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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예수교장로회의 형성과 개교회 기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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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제1부 _ 대한예수교장로회의 설립과 전개

정운형│언더우드의 초기 활동과 대한예수교장로회
I. 들어가는 말
II. 선교지 결정과 출발
III. 때를 기다리는 언더우드
IV. 핵심 전략

박종현│당회록에 나타난 조선예수교장로회의 제도화 이행 과정
I. 들어가는 말
II. 1930년대 조선예수교장로회와 연합운동
III. 조선예수교장로회의 농촌운동
IV. 1930년대 장로교회의 발전의 토대로서 당회의 성장과 조직화
V. 당회록을 통해 본 장로교회의 발전
VI. 나가는 말

정운형│대한예수교장로회의 창설과 김포읍교회
I. 들어가는 말
II. 기독교 전래와 한국선교회
III. 한국장로교회의 조직
IV. 김포읍교회 설립 과정
V. 나서는 말

김진수│김포의 첫 개신교 김포읍교회 설립 연도 고찰
I. 머리말
II. 설립과 『사기』(史記) 기록
III. 『사기』(史記) 기록 해석의 문제
IV. 김포읍교회 초기 신자와 교회 설립

제2부 _ 한국교회의 신앙 공동체 형성

박종현│김포 지역 교회 당회록을 통해 본 초기 한국교회의 신앙 공동체
I. 서론
II. 김포교회의 지리적 성격
III. 김포교회 당회록에 나타난 책벌과 그 이해
IV. 이명증서와 한국 장로교회
V. 나가는 말

문백란│한국교회 제도화 시기 신앙 공동체 형성을 위한 지역 교회의
분투 (1) - 김포읍교회 당회록을 중심으로
I. 머리말
II. 한국교회 제도화와 김포읍교회 직원 구성
III. 김포읍교회 당회록 내용 분석
IV. 맺음말: 김포읍교회 운영의 특징과 의의

문백란│한국교회 제도화 시기 신앙 공동체 형성을 위한 지역 교회의
분투 (2) - 세교리교회 당회록과 양평리교회 교우문답집을
중심으로
I. 머리말
II. 세교리교회 당회록과 양평리교회 교우문답집 내용 분석
III. 맺음말

박장미│차재명(車載明) 목사 소고
I. 들어가는 말
II. 차재명의 일생 ― 목사가 되기까지
III. 목사로서 차재명의 생애
IV. 맺는말
차재명(車載明) 목사 연보

편집 후기

지은이 알림

저자 소개 5

김포새누리교회 담임목사, 김포의병기념사업회 이사장, 김포 3.1만세운동연구소 소장. 김포문화원 부원장 역임, 김포시지 편찬위원 역임 저서: 『김포항일독립운동사』 (2006) 『김포독립운동 조사자료집』 (2009) 『조선왕조실록에서 김포역사를 찾다』 (2017)
전남대학교 사학과, 연세대학교 대학원(문학박사)에서 수학하였으며, 현재 연세학풍연구소 전문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언더우드와 에비슨의 신앙관 비교」 등의 논문들을 썼고, 본 연구소에서 간행한 『연·세전 교장 에비슨 자료집』 (Ⅰ)과 (Ⅲ)을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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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한국생산성본부 출판부 근무, 온고학당 원장, YWCA100년사 편찬위원회 고문 한문교사중앙연수원 교수, 대한민국 한자교육연구회 전문위원 저역서: 새문안교회 제직회록 제3권 · 제4권(1931~1938) 한글 풀이본 감수 새문안교회 당회록 (1907~1967) 현대어 풀이본 완역 (전 10권)
연세대 신학과를 거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관동대 교수, 연세대 겸임교수를 지냈다. 연세대 국학연구원 전문연구원, 명지대학교 객원교수로 있다. 『다시 목민: 고영근 평전』, 『기독교와 문화』, 『미국 남장로교 여선교사 기도회연구』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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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졸업 (B.A), 연세대학교 일반대학원 졸업 (Ph.D.)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연세학연구소 전문연구원, 연세대학교 객원교수 (현재) 논문 및 저서: “언더우드의 선교지 결정과 출발.” ?東方學志? 제175집 (2016) “근대교회의 기록물 활용 방안.” ?교회사학? 제15권 제1호 (2020) 『한국 근대의학의 선구자 해관 오긍선』. 역사공간, 2020 『대한예수교장로회의 형성과 개교회 기록물』. 동연, 2025.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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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9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276쪽 | 152*224*20mm
ISBN13
9788964470893

