇 개 잘렸을 때만 눈길 한 번 겨우 받아 보는 이 시대 공고생들은 어떤 꿈과 좌절, 웃음과 눈물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2011년 기간제 교사 시절부터 줄곧 공고에서 근무한 저자는, 다른 학교였다면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일을 여러 번 겪었다고, 공고에 오지 않았다면 평생 마주칠 일이 있을까 싶은 아이들을 참 많이 만났다고 말한다.

기초 생활 수급자와 한부모 가정 출신 등 가정 형편이 어려워 일찍부터 돈을 벌어야 하는 아이들, 중학생 시절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인문계 고교에 진학하지 못해 스스로를 ‘실패자’로 여기는 아이들, 각종 사건 사고에 연루됐거나 게임에 빠져 학교생활 자체를 힘겨워하는 일명 문제아까지. 아이들은 밤에 일하느라 낮에 학교에 와서는 엎드려 있거나, 어떻게든 좋은 성적을 받아 인문계 고교로 전학할 방법을 찾기도 하고, 무기력하게 지내다 끝내 자퇴하기도 한다. 공부에 집중하기 어렵고, 학창 시절을 마냥 즐기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 보니, 자퇴나 퇴학 등으로 학교를 떠나는 아이가 40명을 넘긴 해도 있다. 네 명이 아닌 40명.

“교사 지망생 시절, 국어 선생이 되면 아이들과 윤동주의 「서시」를 읊을 거라 여겼다. 내가 순진했다. 나는 한국의 교육 현실과 고교생의 삶과 공고의 높은 자퇴율을 몰랐다. 학교에서 헬스 트레이너 역할을 할 줄은 더더욱 몰랐다.”

학교를 떠나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는 게 무섭고 슬펐던 저자는 이런 학생들에게 다가가 돕기 위해 온갖 방법을 궁리한다. 벌점 60점을 초과해 곧 퇴학을 통보받을 ‘고위험 학생’을 기필코 졸업시키겠다며 달라붙거나, 이주 배경만큼은 숨기고 싶다는 베트남 출신 학생을 위해 국어 과목 기초학력 진단 평가를 통과시키려고 함께 벼락치기 공부에 돌입한다. 아이들이 학습 영상에 흥미를 갖게 하고자 음악 방송 대기실을 찾아가 아이유에게 부탁해 응원 멘트를 녹화해 오기도 한다. 심지어 전에는 상상해 본 적도 없는 헬스부 지도 교사가 되어 학생들과 함께 피트니스 대회에 출전해 입상하고 지역 라디오방송에까지 출연한다.
그렇게 함께 땀 흘리며 웃고 울던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 학교를 떠난다. 외고, 과학고, 자사고의 ‘자랑스러운 선배’는 의사·변호사·판검사일지 모르지만, 저자가 일하는 공고에서 성공한 선배는 대개 자영업 사장님이다. 저자를 비롯한 교직원들에겐 공통의 징크스가 있다.

외식을 하거나 밖에서 술을 마시면 꼭 재학생이나 졸업생을 한 명 이상 만난다는 것. 맛집으로 소개받고 갔는데 사장님이 학교 출신이거나, 맥주 한잔 마시러 간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 중인 옛 제자를 만나는 식이다. 배달 라이더 노동자가 고개 한 번 숙이고 쌩하게 달려간다면 십중팔구 졸업생이고, 집에만 있는 날에도 가정 방문 택배 기사, 가스 검침원, 전자 제품 수리 기사가 된 아이들을 곧잘 만난다. 한때 제자였던 학생들은 어느덧 서로의 삶을 지탱하고 지켜 주는 이웃이 된다. 우리에게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저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인재도 필요하지만, 머리를 다듬어 주고 인터넷이 고장 나면 빛의 속도로 달려와 나를 세상과 연결해 주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을 키우는 학교, 그곳이 바로 저자가 일하는 공업고등학교라고 이야기하는 이 책을 읽다 보면 문득 깨닫게 된다. 꿈 없이 입학했던 학생들도 저마다 크고 작은 꿈을 꾼다는 사실을, 그리고 평생 마주칠 일이 있을까 싶은 아이들이 알고 보면 나의 일상을 지켜 주는 가까운 이웃이라는 사실을.

“누군가는 공고에서 어떻게 가르치느냐고 염려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지난 10여 년간 ‘지방 8학군’을 오가며, 나의 제자들에게 많은 걸 배웠다. 이 책이 내가 누군가를 가르친 흔적이 아닌, 공고에서 보고 배운 증거로 남으면 좋겠다.”

추천평

“공고 교사 지한구의 글을 검토할 때면 눈이 자주 붉어졌다. 마지막 1000원을 동생에게 양보하고 한 시간을 걸어 학교에 오는 아이, 한글을 모른 채 공고에 들어온 베트남 출신 학생, 그렇게 잡을 땐 기어코 자퇴하더니 친구가 그리워 학교에 놀러 오는 문제아, 그리고 이런 아이들일수록 학교가 필요하다는 걸 깨닫고 ‘웃통’을 벗어젖힌 국어 교사…. 이 책 주인공들 사연에 마음이 동하지 않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연민이나 안타까움 때문이 아니다. 내가 지한구의 글에서 본 건, 우리가 잃어버렸거나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학교의 인간적 얼굴이다. 좀처럼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하는 공고생, 교사, 학부모 들이 보여 주는 묘한 인간적 품위. 많은 독자들도 연민 이상의 복잡한 감정에 빠져 보길 권한다.” - 박상규 (진실탐사그룹 셜록 대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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