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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이야기
1. 절호의 기회 2. 루베르 의상실 3. 돈으로 살 수 있는 것 4. 우정의 증표 5. 멀어지는 우정 6. 바지에 핀 꽃 7. 낯선 목소리 8. 마주한 진실 9. 사라진 카드 10.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11. 고래처럼 뒷이야기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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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은이는 단짝 친구가 없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세 달이나 지났지만, 화면 속 물고기들과는 다르게 어느 무리에도 들지 못했다. 3학년 때까진 아무렇지 않았다. 자석처럼 붙어 다니는 여자아이들을 보며 오히려 한심하다고까지 생각했었다. 하지만 4학년이 되고부터 점점 생각이 달라졌다. 교실에서 둘 또는 서너 명씩 무리 지은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태평양을 홀로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처럼 불안했다.
---p.17 “잘못 오긴. 제대로 온 거 맞아. 여긴 루베르 의상실이고 내가 루베르지. 넌, 내 소중한 손님이고.” 루베르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내 작품들 어때? 하나같이 마음에 쏙 들지? 넌, 그중에서도 특히 이 멜빵 반바지가 제일 마음에 드는 모양이고. 인기 많은 상품이야. 요새 애들은 돈을 너무 밝힌다니까.” 여자아이는 자신은 요즘 아이가 아니라는 듯 말했다. 래은이는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p.28 “그 바지는 습한 걸 무지 싫어해. 해 떴을 때 네 시간. 딱 네 시간만 입어 주면 바지가 순순히 돈을 줄 거야. 그리고 그 상처는 손님 하기 나름이야.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아물 수도, 평생 흉터로 남을 수도 있지. 어떤 상처가 안 그러겠니. 근데 아물어 버리기엔 아까운 상처야. 상처가 너어어무 예뻐. 마치…… 베이지색 니트에 사선으로 넣은 스크래치 무늬 같달까?” 루베르는 영감이 떠오른 듯 눈을 깜빡이더니 서둘러 스케치를 시작했다. ---p.34 사실 래은이도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시간에 친구들이 편의점 앞에 있는 이유. 친구들은 래은이에게 늘 무언가를 바랐다. 사 달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눈빛과 분위기로 말했다. 돈이 없다고 하면 친구들이 안 좋아할 걸 알기에 일부러 더 있는 척하기도 했다. 그러지 않으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무리에서 내쳐질 것 같았다. ---p.89 래은이는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첨벙, 첨벙 발소리가 래은이 귀에는 철썩, 철썩 파도 소리로 들렸다. 흙과 풀 냄새가 섞인 비 냄새는 어느새 모래와 해초 냄새가 섞인 바다 냄새로 바뀌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커다란 고래처럼 몸이 점점 부푸는 것 같았다. 다른 물고기들로 채워진 고래가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가득 채워진 멋진 고래처럼. ---p.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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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짝 친구가 없는 래은이는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친구들을 가지고 싶다. 반에서 인기 많은 이서 무리라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어느 날, 이서는 래은이에게 슬라임 카페에 함께 가자고 한다. 친해질 기회를 놓칠 수 없는 래은이는 꼭 가고 싶지만, 엄마는 입장료를 보고 비싸다며 돈을 주지 않는다. 돈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할까 봐 서러워하던 래은이는 늦은 밤, 붙박이장에서 꽃향기와 함께 흘러나오는 빛을 발견한다. 놀랍게도 붙박이장 안은 신비하고 비밀스러운 의상실과 연결되어 있었다!