책 속으로

언더우드는 알렌(Horace N. Allen, 1858~1932)의 제안으로 설립된 제중원의 교사로 활동하며, 언문을 배우는 가운데 여러 모양의 선교 준비 활동을 펴 한국 개신교의 형성과 제도화를 실질적으로 선도하였다. 그는 고아원 사업과 전염병 퇴치 운동으로 정부의 신임을 얻는 한편 서민들의 양이(洋夷) 감정을 누그러뜨렸다. 또한 기독교 자료 번역, 첫 교회 조직과 순행전도 그리고 지도자 양성 과정(신학반) 개설, 선교 기관과 교회 설립, 신문 발간 등을 통해 포교 기반과 자원의 확보12에 심혈을 기울였다. 나아가 후임 선교사들과 함께 한국 개신교의 한 축인 ‘대한예수교장로회’를 설립하여 한국 전역에서 개신교가 정착할 수 있는 기틀을 다져놓았다.
--- 「1부-정운형 _ 언더우드의 초기 활동과 대한예수교장로회」 중에서

김인서와 주기철과 같은 복음주의 신앙, 조선 장로교회의 높은 신앙고백, 역사적 환란을 견디어낸 순교자적 신앙도 이러한 당회로부터 시작된 풀뿌리 신앙 교육에서 시작하였다. 장로교회 농촌부의 배민수, 유재기, 최문식의 농촌활동은 조선 장로교회가 순교자적 복음신앙 뿐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역사 속에 구현하려는 하나님 나라의 신앙을 조선의 농촌에 구현하려던 예수촌의 꿈을 잉태하기도 하였다.
--- 「1부-박종현 _ 당회록에 나타난 조선예수교장로회의 제도화 이행 과정」 중에서

김포읍교회(현 김포제일교회)는 청일전쟁 직후에 김포 지역에 설립된 첫 교회이다. 김포 지역에 복음이 전달되고 그에 따른 개종이 이루어지는 시기는 미 북장로회가 다른 장로회와 함께 선교공의회를 이루어 개신교 신경과 장로회 정치를 사용하는 연합교회 설립을 목표한 직후이다. 이때는 선교회 차원에서 네비우스 선교 방법이 채택되고, 선교사뿐 아니라 새문안교회당에 개설된 신학반 과정을 수료한 전도인, 조사, 권서 등에 의해 「셩교촬리」, 「중생지도」, 「덕혜입문」과 같은 소책자가 보급되고 있었다. 그런데 김포 지역에서의 개종과 교회 설립은 선교사 또는 전도인/권서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 주민이 복음을 접한 인근 마을을 방문한 이후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김포제일교회는 규정을 준수하여 당회록을 비롯해 8종의 기록물을 생산하여 비교적 온전히 보존하고 있다. 이 교회가 소장한 여러 기록물은 『사기』, 「그리스도신문」 그리고 언더우드가 설립한 교회 문헌과 비교 ? 검토할 수 있으며, 특히 “교인명부”와 “입교인명부”는 한 사람의 회심에 따라 그 주변이 집단으로 개종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 「1부-정운형 _ 대한예수교장로회의 창설과 김포읍교회」 중에서

김포읍교회 설립에 대한 『제일교회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김포읍교회의 설립의 근거로 『사기』(史記)의 두 기록을 기준으로 1894년의 기록을 미조직교회로, 1897년의 기록을 조직교회로 규정하고 있다. 김포읍교회의 공식 설립 연도가 1897년이지만, 교회의 출발을 1894년의 기록을 선택하여 김포읍교회 공식 설립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또한 1894년 3월 3일의 설립 일자에 대해서는 그 역사적 근거로서 1956년도에 담임 교역자인 김형원 목사가 기술한 김포교회 창립 약사에서 밝힌 1894년 3월을 설립일로 삼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 그러나 설립 1894년 3월까지는 그 근거를 제시한 자료상의 출처가 있지만 3일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 「1부-김진수 _ 김포의 첫 개신교 김포읍교회 설립 연도 고찰」 중에서

김포교회 당회록에 나타난 책별 종류별 귀책 사유는 주로 신앙생활의 불성실과 기독교윤리 위반이라고 할 수 있다. 당회에서 권면의 대상이 된 가장 많은 이유는 주일성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체 권면 사유 91건 중 89건이 주일성수를 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었다. 다른 사유는 가정 사정의 어려움이나 집사로서 직무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것이 등장한다.
권면을 넘어 구체적 책벌이 시행된 것은 154건이다. 책벌은 권면으로도 시정되지 않는 신앙생활 위반이 있는 경우 구체적으로 벌을 시행하는 것이다. 책벌의 사유로 다수를 차지한 것이 주일성수 위반이었다. 책벌이 시행되는 경우는 최소 3개월 이상부터 3년 이상 주일성수를 하지 않는 경우였다.
--- 「2부-박종현 _ 김포 지역 교회 당회록을 통해 본 초기 한국교회의 신앙 공동체」 중에서

