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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희 추천사_ 결혼이라는 참 이상한 일
기획자 코멘트_ 신인작가를 발굴한다는 것 프롤로그_ 궁합은 상극, 인생은 희극 1. 나와 정반대에 있는 사람 가늘고 긴 손가락을 사랑한 죄로 소개팅에서 도망 간 남자 교집합이라고는 없는 사이 떨어져 있어도 너는 늘 내 옆에 있어 산책 중독 검소한 명품주의자 벌써 몇 번째 다이어트 저마다의 로맨틱 가족이 꼭 원팀일 필요가 있어? 2. 일복 없는 자의 자아실현 열망의 실체를 확인하는 법 관찰자의 시선 우울할 자격 강남 사는 분이 뭐가 걱정이에요 평범하게 살 용기 돈에서 자유롭길 원한다면 3. 가족이라는 변수 마무리를 해낸 사람만이 시작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사소한 아름다움을 맞이할 준비 새벽잠을 포기한 대신 할 만큼 한 사람의 이별 방법 못생겨질 것이 뻔한 환경에서 그를 구한 것은 매일 면접에서 떨어진다는 마음으로 그래도 내 인생 최대 업적은 동안이란 무엇인가 4. 술과 밤이 없었다면 남편이 둘인 여자 스물이었다 미지근한 카스와 돌아올 수 없는 M에게 밤과 이별하는 삶 고요한 소우주의 시간 주량도 모른 채 끝나는 인생이란 나도 이제 외롭고 싶다 에필로그_ 읽어주는 사람이 있을 때 글은 완성된다 블라인드 독서단 명단+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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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은 머뭇거리거나 망설이고 수줍거나 민망해하는 그의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어떤 말인가 하고 싶은데 그러질 못하는 표정일 때, 그의 손가락들은 어김없이 자신만의 의지와 영혼이 있는 것처럼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어떠한 고민에 빠져 답을 보류해야 할 때면 손가락도 조용하고 가지런하게 상념에 빠진 듯 보였다. 감정을 숨기지는 못하되 조심스러운 그 손가락을 연애 기간 내내 사랑했다.
--- p.30 「가늘고 긴 손가락을 사랑한 죄로」 중에서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이름 짓기에 골몰하던 그가 산책길에서 새로운 제안을 해왔다. 지하철 노선도를 보면서 역 이름에 들어가는 발음들을 조합해 이름을 만들어보자는 거였다. 이건 또 무슨 개소리인가 싶었지만 한편으로 머리를 굴려보니 지하철역 중에는 서현, 아현, 미아, 혜화처럼 발음이나 조합이 곱고 예쁜 이름이 많았다. 마지못해 응하는 척했지만 하다 보니 자존심 상하게 조금씩 재밌어졌고, 나중에는 도시나 동네 이름으로도 해보자며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기에 이르렀다. “혜안 어때, 혜안?” 온갖 역과 인명, 동네와 지역명을 헤집어보며 수없이 많은 조합을 거친 끝에 갑자기 남편이 이렇게 외쳤을 때, 나는 이것이 우리 아기의 이름이 될 거라 직감했다. --- p.56 「산책 중독」 중에서 무엇보다 그 호텔의 예약을 망설였던 가장 큰 이유는 호텔이 서울에 있어서였다. 왜 집에서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지, 누가 같은 동네에 ‘놀러’ 가지 ‘여행’을 간다고 하냐며 남편이 타박해올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정작 남편이 꺼낸 얘기는 더 가관이었다. “아니, 넓은 집 놔두고 왜 단칸방에서 비좁게 자야 돼??” 헐! 단칸방이라니. (‘헐’이라는 표현보다 내 마음을 더 적확히 드러내는 단어를 찾지 못하겠다.) --- pp.78-79 「저마다의 로맨틱」 중에서 “에이, 강남 사는 분이 뭐가 걱정이에요.” 먹고살 걱정 없이, 생계와 상관없이, 여유롭게 직장생활 해도 되지 않겠냐는, 어쩌면 반쯤 부러움도 섞였을 그 말이 나에겐 날카롭게만 느껴졌다. 안 그래도 뒤늦게 복직해서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에 배배 꼬인 열등감까지 더해졌고, 나에게 선을 긋는다는 마음마저 들었다. 조직 내에서의 성취감은 그 어떤 것보다 큰 보상이 된다. 밖에서 보기엔 아무 의미 없는, 우물 안 개구리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며 주고받는 훈장에 불과할지라도 그 안에서만큼은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가장 큰 동기부여다. 그러나 동료들에게 나는 굳이 더 위로 올라가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 대충해도 되는 사람, 조직의 보상에 목매지 않아도 될 사람으로 그렇게 분류되었다. --- pp.124-125 「강남 사는 분이 뭐가 걱정이에요」 중에서 그러고 보면 시작만큼 쉬운 일이 없다. 