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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1821년 2월 23일
1 고래잡이의 본고장 낸터킷 2 뜻밖의 일격 3 첫 번째 공격 4 불타는 섬 5 격분한 고래의 공격 6 운명을 건 계획 7 바다에서의 표류 8 혀가 타는 갈증 9 저기 섬이 있다! 10 극한의 딜레마 11 운명의 제비뽑기 12 독수리의 그림자 13 귀향 14 그 뒤의 이야기 에필로그 | 고래의 뼈 옮긴이의 글 해설 |
Nathaniel Philbr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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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지금은 거의 잊혔으나 포경선 에식스호가 분노에 찬 향유고래에 떠받혀 침몰한 사건은 19세기에 가장 널리 알려진 해양참사 가운데 하나였다. 미국의 거의 모든 어린이들이 학교에서 이 사건에 관한 글을 읽었다. 그것은 또한 허먼 멜빌의 소설 《백경》의 클라이맥스 장면에 영감을 준 사건이기도 했다. ---「프롤로그 」중에서
그들은 아조레스에 기항하여 신선한 채소를 다량 구입했다. 하지만 예비 보트는 구할 수 없었다. 에식스호는 다시 케이프베르데 제도를 향해 남쪽으로 내려갔다. 2주 후에 보아비스타 섬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조레스의 녹음이 짙은 산과는 대조적으로 케이프베르데 제도의 언덕들은 풀이 갈색으로 시들어 있었고 아열대의 불타는 햇볕을 식혀줄 시원한 느낌을 주는 나무들은 자라지 않았다. 폴라드는 남서쪽으로 몇 해리 더 가서 마이오 섬에서 돼지를 얼마간 구입할 생각이었다. ---「3장 첫 번째 공격」중에서 “놈의 모습과 태도는 처음에 우리에게 아무런 경계심을 갖게 하지 않았다.” 하고 그는 회상했다. 그런데 갑자기 고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너비가 20피트나 됨직한 꼬리가 펌프질하듯이 아래위로 움직였다. 처음엔 약간 좌우로 흔들리며 천천히 움직이던 꼬리의 펌프질이 점점 빨라지면서 거대한 술통처럼 뭉툭한 대가리 주변에 자욱한 물보라가 피어올랐다. 놈은 에식스호의 좌현을 겨냥하고 돌진해오고 있었다. ---「5장 격분한 고래의 공격」중에서 낸터킷 사람들이 그때까지만 해도 수십 년간 항해했던 태평양에 관해 그토록 무지했다는 것은, 오늘날 와서 보면 너무나 믿기 어렵다. 18세기 말 이후로 낸터킷 섬에 인근한 뉴욕과 보스턴, 세일럼에서 중국을 오가는 무역선들은 중국의 광둥으로 가는 도중에 마키저스 제도뿐만 아니라 하와이 제도에도 자주 기항했다. 마키저스 토인들의 식인 소문은 널리 퍼져 있었지만, 그에 상반되는 많은 현실적인 정보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6장 운명을 건 계획」중에서 그들은 하루 전부터 바닷물에 젖었던 건빵을 먹기 시작했는데, 그 건빵은 조심스럽게 다시 말렸지만 바닷물의 소금기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이미 수분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는 그들의 갈증에 불을 지른 꼴이 되었다. 그들의 신장은 소금을 배설하기 위해 체내에서 더 많은 액체를 뽑아냈던 것이다. 그들은 지나치게 많은 나트륨 때문에 경련이 일어나는 나트륨 과잉혈증 현상으로 고통받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의 부족은 삶의 고통 가운데 가장 무서운 것이라는 말이 옳다.”고 체이스는 기술했다. “미칠 듯이 격렬한 갈증은 인간이 겪는 고통의 목록 가운데서 비교할 것이 없을 정도다.” 그는 표류 6일째인 이날 11월 28일에 “여기서 우리들의 극단적인 고통이 처음 시작되었다.”고 회상했다. ---「7장 바다에서의 표류」중에서 다음날 북에서 불어오는 순풍이 사라져버리자 그들의 실망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아! 우리의 기대는 한갓 꿈에 지나지 않았다.”고 체이스는 탄식했다. 