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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006
빨강 마커펜 011 호구의 묘수 031 전자 칠판 소동 053 A8호 0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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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나래, 나를 친구로 생각하긴 했어? 네가 더 돋보이려고 같이 다녔던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넌 항상 네 마음대로야. 내 생각은 하나도 안 하잖아.” “내가 뭘 어쨌다는 거야. 지금껏 말 안 하고 있다가 갑자기 그래?” “너와 싸우게 될까 봐 참았어! 계속 참았다고!” 나는 깊숙한 곳에 있던 말을 내뱉었다. 나래가 흠칫 놀라며 눈만 끔벅였다. “나도 이런 내가 싫어, 꾹꾹 담아 놓고 말 못 했던 게 후회가 돼.” 울음을 삼키며 다 쏟아냈다. 말하고 나면 속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허전했다.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간 것 같았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나래가 천천히 입을 뗐다. “범인이 너라는 거, 증거가 확실했지만 믿기지 않았어.” ‘이미 알고 있으면서 나를 시험한 거야? 역시 넌 그런 애야.’ “그다음에는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었고.” ‘나는 오랫동안 견뎌왔어.’ “항상 내 편이었던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내가 오죽했으면 그랬겠어. 그동안 나도 너무 힘들었어.’ 쏘아붙이던 나래가 감정을 누르는 듯 숨을 들이마셨다.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네가 편해서 그랬지, 너를 친구로 생각 안 했던 적은 한 번도 없어.” 나래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편해서 그랬다고? 난 항상 네가 필요할 때만 부르고 필요 없을 땐 던지는 물건 같았어.” --- p.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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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용기는 나를 숨기지 않는 것.”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며 자라는 아이들의 이야기 친구를 향한 마음이 엇갈리고, 진심을 말하는 일이 서툴러 상처를 주고받는 아이들. 김은아 작가의 동화집 『빨강 마커펜』은 그런 아이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비추며, 성장의 순간을 따뜻하게 포착한다. 〈빨강 마커펜〉, 〈호구의 묘수〉, 〈전자 칠판 소동〉, 〈A8호〉- 네 편의 이야기는 모두 다르지만, ‘진심과 용기’라는 하나의 줄기로 연결되어 있다. 표제작 〈빨강 마커펜〉은 친구의 재킷에 낙서를 한 아이가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이야기다. “빨강 마커펜만 혼자 뚜껑이 없다.”는 마지막 부분 문장은 아직 닫히지 않은 마음, 완성되지 않은 우정을 상징한다. 상처와 오해, 그리고 진심 어린 사과를 통해 작가는 ‘진짜 용기란 나를 숨기지 않는 것’임을 보여준다. 〈호구의 묘수〉는 게임과 바둑을 병치하며 ‘진짜 이김’의 의미를 묻는다. 친구보다 앞서고 싶었던 은호는 결국 “이제 너와 함께 하는 게임은 하나도 즐겁지 않아!”라며 욕심을 내려놓는다. 패배보다 더 어려운 것은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라는 것을, 작가는 아이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일러준다. 〈전자 칠판 소동〉은 교실에서 벌어진 작은 사고를 통해 신뢰와 오해의 문제를 유쾌하게 풀어낸다. 깨진 줄 알았던 전자칠판은 사실 ‘보호 화면’이었고, 아이들은 그 경험을 통해 진짜 마음의 균열이 무엇인지 배우게 된다. 작품 속 “깨진 화면 보니 어때, 긴장되지?”라는 교사의 한마디는, 서로를 믿는 일이 얼마나 큰 용기인지 되묻게 한다. 마지막 작품 〈A8호〉는 로봇개미가 숲을 지키는 판타지 동화로, 인간과 자연, 기술의 관계를 따뜻하게 성찰한다. 자신의 임무가 곰솔나무를 파괴하는 것임을 알게 된 로봇개미는 “내 진짜 임무는 이거였어. 내가 증거가 되는 거”라며 자신을 희생해 숲을 지킨다. 이 결말은 생명과 공존의 가치를 묵직하게 전하며, 어린이 독자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김은아 작가의 문장은 단정하면서도 섬세하고,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호흡이 탁월하다. 그의 동화에는 어른이 미처 보지 못한 아이들의 세계가 살아 숨 쉬고, 아이들 안의 어른이 조용히 자란다. 삶의 진심을 배우는 모든 독자에게, 『빨강 마커펜』은 오래도록 남을 한 줄의 밑줄처럼 따뜻하게 머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