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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디어의 구세주
2. 의혹의 시대 3. 언론, 권력, 그리고 민주주의 4. 오늘날 기자가 된다는 것은 5. 텔레비전 뉴스의 종말을 향하여? 6. 시체간음증 환자 텔레비전 7. 세 개의 미디어 신화 8. 새로운 제국들 결론 :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공을 들여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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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를 얻는다는 것은 아무런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생산적인 활동이며 진정한 지적인 동원을 요구하는 활동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이 그의 시간,돈, 관심의 일부분을 그것에 바칠 수 있을만큼 고상한 활동인 것이다. 정보는 현대적 오락의 양상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며 오락이라는 은하수의 한 유성이 아니다. 그것은 그 목표가 시민을 형성시키는 데 있는 시민교육 학과목이다.
--- pp.195-1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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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미디어 분야는 신자유주의에 사로잡히고 있으며 뉴스는 점점 더 품삯을 받고 일하며 제공된는 재료로 주문에 맞추어 뉴스를 만들어 내는, 멋대로 부려먹는 임시기자들에게 하도급으로 맡겨지는 추세이다.
--- p.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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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기자들은 특히 광고나 광고주가 뉴스의 내용에 대해 행사하는 영향력과 압력을 걱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거대한 미디어 그룹이나 미디어의 대주주-소유주가 하는 협박도 존재한다. 리자르 카푸킨스는 다음과 같이 걱정하고 있다. <지난 10년 또는 20년 동안, 뉴스는 선전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이윤을 가져다줄 수도 있음을 깨달은 다국적 기업들 간의 미디어 통제를 위한 커다란 사움이 목격되었다. 단 하나의 경제 그룹이 정보 전체를 통제하고 이 지구상의 600억에 달하는 개인들이 무엇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를 결정하게 될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다. 물론 이는 정말로 가능하지는 않은데 그렇게 되면 반독과점 규제를 이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이 점점 더 확실해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중앙위원회가 검열을 통해 뉴스를 선별하던 공산주의 사회에서와 똑같은 경향을 발견하게 된다.> 이 모든 강요와 위협들의 무게는 기자들이 그들의 윤리의식을 옹호하려고 하는 수많은 저항의 경우들이 있긴 하지만 또한 포기나 나아가서는 암묵적인 공모의 많은 경우들이 존재하는 이유를 잘 설명해 준다. --- p.83-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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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머를 방송하는 것 >
루마니아는 몇십 년 전부터 폐쇄된 비밀국가로서 소수의 전문가들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일련의 사건들 덕분에 수백 명의 기자들이 혼란스러운 상황의 한 가운데 서서 몇 시간 만에 그리고 대사관 보도담당관들의 통상적인 도움 없이, 수백만 명의 시청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설명해야만 했다. 이러한 요소들이 결합됨으로써 비정상적인 뉴스 전달방식이 보다 용이하게 나타났다. 기자들은 오래된 정치적 신화의 기초 원리들 - 엄청난 매혹의 힘을 얻었던 - 과 중요한 정서적 공감들의 유사점들에 교묘하게 근거하면서 끈질기게 돌아다니는 소문들을 곧이 곧대로 퍼뜨리고 다니는 것이었다. --- p.148-1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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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머를 방송하는 것 >
루마니아는 몇십 년 전부터 폐쇄된 비밀국가로서 소수의 전문가들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일련의 사건들 덕분에 수백 명의 기자들이 혼란스러운 상황의 한 가운데 서서 몇 시간 만에 그리고 대사관 보도담당관들의 통상적인 도움 없이, 수백만 명의 시청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설명해야만 했다. 이러한 요소들이 결합됨으로써 비정상적인 뉴스 전달방식이 보다 용이하게 나타났다. 기자들은 오래된 정치적 신화의 기초 원리들 - 엄청난 매혹의 힘을 얻었던 - 과 중요한 정서적 공감들의 유사점들에 교묘하게 근거하면서 끈질기게 돌아다니는 소문들을 곧이 곧대로 퍼뜨리고 다니는 것이었다. --- p.148-1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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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의 횡포란 누구나 느낄수 있는 실제 횡포일 수도 있고 어느덧 형성된 문화적 권력에 의한 상징폭력일 수도 있다. 이 책이 다루는 것은 후자 쪽이다. 저자인 이냐시오 라모네는 이 책에서 신문과 잡지, 텔레비전에 대한 다각도의 예리한 진단을 통해 지금 언론의 상업주의와 선정주의를 비판하고 21세기 정론의 방향을 제시한다. 진실을 왜곡하고 호도하는 자극적이고 과장된 보도 형태들은 단순히 기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중심의 세계 시장 체제와 텔레비전 중심의 거대 미디어들에 휩쓸리는 언론 시스템 전체의 문제이다. 뿐만 아니라 즉각성과 순간성으로 대표되는 인터넷 환경은 기존 언론매체의 한계를 넘어서 문제를 확장해 왔다.