무풍상태가 사흘 더 계속되면서 이글거리는 태양이 사정없이 내리쬐자 그들의 반응은 점점 더 침울해졌다. “날씨의 극단적인 압박, 뜻밖의 돌연한 희망의 무산, 그 결과로 인한 절망적인 낙담은 우리들을 다시 한 번 생각에 잠기게 하고 우리들의 마음을 두렵고 슬프고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히도록 만들었다.” 에식스호를 떠난 지 23일째인 12월 14일, 그들이 변풍대에 도달하는 시한으로 정한 예정일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남으로 가야 할 길을 수백 킬로미터나 남겨두고 무풍상태에 갇힌 채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만약 그들이 살아서 해안에 닿게 될 일말의 희망이라도 가지려면 보유하고 있는 양식이 60일치 이상이 되어야 했다. ---「8장 혀가 타는 갈증」중에서 에식스호를 떠난 지 52일째 되는 다음날, 아침과 오후에 북서풍이 점점 강해지더니 밤이 되자 완전한 강풍으로 변했다. 선원들은 돛을 모두 내리고 배가 바람에 떠밀려가도록 키만 잡았다. 돛이 없어도 배들은 물마루를 타고 빠른 속도로 미친 듯이 맹렬히 질주했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빠지는 대신 시속 50노트의 그 바람이 자기들을 목적지로 실어다줄 것이라고 좋아했다. ---「10장 극한의 딜레마」중에서 그들은 남위 32도 16분, 서경 112도 20분, 이스터 섬으로부터 남쪽으로 약 96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헨더슨 섬을 떠난 지 19일이 되는 그때 아직도 갈 길을 1,600킬로미터나 남겨두고 체이스 보트의 선원들은 외톨이가 되어버렸다. “그 일이 있은 뒤 오랫동안 우리는 그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우울한 표류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하고 체이스는 기술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데서 오는 위안감도 잃어버렸다. 이상하게도 서로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더해주었다.” 다음날도 강풍과 비가 계속되었다. 체이스는 남은 식량을 점검해보기로 마음먹었다. ---「10장 극한의 딜레마」중에서 체이스의 보트가 사라진 지 8일째인 1821년 1월 20일, 폴라드와 헨드릭스 보트의 사람들에게도 식량이 떨어져가고 있었다. 그날 헨드릭스 보트에 타고 있는 흑인 가운데 한 사람인 로슨 토머스가 죽었다. 열 사람이 나눠 먹어야 할 식량이 겨우 450그램밖에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헨드릭스와 그의 부하 선원들은 모두가 마음속에 품고 있던 문제를 내놓고 말하기 시작했다. 즉, 토머스의 시체를 수장하는 대신에 먹어야 하느냐, 그래서는 안 되느냐 하는 문제였다. ---「11장 운명의 제비뽑기 」중에서 폴라드 보트의 사람들은 다들 너무 쇠약해져서 사라진 보트를 찾기위해 등불을 흔들거나 총을 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에식스호 침몰 후 처음으로 모두 낸터킷 사람들인 폴라드 선장, 오언 코핀, 찰스 램스델, 그리고 바질라이 레이 등 네 사람만 남게 되었다. 그들은 남아메리카 해안에서 2,400킬로미터 떨어진 남위 35도, 서경 100도 해상을 표류하고 있었는데 그들을 연명시켜 줄 양식이라고는 반쯤 먹다 남긴 새뮤얼 리드의 시체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전망이 아무리 암담해 보일지라도, 적어도 헨드릭스 보트 선원들보다는 더 나았다. 그들은 나침반도 사분의도 갖지 못한 가운데 끝없이 광활하고 텅 빈 태평양에서 길을 잃은 상태였다. ---「11장 운명의 제비뽑기」중에서 군중은 다시 해안통 거리로 몰려 내려갔다. 이내 1,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부두에 나와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포경선이거나 포경선의 귀항은 어떤 낸터킷 사람의 말마따나, “우리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것은 지구의 반대쪽이 일터인 그들의 아들, 남편, 아버지, 삼촌, 친구 등 사랑하는 사람들에 관한 소식을 듣는 길이었다. 