누구나 다 시작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나 끝을 맺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드라마 주인공이 여러 고난과 위기에 놓이는 과정을 거치듯, 시작을 한 사람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인고의 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묵묵히 견뎌낼 수 있느냐, 내 존재감을 숨기고 버틸 수 있느냐, 꺾여도 계속 해낼 마음이 있느냐의 문제가 닥친다. 중요한 건, 마지막 마무리를 잘해낸 사람만이 시작도 했었던 사람으로 기억된다는 사실이다. --- p.145 「마무리를 해낸 사람만이 시작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중에서 남편은 로또를 샀다. 가족의 죽음과 로또, 어쩌면 불경해 보일 수 있는 이 조합이 나는, 가장 근거리에서 남편을 지켜봐온 사람으로 감히 ‘할 만큼 한 자’의 이별 방법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부모는 생을 마감할 때 자신에게 가장 잘했던 자식의 꿈에 찾아간다고 하던데, 우리 어머님은 돌아가시기 1시간 전 남편의 꿈에 찾아와 밑도 끝도 없이 몇몇 번호를 불러주셨다고 한다. 그 얘길 듣고 내가 조금도 놀라지 않았던 건 정말 그럴 만해서였다. --- pp.164-165 「할 만큼 한 사람의 이별 방법」 중에서 중학교에 입학하고부터 몸도 마음도 급작스럽게 자라난 아이는 매일 우리에게 고민거리와 걱정거리를 안겨준다. 크고 작은 이런 일들은 대체로 나에게 ‘화가 난다’기보다는 ‘속이 썩는다’는 기분이 들게 한다. 내 말을 잘 들어주고 거역할 줄 모르던 애인이 어느 날 갑자기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나를 차버렸을 때의 배신감을 상상해보니 비슷한 느낌일 것 같다. 첫째는 이제 나에게 아이가 어른을 화나게 하는 방식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느낄 수 있는 배신과 분노를 느끼게 한다. --- pp.183-18 「매일 면접에서 떨어진다는 마음으로」 중에서 사십 대가 되니 뭐 그리 대단히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아니어도 인연은 자연스레 정리가 되었다. 사실 ‘불미’보다 ‘빈정’이 가까운 사이에서는 사람 속을 더 상하게 한다. 빈정이라는 말은 명사가 아니라서 사전에 ‘동사 빈정거리다의 어근’이라고 나온다. 그러나 우리는 빈정이 상할 때, 그 빈정이 무얼 뜻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지속적으로 내 카톡에 늦게 답을 한다든가, 읽고도 답을 안 한다든가,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들으면 그 뒤에는 확인도 안 한다든가 하는. 쓰면서도 빈정 상하는 이런 일들은 평화로운 일상에서 손톱 밑에 든 가시 같은 느낌으로 내 기분을 거스른다. 이걸 따지고 들어도 되나, 뭔가 개운치 않은 이유는 뭐지, 나만 바보 되는 기분이네, 하다가 틈이 벌어지고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게 바로 빈정이다. --- pp.205-206 「남편이 둘인 여자」 중에서 그녀는 내가 질투와 시기 같은 감정을 다 제쳐두고 진심을 다해 합격을 축하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고 나자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M이 나의 등대였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빠르게 미지근해져 가던 김 빠진 맥주를 나는 더이상 마시지 않게 되었다. 아니, 이젠 그런 맛없는 맥주를 마시지 않아도 된다. M은 내가 아는, 가장 반짝이던 청춘이었다. 사람이 한평생 낼 수 있는 에너지의 총합이라는 게 있다면 그녀는 그래서 그 짧은 시간 동안 온 힘을 다해 빛을 내었나 보다. --- pp.225-226 「미지근한 카스와 돌아올 수 없는 M에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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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합은 상극, 인생은 희극