루베르 의상실의 주인, 뱀파이어 디자이너 루베르는 래은이가 맘에 들어 한 멜빵 반바지를 건네며 해가 떴을 때 네 시간만 입으면 이 옷이 돈을 줄 거라고 호언장담하는데……. 과연 멜빵 반바지를 손에 넣은 래은이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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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줄 타듯 선과 악을 넘나드는 어린이의 감정
이면의 속마음을 인지하고 유혹 속에서도 바른길로 나아가는 어린이 래은이는 4학년이 되면서 부쩍 외로움을 느낀다. 다른 친구들은 각자 같이 다니는 무리가 있는데, 그렇지 않은 자신은 망망대해에서 혼자 외로이 헤엄치는 물고기 같다. 친구들을 부러워만 하던 어느 날, 같은 반 이서의 함께 놀자는 말에 래은이의 마음은 크게 부풀어 오른다. 하지만 엄마는 슬라임 카페에 갈 돈을 주지 않는다. 늦은 밤, 돈이 필요한 래은이가 고민하고 있을 때 붙박이장 틈새에서 빛과 함께 꽃향기가 풍겨 온다. 홀린 듯 붙박이장을 열자, 래은이의 눈앞에 루베르 의상실의 풍경이 펼쳐진다. 래은이가 루베르 의상실에서 산 청으로 만든 멜빵 반바지는 예쁠 뿐만 아니라 특별한 능력도 있다. 바로, 해가 떴을 때 네 시간만 옷을 입으면 하루에 한 번, 바지 주머니 안에 만 원이 생기는 것! 친구 관계를 쌓아 본 경험이 많지 않은 래은이는 갑자기 생긴 돈이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친구 관계를 돈으로 해결하려 한다. 친구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떡볶이를 사 주거나 팔찌를 맞춰 주는 등 돈으로 친구들을 사귈 수 있다 여긴다. 하지만 바지를 입을수록, 점차 엄마의 지갑에서 돈을 빼내거나 누군가 떡볶이집에 두고 간 카드를 주워 쓰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돈만 있다면 친구들이 자신을 좋아할 거라는 생각과 함께, 래은이의 충동을 부추기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자신을 걱정하던 짝꿍 소정이, 그리고 친구의 잘못을 자기 잘못처럼 여기며 진심으로 사과하는 은혁이와 서준이를 보며, 래은이는 진짜 친구는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모든 어린이들이 품고 있는 마음속 이면을 중점적으로 담아내며 대범한 서술로 독자의 호기심을 단숨에 사로잡는 이 작품은, 물질과 우정은 비례할 수 없음을, 사람의 진심과 마음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참된 메시지를 전한다. 물질로 엮인 관계에서 벗어나, 참된 관계의 가치를 찾아내는 눈부신 이야기 〈밤의 옷장 루베르 의상실〉 시리즈, 대망의 1권 『악마의 바지』에서는 돈이라는 물질을 통해 친구들의 마음을 얻고자 노력하는 어린이 래은이의 욕망에 주목한다. 현시대 어린이는 넘쳐나는 문화 상품과 다양한 즐길 거리 속에서 살아간다. 초등학생 때부터 휴대폰을 소유하고, 소비를 촉구하는 광고도 쉽게 접하며 공통된 소비 경험을 바탕으로 또래 관계를 형성하는 어린이들도 늘었다. 그건 비단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신인 작가 꽃마리는 바로 이러한 지점에 주목해, 물질로 엮인 관계의 문제점을 어린이의 시선으로 전면에 드러낸다. 래은이는 또래 관계를 맺기 위해 친구들에게 우정 팔찌를 사 주고, 반 아이들이 좋아하는 연예인 ‘뉴걸’에 대한 대화에 끼고자 앨범을 구매한다. 물질을 통해서만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여긴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돈으로 관계를 맺으려 해도, 진심이 통하지 않은 관계는 언제고 금방 허물어지기 마련이다. 우정 팔찌를 사 주었다 한들 이서와 민주는 래은이를 진짜 친구가 아닌, 원할 때 간식을 사 주는 편리한 친구라 여긴다. 그런 래은이를 걱정하고 위로하는 것은 래은이가 단 한 번도 물건을 사 주거나 돈으로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았던 소정이다. 소정이가 건넨 진심을 담은 쪽지가 래은이로 하여금 그토록 원했던 참된 우정을 느끼게 만든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건강한 관계 맺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좋은 관계란 한쪽만 전전긍긍하며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닌, 서로를 동등하게 마주 보고 진심을 나누는 것이라고 말이다. “오늘 밤도 안 자고 있는 재밌는 어린이가 많네.” 