그 포경선이 어떤 소식을 가지고 올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배를 마중 나온 섬사람들은 자기들의 열망과 걱정을 숨기고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짓는 경향이 있었다. ---「13장 귀향」중에서 폴라드의 친구들 역시 이런 얘기를 믿지 않았다. 그들은 폴라드가 에식스호 고래잡이 보트에서 희생된 동료를 농담거리로 삼을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록 그는 에식스호의 비극을 과거로 묻어버리고 살아갔을망정, 죽은 사람들의 명복을 기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피니는 회상했다. “1년에 한 번 에식스호 조난일이 오면 그는 자기 방에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 죽은 동료들의 명복을 빌면서 단식을 했다.” ---「14장 그 뒤의 이야기」중에서 생명을 건 모험에서 생환함으로써 에드워드 시대 사나이들의 우정과 영웅적 행동의 화신으로 살았던 어니스트 섀클턴 경과 그의 대원들과는 달리, 폴라드 선장과 그의 선원들은 단순히 생계를 꾸려가려고 애쓰다가 85피트 길이의 고래의 도전이라는 대재앙을 만났다. 그들은 조난을 당한 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 와중에 어쩔 수 없이 실책도 저질렀다. 폴라드 선장의 본능적 판단은 옳았다. 그러나 그는 두 젊은 항해사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는 결단력을 지니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안전하게 타히티 섬으로 항해하는 대신에, 거의 불가능한 멀고도 험난한 항해에 나서 많은 사람이 죽을 때까지 태평양이란 황량한 파도의 사막을 배회했다. ---「에필로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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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먼 멜빌의 고전 《백경》의 감동을 잇는 매혹적인 해양 논픽션의 걸작!
전미도서상 논픽션 부문 최우수도서 [타임] 논픽션 부문 최우수도서 선정 [뉴욕타임스] 40주 이상 장기 베스트셀러 허먼 멜빌의 고전『백경』에 영감을 준 에식스호 이야기를 다룬 최고의 해양 논픽션, 국내 최초 완역본으로 만나다! 《바다 한가운데서》는 19세기 최대의 해양참사로 알려진 포경선 에식스호의 비극을 다룬 논픽션이다. 2000년에 출간되어 그해에 전미도서상 논픽션 부문 최우수상, [타임] 선정 논픽션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수상 목록이 말해주듯이, 이 책은 그야말로 미국 특유의 탄탄한 저력을 갖춘 기록문학의 힘, 철저한 고증과 박진감 넘치는 전개방식을 보여주며, 강인한 해양사를 생생하게 그려낸 역작이다. 이 책은 또한 [뉴욕타임스] 40주 이상 장기 베스트셀러였으며, 지금도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 저자 너새니얼 필브릭은 이후에도 격정적이고 스릴 넘치는 해양사 관련 논픽션을 통해 [뉴욕타임스]가 인정한 최고의 논픽션 작가로 떠올랐으며, 현재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2015년 국내에서 새롭게 출간된 신간《바다 한가운데서》는 국내 최초 완역본(2001년에 출간되었다가 절판됐다)으로, 기존 한국어판에서 누락된 부분을 되살리고, 원서의 생생한 묘사와 치밀한 문체, 방대한 자료들을 담아내어 논픽션 걸작으로 잘 알려진 원작의 깊이와 맛을 제대로 살리는 데 부족함이 없다. 세계적인 고전《백경》의 작가로 유명한 허먼 멜빌은 젊은 날, 신출내기 선원으로 고래잡이 일에 뛰어든 적이 있다. 그는 1840년에 태평양에 나갔다가, 역시 고래잡이 선원이 된 에식스호의 생존한 일등항해사 체이스의 아들을 우연히 만난다. 