당회는 세례 문답, 성례식, 이명도 철저하게 관리하였다. 당회록에 적힌 문답자들의 신상기록을 보면,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였으나, 1940년대에는 직업이 더 다양해졌으며, 오늘날보다 가족 수가 훨씬 더 많았고, 온 가족이 함께 믿는 경우가 많았다. 문답을 여러 번 지원한 자들이 있었던 것은 심사가 꽤 엄격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세례 ? 학습 ? 입교 문답자들 사이에서는 여자가 남자보다 더 많았지만, 유아세례의 경우에는 남자가 여자보다 더 많았다. 이명증서 접수자의 가족 관계와 수세 상황도 당회록에 기입되었는데, 기록을 보면 타지에서 온 교인보다 떠나는 교인이 조금 더 많았다.
--- 「2부-문백란 _ 한국교회 제도화 시기 신앙 공동체 형성을 위한 지역 교회의 분투 (1)」 중에서

오늘날 남아 있는 세교리교회의 당회록은 교우문답집이 아니므로 교인들의 정보를 상세히 제공하지 못하고 양평리교회의 교우문답집은 당회록이 아니므로 교회 운영 상황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세교리교회 당회록에서 수세 상황을 가늠해볼 수 있고, 양평리교회 교우문답집에 실린 임시 당회 회의록에서 교회 운영 상황을 약간 살펴볼 수 있다. 이 논문에서는 연구 시기를 한국교회가 제도화 과정을 밟는 일제강점기로 한정하고, 지금까지 연구자료로 사용된 적이 없는 서교동교회와 양평동교회의 옛 기록물을 살펴서 세교리교회와 양평리교회로 불리던 시절에 교회들이 어떻게 운영되었는지를 알아보았다. 그 시기에 두 교회는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가 1922년 헌법을 통과시키고 1929년 직제를 보완해가는 동안 미완의직제와 기존 관행 안에서 교회를 운영해야 하는 형편 아래 있었다.
--- 「2부-문백란 _ 한국교회 제도화 시기 신앙 공동체 형성을 위한 지역 교회의 분투 (2)」 중에서

3.1운동 당시 영등포교회를 담임하던 차재명 목사는 영등포교회에서 학생들을 중심으로 태극기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고, 교인들과 주민들은 그 태극기를 들고 영등포 공작창으로 달려가 철길 위에서 만세 시위를 하였다고 한다. 3.1운동 다음날이 주일이었기 때문에 교인들은 예배를 드린 후 다시 시위에 참가하였다. 그 후 일본 경찰의 검문이 심해지자 차재명 목사는 교인들에게 여러 가지 주의 사항을 알려주었고, 광고 시간을 이용하여 이를 상기시키곤 하였으며, 3.1운동 이후 상처받은 교인을 위해 2주 동안 대대적인 부흥 집회를 열어 신앙으로 재무장하고 자유 정신을 승화시키는 데 진력하였다고 한다.

--- 「2부-박장미 _ 차재명(車載明) 목사 소고」 중에서

출판사 리뷰

연세학연구소는 연세가 쌓아온 학문의 성과와 사회적 기여를 살피고, 연세의 이념과 자산을 돌아보기 위해 연구 논집과 자료집을 다음과 같이 편찬했다.

언더우드의 초기 행적을 주목하여 정주 선교사가 입국한 후 신앙의 표준과 장로회 정치를 사용하는 개별 교회의 설립, 그리고 기록물을 생산하고 보관하는 규칙을 마련하기까지 약 20년간의 시기를 숙고하였다. (정운형) 김포읍교회와 새문안교회에서 분립한 세교리교회(現 서교동교회), 양평리교회(現 양평동교회)의 당회록과 교우문답집 등을 자세히 살펴, 각 교회가 신앙공동체를 보존하기 위해 분투한 것을 살폈다. (문백란) 초기 기독교교육이 신앙과 제도화에 기여하고, 나아가 식민지를 벗어나게 하는 동력이 된 것과 당회록(김포읍교회)에 나타난 권징(勸懲)과 치리(治理)가 교회의 외적 제도를 확립하고 신자의 생활을 표준화하는 목표를 구현하는 수단이었음 밝혔다. (박종현) 김포에서 나고 자라 목회하며, 김포읍교회의 설립연도를 고찰했다. (김진수) 새문안교회 교회역사자료위원의 차재명 목사 소고를 실었다. (박장미)

당회록은 한국장로교회의 구체적 역사를 담고 있는 소중한 역사적 기록물이다. 한국에 개신교회가 정착하던 시기부터 지역의 최소 단위 신앙 공동체인 교회의 대의적 행정기관인 당회는 쉬지 않고 일어나는 교회의 사안을 이해하고, 숙고하고, 결의하여 신앙 공동체를 유지해야 했다. 그런 점에서 당회록 연구는 한국장로교회 역사 연구의 필수적 요소다. 그럼에도 당회록을 사료로 연구한 경우가 희박하다. 그런데 이번 『대한예수교장로회의 형성과 개교회 기록물』에서 다섯 분의 연구자들이 참여하여 당회록을 기초 사료로 지역 교회의 역사적 연구가 본격 등장하게 되었다. 이는 작지만 한국 개신교 연구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평가한다. 이번 연구를 시작으로 연속적인 후속 연구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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