이렇게 안 맞아도 어떻게든 굴러간다 사회부 기자를 꿈꾸던 저자는 수년 간 준비하던 언론 고시에 수차례 낙방하고 완전히 미련을 버린 뒤 결혼한다. 남편은 어느 면으로 보나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취향, 성향, 기질, 성격, 사고방식, 경제관념, 세계관이 대척점에 있는 남자. 가늘고 긴 손가락에 이끌린 저자는 남편의 진중함과 사려 깊음이 자책이나 후회와 한통속이라는 걸 같이 살고서야 깨닫는다. 5성급 호텔을 단칸방이라고 말하는 남자. 싸고 양 많은 게 쇼핑의 기준인 남자. 몸 쓰는 일엔 젬병이지만 책상머리에선 세상 스마트한 남자. 그런 남자와 양극단에 있는 여자는 사사건건 모든 게 이해 불가다. 이것은 일견 불화처럼 보일 수 있으나 글 속에 묘사되는 부부의 케미는 혐관에서 시작되는 로코 같다. 너무 달라서 다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종내엔 피식 웃게 되고야 마는 엔딩. 그것은 필터 낀 억지스러운 미화라기보다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누구라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사실주의에 가깝다. 어른으로서 ‘모양 빠지는’ 모습을 부러 감추거나 포장하지 않고, 가감 없이 드러내며 용감하게 솔직하다. 위트로 빛나는 통찰, 가벼움과 진지함의 간이 딱 맞는 책 밑줄 긋고 싶은 문장들로 가득하다! 일상의 순간을 세심한 관찰력으로 포착한 저자는 위트와 진지함이 절묘하게 더해진 통찰력으로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부분은 필연적으로 어떠한 단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34쪽), ‘마지막 마무리를 잘해낸 사람만이 시작도 했었던 사람으로 기억된다’(145쪽), ‘인간은 왜 등 따숩고 배부르면 자신의 가능성을 다 펼치지 못하는가’(246쪽)처럼 자꾸만 밑줄을 긋게 하고, 의미를 곱씹게 하는 문장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좋은 작품은 창작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 책이 그렇다.” 제목도, 저자도 모른 채 원고를 읽은 ‘블라인드 독서단’의 몰입과 찬사 신인작가의 첫 책이라는 핸디캡을 정면 돌파하기 위해 특별한 사전 서평단을 모집했다. 제목도, 저자도 비공개로 한 ‘블라인드’ 원고 일부를 미리 읽고 리뷰를 쓰는 것.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새로운 방식을 채택한 것은 원고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 색다른 방식에 호기심과 관심을 보인 많은 예비독자들이 블라인드 독서단에 참여했고, 진정성 넘치는 디테일한 표현력으로 이 책에 대한 몰입과 애정을 전했다. ‘좋은 작품은 창작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 책이 그렇다.’(밤박하 님), ‘적당한 유머와 적당한 진지함이 교차하며 일상을 다루는 에세이의 묘미!’(박나정 님), ‘날것 같으면서도 정돈된, 단정하고 따스함이 느껴지는 글. 읽는 내내 모든 문장들에 빨려 들어갔다.’(윤정은 님), ‘집요한 관찰력과 통찰력으로 현실적인 관계의 심리학을 그렸다. 명랑, 유쾌, 발랄한 문장은 몇 번이고 밑줄을 긋게 한다.’(김서희 님), ‘글을 읽는 동안, 어떤 사람의 기쁨과 슬픔과 청춘과 외로움이 내 안으로 흘러 들어오는 느낌이었다.’(김아리 님) 등을 포함해, 수십 명의 진솔하고 애정 어린 리뷰가 책의 마지막 코너에 수록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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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결혼생활의 가장 큰 문제는 ‘동거’, 그러니까 같이 사는 것이다. 같이 살지만 않으면, 내 룸메이트만 아니라면 저 인간을 이렇게까지 미워하지 않아도 될 텐데. 20년을 함께 살았는데도 남편이라는 존재는 늘 내게 놀라움을 안긴다. 아니, 세상에 무슨 저런 인간이 다 있지?
이정원의 첫 책 《상극의 희극》을 읽었다. 이런 글을 읽고 나면 언제나 떠오르는 한 가지 질문이 있다. ‘아씨, 나 어쩌지…?’ 패기와 기세와 리듬이 있는 글은 몇 줄의 문장만으로도 속절없이 빠져들고 만다. 이 에세이집 역시 패기와 기세와 리듬으로 가득하다. 나는 여기에 쓰인 글들이 모두 상대를, 그리고 이 결혼생활이라는 것을 이해해보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이해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어찌나 건전한 일인지. 얼마 전 나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내 삶이 풍요로워진다고 썼는데, 그러고 보면 결혼생활이란 인생이 깊고 풍요로워지기 위한 최고의 도구가 아닐까 싶다. 뭐, 일단 그렇게라도 생각해보자. - 한수희 (《마음의 문제》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