멜빌은 이미 에식스호의 비극을 잘 알고 있었지만, 체이스의 아들로부터 체이스가 쓴 에식스호 조난기를 받아 읽고 깊은 감명을 받는다. 뒷날 멜빌은 “육지라고는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서 그 놀라운 이야기를, 그것도 에식스호의 조난지점과 같은 위도에서 읽는다는 것은 내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라고 회고했다. 극한의 바다에서 흰고래와 운명적인 사투를 벌이는 일을 주제로 한 고전《백경》은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멜빌에게 에식스호는 소설 속의 피쿼드호가 출항하는 장소의 실제모델을 제공해주기도 했다. 한때 세계의 관심을 지배했던 작은 섬, 낸터킷이 바로 그곳이었다. 낸터킷은 미국 매사추세츠 케이프코드에서 대서양으로 32km 떨어진 작은 섬으로, 19세기 세계에서 가장 수지맞고 중요한 산업이었던 포경산업의 세계적 중심지였다. 그리고 19세기가 저물면서 낸터킷은 쇠락하기 시작한다. 왜 허먼 멜빌은 에식스호 이야기에 그토록 감명을 받았던 것일까? 1819년 여름, 238톤의 포경선 에식스호는 낸터킷 섬에서 출항해 일상적인 고래잡이 항해에 올랐다. 그 후 15개월이 지나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남태평양의 가장 먼 가장자리에서 에식스호가 성난 고래로부터 공격을 받아 침몰한 것이다. 20명의 조난 선원들은 세 척의 작은 보트에 나눠 타고 4,800km나 떨어져 있는 남아메리카를 향해 길을 떠났다. 그들은 3개월 뒤 8명만 살아남았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바다에서 목숨을 건 인간의 모험, 굶주림과 살아남기 위한 식인, 고래와의 운명적 싸움이 얽힌 19세기 최대의 해양참사 에식스호 이야기는 지금도 깊은 공명을 불러일으키며, 시종일관 우리를 압도한다. 에식스호 이야기는 단순한 표류기를 넘어, 극한의 바다에서 버텨낸 인간의 절절한 생존본능, 끝없는 인내와 용기, 어쩔 수 없이 죽은 동료의 시체를 먹고 살아남기를 선택한 평범한 사람들의 초인적인 생존을 다룬, 그야말로 우리 모두를 전율하게 만드는 극한의 인간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어니스트 섀클턴의 항해보다 5배나 긴 7,200km, 94일 최장기 표류 평범한 인간들의 생존과 용기를 그려낸 극한의 드라마, 론 하워드 감독 전격 영화화! 할리우드 2015년 최고 기대작 180년의 세월이 흐른 뒤 에식스호의 생생한 탐험과 조난의 현장을 담아낸 《바다 한가운데서》에서, 저자 너새니얼 필브릭은 거친 바다에서 생계를 위해 고래잡이에 나섰던 포경선 선원들과 포경산업을 세세하게 취재했다. 더불어 갈증과 굶주림이 인간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 극한상황에서 인간의 심리가 시시각각 변화하는 모습, 굶주림 끝에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식인과 그 과정에서 겪는 심리적 갈등, 식인이 인간성에 미치는 영향 등을 여러 연구 사례를 엮어 흥미롭게 기술하면서 가히 기록문학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이 단순한 사건은 실로 많은 주제를 우리에게 강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경》이 에식스호 이야기에 영향 받아 탄생한 것처럼, 이 책을 본 독자들은 인간생존,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존재라는 강렬한 주제를 생각하게 된다.《백경》에서 멜빌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던 인종, 계급, 리더십, 자연과 인간의 관계 등의 주제는 에식스호 참사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멜빌의 소설이 끝나는 시점(피쿼드호의 침몰)은 실제 에식스호의 침몰에서는 사건의 출발에 지나지 않는다. 고래가 박살낸 그 포경선에서 탈출한 20명의 선원 가운데 겨우 8명만 용케 살아남을 수 있었다. 