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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책 속에서 복수에 대한 문장을 찾는 사내 _007
2장 이야기들 _033 3장 책 속에서 복수에 대한 문장을 찾았던 사내 _203 초판 작가의 말 _225 개정판 작가의 말 _2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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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이야기라고 갈라놓을 수 없었다. 그것들은 전부 다르면서 같았다. 이야기 속 웃음소리와 울음소리는 닮아 있었다. 악인과 선인의 얼굴도, 그녀 얼굴의 왼편과 오른편처럼 서로 닮아 있었다. 밤과 낮의 경계를 참빗으로 가르마 가르듯 나눠놓을 수 없는 이치와 같았다. 이야기는 그녀 것이기도 하고, 그녀 것이 아니기도 했다.
--- p.50 때론 누군가의 죽음이 누군가에게 살길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 잃는 자가 있어야 누군가는 얻는 법이다. 어딘가 곧 숨 끊어질 머리를 바닥에 눕히는 짐승이 있다면, 어딘가 찬 몸을 웅크려 알을 품는 새가 있으리라. --- p.57 아비규환의 싸움이 멎고 복도 끝에서 끝까지 녹슨 쇠처럼 무거운 침묵만 가라앉아 있을 때, 장지문 안쪽에 홀로 남아 있던 남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언제나 주변의 목숨이 다 진 뒤 홀로 남았던 사람이니, 이런 고독의 시간이 그에겐 익숙할지도 몰랐다.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 p.66 내게는 양지를 택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재상에게 악을 말하고, 그는 장단 맞춰 악을 행한다. 내가 어둠에 가까이 가는 만큼 그도 몇 걸음 더 가까이 간다. 운명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는다. 환관의 운명이 거세당하는 순간 이미 결정지어진 것처럼, 내 운명도 미궁 안으로 들어오던 날 결정지어진 것이다. --- p.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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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적부터 악인을 이기는 방법은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극악한 인간이 되는 것이라 믿었다.” 이야기는 액자 밖에서부터 시작된다. 복수를 꿈꾸며 온갖 책들에 파묻혀 복수에 관한 문장을 모으는 사내가 있다. 그에게, 역시 복수만이 삶의 전부인 여인 ‘정貞’이 다가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준다. 액자 안에서 확장되는 그 흥미로운 이야기에는 피 묻은 칼로써 나라를 제 손에 틀어쥔 극악무도한 재상이 등장한다. 온 사방이 그의 적인지라, 재상은 방이 마흔 칸이나 되는 구불구불한 미궁을 만들어 그 안에서 매일 밤 침소를 바꾸며 생활한다. 어느 밤 솜씨가 뛰어난 한 자객이 재상을 암살하려다 실패하고, 자객은 제가 죽은 뒤 남을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얼굴 가죽을 벗겨서 씹어 삼키고는 숨을 거둔다. 이 사건을 구심점으로 하여, 재상을 증오하지만 미궁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철저히 그의 손발이 되어 악을 행해야 했던 재상의 의붓아들, 의붓아들에게 물려받은 복수심을 품고 살아가는 자객의 아이들 ‘명冥’과 ‘정貞’, 그리고 미궁 안에서 이 모든 것을 기록하는 재상의 벙어리 첩 등이 번갈아가며 등장하여 관련된 진술을 겹쳐나간다. 소설 속 인물들은 더 깊은 악惡을 향해 가라앉아가는 듯하다. 작품 속에서 악은 읽는 것만으로 몸에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생생하게 표현된다. 악의 근원, 악을 없앨 수단으로서의 악에 대한 오현종의 사유 위에서, 소설 속 악인과 선인은 점점 얼굴의 왼편과 오른편처럼 닮아간다. 자신의 불행을 남에게 퍼뜨려 고독감을 견디고 싶었던 재상과 그 의붓아들의 감춰진 연약함, 그리고 그들과의 대척점에 서 있는 자들이 숨기고 있던 잔혹함이 뒤로 갈수록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진실에 근접해간다. 이야기에 들린 작가, 오현종 누구의 것도 아니어서 모두의 것이 되는 ‘이야기’를 펼치다 액자 안의 이야기를 듣고 난 액자 밖의 사내는 감았던 눈을 뜬다. 피가 낭자하고 살점이 튀는 이 생생한 이야기는 실제일 수도, 꿈일 수도, 아니면 벙어리나 어떤 무료한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책 속 내용일 수도 있겠다. 