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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사랑
그 새벽의 해설 |
Motoya Yukiko,もとや ゆきこ,本谷 有希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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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달 전 아르바이트를 하던 슈퍼마켓에서 같이 일하는 남자에게 가볍게 데이트나 하자는 말을 들었다. ‘이렇게 별 볼 일 없는 놈한테도 내가 쉽게 보이는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우울증에 빠졌다.이게 몇 번째인지 모른다. 우울증이 언제 시작되고 끝나는지 콕 집어 말할 수가 없어 애매하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나름 심각한 놈이 왔구나 하고 감은 잡을 수 있었다. 아마 그 남자가 누런색 스웨터에 누런색 코듀로이 바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입고 다니는 황당한 패션 감각을 가진 인간인데다 스타킹을 뒤집어쓴 듯한 얼굴 생김새에 충격이 더 심했던 것 같다.
--- p.14 에이씨, 이게 아닌데. 이런 말이 하고 싶었던 게 아니야. 얘기가 이상하게 되어버렸잖아. 이 멍청이가 나를 무시하니까 그런 거야. 나를 그냥 대충 대하니까. 나는 네가 장갑을 끼고서 ‘어, 진짜네. 뭐야, 정말 따뜻하잖아. 역시 야스코는 대단해’ 하며 고마워하기를 바랐을 뿐인데, 어째서 그렇게 간단한 일도 제대로 되지 않는 거야? 내가 “아니, 됐어”라고 말하자 츠나키는 “응” 하며 장갑을 벗더니 소파 쪽으로 휙 던져버렸다. 지금의 실랑이조차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모양이다. 영혼 없는 그 표정을 보니 아까 30도로 올리자 멈춰버린 온풍기가 생각났다. 나에 대한 설정을 ‘27도/약’으로 해놓고 거기에 맞춰 그렁저렁 대하는 츠나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아무래도 3도가 모자라다는 점이 이 바보한테는 도무지 전달이 되지 않는다. --- p.28 “직장도 없이 24시간 계속 집에 있으면서도 집안일을 아무것도 안 하다니, 너무한 것 아냐? 도대체 케이랑 같이 사는 이유가 뭔데? 돈이야? 이런 말을 하기는 뭐하지만 그쪽은 여자로서 어쩌고저쩌고하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꽝인 거 알아? 뭐하러 사는 건지……. 케이는 도대체 뭐가 좋다고 그쪽이랑 같이 사는 거야?” ‘이런 여자가 하는 말은 들을 필요도 없다. 이건 정당한 평가도 아니고, 나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하는 말이니까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안도는 날 선 말을 연거푸 쏘아댔다. --- p.68 이렇게 건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하고 정말 잘 지낼 수 있을까? 나는 화장실 변기에 앉아 벽의 액자에 걸린 ‘서툴러도 괜찮아, 인간이니까’라는, 서예가이자 시인인 아이다 미쓰오(相田みつを)의 글귀를 읽으면서 자문자답해보았다. 자라온 환경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지금까지 내가 가까이했던 사람들은 적어도 어딘가 비뚤어진 구석이 있거나 남들하고 뭔가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고, 그 점은 정말 재미없는 말밖에 못하는 츠나키도 마찬가지였다. --- p.94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정말 갑자기 아닌 거야. 뭔지 모르겠어, 그게. 비데가 좀 겁난다고 하는 걸 이해할 수 없다는 말에 갑자기 어쩔 줄 모르게 된 거야. 생각해봐. 그까짓 비데 가지고 그렇게 됐다니까. 난 말이야, 그 자리를 무슨 일이 있어도 소중하게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별것 아닌 일로 엉망진창 망가뜨려 버렸어. 잘할 수 있었는데. 정말 대책 없어.” 나는 거기까지 쉬지 않고 떠벌린 다음 히죽 웃었다. 그러나 츠나키는 웃지 않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힘들어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기만 할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 어떡하지? 맛이 갔어, 난. 돌아버린 거야.” --- p.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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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20대 문화를 선도하는 모토야 유키코
극단적 우울증으로 숨어버린 이 시대 청춘들의 마음을 쓰다듬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사랑》은 일반적인 연애소설의 틀을 크게 벗어나 있다. 그것은 모토야 유키코가 극작가라는 점과 관련이 있다. 모토야 유키코는 소설가이자 극작가이다. 또한 ‘극단 모토야 유키코’라는 연극 유닛을 이끌고 있다.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모토야 유키코의 장점은 ‘일정한 거리 두기’를 소설 작품에서도 잘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빠른 전개와 장면 전환 그리고 강렬한 캐릭터는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 같다. 이러한 장치는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고 조울증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그리는 이 작품에서도 빛을 발한다. 그녀는 이 작품에서 누군가가 진정으로 자신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전달되기 힘든 시대의 사랑을, 또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의 생생한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모토야 유키코의 작품을 보면 소설과 희곡을 불문하고 자기 생각에 푹 빠져서 격렬하게 반응하는 자의식 과잉 상태의 여자가 폭주하는 상황이 종종 묘사된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자학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자기완결’이든 ‘2인 완결’이든 ‘아이드 미쓰오’적 세계관을 가진 ‘가족적 완결’이든 아무튼 내부를 향해 ‘완결’하려고 하는 움직임에 대한 파괴적이 역행이라고 볼 수 있다. _나카마타 아키오(문예비평가) 조울증, 수면과다증 그리고 스물다섯! 