도핀호에 의해 구조된 두 명의 선원은 거의 7,200km의 해상거리를 태평양을 가로질러 표류했으며, 이는 바운티호 선상반란의 윌리엄 블라이 선장의 경우보다 약 800km나 더 긴 항해이며, 어니스트 섀클턴 경의 그 유명한 항해보다 무려 5배나 긴 거리이다. 그리고 이들은 훈련받은 탐험대가 아니라, 가족의 생계를 위해 생업에 나선 십대 소년들을 포함한 젊고 평범한 20명의 선원들이었다. 《바다 한가운데서》는 《백경》의 결말 그 이후의 시점에서부터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배가 침몰한 뒤 시작된 고래잡이 선원들의 죽음과 삶이 교차된 표류가 본격적으로 그려진다. 에식스호의 선원들은 처절한 갈증과 굶주림 속에서 거친 풍랑과 폭풍우 그리고 절망과 고독과 싸우면서 94일 동안 장장 7,200km를 표류했다. 그때까지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전인미답의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면서 아사 직전의 극한상황에서 연명하기 위해 동료들의 인육을 먹기까지 했다.《백경》이 인간 내면에서 극적인 대립을 이루는 영혼과 혈기, 문명과 야만, 선과 악, 현실성과 영원성, 사랑과 증오를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서사시적인 픽션이라면, 《바다 한가운데서》는 인간생존의 냉엄한 진실에 대한 사실적 다큐멘터리이다. 이 책의 저자는 표류자들이 바다와 자연과 싸우면서 굶주림, 갈등, 질병, 공포로 서서히 무너져가는 처절한 과정을 무서우리만큼 객관적으로 재현함으로써, 생명의 소중함을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새롭게 일깨운다. 수준 높은 관련지식으로 완성도를 높인 기록문학의 기본기, 다양한 도판자료 다수 수록 저자는 또한 에식스호의 비극을 다루면서, 19세기 포경산업 전반을 폭넓게 조사했다. 180여 년 전의 이야기를 정확히 재구성하기 위해서 태평양 섬들의 식인풍습에 대한 소문, 바다에서의 생존방법, 굶주림의 심리학과 생리학, 항해술, 해양학, 향유고래의 생태학, 포경선 조선술, 관측술 등 에식스호 선원들이 광활하고 무자비한 태평양에서 겪어야 했던 일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참고문헌과 자료들을 광범위하게 읽고, 《바다 한가운데서》 안에서 구체적으로 살려내어 이 감동적인 다큐멘터리의 완성도를 높였다. 철저한 고증과 자료조사를 통해, 기록문학이 어떤 것인지 그 본모습을 가르쳐주는 모범적인 자세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책의 옮긴이는 “처음 소개되었을 때, 많은 동료 기자들과 독자들이 ‘탐사저널리즘의 진수’라고 입을 모아 감탄해 마지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식수가 동이 난 뒤 여러 날 지나자 극심한 갈증에 시달리며 탈수증을 보이는 표류 선원들의 상태를 애리조나 사막에서 7일간 물을 마시지 못한 채 살아난 한 생존자의 경우와 비교한 서술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극심한 갈증과 굶주림에 처한 인간의 생리적 변화과정과 심리적 갈등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나치의 아우슈비츠수용소 생존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들과 대조하여 그 심각성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또 저자는 이 책에서 극한상황에 처한 해양 조난자들이 인육을 먹은 충격적인 역사적 사례들도 여럿 열거하고 있다. 바운티호의 선상반란사건과 전설적인 섀클턴 경의 남극탐험에 얽힌 리더십 일화도 소개하고 있어서 이 책은 인간의 해양개척사의 한 시대 단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바다 한가운데서》는 작은 섬 낸터킷 사람들이 겨우 200톤급의 작은 범선을 타고 남아메리카 남단을 돌아서 멀리 태평양까지 나가서 고래잡이를 하며 바다를 개척한 해양개척사 그 자체이기도 하다. 