회피하지 않고 문제에 직면하며 건강하게 성장하는 어린이를 보여 주는 작품 래은이는 친구가 없어 외로워도, 다른 아이들이 그저 남에게 의지하는 것뿐이라고 여기며 스스로의 마음을 인정하지 않고 반대로 드러내 왔다. 그러나 반에서 가장 인기 많은 이서가 말을 걸어왔을 때, 래은이는 간절하게 친구가 되고 싶다는 가려졌던 마음을 발견하고 가장 쉬운 방법인, 돈으로 관심을 끌고자 한다. 그 모습을 거울을 통해 지켜보던 루베르는, 이런 어린이들의 욕망이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본질적인 욕망을 그대로 표출해 드러내기 때문이다. 루베르는 아이들에게 선한 길을 안내하는 인물이 아닌, 오히려 욕망을 충동시키고 극대화하는 문제적 인물이다. 한 걸음 뒤에서 지켜만 볼 뿐, 그 앞에 직접 나타나서 관여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는, 루베르라는 독특한 인물이 욕망을 부추겼을 때 가감 없이 드러나는 아이들의 생동적인 모습과 그에 따른 선택에 주목할 수 있다. 『밤의 옷장 루베르 의상실 1. 악마의 바지』는 ‘지금’ 어린이의 고민에 주목해, 아이들이 깊이 공감할 이야기를 담았다. 어린이들의 고민은 어른의 고민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 날것의 진지한 고민을 하기도 한다. 작품 속에서 래은이는 루베르가 만든 옷을 입으면서 비로소 자신의 상처를 제대로 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의 상처와 정면으로 마주해, 속마음을 터트려 이서와도 제대로 대화하게 되고, 부러워했던 이서 역시 자신처럼 사랑받기 위해 아등바등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제야 래은이는 자신이 소정이에게 받았던 위로를 이서에게 건네는 아이로 성장한다. 혼자가 그저 외롭고 나약한 일은 아님을, 누구든 한 마리의 고래처럼 너른 바다의 물살을 가르며 당당히 나아갈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렇기에 외로움을 인정하고, 스스로 중심을 잡아 성장하는 래은이의 모습은 더욱 찬란하게 빛난다.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다쳤는지 직접 확인해야 한다. 꽁꽁 숨겼던 상처를 드러내는 것은 상처를 낫게 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고, 그렇게 해야만 곪지 않고 새살이 돋을 수 있다. 이 동화에서는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관계에도, 진심을 부딪치자 서로의 위로가 되어 서툴지만 함께 나아가는 어린이들을 만날 수 있다. 긍정적인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는 스스로의 가능성을 향한 믿음과, 자신의 부족함을 받아들이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니라는 용기를 건네는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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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는 어떻게 자라나는가.
혼자가 되고 싶지 않고, 친구들에게 인기를 얻고 싶어 하는 것은 많은 어린이의 바람이지만 이루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를 가능하게 해 주는 마법의 옷이 있다면 어떨까? 루베르는 ‘네가 원하는 걸 줄 수 있다’는 새빨갛고 달콤한 말로 주인공의 마음을 건드린다. 어린이라서 유혹에 취약한 게 아니라, 어린이도 사람이기에 유혹에 취약하다. 책을 읽는 내내 나 역시 깊고 어두운 마음이 있었기에 래은에게 “그러면 안 돼”라는 말보다는 “나도 그랬어” 하고 깊이 공감했다. 그렇기에 래은이의 이야기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은 유혹을 이겨 내는 어린이의 슬기로운 선택에 괜히 뿌듯해졌다. 어떤 상황에서든 바르고 선하게만 살라는 가르침은 불가능하다. 어린이들의 성장에도 도움되지 않는다. 부정적인 마음을 숨기고 모른 척하기보다, 두려워하지 않고 직접 마주할 때 비로소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리즈는 환상적인 작품이다. 『밤의 옷장 루베르 의상실 1. 악마의 바지』는 어린이가 자신의 욕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룰 수 있는지 보여 주는 매력적인 이야기다. 루베르라는 존재가 더더욱 알고 싶어진다. - 김혜정 (청소년, 아동문학 작가 『오백 년째 열다섯』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