오늘날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은 새로운 가능성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판매 부진과 불신 등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기존 매스 커뮤니케이션과 사이버 공간의 만남은 둘 다에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정론지나 상업자나 모두 과잉 상품화되어 이윤 논리에 지배당하는 상황에서 인터넷의 엄청난 확산은 오히려 숨돌릴 틈을 안주고 사정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발빠른 매체에 뒤지지 않기 위해서도 기존의 언론은 점점 더 선정적이고 무책임한 뉴스를 실을 수밖에 없게 된다. 판매 촉진을 위해 과잉정서를 부추기고 미확인 소문들을 서로 경쟁적으로 지면화시키면서 난관에 봉착한 미디어들은 이제 일종의 구세주를 열망하게 되었는데, 어떤 실제적으로 과격한 일을 벌이지는 않으면서도 모든 사람들의 애정을 한몸에 받을수 있는 전세계적 수준의 담론을 지니고 있는 인물을 뉴스의 제1소재로 선호하고 있다는 말이다. 과거에 팽배했던 미디어에 대한 불신은 주로 정치권력이 언론을 통해 사람들을 통제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디어는 양날의 칼과 같아서 그 통치자들에게 유리하게만 작동되질 않는다. 사람의 마음은 일방적으로 움직여지는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이후 불거진 언론에 대한 두번째 의혹은 일련의 가짜 뉴스 스캔들이었다. 이러한 불신의 사태는 정보의 진실성에 덜 민감한 기업체 출신 경영주들 아래서 더 심각해져 갔다. 미디어에 대한 불신을 부추기는 무엇보다 심각한 경향 중 하나는 뉴스가 점점 조사의 저널리즘이 아닌 폭로의 저널리즘에 지배되고 있다는 것이다. 텔레비전 이미지가 뉴스를 지배하는 현실 속에서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신문이 폭로라는 선정적 글쓰기를 통해 예전의 영향력을 회복하려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지에 대한 현혹은 점점 더 감정적인 면에 호소하게 된다. 세계와 실시간으로 연결된, 현장의 생중계 이미지라는 현란함은 시청자에게 즉각적 반응을 불러일으키지만 사실 별다른 내용을 전달해주고 있지 못하다. 마치 운동 경기의 중계처럼, 이미지들의 나열만이 중요해진다. 더이상 조사를 할 필요가 없는것이 현장에 있는 이미지만을 보여주면 그것은 사실로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뉴스는 점점 더 화려하게 짜맞춰진 쇼가 되어간다. 권력은 이제 기자의 글쓰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대신 이미지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한다. 이미지가 없으면 현실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민주적인 검열은 정보의 삭제, 금지가 아니라 정보의 과잉, 포화를 통해 검열한다. 몇몇 선정적인 이슈들이 언론에 병풍을 치고 나면 정말로 중요한 사실들은 그 뒤에 가려지거나 관심을 벗어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기자는 더이상 뉴스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 그에게로 찾아오는 정보들을 처리하기에도 너무 버겁기 때문이다. 많은 수의 미디어 노동자들이 익명으로 뉴스를 생산하며 그 진실성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 체계 속에서 기자는 단순 노동자로 전락해 간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폭발적 증대는 누구라도 기자가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기업의 광고와 로비 또한 모든 커뮤니케이션 수단들을 잠식하고 있다. 그리하여 의사소통을 하면 할수록 더 적은 정보를 전달하게 되며 더 많이 정보를 왜곡하게 된다는 역설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다면 직업기자의 고유한 권한과 의무는 무엇인가? 미디어들은 더이상 특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제 미디어 자체에 대한 정보를 사람들에게 주어야 한다. 또한 시민들은 미디어가 끊임없이 독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기비판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오히려 이제서야 기자는 사건 현장의 증언자일뿐 아니라 진정한 책임감을 가진 분석자이자 중계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이 모든 사태에 대해 직접 발벗고 나서야 하는것은 이 모든 사태의 수혜자인 독자와 시청자들이다. 시민으로서 가져야 하는 공적 사명감과 더불어 냉쳘한 지성을 갖춰야 한다. 정보와 커뮤니케이션을 혼동하면 안된다. 각 미디어를 판단하고 오락거리와 정보를 구분해야 하는 것이다. 정보는 아무런 노력 없이 거실 쇼파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얻어지지 않으며 자신의 시간, 돈, 관심의 일부분을 바치는 생산적 활동을 통해서야, 대가를 치르고서야 얻어진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시민은 민주주의적 삶에 현명하게 참여할 권리를 획득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