포경선 에식스호의 고래잡이 선원들은 그냥 모험을 좇아서 미지의 바다로 나간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생계수단으로서 미국 고래잡이 산업의 본거지가 된 고향에서 어릴 적부터 동경해왔고 가장 자연스럽게 선택할 수 있었던 고래잡이에 나선 사람들일 뿐이었다. 그러나 십대 청소년도 여럿 섞인 에식스호의 선원들이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최악의 극한상황에서도 비교적 평온과 규율과 질서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경이롭기만 하다. 위대한 탐험대도, 새로운 땅을 찾아 정복에 나선 군대도 아닌 평범한 고래잡이 선원들의 이 고난과 사투는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도 극한상황에서의 인간존재, 인간의 용기에 대해 깊이 감동하게 하며,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에식스호 이야기는 지금도 인간과 자연에 대해, 인간의 용기와 소중한 생명에 대해, 삶을 택하기 위해 버려야 했던 것들에 대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 이 책에 쏟아진 찬사 “엄청나게 매혹적이며, 긴장감이 끊이지 않는다!” ?[타임] “뇌리에 파고드는 이야기! 저자는 머리끝을 곤두서게 하는 놀라운 논픽션 스릴 러를 창조해냈다.” ?[뉴욕타임스] “매혹적이고 최고로 위대한 모험담 가운데 하나.” ?[월스트리트 저널] “독자적인 해양문학으로서 이 책은 고전적인 지위를 차지할 만한 한 편의 대서사 시로 전혀 손색이 없다.” ?[퍼레이드] “멜빌의 고전 《백경》의 역사적인 동반자이자 아마도 가장 스릴 넘치는 사상 최대 의 해양 논픽션이다.” ?[탬파 트리뷴앤타임스] “만약 타이타닉호 이야기를 좋아하고 《퍼펙트 스톰》을 탐독한 독자라면, 너새니얼 필브릭이 쓴 이 책은 바로 그를 위한 책이다. 이 책은 페이지마다 모험, 배짱, 대담한 용기, 그리고 무시무시한 굶주림과 생존에 관한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다. 비극적인 이야기이지만, 읽을 가치가 충분한 어느 비극적 항해에 대한 담대한 기록이다.” ?[뉴욕포스트] “《바다 한가운데서》는 삶의 파괴와 죽음에 대한 비통한 이야기를 장엄하게 전해준다. 필브릭이 쓴 이 책은 믿을 수 없으리만큼 인간들을 사로잡는 생존의 이야기에 덧붙여, 19세기 포경선에서의 삶을 놀라울 만큼 자세하고 치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허먼 멜빌이 《백경》에서 그랬던 것처럼, 저자는 독자들을 현장으로 이끌고 가서 포경선의 선원으로 만들어준다.” ?[애틀랜타 저널 컨스티튜션] “《바다 한가운데서》를 읽으면 도대체 허먼 멜빌이 왜 이 에식스호 사건에 마음이 끌렸을까 하는 의문이 사라지게 된다. 에식스호와 그 선원들에게 일어난 일은 《퍼펙트 스톰》과 《희박한 공기 속으로》 같은 현대의 베스트셀러만큼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드는 놀라운 모험담의 소재다. 이것은 서스펜스에 넘치는 가슴 아프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로, 독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이런 끔찍한 운명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인간의 어리석음, 문화적 오만으로 가득하다. 또한 젊은 작가 지망생들을 인간존재에 대해 철학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드물고 놀라운 사건이다.” ?[ L.A. 위클리] “믿어지지 않을 만큼 치밀하게 구성된 이야기!……이 책은 해양문학으로서도 우뚝 솟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단순한 해양 이야기를 넘어서 그 이상의 것으로 평가되는 대단한 이야기다. 잊을 수 없는 놀라운 인간 드라마로서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고 독자를 압도하고 숨 막히게 하는 이야기가 되었다.” ?[윌밍턴 뉴스저널] |