이렇게 가르마 가르듯 나눌 수 없는 액자 안 이야기는 그대로 오현종이 생각하는 ‘이야기성’의 본질을 표상한다. 그에게 이야기란 ‘누구의 것도 아니며, 결국은 한데 뭉쳐 한길로 흐르는 것’이다. 한번 등장했다가, 비슷하면서도 또다른 형태로 변주되어 다시 나타나는 작품 속 각각의 서사처럼, 이야기는 어떤 사실로부터 피어올라 누군가에 의해 살이 덧붙고, 또다른 누군가에게 전달되어 새롭게 태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이야기들에는 어떤 뚜렷한 경계가 없다. 이것은 오현종이 장르를 넘나들며 소설의 외연을 확장하려는 시도를 고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액자 안과 밖의 관계는 어떤가.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우리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나가기 위해 길을 떠나는 액자 밖 사내의 얼굴에 한순간 재상의 의붓아들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액자 밖의 인물들이 액자 안의 인물들과 대응하는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 우리는 소설 속의 모든 이야기가 결국 한길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옛날 옛적부터 지금까지 이어져내려온 이야기들, 그 세세한 흐름들을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볼 때, 그 모든 이야기 가지들 역시 결국은 하나의 거대한 너울로 모이게 되는 것 아닐까. 모든 이야기는 결국 다르면서 같은, 인간의 ‘운명’을 따라 흐르기에. 다른 것이 아닌,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재상의 벙어리 첩, 그녀가 쓴 자객 이야기를 읽는 자객의 딸 ‘정’, 그리고 ‘정’이 오랫동안 간직한 그 이야기를 나누어 갖고 자신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액자 밖의 사내. 이 세 인물은 바로 ‘이야기를 만드는 자’, 즉 소설에 투영된 오현종 자신의 모습이리라. 『자객의 칼날은』 역시 그러한 과정을 거쳐 당신으로부터 다른 누군가에게로 유장히 이어져갈 것이다. *문학동네 플레이 시리즈 ‘읽는’ 소설에서 ‘보는’ 소설로 국내 최고의 작가들이 만들어나가는 무수한 취향의 테마파크! 흥미진진하고, 몰입감 높으며, 독자의 마음에 감동을 남기는 웰메이드 장편소설의 퍼레이드가 펼쳐집니다. 문학동네 플레이 시리즈는 ‘플레이(PLAY)’라는 이름에서 확인할 수 있듯, 소설 읽기를 ‘놀이’로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장르를 망라하는 문학 테마파크를 지향한다. 또한 한 장면 한 장면 허투루 쓰이지 않은 감각적이고 탄탄한 장편소설을 엄선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재생’함으로써 오감을 통해 구체적으로 체험하는 문학을 선보이고자 한다. 앞으로 문학동네 플레이 시리즈는 평단과 독자에게 인정받는 국내 최고의 작가들과 함께하며 재미와 감동을 함께 전하는 뛰어난 작품들로 채워질 예정이다. 이 책은 꿈속에서 가파른 지붕 위를 달리던 자객의 독백만도 아니고, 오로지 전해들은 이야기만도 아니며, 젓갈처럼 내 속에 오래 삭혀두었던 슬픔도 아닌 무엇이 되었다. 소설 속 이야기꾼 심연의 말처럼 이야기들은 전부 다르면서 같았기 때문이다. 밤과 낮의 경계를 참빗으로 가르마 가르듯 나눠놓을 수 없는 이치와 같았다. 이 이야기는 내 것이기도 하고, 내 것이 아니기도 하다. 어쩌면 이야기를 삼켜 제 피와 살로 만들 누군가의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니 이야기를 묶는 기쁨을 나 혼자 독차지한다면 공평한 일이 아닐 테다. 그럴 수만 있다면 이 책이, 내가 아는 모든 이야기 속 인물들이 한때 존재했었다는 증거가 되어주면 좋겠다. _‘초판 작가의 말’에서 이제야 고백하자면,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잃어버린 것을 오래 생각하는 사람, 어둠 속에서 밝은 데를 응시하는 사람, 삶을 돌이킬 수 없어서 오직 복수를 원하게 된 사람의 이야기를. 소설이 완성된 뒤에는 대문을 걸어 잠그고 빠져나올 수 있으리란 기대를 품고. 여각의 앉은뱅이가 이야기를 마치고 제 발로 골방에서 걸어나온 뒤로도, 내가 미궁을 애써 잊고 지낸 지금껏, 그곳에 그림자를 두고 머물러온 자들이 있을까. 있다면 문밖으로 데리고 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을 데리러 다시 어둠 속으로 들어가야지. 나올 길은 그때나 지금이나 이야기 안에 있을 테니. 나는 백화점 지하 출입문을 천천히 빠져나왔다. 그리고 손금을 긋듯 가만히 왼 손바닥 위에 적어보았다.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는 자객의 이름을. _‘개정판 작가의 말’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