살아간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 찾기 “왜, 내가, 이렇게, 바보처럼, 잠만 자는지, 누가, 알아듣게, 설명 좀 해봐!” 아무 것도 보고 싶지 않아 방에 콕 틀어박힌 지 20일째다. 우울증이 어디에서 시작돼서 어떻게 끝나는지 알 수 없지만 이번에는 제법 심각한 놈이 온 것 같다.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던 남자에게 가볍게 데이트나 하자는 말을 들은 후 ‘이렇게 별 볼 일 없는 놈한테도 내가 쉽게 보이는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야스코는 깊은 우울증에 빠졌다. 만사가 귀찮기만 하다. 그리고 야스코는 사람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깊은 잠을 선택한다. 세상에서 야스코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의료보험도 해지되었고, 여권도 없고, 운전면허증도 없다. 처음 미팅에서 만난 츠나키와 동거를 시작한 지 3년이 되었다. 고등학생 시절 담임선생이 신칸센 고속열차를 닮아 공부할 마음이 생기지 않아 중퇴를 하려고 했던 즉흥적이고 어디에서도 튀는 야스코에게 츠나키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남자였다. 야스코의 우울증으로 인한 도발에도 츠나키는 그저 ‘응’, ‘미안해’라고 할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츠나키의 전 애인 안도는 야스코를 무작정 세상 밖으로 밀어내기 시작한다. “방구석에 틀어박혀 평생 잠만 자는 거랑 죽어버리는 거랑 별 차이도 없잖아?” 죽지 못할 거면 츠나키를 떠나 홀로 독립하라고 강요하는 안도의 강압에 자그마한 레스토랑인 라티나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가족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인 라티나에서 “우울증은 외로워서 생기는 거야”라고 건네는 따뜻한 말에 야스코는 ‘어쩌면 이번에는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생각한다. 그날 저녁 야스코의 환영식에서 ‘비데’에 대한 생각의 차이로 야스코는 가장 치명적인 폭주를 하게 된다. 벌거벗은 채 눈으로 덮인 옥상에서 츠나키에게 “너가 지금 이 순간을 5000분의 1초 만이라고 기억해줬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야스코.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을 알아달라는 몸부림을 무시한 츠나키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심을 건넴으로써 세상과의 소통을 위해 진정한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연애는 일종의 환상이다. 하지만 연애라는 환상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 조건이란 당사자들이 ‘2인 완결’된 상태에 있는 것이다. ‘자기완결’을 이룬 사람은 일부러 ‘2인 완결’이라는 귀찮은 상태를 타인과 함께 만들 필요는 없다. 그래서 자기완결을 이룬 사람은 연애를 하지 않는다. __나카마타 아키오(문예비평가) 아프고, 숨고 싶지만 세상으로 부화하기 위해 갇힌 틀을 깨다 야스코의 마지막 폭주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외침이다. 그것이 사랑이든, 사랑이 아니든 상관없다. 단지 사람으로서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사랑은 야스코가 츠나키라는 존재를 통해 자신을 치유해가는 과정이다. 무관심하고 재미없고 항상 똑같은 말과 행동만 하는 츠나키에게 더 이상의 사랑을 느끼지 못했던 야스코. 잠깐이지만 사람으로서 자신의 아픔을 알아줄 것만 같았던 ‘레스나’의 식구들. 하지만 결국 야스코에게 깊은 상처를 주게 되는 것은 사랑인 척 행동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정상인 척 행동한 야스코 자신이었다. “일어나”라고 말하며, 문을 똑똑 두드리는 츠나키의 반복적인 행동은 야스코가 가진 장애를 치유하는 방법이다. 돌발적인 안도의 출현이나 세상으로 흡수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감정을 강요하는 사람들의 방식은 야스코를 더욱 자신 안으로 고립되게 만든다. 고치를 뚫고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험난한 과정과 지난한 시간이 필요하다. 찬란하게 세상으로 나올 야스코를 위해 스물다섯 살씩이나 먹은 여자가 아닌, 아직 스물다섯 살을 깊은 잠으로 살아온 여자를 위해 세상으로 나설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과연 연애소설이라고 불러도 될까? 맛이 진한 ‘노른자’와 너무도 담백해 보이는 ‘흰자’가 어느 한순간만큼은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형성할 수도 있다. 그 사실이 제시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연애소설로서도 충분히 성립된다. 그러나 고전적인 연애 드라마가 ‘연인’ 대 ‘세상’이라는 대립 구도를 기본으로 하는 것과는 반대로 이 소설에서 야스코와 츠나키는 자아라는 껍데기 속에 틀어박혀 있기는 해도 사실 사회와는 전혀 ‘대립’하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타협’은 야스코의 특기니까. 야스코가 대립하는 상대는 사회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츠나키, 넌 좋겠다. 나랑 헤어질 수 있어서 정말 좋겠다.” __나카마타 아키오(문예비평가) 이 책에 함께 수록되어 있는 그 새벽의는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사랑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남자친구와의 사소한 말다툼으로 무작정 집을 나온 그 새벽. 한겨울에 비치샌들을 신고 지방도로 14호선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 헤어진 옛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그 새벽의 주인공 역시 즉흥적이다. 그저 감정에 충실한 행동을 할 뿐이다. 하지만 모토야 유키코는 잠시의 방황을 일방적인 떠남으로 풀어내지 않는다.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애인이라거나, 도망쳐 나온 자신을 데리러 오라고 요청하는 것은 모토야 유키코가 제안하는 이 시대 청춘들에게 세상과의 진정한 화해의 방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